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고정희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날 분별 없이 뿌린 말의 씨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 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 락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는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둘 수는 없습니다.
그놈의 미운정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나이 마흔 고개를 제대로 건사하기란, 가을바람처럼 솔솔 불어드는 흔들림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내 감정에 휘둘려 취하기를 제대로 건사하기란, 집착과 헛된 욕심들을 제대로 내려놓기란,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인 얼굴로 내 얼굴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과연 그래야 잘 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