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눈동자 1939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
한 놀란 지음, 하정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속눈썹이 아래위로 유난히 허옇고 풍성한 소녀의, 커다랗고 슬픈 동공에 비치는 나치스의 표시가 섬뜩하다. 지금 소녀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돌멩이문고라는 이름의 첫번째 책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옹골찬 시리즈로 보이는데 우선 독특한 플롯이 흥미롭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시점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서술된다. 청소년소설로 가져온 소재와 주제 면에서도 의미 있다.

 

이 책에서 소녀가 보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즉 영적인 것이다. 그 눈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혜안이자 진실에 대한 인식의 눈이다. 주인공의 영적체험(전생 혹은 빙의)을 읽어가다 오래 전 읽었던 <안네의 일기>가 떠올랐다. 이 책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것이지만 십대 유대인 소녀 샤나와 실제인물 안네 프랑크가 연신 겹쳐왔다. 혼돈의 시기를 거쳤으며, 자의식이 강하고 따뜻한 품성을 깊이 간직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만약 안네가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수용소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지 않고 샤나처럼 강인한 정신력으로 자신과 운명을 이겨냈더라면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루지 않았을까. 안네의 죽음이 정신력이 약해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안네는 죽음을 맞았지만 그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순정한 글들로 살아있다. 그와 같이 샤나는 힐러리로 부활하여 21세기에 영생의 기억으로 남았다. '기억하라,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책표지의 이 글귀는 우리에게 무서운 경구로 들린다. 놀라운 매력을 보여준 한 놀란이라는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도 샤나와 힐러리의 기억이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세상을 바꾸는 빛이자 힘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쉽사리 잊히지 않을 이 책을 읽으며 힐러리의 증오와 분노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하였다. 신나치주의 단체에 들어가 잔인한 행동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행하는 그 아이의 증오심은 개인적인, 엄마와의 불화와 심적 괴리감에 의한 불안정한 정서에 있었다. 힐러리의 악마성은 광기 어린 보복의 형태로 유대인 친구들에게 마구잡이로 자행되었고 그런 행동으로 그들 폐쇄적인 집단은 근거없는 쾌감을 맛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다니며 미친듯 광포한 괴성을 질러댄다. 힐러리의 증오는 나치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보이는 성질을 지닌다. 작가는 나치스의 광적인 증오심을 독자에게 어떻게 전해야할까 고심하였을 것이다. 힐러리라는 신나치주의 여학생을 내세워 십대에 있을 수 있는 갈등, 특히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의 부조화를 실마리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갈등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고 이해하게 하며 폭넓은 화해로 선도하였다는 점은, 청소년들의 정신적 성장이라는 광의의 주제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시대의 증언자 프리모 레비가 유대인에 대한 나치스의 광적인 증오를 설명한 부분을 살펴보면 힐러리의 증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그에 의하면 ‘반유대주의는 전형적인 불관용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런 태도는 1960년 초 신나치즘을 낳았고 백인우월주의로 이어졌으며 같은 민족끼리도 지역적인 악감정을 낳았다. 남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의 예만 그런 게 아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가 거부의 특별한 예라고 단언한 해석에 그의 동의는 전적으로 쏠리지 않는다. 그는 나치즘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통제되지 않는 광적인 분위기’를 지울 수 없다고 했다. 혹은 히틀러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아리안들의 집단 두려움에서 그 원인을 캐려는 해석에도 흡족해하지 않는다. 그가 신의하는 유일한 것은 나치즘의 증오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뿐이라 했다. 나치즘의 증오 속에는 이유가 없고, 인간의 밖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좀 더 인용하자면 이렇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하며 경계해야만 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인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과거에 벌어졌던 일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의식이 또다시 유혹을 당해 명료한 상태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까지도.’ (이것이 인간인가 ; 302쪽)  -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이라는 말이다.


