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 유현준 / 을유문화사 (총379쪽)

 녹음시작 2019.3.20. (2번 파일 42쪽까지 녹음)

 

 

 어제같은 날은 카페라떼가 마시고 싶었다. 상가에서 커피를 사들고 나와 차를 출발하려고 하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공곶이에 수선화 보러 가는 걸 취소하자고. 비가 올 것 같고 내일까지 비가 온다고 하니 다음으로 미루자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내가 먼저 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전화가 와서 이심전심이네 했다. 비보다는 가고 싶다는 마음이 쉬고 싶다는 마음에 밀린 거라는. 부산수필문예 편집장을 맡아 3년간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이번 봄호를 마무리하고 한숨 돌리고 싶었던 차였다. 조용히 혼자 충천하는 체질이라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 떠는 건 조금 있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튼 이심전심, 반가운 친구 목소리를 들으며 부산점자도서관으로 출발, 길이 제법 밀리고 하늘도 우중중충 날이었다. 부산점자도서관은 사상도서관 건물의 1층에 자리하는데 주차공간이 늘 부족하다. 주차요원의 미안해 하는 말이 제법 부드러웠다.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가 모 회사의 주차공간에 차를 대고 걸어올라왔다. 도서관 접근성이 좀더 용이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좋을 것인데, 아쉬운 점이다.

 

 

1층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교육장이 보인다. 유리문이라 안이 들여다보이는데 오늘은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점자교육을 하고 있었다.  아는 분이 보인다. 70대 중반 여성인데 늘 활기차고 밝은 분이다. 집안일과 요리까지 손수하시고 손글씨를 쓸 때면 남편이 플라스틱 긴 자를 받쳐준다고 하셨다. 선생님 읽기 어려우실 텐데, 라고 말씀하시만 나는 한 자도 어긋나지 않게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보기 좋게 잘 쓰신다. 점자배우기가 쉽지 않다고 귀여운 엄살을 부리지만 열심히 하신다. 아, 여기서 '열심히'라는 단어는 다시 쓰자. 법륜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분에게는 '열심히' 대신' '즐거이'나 '재미있게' 같은 말이 어울린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힘써 가며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즐기며 하고 계시니까. 내가 시각장애인들과 하는 모든 활동도 그렇다. 13년째 낭독녹음봉사를 하고 있는 것도 4년째 이분들과 문학관련수업을 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기쁘고 감사한 일들이다. 열심히 하지 말고 그냥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최고다. 총무과 선생님에게서 들은, 20대 후반 여성 정**씨가 점자교정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신나게 하며 스스로 보람으로 즐거워하는 얼굴이 떠오른다.

 

음성지원실로 들어갔다. 세 분의 선생님들이 작업중이다. 2번 녹음실로 목을 적실 차 한 잔을 들고 들어갔다. <고마워 영화> 수정편집 마무리를 시작하는데, 똑똑똑 노크소리에 문을 열었다. 2019 부산원북원도서로 내가 원하던 책이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이 책을 건네받았다. 회원이 원하는 책이 우선이지만 나도 읽고 싶은 책을 녹음하게 되면 더욱 좋다. 일석이조이니까. 작년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에 이어 올해에도 내가 녹음하게 되어 영광! 빨리 읽어야지.

 

유현준의 책이라면 알쓸신잡2의 영향도 있겠지만 유홍준의 추천말처럼 '전문성과 대중성이 분리되지 않은 인문학적 해석'에 대한 갈증도 한몫하였지 싶다.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 '도시와 건축'에 대한 해석으로. 도시와 공간을 읽는 눈이 생기면 흐릿하게만 보였던 우리 모습이 점차 또렷해진다는 건 저자의 말이다. 이 책의 부제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를 보면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 표지와 본문의 일러스트도 저자가 담당했다. 멋진 표지 일러스트를 보여드릴 수 없어 안타깝다. 본문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간단히 설명해 주는 사진, 그림, 도표에는 설명을 읽어준다. "**쪽 사진 설명 시작합니다. ~ 사진 설명 마칩니다." 글로 이미 적혀 있는 내용이라 그리 큰 지장은 없겠다.

