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미고자라드 Migozarad! (지나가리라!) - 카불의 어느 찻집 벽에 적힌 낙서라고 한다. 진부한 말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럴싸한 글귀로 시작하는 이 책을 읽으며 한숨이 푹푹 나왔다. 예언 같은 저 말은 5년이 지난 지금, 아직은 맞지 않다는 사실에 더욱 안타까워졌다.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의 주술은 ‘먼지 냄새’ 가득한 그곳 여성의 갇힌 몸만큼이나 뿌옇고 암담하다. 종교경찰이 횡행하던 탈레반 시절, '희망은 곧 악몽'이라고 생각한 여성들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일은 저자를 따라 술탄 칸의 가족들과 밀착하여 아프가니스탄의 이곳저곳을 동행하는 것이다. 파키스탄 출장길, 죽음의 폐샤와르를 지나 파키스탄, 알카에다 추적, 저잣거리, 대중탕, 결혼식과 그 준비과정, 알리의 영묘 순례, 사원, 카불의 현대식 호텔, 학교, 교육부, 경찰서와 감옥까지. 그래서 문장이 현재형이다. 보고문학으로서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로 그들과 한 해(2002년) 봄 동안 동거하며, 보고 들은 것에만 기초하여 글을 썼다고 밝혀두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자는 인물들의 섬세한 동작과 표정의 변화에서도 말 못할 내밀한 고통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들의 심리까지 그렇게 묘사해낼 수 있었던 것을 저자는, 감히 물어볼 생각도 못한 것까지 술술 이야기해 준 그들의 공으로 돌렸다. 받아적을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풀어놓은 이야기가 더 많았다는 말에서 그들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다.

 2001년 10월, 9.11사건의 주모자로 추정되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비호했다는 명목으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해 11월, 북부동맹은 미국과 영국의 지원 아래 카불에서 탈레반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2001년 11월은, 탈레반이 무너진 아프가니스탄에 저자, 오스네(서구젊은여자종군기자)가 카불에 도착하여 술탄 칸을 처음 만난 때이기도 하다. '머리가 희끗하고 품위 있는 남자.' 그에 대한 그녀의 첫인상이다. 유엔인간개발지수 순위 177개국 중 175위, 문맹률과 유아사망율이 극도로 높은 최극빈국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분명 전혀 전형적이지 않은 술탄 칸의 집. 영어를 할 줄 아는 가족이 셋이나 있고,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가 있고, 최상의 보살핌으로 대접 받으며, 충분하고 멋진 음식을 날마다 먹을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이들 가족에 밀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술탄 칸이 책장수를 하는 문화사업가, 수완 좋은 장사꾼, 진보주의자 내지는 소위 중산층이라서도 아니고, 저자는 그들에게서 '글을 쓰고 싶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외국병사들에 의지하더라도 다시는 내전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들, 탱크 잔해와 지뢰와 철골뼈대 앙상한 건물이 널브러져있는 카불의, 봄에 대해서도.

