2012년 11월 27일 녹음, 총 3시간 40분 소요 완료

 

앉은 자리에서 꼬박 끝냈다.

시인 이정록은 어머니의 언어, 어머니의 기억, 어머니의 삶을 통해 걸쭉한 서사를 환기하고

울림통이 큰 시어는 물론 가슴 저 밑자리에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 끄집어 올려 피워준다.

충청도 말이 생각보다 잘 되었다. 참말 좋은 거다. 무름하니^^

시인은 충청도 말 감수까지 받아 시집을 냈다.

 

여기 72편의 시는 '시'와 '시어', '시를 쓰는 일'에 대한 시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그런 것의 은유로 '어머니학교'는 존재한다. 어머니가 툭툭 뱉어내는 에로스의 언어

또한 걸죽하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학교의 동창생이기도 하다, 시인의 말대로. 

시인의 친구가 편안하게 찍은 어머니 사진(흑백)들도 참 좋다.

내일이면 12월이 시작되는데 마음 따뜻해지는 시어들로 푹 익은 무마냥 마음도 무름해지고 싶다.

 

 

한 군데 오자는 아쉽다

73쪽  '칠순 천사' 중,  여자는 죽을 때가지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단다. (가지 ---> 까지)

 

 

 

 

몸과 맘을 다

(어머니학교 15)

 

 

 

 

장독 뚜껑 열 때마다

항아리 속 묵은 시간에다 인사하지.

된장 고추장이 얼마나 제맛에 골똘한지

손가락 찔러 맛보지 않고는 못 배기지.

술 항아리 본 적 있을 거다.

서로 응원하느라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입술들.

장맛 술맛도 그렇게 있는 힘 다해 저를 만들어가는데,

글 쓰고 애들 가르치는 사람은 말해 뭣 하것냐?

그저 몸과 맘을 다 쏟아야 한다.

무른 속살 파먹는 복숭아벌레처럼

턱만 주억거리지 말고.

 

 

 

 

 

한창훈 장편소설 <꽃의 나라>

 

2012년 2월 20일 녹음시작 총 12시간 소요 녹음완료.

편집할 책이 밀려 있는데 먼저 하고픈 것부터. 며칠 전 편집 시작 2012년 11월 30일 편집 완료

 

항구에서 도시로 고등학교 유학을 간 주인공을 중심으로 79년 10.26 전후 불안감과 

80년 5.18 광주혁명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나온다.(이건 3분의 2 지점 이후) 

당시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실상이 전혀 나오지 않았고 주인공도 '라디오에서는 아바 노래만

나왔다'고 말한다. 대학 때 총학생회에서 보여준 슬라이드로 처음 목격한 나도 너무 놀라고

분개했던 기억이 활활 재생된다. 소설은 먼저 5.18 이전의 폭력에 물든 사회상과 가족과 학교에서의 폭력적 분위기를 서사로 끌어들여 보여준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폭력서클(당연한 것처럼), 군대식 학과(교련), 폭력과 권위만을 내세우는 교사와 아버지, 욕설과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인 학생들.

 

주인공이 그 당시 거리에서 군인들에게 쫓기다 같이 쫓기고 있던 생물교사와 조우하는 장면에서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묻는 대목이 나온다. 생물교사도 궁금해 자신의 옛스승에게 물어봤더니 알래스카 개 이야기를 들려주더란다.

젊고 튼튼한 개들 사이에 늙고 병든 개 한 마리를 끼워넣어 집중적으로 그 병든 개만 채찍질 하는데 그러면 그 개가 내지르는

끊임없는 비명, 그 처절한 비명이 다른 개들에게 공포심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찍소리 못 하고 썰매를 끌게 된다고.

"그 사령관은 그게 필요한 거야. 공포와, 그것을 만들어내는 혼란이." (204쪽)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다.

 

 

오래지 않아, 사령관은 대통령이 되었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이다.

 

- 272쪽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쓴다.

 

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누렇게 삭아버린, 한번도 지키지 않았던 생활계획표 같은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은 미움이다. 미움의 힘이다. 우리가 이렇게 앓고 있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보다,

미워할 것을 분명하게 미워하지 않아서 생긴 게 더 많기 때문이다.

 

 

 

영화 <26년>, 이번 주 안에 봐야겠다.

마음 무름해지는 시집 읽다가 이 소설 다 읽고 영화 보면 다시 힘이 불끈 들어갈 것 같다.

아무튼 올해 11월의 마지막 날, 그리고 12월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소중한 하루, 스스로도 존중할 수 있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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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11-3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전 슬플 거같아요 이책

프레이야 2012-11-30 19:31   좋아요 0 | URL
'어머니학교'보다 '꽃의 나라'는 슬퍼요.
'꽃의 나라'에 이런 문장이 콕 박혀요.
사람이 사람에게 절대 해선 안 될 일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는 상처를 주는 일이라는.
영화 <26년>, 오늘 보려다 못 보고 주말에나 봐야겠어요.^^

다크아이즈 2012-11-30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대단한 프레님
판소리 완창도 아니고 앉은 자리에서 3시간 40분 녹음이라니...
언젠가 님 작품 목소리를 듣고말테야요^^*


프레이야 2012-11-30 20:47   좋아요 0 | URL
목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 하기 때문에 괜찮아요. 마이크 앞이니.
요령이 생겼다고나 할까, 굳은살이 박혔다고나 할까^^
근데 오늘 '꽃의 나라' 편집마감 하며 다시 들어보니 내용에 흡입되어
제 목소리까지 분개하고 있어서 영 그랬어요. 중도를 지키고 담담하게 읽어야하는데 말에요.
예전에 물만두님 책 '별다섯 인생' 녹음하면서도 몇번이나 울먹이고, 또 우스운 대목에선
웃음 나서 못 참고 키득대다가 일시정지 하고 그랬어요.ㅎㅎ

순오기 2012-12-01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어머니학교도 한창훈도!
둘 다 읽어서 공감할 수 있다는 건 더욱 좋고요!!
벌써 12월이네요~ 한달을 또 열심히 살고 한 해 마무리 잘하자고요!^^

프레이야 2012-12-01 14:20   좋아요 0 | URL
언니, 오늘 12월의 첫날이에요. 마음이 왠지 그래요. 울컥~ 벌써 한 해가 또 가고 있다니.
일산엔 언제 가볼 수 있으려나요, 우리.

맥거핀 2012-12-0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을 보니 한창훈의 <꽃의 나라>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사 그런 것에 대한 부분보다도 만연된 폭력의 구조랄까, 작동방식이랄까, 그런 것에 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가기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제목은 '꽃의 나라'군요. 찾아서 읽어볼께요.^^

프레이야 2012-12-01 14:23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나이브하게 읽힐 거에요.
만연한 폭력(욕설)의 구조, 가부장제적 인식 그런 것에 초점을 두었어요.
꽃의나라,는 역설이구요. 26년, 보셨어요?

맥거핀 2012-12-02 00:45   좋아요 0 | URL
소설은 원래 나이브한 것을 보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저는 그런 '나이브함'이 (거창하게 말하면) 결국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26년은 글쎄요..솔직히 그리 많이 땡기지가 않는데,
볼 기회가 생긴다면 굳이 피할 이유도 없겠죠.^^

프레이야 2012-12-02 12:38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에요. 세상은그리 곱지도 이상적이지도않지요. 작가도 그걸 의도하고 쓴 게 보이구요. 전 좋게 읽혔어요. 마지막에 보면 시계와 담배빵이 나오는데, 생각에 잠시 머물게 합니다. 26년을 보고 분개하는 정도로도 담배빵이 될 수있을지 모르겠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