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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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20일 점자도서관에서 이 책의 녹음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책이 지난 해 내가 마지막으로 낭독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어쩐지 소리내어 읽고 싶었고, 시각장애우들에게도 큰 힘이 되는 내용이라는 확신도 들었기에. 최대한 담담하고 편안하게 읽으려 했는데 부록에 있는 낯익은 알라디너들이 그녀에게 보내는 안녕의 인사는 기어이 나를 목메이게 하고  잠시 정지버튼을 누르기를 여러 번 했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라는 부제가 깜찍하게 달린 이 귀한 책의 리뷰를 쓰려면 개인적인 소회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알라디너들 누구나 그렇듯 오랜 알라디너를 비롯해 그리 오래지 않은 분들까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마음의 빚과 선물을 동시에 지고 받고 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물만두님은 이 공간에 2000년부터 추리소설 리뷰를 꾸준히 올렸다. 내가 이곳에 어린이책 리뷰를 올리기 시작한 게 큰아이 7살 적이었으니까 그 시점보다 앞서거나 뒤서거나 아마 그 비슷하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서재 시스템이 운용되기 전이다. 2004년 8월 지금의 서재가 마련되어 우리는 뜻밖에 작은 집 하나씩을 분양 받은 셈이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리뷰를 쓰고 소소한 소통을 하기 시작했는데 셜록홈즈와 아가사 크리스티 정도만 읽었던 나는 추리소설 리뷰에는 그다지 많은 관심이 없었다.(그래도 마음이 끌리는 책의 리뷰는 읽고 답글을 쓰곤 했다.)  그러다 보니 물만두님의 리뷰보다는 그녀와 가족들의 소소하고 유쾌한 일상의 이야기에 호호호 댓글 쓰고 가끔 그녀도 내 서재에 놀러오셔서 유쾌한 말씀을 주시곤 했다. 댓글마다 어찌나 빵빵 터지게 해주시던지 활력소가 되었다. <별 다섯 인생>를 읽으면 우리가 어쩌면 쉽게 나누는 그런 댓글 한 줄과 몇마디 안부가 물만두님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알 수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한 리뷰로 꾸민 블로그는 세상 밖을 바라보고 세상에 인사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그녀의 유일한 창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 '사람'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탓인지 그녀가 육체적으로 그렇게 힘든 감옥에 갇혀있는 줄 몰랐고 재작년 추석 끝에 그녀가 올린 페이페에서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뭔가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거다. 나의 사람살이가 그토록 껍데기였나 싶어 나중에야 마음 한 귀퉁이가 쿵 내려앉았다. 혹여나 그동안 내 한심한 투정과 불만의 글을 보고는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부끄럽기도 했다.

 

 

나,

너,

그 리 고

사 랑 에

 대 하 여.

 

나, 너, 그리고 사랑이 있다가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나와 너는 남았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다.

나와 네가 사라지고 사랑이 남는다 해도 그 사랑 또한 좋은 것이니 족하다.

나, 너, 그리고 사랑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모두 함께 사라졌으니 슬픔은 남지 않아 좋지 않을까.

나와 사랑만 남거나 너와 사랑만 남는다면 그 남은 한 자리는 슬픔이고 그리움이고 아쉬움일 테니.

 

                                                                                                               2006. 11. 18

 

 

위의 글은 에필로그와 부록 앞, 마지막 페이지 바로 앞장에 있는 비공개글이다. 이 글을 읽고 책을 잠시 덮는데 잔잔한 물결이 밀려들어 온몸을 적시는 느낌이있다. <별다섯 인생>에는 블로그에서 본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도 많지만 물만두님이 비공개로 써둔 일기가 사이사이에 들어있는데, 나는 이 글들이 너무 좋아 배껴두고 싶은 정도였다. 이 글들에서는 우울과 조증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이겨내기도 하며 그녀가 깊이 사색하는 모습과 세상을 보고 읽는 정직하고 다정한 입김, 여리지만도 강하지만도 않은 감수성과 문학적 소양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고 겸양의 말을 하고 있지만 그녀가 남긴 1800여편의 추리소설 리뷰가 그냥 쉽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데미지를 입기 싫어 로맨스를 읽지 않는다는 대목에서는 무조건 삶에 강한 척만 하지는 않은 순수한 배짱을 볼 수 있다.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글은 영화 '청원'의 주인공을 떠올려 주는데, 단 60초만이라도 관에 들어가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순간을 체험해 보라던 말이 새삼 영화 속 대사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뜨거움이 느껴진다. 삶은 몸으로 살아내는 것! 그녀는 온몸으로 견디고 싸우며 치열하게 살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것이다. 머리로만 사는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녀의 삶은 내가 감히 연민하거나 안타까워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누구의 삶인들 별이 아닐까마는 물만두님의 '별 다섯 인생'에는 감히 별 하나 아니 두 개 더 드리고 싶다.

