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부르디외, 읽자.
1995년 자크 쉬락이 프랑스 대통령이 된 후의 일.
우리는 규칙과 요령 그리고 임시기관 같은 것들의 지지부진함을 안고, 대파업의 흩어진 시간을 되찾았다. 몸과 몸짓 속에는 신화적인 것이 있었고 지하철, 버스 없이 파리를 완강히 걷는 일은 기억의 행위였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목소리가 68년에서 95년을 리용역에 모았다. 우리는 다시 믿었다. <다른 세상>, <사회적인 유럽을 만들자는 새로운 말들이 사람들을 차분히 흥분시켰다. 그들은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말들을 반복하며 경탄했다. 과업은 행동보다는 말이었다. 쥐페는 정책을 철회했다. 크리스마스가 왔고 원래의 자신으로, 선물로 인내로 돌아가야 했다. 12월의 시위는 끝났고, 그것은 서사를 만들지 못했다. 다만 밤중에 행진하는 군중들의 모습만 남았을 뿐 사람들은 그것이 세기의 마지막 대파업인지 깨어남의 시작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무언가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엘뤼아르의 시 구절, 온 세상에 / 몇몇뿐이었던 그들은 / 각자 혼자 믿었다네 / 갑자기 그들은 군중이 되었네를 떠올렸다. - P258
놀라운 일 없는 나날들에 두려움, 격분, 희열의 파도가 쳤다. 우리는 앞으로 10년 동안 수천 명을 죽이게 될 «광우병> 때문에 더 이상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 난민들과 불법체류자들이 있는 교화의 문을 도끼로 부수던 장면은 분노를 샀다. 갑자기 불공정한 느낌과 감정의 폭발 혹은 의식이 사람들을 거리로 나가 행진하게 만들었다. 10만 명의 시위자들이 외국인들의 추방을 용이하게 만드는 드브레 법률안에 맞서 배낭에 배지를 보란 듯이 달고, 검은 여행 가방과 « 다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행진했으며, 집에 돌아가서는 서랍 속에 기념으로 간직했다. - P259
국회를 해산하고자 하는 시락의 우스꽝스러운 욕망 덕분에 좌파가 선거에서 이겼고, 조스팡이 국무총리가 됐다. 그것은 96년 5월, 환멸을 느꼈던 밤의 만회였고 덜 나쁜 재정립이었으며, 다른 것들은 달라지지 않을지라도 기초 의료 보험 혜택과 근로시간 주 35시간으로 자신의 시간을 가지며, 모두가 좋은 삶을 살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에 적합한, 자유와 평등과 관대함을 추구하는 조치들의 재건이었다. 우리는 우파 정부 아래에서 2000년을 넘기지 않게 됐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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