 2002년에 이 책을 썼고 지금 5년이 지난 아프가니스탄. 그들의 재건은 참담한 상태로밖에 안 보인다. 종교경찰이 사회, 문화, 예술을 비롯해, 샴푸통에 그려진 여자얼굴까지도 검은 유성매직으로 지우게 했을 정도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칼을 댄 탈레반은 지금도 테러를 일삼으며 암암리에 공세를 퍼붓고 있다. 게다가 아프간 정부는 군벌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아프간인들을 농락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가장 진보적 정권기로 특징지어진 1960년대와 70년대(다우드 대통령)는, 뻥 뚫린 건물의 구멍을 메우고 부서진 창유리를 갈아 끼우는 작업에 한창인 카르자이 정권이 수복할 수 없는, 다 지나가버린 시절 같다. 전쟁을 겪은 경험으로 나이를 어림하는 아프간인들의 얼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약탈과 지배를 겪어온 그들의 슬픈 초상이다. 그럼에도 2007년, 군벌이 80%를 차지하고 있는 아프간 의회는 ‘과거 25년간 전쟁범죄 면책’ 입법을 ‘국가의 화해’라는 이름으로 통과시켰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범죄를 저지른 군벌들을 재판정에 서게 하는 대신 고위직에 임명하고 있다고 한다. 아프간 국민의 80%가 과거 전쟁범죄와 잔혹행위에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검찰조사를 원하고 있고 그 길만이 아프간의 밝은 미래를 열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올해 4월, 아프간 최연소 국회의원 말라라이 조야(29)의 감동적인 연설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 제헌의회에서 군벌타도를 외치다가 추방된 말라라이 조야는 "저 년을 강간하고 창녀로 만들어버려라." 는 노골적인 협박을 의회에서 듣고 네 차례의 암살 위기에 처하면서도 지금 세계를 돌며 아프간의 비극을 전하고 있다. 내가 본 연설문은 올해 4월10일 로스앤젤레스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의 전문이다. 아프간 민중(특히 여성)의 유린된 인권과 그들에게 주입하는 ‘마피아식 시스템’에 부들부들 떨리며 읽어 내려갔었다.

 『카불의 책장수』를 다 읽고 나서 그 기사를 다시 읽다가 콱 걸리는 이름이 나와 놀랐다. 비비굴! 아프간에서는 흔한 여자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카불의 책장수인 술탄 칸의 어머니, 아프간 여성의 아픔을 몸으로 담고 살아온 상징과도 같은 그 이름이 말라라이 조야의 연설문에서 언급되다니. 동명이인이겠지. 그 내용이란, '자살만이 암담한 현실의 탈출구'라고 생각하는 아프간 여성들이 실제로 자살한 예를 몇 들었던 것인데, 이를테면 ‘비비굴이라는 또다른 여성은 마굿간에 자신의 몸을 결박시키고 불을 질러 자살했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에게 남겨진 것은 유골뿐이었습니다.’ 이런 글이었다. 건강을 생각해 기름진 음식을 자제해야 하지만 오로지 술탄의 입맛을 위해 막내딸 레일라는 기름진 음식을 매번 올려야 하고 그렇게 입맛이 든 늙고 뚱뚱한 비비굴은 카펫 아래 아몬드를 숨겨놓고 건강을 염려하는 딸의 눈을 피해 먹는다. 책 속의 비비굴이 맛보는 그 아몬드의 맛이란 나일론천으로 둘러싸여 숨쉬기도 힘든 부르카를 잠시 걷고 카불의 먼지바람이나마 들이키는 순간의 짜릿한 맛과 비슷했을 것이다. 비비굴은 억압받는 아프간의 많은 여성을 대표하는 이름이라고 자위해도 책 속에서 딸을 (돈에 팔아)시집  보내거나 (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시집 보내지 못하면서 아픔을 삼키던 그녀가, 자살했다는 그녀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저자는 서구여성이다. ‘서구’라는 점은 보고문학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시각에 어쩔 수 없는 편중이 있게 했고, ‘여성’이라는 점은 양성자의 자격으로 아프간의 남자와 여자에게 모두 다가갈 수 있게 한 장점이 되었다. 저자가 남성이었다면 여성들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관습으로는 남성이 미혼의 여성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경악했고 그것은 책 속에서 일관되게 부르카의 음침한 환영이 되었다. 아름답고 훤칠하며 흰 피부의 그녀가 파란색 부르카를 입어본 경험은 그녀에게 세 가지의 느낌을 동시에 준다. 익명성이 주는 해방감, 아프간 여성으로서 느끼는 이중적인 모호한 감정,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르카가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물건인지를 깨닫게 되기까지.

