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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 무슨 효녀야? ㅣ 돌개바람 14
이경혜 글,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8년 3월
평점 :
옛이야기에 시비를 걸어 재창조한 패러디 동화는 이미 여럿 있다. ‘아기돼지 세 자매’나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이야기’는 내가 읽은 옛이야기 패러디 동화 중 가장 먼저 만났던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동화다.
이런 책은 독서활동에서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생각의 층위가 다양할 수 있다는 말은 옛이야기가 시대에 따른 가치관을 담고 있다해도 그 가치관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가치관은 아이들의 '자람'에 여러 측면으로 영향력을 줄 수 있다. 옛이야기는 아이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유도하여 적극적으로 텍스트에 가담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옛이야기는 더 이상 화석처럼 굳어져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의 (구전되는) 옛이야기는 그래서 말랑말랑하고, 또 말랑말랑해야 한다. 독후활동으로는 뒷이야기 바꿔쓰기, 중간이야기(특정 상황) 바꿔쓰기, 내가 어느 등장인물이라면?, 가장 마음에 드는(들지않는) 인물은?, 등이 있다.
옛이야기는 유연하여 힘이 세다. 입말로 전해지는 특성 때문에 이야기의 요모조모가 상당히 확장될 수 있다. 시대적 가치관이나 생활상은 물론 용기나 선함 같은 삶의 기본적인 미덕을 재미난 이야기 속에 녹여 놓은 것도 옛이야기의 힘이다. 이야기를 통해, 낮게 사는 읽는 이 아니 듣는 이는 상상과 모험의 세계로 여행할 수도 있고 힘겨운 현실을 이기며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면 옛이야기 패러디는 오늘날의 독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틀에 매인 생각 밖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는 것이 옛이야기 패러디의 힘이다.
<심청이 무슨 효녀야?>는 잘 알려진 우리 옛이야기 다섯 가지를 '다시쓰기' 한 동화집이다. 각 이야기마다 길지 않은 길이로 읽기에 지루함이 없고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가치관을 본래의 이야기 속에 무리 없이 녹여놓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작가가 주목한 부분은 인물들의 성격이다. 특히 아이, 여성이라는 약한 자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성격과 행동을 바꿔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역할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이야기는 역동적이고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의 삶과 선택, 생명을 보듬을 줄 아는 따뜻한 심성,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아니라 참된 마음과 진실한 행동에 눈길을 보내는 이야기들이다.
이 동화집으로 재탄생한 옛이야기는 선녀와 나무꾼, 심청전, 우렁각시, 콩쥐팥쥐, 춘향전이다. 옛이야기 속의 가치관이 오늘날의 아이들에게 그대로 읽힐 수는 없다. 읽어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진부한 선입견의 틀 속에 아이들을 묶어두는 것은 위험하다. 더해지고 빼지면서 구전되어 오던 옛이야기가 문자 속에 갇히면서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이야기의 틀이 고정되어 온 까닭에 옛이야기의 미덕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성격으로 각인된 옛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은 우리의 오래된 친구들이다. 만약 그 친구들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다.
이 책의 시리즈(옛이야기 딴지걸기1, 2)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문자의 틀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꿈틀거리게 한다. 불변의 미덕은 살리면서 오늘날의 바람직한 가치관을 이야기속에 풀어놓았다. 예상을 뒤엎는 사건 전개와 결말 그리고 매력적인 인물들의 생생한 묘사가 미더운 주제의식과 더불어 흥미롭게 읽힌다. 간소한 흑백 삽화는 이야기의 수수한 미덕을 살려주어 좋다.
초등 중학년 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