 

2004년 9월 3일의 글 '만두의 진실 또는 고백'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해 2003년 12월에서 2007년 1월까지의 글이 담긴 이 책은 주로 물만두님의 가족사, 가족과의 일상, 그리고 알라딘과 알라디너들의 이야기다. 언제든 창가로 가 창문을 활짝 열고 바깥세상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우리와는 달랐던 그녀의 시간들을 감히 곱씹어보며 숙연해지길 여러 차례, 웃지 못할 기막힌 상황에서도 유머를 날려 깔깔깔 데굴데굴 구르게 만드는 글을 읽으면 그와는 반대로 비공개 일기 속에 묻어둔 솔직한 회환과 갈망의 심정, 삶에 대한 동경과 무시로 찾아오는 우울, 그러나 삶을 긍정하는 포용과 용기가 대조적으로 더 귀하게 느껴진다.

 

이름도 예쁜 홍윤님이 예기치 않은 희귀병으로 고통의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웃어넘길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의 사랑이었다.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뼈아픈 미안함과 고마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 두 동생들을 향한 맏이로서 갖는 책임감과 보살피려는 마음이 진하게 배어있다. 다섯 식구가 알콩달콩 주거니 받거니 토닥거리며 사는 정경이 푸근하게 그려지는 장면들, 빨간 야구모자를 비딱하게 쓴 꾸밈없이 말간 그녀의 얼굴을 보는 듯 참으로 솔직담백한 이야기들, 읽다 보면 곳곳에 '우띠', '에헤라디야' 이런 추임새 덕에 나는 또 정지버튼을 눌러야했다. '에헤라디야'는 그냥 글자 '에헤라디야'가 아니고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곡조가 붙어져 '디'에서 최고음으로... 해놓고는 혼자 우스워 배꼽 잡았다. 특히 아버지의 한 마디 "엉덩이 상한 거 아니야?" 에 물만두님이 넘어져 누워 있는 상태로 "어버버 아버버..." 뭐 이렇게 반응했던 대목 읽을 때도. 이 글은 예전에 물만두님 서재 페이퍼에서 '상한 엉덩이'라는 제목으로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도 다시 읽으니까 어찌나 웃기던지. 하하하 참으로 유쾌한 분! 

 

'당신이 장애인이라면' 등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복지 문제를 비롯 사회적 사안에도 늘 관심 두고 비판적 견해를 갖고 계셨던 분, 점점 근육량이 줄어들어 입부터 작아지고 나중엔 여섯 손가락의 힘으로 마지막 자판을 두드렸던 그녀, 이제는 평안한 곳에서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당신들은 충분히 행복한 거라고, 힘주어 전한 말씀 고맙습니다.

 

물. 만. 두, 세 글자 닉의 한자뜻이 있었다. 2004년 10월 18일 정하셨나 보다. 석 자 모두 나는 처음 보는 뜻과 음이었다. ^^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졌기를 바라며 이 리뷰의 제목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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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1-1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당신들은 충분히 행복한 거라는 말씀, 새기고 갑니다.

프레이야 2012-01-14 09:19   좋아요 0 | URL
네, 메리포핀스님 고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새겨봅니다.^^
이 책을 많은 분들이 보시면 좋겠어요.

블루데이지 2012-01-14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재 시작한지 얼마안되어서 잘 몰랐어요^^
프레이야님의 글을 읽으니 그분이 더 알고 싶어 지네요^^

프레이야 2012-01-14 09:20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토요일 아침이에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이 책은 많은 분들이 보시면 좋겠어요.

순오기 2012-01-14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열심히 읽었더니 이제 거의 다 읽어가요~
정말 유쾌하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었던 분~ 새삼 다시 보게 됐어요.

프레이야 2012-01-14 09:2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도 워낙 긍정의 에너지 넘치는 분이라 늘 배우고 얻어요.^^
건강하세요 언니.

2012-01-15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5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5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5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2-01-1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아이폰으로 이 글을 읽었어요,,,인용하신 글을 물만두님의 책에서 읽을때는 이렇게까지 좋다고 생각 못했는데
님의 페이퍼에서 읽으니 넘 좋으네요. 오늘 다시 읽으니 더욱 좋고..

프레이야 2012-01-15 23:48   좋아요 0 | URL
네, 정말 물만두님은 시인이에요.
비공개글들 참 좋더군요. 나비님, 느닷없이 선물해주셔서 더 고마웠어요.^~


마녀고양이 2012-01-1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따스한 책이였어요,,,,
읽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던데, 낭독까지 하셨으면 언니,, 막 눈물 흘리면서 하신거 아니예요?
그렇게 큰 선물을 남기고 가신 물만두님을 뵈면서, 제 삶도 한번 돌아봅니다...
이렇게까지 사랑과 감사를 받지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욕은 먹지 말아야할텐데 말이예요....

프레이야 2012-01-16 21:55   좋아요 0 | URL
네, 눈물 훔치다 웃다 그랬어요.^^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에요.
루게릭병으로 5년만에 저 세상으로 가신 김영갑님의 책에서도 느낀 건데
그 분은 병이 오히려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을 주어서 구원 받았다 생각하더군요.
정말이지 쉽지 않은 태도가 아닐까요.ㅠ

근데 나 이거 녹음하다가 물만두님 좋아하셨던 노래가사 적힌 부분에서 그냥 노래부르고 싶어진 거
알아요? ㅎㅎ 서른즈음에, 보고싶다 등등.. 노래로 부를까하다가 청각공해일까봐 참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