 

11쪽에 걸친 '여는 글'이 저자의 기본적인 생각과 이 책의 내용을 잘 말해준다. 전체그림을 그리는 통찰과 세부적으로 분류해 들어가는 분석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다. 목차도 긴 데 꽤 상세히 구체적이다. 문장도 군더더기 없이 잘 이해되도록 읽히고 젠체하지도 않는다. 말을 할 때와 똑같은 느낌이다. 정확히 말하고 똑똑하게 유머러스하다. 지루할 틈이 없이 쉽게 읽히고 흥미롭다.

 

여는 글에서 저자는 1994년 발견된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를 언급한다. 스톤헨지나 이집트 파라미도보다 6천 년 이상이나 앞서 지어진, 기원전 1만~8천 년경의 신석기 시대 유적이다. 구석기 시대 인류가 동굴 밖에 나오면서 짓기 시작한 최초의 이 건축물은 장례식을 치렀던 신전으로 추측된다.

 

놀라운 사실은 이 건축물이 기원전 7천 년경에 시작된 농업혁명 이전에 지어졌다는 점이다. 60~70명 사람이 6개월에서 1년 동안 한곳에서 생활하며 건축에 매달려야 하니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필요하고 이렇게 원시적인 형태의 농업이 시작되었다는 가설이다.

 

구석기 시대 동굴화를 보면 인간은 동물보다 작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괴베클리 테페 기둥에 새겨진 조각에서는 인간이 동물보다 더 크게 조각되어 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이러한 모습이 바로소 동물을 길들여 가축으로 키우고 식물을 실질적으로 지배해 ('재배해'의 오자인 것 같아 고민하다 그냥 '지배해'로 읽었다) 농업을 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이 만들어진 증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믿음과 조직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신전 건축이었다. 건축은 인류 문명의 효시인 농업보다도 먼저 시작된,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든 본능적 행위다. (8쪽) 

 

 

이 책에는 전작에서 다 말하지 못한 건축과 도시에 비친 우리의 모습과, 건축가로서 실제로 우리를 둘러싼 공간들을 디자인하면서 알게 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부분은 주술이 어긋나 '담았다'로 내가 교정하여 녹음했다.)  부족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 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14쪽)

 

 

 서지사항과 목차, 저자소개, 여는글 다음으로 본문을 읽어 들어가면서 우리 자신과 타인, 우리 아이들, 우리 관계들에 좀더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 기대되었다. 알면 달라질 수 있을 가능성에 좀더 접근하게 된다. 오늘은 하늘이 제법 화창하다. 친구의 예상과는 달리. 내일의 날씨는 알 수 없는 것. 베란다문을 열고 고개를 빼서 왼쪽으로 보면 멀리 광안리바다가 반짝거리며 넘실거린다. 그 위로는 광안대교가 선을 그리고 있다. 고층아파트 숲 사이로 묘하게 어울리는 기하학. 자연과 인공철물이 그리는 풍경, 그 안에 쉼없이 하행상행 달리는 자동차들이 장난감 같다.

 

 

 

 

사람들은 건축물이 물질이라고 생각한다.-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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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3-2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수필문예 편집장을 맡아 3년간 하시는 것도, 13년째 낭독녹음봉사를 하고 있는 것도, 4년째 이분들과 문학관련수업을 하고 있는 것도 기억해 둬야겠습니다. 13년이나 되신 줄 몰랐어요. 문학 관련 수업은 수필 수업인가요?
프레이야 님은 능력자이시네요. 큰 결심이 필요해 보이지 않으십니다. ㅋㅋ
아무쪼록 일 잘 하시고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이런 분 알고 지내서 좋습니다.^^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9-03-25 21:31   좋아요 0 | URL
페크님 응원 감사합니다 😊 늘 즐겁게 할 수 있길 바란답니다. 페크님 칼럼 좋아해요. 계속 꾸준히 써주시길... 꽃샘추위가 있긴 해도 봄은 봄이네요. 가까이에 있는 동네에 벚꽃터널이 아주 환해요. 마음에 등불 하나 환하게 내어걸고 가자구요.

서니데이 2019-09-1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내일부터 추석연휴입니다. 명절을 맞아 인사드리러 왔어요.
가족과 함께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