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안전성
홈스의 단편집 <사물의 안전성>은 장편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가
나오기 15년 전에 나왔다. 1990년 홈스의 초기작인 셈인데 문체가 아주 독특하다.
건조하고 대담하고 많은 부분 도발적이고 거칠다. 여성의 문체가 아닌 듯 생각될 정도로.
나는 이 책을 작년 ㄴ님의 선물로 받고 얼마전에 읽었다. 책도 손이 가는 때가 있는 법.
총알캐처, 그럼 이만, 파자마 파티 등 10개의 단편은 제목부터 각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내용은 더 충격적으로 어떤 대목은 비린내마저 난다.
어느 날 사물에 생명력이 부여되어 우리의 삶을 서서히 흔들고 조종한다면...
이 책이 매혹적인 이유는 사물처럼 고정된 우리 일상, 죽음처럼 자고 있는 우리 일상을
조용히 흔들어 교란시킨다는 점이다. 일상을 전복하려는 그녀의 문장은 촉각을 곤두서게 한다.
우리가 말하기 꺼리면서도 말하고 싶은 이중성과 모순성을 띤 생의 비밀을 사정없이 들춘다.
하지만 대개는 다시 그놈의 일상으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을 띠게 한다.
다양한 세대의 욕망과 불편한 진실을 감추어둔 채.
건축가 조건영의 건축철학 '아늑함, 쾌락 다 추구해도 좋은데 최소한의 불편함은 지고 살아라,
그 정도의 긴장은 있어야 그게 사는 거다' (내가 만난 술꾼, 임범)는 식으로
물리적 불편함을 넘어 태생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게 삶이라는 것처럼.
그게 삶의 진실이라는 것처럼. 사물의 불편성 혹은 위험성이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사물의 안전성>은 그래서 (나이와 무관하게) 마음에 더없이 황량한 바람이 부는 중에도
또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무뚝뚝한 위로를 하는 것 같다.
바비인형을 비롯한 집안 곳곳의 사물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사물의 비밀 Scerets, Objects / 이영미 / 2011
"세번의 키스로 두 못난 개구리는 드디어 사람이 되었다."
장서희는 못하지 않지만 여전히 포스가 부족하고 정석원은 꽤 멋지고 참신했다.
제목상의 사물은 복사기와 디카. 사물도 우리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반대로?
복사기와 디카가 각각 1부, 2부의 주인공 역할을 자처하며 관찰자와 화자를 겸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마음을 그들의 관점에서 읽고 들려주는데 꽤 재미난 발상이고 구조다.
사물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정겨운 카메라, 사람을 따라가는 대담한 카메라, 솔직한 대사,
예측가능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게 인물의 마음결을 따라가게 하는 이야기와 반전.
40세 여성이 느낄 수 있는 육체적 심리적 해방욕구와 공감을 주는 주인공의 한숨 섞인 말.
"사랑은 잘나서 하는 게 아니라 못난 두 사람이 가면을 벗고 알몸으로 마주섰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 엔딩에서 디카가 하는 말이다.
나에게 애정을 느끼고 안타까이 늘 지켜보는 사물이 있다면 과연 어떤 것일까.
혹시 책상 노트북 왼쪽 오른쪽으로 양탑을 쌓고 있는 책들?? ㅎㅎ 좀 치워놓으면 어느새 또 쌓여있다.
왜 이리 게으른 거야, 어서 읽고 정리해. 아마 이렇게 말하고 있겠지.
이 책은 영화 속 술에 대한 이야기 <술꾼의 품격>으로 이미 '술평론가(?!!)'로
자타가 인정하는 임범의 사람에세이다. 설연휴에 가볍게 읽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조사,라고 직접 말했듯이 술과 함께 만난 이런저런 방면의 사람들을
재미있고 솔직하게 묘사하는데 술에 관한 일화와 그들의 술버릇 같은 것들은 기본이고
그들의 가치관과 성격을 비롯 옛추억을 더듬기도 하고 인생과 사람에 대한 통찰도 반짝한다.
사람에 대한 애정은 기본이고.
첫번째 코너 '소설 사람들'을 나는 문학의 장르 소설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라
영화 <북촌방향>에 나와서 더욱 유명한 술집 '소설'이었다. 괜히 반가워라.
염기정 소설 사장을 비롯 이 책 내내 다른 장에서도 '소설이 자주 등장한다.
여성으로는 염기정, 임수경, 양혜규, 문소리, 공지영이 나오는데 흘려 듣기엔 재미난 이야기들.
사람을 진짜 알려면 술을 먹여봐야 할까? 정말?
술이 아니 술잔이 사람을 지켜보지 않을지.^^
실제로 홍상수 감독은 가위바위보 게임을 시켜 술을 돌리게 하는데 그 자신은 그런 사람들 모습을 지켜보고(관찰하고) 있단다.
귀엽게도, 그런 홍감독은 지켜보고 있는 임범은 어떻고.
임범이 인용한, 변호사 하다가 영화사 봄 대표인 조광희의 이런 멋진 글도 있다.
"표현의 자유는 자라고 있는 사람,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 그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다 자랐거나 더 이상 꿈꾸지 않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요구하는 최소한의 권리다.......
젊고, 불온하고, 발칙한 상상력을 가진 이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주는 것이 두려운가.
그렇다면 당신은 너무 많이 가졌거나 나이에 상관없이 늙은 것이다." (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