 저자는 술탄 칸이라는 책장수야말로 '아프가니스탄 문화사의 살아 있는 한 부분이자, 두 발로 걸어다니는 역사책'이라고 느꼈다고, 먼저 밝혀두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어렵다. 저자도 고백했듯이 그가 아프가니스탄의 전형적인 가족이 아니란 점, 그럼에도 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가지로 엮여있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은 많은 부분을 시사해준다. 술탄의 꿈은 '책의 제국'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 하나만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은 희생되어야 하고 한눈을 팔아서도 안 된다는 게 술탄의 철학이다. 소련 공산주의자, 무자헤딘, 탈레반들이 릴레이라도 하듯 술탄의 책방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지나가고, 책들을 불태우고, 감시하고 압수하고 그를 감옥에도 넣었다. 이 모든 수난을 지혜롭게 이겨내고 때로는 교묘하게 피해간 술탄은 이제 평화유지군에게 제일 잘 팔리는 아프간 엽서를 파는 일에도 매달린다. 사진 이미지를 이용하여 수많은 엽서를 만들고 파키스탄과 이란 등으로 출장도 다녀오는 오십대 초중반의 술탄. 그는 16살의 두 번째 부인 소냐와 행복한 시간을 갖는 일에도 열중한다. 하지만 그녀가 돈에 팔려오면서도 자살하지 않은 건 그녀의 성품 탓도 있을 테고, 술탄 가족들의 배려와 술탄의 자상함, 그와 동시에 술탄이 집에서 부리는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이기도 하다. 책의 제국,이 다분히 독단적이며 위압적으로 들린다.

 이 책은 술탄 자신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들려주면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교육, 정치, 종교 그리고 부르카가 작용하는 여성억압과 인권탄압의 악령을 보여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 가리고 오로지 먼지 폴폴 날리는 신발만 보여주는 부르카 안에서도 요동치는 게 있었다. 부르카가 덮어 가리지 못하는 것들. 야릇한 설렘의 손가락질이나 눈웃음도 저자의 눈에는 다 보인다. 그 안에는 동경과 욕망과 실망이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부르카는 원래 귀부인들의 의복이었다. 귀족이 먼저 벗어던졌던 부르카를 아직 벗지 못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짓밟힌 삶을 떨치고 나갈 엄두도 도저히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부르카를 벗지 못하는 나라에서, 그녀 그리고 그들은 체념이거나 순종, 아니면 혁명밖에는 방도가 없어 보인다. 진보주의자를 스스로 표방하는 중간 지식 계급의 술탄이 뼈가 앙상한 아이들에게 베풀 동정심은 눈곱만큼도 가지지 못하고, 집에서는 더없이 가부장적이며 억압적인 독불장군의 자세를 취한다는 점은 아쉬운 정도를 넘어서 있다.


 

 
 
 
레일라 역시 그럴 생각이 꿈에도 없다. 탈레반은 카불에서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레일라와 비비굴과 샤리파와 소냐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이들은 탈레반 시대가 끝나서 기쁘다. 이제는 음악을 연주해도 되고, 춤을 춰도 되고, 다른 사람 눈에만 띄지 않으면 발톱에 메니큐어를 발라도 된다. 그들은 안전한 부르카 속에 숨을 수 있다. 레일라는 내전, 물라 통치, 탈레반 정권이 낳은 진정한 자식이었다. 두려움의 자식. 그녀는 속으로만 울었다. 벗어나려는 시도, 독립적인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 배우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P226)
 
   

 

 

 저자는 카불에 도착할 당시 북부동맹군들과 한동안 숙식을 해왔다. 그녀는 탈레반의 잔학성에 대해 고발하고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일에는 과묵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우선, 호기심을 자극한 한 중산층 책장수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가 의도한 방식으로 읽히기에 오히려, 한 편의 소설처럼 생생하고 흥미롭다. 저자는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감정적으로 기우뚱하지 않고 거리를 두려고 한다.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문장의 서정성을 잃지 않았다. 앞장에 간단한 지도 한 장을 그려넣고, 글속에 나온 장소들을 사진으로 찍어 책의 가운데에 16면 정도로 넣어두었다. 파란 부르카를 입은 저자도 볼 수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진이 있다. 탈레반이 물러간 지금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벗고 학교에 가는 여자아이가 포착되었는데 그아이가 어깨에 매고 가는 가방에 쓰여진 글자가 한글이다. 한글? 가만히 들여다보니 '백암체육관'('암'자가 희미하지만)이라는 노란글자에 빨강노랑 배색의 가방이다. 그 옆의 사진은 밝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인데 참 해맑다. 그 사진 아래, '그 얼굴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희망을 본다'고 쓴 저자의 글에는 당시 저자의 바람이 담겨있지만, 5년이 흘러 무색하고 공허한 소리가 되어버려 안타까울 뿐이다.

