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8 녹음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나 싶더니 다시 땡볕이 기세등등하다.
막바지 더위에 과일이 달게 익기를...매미소리도 제법 잦아든 요즘, 모기가 기세등등하다.
지난 주 작은아이가 데리고 있는 냥이를 며칠 봐주러 가 캣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왔다.
어찌나 귀엽게 구는지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녀석 ㅎㅎ
나를 할퀴고 살살 물고 하더니 그래도 내치지 않았더니 나를 아주 신뢰하고 안기는 관계가 되었다.
화장실을 치워 줄 때면 모래에 뒹굴고 먹을 거리를 챙겨줄 때면 어서 달라고 쌀알 같은 이를 드러내고
애기 소리를 내며 빤히 쳐다보고 누워 있기라도 하면 내 귓속에 골골송을 부르며 숨을 불어넣기도 하고
고 말랑말랑한 발바닥으로 내 얼굴을 더듬고 혀로 핥고, 나는 고 귀여운 입에 뽀뽀도 하였다.
그렇게 냥이와 난 서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더위도 불사하고 낮에 풍납토성을 찾아갔다. 마을 어르신이 허리 굽혀 잡초를 뽑고 계시는 옆에 가서
이 나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모과나무에요. 저 위에 모과 파랗게 열려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아오리사과 연두빛보다는 좀 진한 모과가 대롱대롱 많이도 열렸다.
그 나무 둥치에는 황금옷을 입은 성자들이 꼼짝않고 매달려 있어 내 눈길을 끌었다.
매미는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태어나고자 침묵의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 외피를 벗고 새로 태어나는 날 죽음은 안중에도 없이 열혈생명의 목소리로 울어대겠지.
한세상 제대로 울어재끼다 가겠지.
풍납토성 위로 하늘이 찌를 듯이 높았고 흰구름 두둥실 가벼이 걸려 있었다.
함민복 시인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은 2013년에 출간된 시집이다.
총 세 개의 파일로 한 호흡에 시집 한 권을 녹음완료했다.
흔들린다 /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 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양팔저울 / 함민복
1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행
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
2
입과 항문
구멍 뚫린
접시 두 개
먼 길
누구나
파란만장
거기
우리
수평의 깊이
이 외도 '이가탄'을 한자로 달리 쓴 '이가탄'이라는 시는 신랄하고 재미있고 슬프다.
<황무지>는 황동규 옮김, 황동규 해석으로 엮었다. 역시 2013년 발간.
'황무지'뿐 아니라 다른 시까지 T.S. Eloit의 시를 좀더 이해할 수 있다.
주석도 많은 시집이지만 듣을 분들을 위해 적절히 배치하여 빠짐없이 녹음했다.
작년 강의 때 이 시를 녹음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하신 시각장애인 한 분의 요청으로
점자도서관에서 시집을 구매하였고 이제사 내가 녹음했다.
그분이 부디 찾아서 잘 들으시길... 그리고 늘 "내 예쁜이"라고 부르시던 아내분과 요즘도
건강하고 밝게 동행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