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남성과 여성, 남성성과 여성성, 이성애와 동성애를 구분해서 별개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성적 존재가 지니는 복합성과 사회의 다양성을 놓치게 되었다.-15쪽
이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명백한 불확실성의 원칙을 설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오로지 '인간의 성'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24쪽
동성애의 원인을 유전자나 호르몬, 혹은 뇌의 생리에서 찾으려하는 '본질주의적' 담론에 대항해서 50년 전부터 '건설주의적' 담론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성 행태가 고정적이지 않고 역사와 문화 여건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관점이다. 더불어 이 입장은 과학자들이 진행하는 연구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전제조건에 주목하면서, 어째서 동성애가 질시의 대상이어야 하는지 보다 깊은 관심을 나타낸다. 요컨대 문제의 핵심은 동성애를 주관하는 유전자를 찾는 일이 아니라, 이러한 시도가 집단적으로나 개인의 상상력에 마치 우생학이 그랬던 것처럼 헛된 망상을 야기하지는 않는지 살피는 일이다.-49쪽
사람들은 흔히 게이 문화라고 하면 동성애, 특히 '역전된 성'에 연관된 여러 관념을 떠올린다. 마찬가지로, 게이 문화가 화제에 오를 때마다 복장도착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에서 시작된 '드래그 퀸(drag queens)' 풍속은 남성이 여장을 하거나 다양한 성을 나타내는 복장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대규모 게이 퍼레이드에서는 여장을 한 남성 동성애자들이 요염하고 도발적인 자태를 취하곤 하는데, 사실 이는 야간 유흥장에서 매일 행해지는 쇼를 연장하는 행위일 뿐이다. 요컨대 도발은 여장이나 자태에 있다기보다, 상충하는 낮 문화와 밤 문화가 함께 보여진다는 데 있다. 축제와 노동, 자유분방과 합리성, 꿈과 현실 등의 서로 상반되는 두 세계가 대낮의 몇 시간 동안 공존하는 셈이다.-68-69쪽
이 같은 고정관념은 남성간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는 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성은 이성애의 관점에서만 이해되어왔고, 따라서 동성애는 단순히 이성애가 역전된 모습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이성애와 동성애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비교가 이루어질 수 없다. 동성애는 마땅히 독립된 성으로 사유되어야 한다. 사실상 모든 유형의 커플(남성/여성, 남성/남성, 여성/여성)은 에로티시즘과 관심, 그리고 역학관계에서 제각각이며 결코 동일하지 않다.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타인에 대한 거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다른 남성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남녀 사이가 그렇듯, 남성 사이에도 보완에의 갈구가 존재할 수 있다.-96-97쪽
1980년대만 하더라도 에이즈는 동성애자들만 걸리는 병으로 치부되었다. 그럼에도 에이즈가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보건부 장관인 미셀 바르자슈는 대대적인 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에이즈 퇴치 정책을 내놓는다. 같은 해에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적인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을 발족시킨다. 1994년 이루어진 '시닥시옹(Sidaction, 에이즈 퇴치 운동)'의 발족은 커다란 전기를 마련한다. 이제 에이즈는 동성애자들마의 병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질병으로 인식된다. 두번째 시닥시옹이 거행된 1996년에는 이성애자 에이즈 양성반응 환자의 수가 동성애자 양성반응 환자의 수를 넘어선다.-103쪽
디디에 에리봉은 [게이와 레즈비언 문화 사전]에서 커밍아웃을 이렇게 정의한다. - 커밍아웃은 게이나 레즈비언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심리적 만족감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행위이다. 또한 커밍아웃은 수많은 게이 및 레즈비언 단체들이 자신들을 표출함으로써 사회와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볼 때 탁월한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 -124쪽
동성 가정의 형태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다양한 가족체제라는 보다 넓은 테두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동성 가정은 결코 생물학적 친자관계를 대체하지 못한다. 또한 동성 가정은 남녀같의 이타성이나 차이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사회 내에 동성 가정들이 존재한다고 남녀 양성의 극단적인 분리를 초래하지도 않는다. 마르틴 그로스가 지적하듯, 쌍방간의 합의에 의한 이혼은 가족적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놓음으로써 보다 많은 평등과 자유를 가져오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낳게 되었다.-143쪽
루이 조르주 탱은 [동성애혐오증 사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 동성애혐오증은 역사를 통해 볼 때 도저히 깨뜨릴 수 없는 운명도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사라질 현상도 아니다. 동성애는 중대하면서도 복잡하고 다양한 울림을 가진 인간적인 문제로, 화합의 분위기와 충분한 사전 협의를 필요로 한다. (중략) 이같은 고정관념들은 여성성과 남성성, 그리고 성과 성적 성향을 대립쌍으로 파악하는 대신에 독립적이고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사유함으로써 떨칠 수 있다. 또한 동성애를 더 이상 정신적 악덕이나 질병으로 여기지 않고, 소수의 사람들이 지니는 성적 성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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