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1일 녹음시작. 절반 좀 못 되는 127쪽까지 녹음.
황경신/ 소담출판사
월간 PAPER 편집장 황경신의 한뼘노트, 152 True Stories & Innocent Lies.
부산 태생, 연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황경신이 사진 찍고 글을 쓴 <생각이 나서>는
어떤 장에서는 약간 여고생 같은 감수성이 엿보이지만 대체로 스쳐지나기 쉬운 것에서 얻게 되는 통찰이 빛나는,
따뜻한 글과 사진을 담고 있다. 오랜 동안 모아뒀던 소중한 기억의 조각과 소소한 단상을 부담없이 실은 느낌이다.
다음 녹음할 책으로 넘어가기 전 비교적 글의 양이 적고 가벼운 느낌으로 읽을 책을 고른 건데,
152개의 작은 제목에 사진과 단상이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냉철하다.
아마도 이루지 못한 열정적인 사랑과 극심한 이별의 고통을 겪었을 작가의 글이
어느 순간 가슴 한복판 진심을 치고 들어온다.
책장 한 장 한 장 모두가 다채로운 색상의 사진이고 편집도 틀에 매어있지 않고 변주가 많아 자유롭다.
앞쪽 책날개에 적혀있는 황경신의 머릿말,
변하고 사라질 것들에 너무 무거운 마음을 올려놓지 않으려 한다.
내일이면 변할지도 모를 사랑을 너무 절실하게 전하지 않기로 한다. 아주 오래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이야기는 꼬깃꼬깃 접어서 열리지 않는 서랍에 넣어두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치는 걸음을 문득 멈추고 조금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로 가벼운 인사만을 건네기로 한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러워지고 미안해질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리석도록 깊고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말이다.
생각이 나서. 라는 그 말은
152개의 단상 중, 15번째 '천 년 동안'을 읽으며 영화 '건축학 개론'의 기조를 이룬, 건축과 사랑의 연관성이 떠올랐다.
한 천 년 버틸 집을 지으려면 한 천 년 사는 나무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은 천 년을 살지 못해도 집은 천 년을 살아야 한다며, 목수들은 천 년 살 나무로 천 년 살 집을 짓는다고 한다.
천 년 살 나무를 자를 때는 나무의 휘어짐을 따른다고 한다.
휘어짐을 무시하고 직선으로 자르면 나무는 천 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고 한다.
누군가를 천 년 동안 사랑하려면 그의 휘어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가 그 사랑 안에서 살아 숨쉴 수 있도록 그의 굴곡을, 그의 비뚤어짐을, 그의 편협함을,
그의 사소한 상처와 분노와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 휘어졌는가. 나의 휘어짐을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의 휘어짐은 서로를 내치는가, 아니면 받쳐주는가. 우리는 사랑을 지을 수 있는가.
천 년 동안 지속될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과 나는. (p30)
97세 장수 부부, 60여 년을 함께해온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건강하고 온화하고 다정한 어느 외국인 장수부부에게
인터뷰어가 물었다. 비결이 뭐냐고.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아야 한다." 가 대답이었다.
나의 휘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상대의 휘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
굳이 박완규의 노래가 아니어도, 그게 아니라면 천 년의 사랑이란 건 허울 좋은 유행가 가사일 뿐.
다음으로 찜해둔 녹음도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다시 읽을 생각에 설렌다.
올리브의 목소리는 어떻게 내야할까. 조금은 투박하고 무심한 듯 해야할텐데.^^
그외 많은 등장인물들, 읽다가 다시 생의 쓸쓸하고도 충만한 풍경에 잠겨 목이 잠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