 

 기원전에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던 카불, 시내중심가에는 카불강이 흐르고 과실이 무성한 과수원에 비옥한 들녘을 가진 땅덩어리가 온통 흙빛의 척박한 땅이 되어버렸다. 수십 년에 걸친 전쟁탓으로만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알라께서도 죽는가?" 

지가르 쿤 Jigar khoon (너무 가슴이 아파요.) - 아리아나 항공의 비행기로 뉴델리를 향해 날아가려던 항공관광부장관이 여행사의 사기로 탑승을 거부당한 메카 순례자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동안 수태 '자라보고 놀란 가슴들'은 온갖 추측으로 술렁이며 음모론을 내어놓고, 그 사람들 틈에서 술탄의 막내아들 아이말이 호텔청소부에게 한 말이다. 죽은 장관 때문이라기보다 잃어버린 유년시절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 오자 확인 :

p304 첫줄 ;    페로자는 목이 멨지만 어떤 항변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 페로자 ---> 타지미르 (문맥상))
p350 중간쯤 ; ... 군부 쿠데타가 있어나 목숨을 잃는다.
                     (있어나 --->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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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9-2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간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어 안타깝긴 하지만, 서구인들이 보는 빈민국의 생활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과연 저 여자가 '조선 시대'의 규방에 가서 인터뷰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전족을 한 중국 여인들과 인터뷰를 했다면...
부르카로 대표되는 여성 차별은 성당에서 미사포를 써야하는 차별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책도 안 읽고 웬 이상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 잘 읽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7-09-21 13:00   좋아요 0 | URL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환경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한계 같아요.
저자는 노르웨이의 씩씩한 종군기자이지만 여성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고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성본능이 엿보이는 부분들도 많았구요.
그 나름으로 당시 아프간의 초상을 보는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하늘바람 2007-09-21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굉장한 서평이에요 저도 읽고 보고 프네요

프레이야 2007-09-21 16:08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태은이가 방긋^^ 반가워요^^
읽어주셔서 고맙지요. 여성 특유이 부드러움이 보이는 기록이에요.

2007-09-2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1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결 2007-09-2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방외인의 시선이 내부자의 그것보다 더 적실하다 여겨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서구의 '눈'이 결함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치명적이라 생각되진 않아요.
그러한 차원에서 이 멋지고도 아픈 기록을 무시할 순 없겠지요.

혜경님의 리뷰를 읽으며, '지가르 쿤 Jigar khoon'했어요. 위의 댓글처럼 그 현실의 고통과 아픔이 오롯이 전해져오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정말 정말 좋은 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9-22 20:59   좋아요 0 | URL
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란 점에서요. 다양한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눈이 다양하게 보고 느끼는 것들이 그대로 인정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읽어볼 만하고 흥미롭습니다.
바람결님이나 제가 느낀 대로 '지가르 쿤', 저자도 이렇게 느꼈음인데, 자기
감정을 객관화하여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서정적인 서술이 장점이더군요. 공감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sokdagi 2007-09-2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대단하시네요. 컴터가 말썽을 부려 오랜만에 들러봅니다.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07-09-27 09:0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읽어보시면 괜찮을 거에요.
몸은 힘드시진 않은지요? 건강 잘 챙기세요.^^
서재에 오랜만에 들렀어요, 어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