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은 1952년 6월 7일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당시 수상소감을 밝힌 긴 글도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우연히 알라딘 달력을 보다 파묵이 태어난 날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최근 매일경제 기자 인터뷰(그의 작품 번역자 이난아씨 번역 도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후 삶이 어떠신가 물음에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신선하다.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터키의 자랑이 됐는데 요즘 삶은 행복하신지.
▶행복하지 않다. 마치 내 인생에 어떤 커다란 구멍이 있는 것 같다. 이 공허함이 항상 나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감정들은 글을 쓰면서 채워진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만 행복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쓰고, 독자들이 내가 쓴 것을 읽을 때만 나는 행복하다.
최근 자신의 작품 제목과 같은 '순수박물관'을 터키에 세운 걸로도 유명하다.
순수박물관을 세운 취지를 묻는 말에...
-소설 `순수박물관`은 사랑에 대한 집착을 다루고 있는데.
▶사랑이라는 게 시럽처럼 달콤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소설을 쓰지는 않았다.
물론 사랑에는 달콤한 면도 있고, 멋진 면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면도 분명히 있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어떤 행동을 하게끔 되어 있다. 질투를 하고, 안달하고, 상대방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게 된다. 이 소설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만 들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그 어떤 것들을 담고 있다.
그의 첫 문장들을 읽어본다. 때로는 깡총한 단문으로 때로는 현란한 장문으로.
삶과 상상력. 삶에 많은 독서와 자료로 상상력을 결합 시켜 하나의 소설을 탄생시킨다는 지적인 작가의 작품들.
버스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은 사내는 눈의 정적, 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고무타이어의 마차가 눈 위에서 달콤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매년 여름 게브제 군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 그곳에 있는 폐허 같은 문서 보관소에서
무엇인가를 긁어모으곤 했는데, 칙령과 땅문서 등록부와 재판 기록부와 공문서로 빽빽이 찬
먼지 나는 궤짝 안에서 1982년 이 필사본을 발견했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나의 슬픈 결혼식의 마지막 하객들이 신발을 신고 옷을 걸치고,
사탕 빠는 아이들을 끌고 대문 밖으로 사라지고 나자, 그 뒤에는 긴 정적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뤼야(주: 터키어로 '꿈'이라는 뜻)는 침대 머리맡에서 끝까지 펼쳐져 있는 푸른색 체크무늬
이불의 물결과, 그림자가 드리워진 계곡, 푸른색 언덕을 덮은 달콤하고 따스한 어둠에 싸여,
얼굴을 묻은 채 엎드려 자고 있었다.
전화벨은 현관문을 열고 삼사 초가 지난 후에 울리기 시작했지만, 마치 갱 영화에 나오는
경고 벨처럼 요란하고 집요하게 들려서, 갈립은 전화기와 문 사이에 어떤 역학관계가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 당황했다.
TURKEY ORHAN PAMUK MUSEUM OF INNOC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