유대인의 핍박을 소재로 한 청소년소설이나 고학년동화 중 내가 읽은 것에는 <별을 헤아리며>가 있다. 사춘기를 겪고 있거나 지나고 있는 소녀가 주인공인 것도 닮았다. 다윗의 별이 그 책에도 나오는데 유대인의 정신적 빛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소녀의 눈동자>처럼 게토와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과 같은 생활을 끔찍할 정도로 상세히 묘사하는 내용이 아니라 또다른 이야기(충분히 있음직한)로 인간성의 숭고함을 일깨워주는 정도로 그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흥미진진한 구도로 그리고 있어 중학생 이상의 학생에게 특별한 감동과 함께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기에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힐러리의 정신으로 열여덟 살 유대인 소녀 샤나의 힘겨운 삶이 전이되면서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힐러리가 3일 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오면서 결정적인 깨달음을 하게 되는 감격적인 장면에서는 우리의 미래 또한 현재의 명징한 의식에 달려있음을 말하려 한다. 작가는 아우슈비츠 증언 기록자료를 숱하게 점검하였을 것이며 그 사실이 잊혀져서는 안 되며 진실을 ‘인식’하는 지점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깨어나기 전에 죽었더라면... 원제가 말하듯, 우리는 죽기 전에 '깨어나야함(awakening)'을 강조하고 있다. 힐러리가 뇌사상태로 있었던 3일은 죽음의 허허벌판에서 자신과 또 운명과의 처참한 싸움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시간이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학대하였던 유대사람, 엄마를 포함하여 막연한 증오의 대상이었던 사람들과 서서히 화해하며 사랑으로 관계맺기를 소망했다. 아니 또 다른 자아(쉬베스터)를 늘 마주하며 상충하는 자아와의 조화를 이루어냈다. 이는 죽음의 언저리에 있었던 사흘이 자신의 역사적 위치를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게토에서의 생활과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 샤나와 할머니가 아우슈비츠의 짐승 같은 생활을 견뎌내는 장면 모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생각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는 수용소 생활도 실감나게 그려져있다. 특히 여자수용소의 생활과 그들의 생존다툼이 눈물 겹다. 샤나의 가족들은 제각각 미덕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힐러리와 샤나가 가장 의지하며 정신적 지주로 삼는 사람은 할머니다. 지혜롭고 덕망 깊은 이 노인은 구약을 외며 늘 기도의 말을 하고 처절한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푼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을 아끼는데,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통찰력과 미래에 대한 예지력이다. 알면서도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달을 수밖에 없을 때에는 그 선물이 저주스럽기도 하지만 언제나 신의 선물을 믿고 담대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이 선물은 샤나에게도, 이전엔 깨닫지 못했지만, 힐러리에게도 주어진 능력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아직 포장을 뜯지 않았거나 뜯다 만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구약의 묵직한 구절들이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다. 혹독한 시련을 겪는 샤나는 신을 부정하지만 나중에는 어떤 처지에서도 신이 내리는 빛을 찾게된다. 그런 눈으로 동료들을 모아 비밀스럽게 여는 촛불예배장면이 감동적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예레미야 1장 4절에서 10절을 인용하며 맺는다. 그중 끝부분은 이렇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유대왕국을 재건설하고 팔레스타인과 분쟁을 일삼고 있는 이스라엘이 떠올라, 멈칫 놀랐다. 창세기 32장 28절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밑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그들의 선민의식이라는 게 자칫 또다른 우월주의를 나은 것은 아닌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어디를 향하여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샤나의 할머니가 한 말이 가장 마음에 닿는다.

 

- 원제 : If I Should Die Before I Wake

문장이 몇 군데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소개나 작가의 말, 번역자의 번역의도 같은 것을 수록하지 않은 점도 그렇다. 청소년들이 좀 더 찾아 읽어볼 만한 책이나 자료(사진자료 포함) 같은 것도 부록으로 실어 주었더라면 더 가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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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3-02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되풀이된다.
진실입니다.
보관함으로 넣습니다.
아이들에게 읽히면 좋은 책이군요.

프레이야 2007-03-0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저도 우리집 큰딸 중2에게 권하고 있어요.^^
섬사이님/ 표지, 정말 그렇더군요.^^ 강렬한 인상을 주었어요. 가혹한 시련을 겪은
민족으로 유대민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서구중심, 기독교 중심의
눈이 아닐까요...

마노아 2007-03-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지막에 예배 드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배혜경님은 깊게 독서하시는 듯 합니다^^

바람돌이 2007-03-02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대민족의 수난보다는 나찌즘의 광기를 정면으로 다루었다는게 더 흥미가 갑니다. 일고싶어지는 책이네요.

짱꿀라 2007-03-0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너무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역시 글쓰는 분답게 너무 서평을 잘 써주십니다. 감사드립니다.

프레이야 2008-03-2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여러번 멈칫 하며 읽었어요. 이상하게 술술 읽히지 않더군요.
촛불예배장면에서 샤나의 정신적 성숙이 절정에 달했어요. 뭉클했어요^^
그래도 그 장면을 늘어지지 않게 조금은 여운이 남는 듯 묘사해주어 더 좋더군요.

바람돌이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생활이 중반 이후로 계속이에요.
그러니 수난을 다룬 것 맞는데, 나치즘의 광기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아요.
신나치주의 소녀의 개인적인 분노를 통해 그들의 집단광기를 읽고 싶었던 건 제 해석일지 몰라요.
좀 다른 점은, 여자수용소 내의 이야기들이 주로 나오는 거에요. 주인공이 여자니까.
절멸의 공간에서 생존을 위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이 아찔했어요. 그 안에서도
계급이 있어서 특혜 받은 유대여자와 그들로 인해 더 고통받는 사람들, 그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드러나는 인간애가 눈물겨워요.

산타님/ 늘 관심에 감사드려요. 더 쓰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줄였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