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볼 수 없는 지도 높새바람 27
정승희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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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가를 만날 때면 참 기분이 좋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로 만났던 바람의아이들 출판사는 내가 무척 신뢰하는 출판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연한 기회로 내 손에 들어 온 책이지만, 쌓아 둔 다른 책을 앞질러 읽게 되었고, 그리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최근 읽은 박윤규의 <<태초에 동화가 있었다>>에 의하면, '선창을 맞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배유안님이 <<초정리 편지>>를 썼을 때, 많은 기성 작가들이 그녀에게 선창을 맞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름난 한 작가는 취재까지 마치고 자료까지 다 모아 둔 상태였다고 하는데, 선창을 맞았으니 그 자료들을 이용해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의 기획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있겠다 싶다. 전화기의 발명 또한 비슷한 시기에 여러 사람들이 얽혀 있었다는 내용처럼 글 또한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쓰고 싶었던 내용이었는데... 또 이야기가 하나 줄었네!' 하면서 공감하면서 혹은 안타까워 하면서 읽었던 많은 이야기들 (즉, 나는 선창을 책을 읽으며 늘상 맞이한다.)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내게 무척 신선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나무와 슬리퍼 할아버지>

나무는 아이 이름, 슬리퍼 할아버지는 폐지를 주워 생활하시는 이웃 할아버지의 별명이다. 쌀쌀한 날씨에도 슬리퍼를 신으신다니 할아버지의 형편이 어떨지는 짐작해 볼 수 있겠다. 폐휴지를 모아서 불우이웃을 돕자는 선생님 말씀, 그러나 갑자기 직장을 잃으신 아빠 때문에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보던 신문도 끊어 버려서 신문을 모을 수 없는 나무. 그래서 정보지가 담겨 있는 함을 노리는데 늘상 나무를 앞서 가져가시는 슬리퍼 할아버지 때문에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미웠지만, 마음이 따뜻한 나무는 할아버지를 위해 저금통을 털어 파란색 슬리퍼에 어울리는 파란 양말을 하나 산다. 아픈 만큼 가족을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는 눈을 선물 받은 나무의 성장이 자랑스럽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지도>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현우는 '만복 복덕방' 손자다. 할아버지의 라이벌 '대길 복덕방' 손자인 광모와 같은 반이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서로를 미워하니 아이들 또한 알게 모르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를 바라보는 맘이 편치 않다. 그런데, 현우가 만든 '아주 특별한 지도' 덕에 두 아이는 비밀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된다. 할아버지집에 처음 와서 새로운 학교를 다니게 되자, 할아버지는 발걸음을 이용해 만든 지도를 현우에게 주시면서 그걸 보고 집을 찾아 오라고 하신다. 그래서 현우의 지도에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자기 발걸음으로 재어져 그려져있다. 또, 그 지도를 이용할 사람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로 고객을 위한 정보까지 알뜰히 갖추어져 있다. 그 지도를 얻는 댓가로 비밀 아지트를 알려주는 광모. 어둠 속에서 손을 맞잡은 두 아이는 진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면서 말이다.

 

<다시 시작하는 내 인생>

이 책에서 가장 특이하게 만난 이야기다. 세상 살아가면서 아픔이 기쁨보다 더 컸던 아이! 할머니의 이른 죽음에 슬퍼하다 넋을 놓고 찻길을 건너던 중 만난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는 이 세상에서 아이를 가장 잘 돌보아 주었던 분의 보살핌을 받으며 다음 세상을 준비한다. 할머니는 보호자인 아메푸스가 되고, 어린 태경은 보호를 받고, 치료를 받는 난툼이 되어, 망각의 강을 건너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태경의 소원은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집에 여자 아이로 다시 태어나는 것. 망각의 강을 건너면 이전 생의 모든 것과, 육체가 없었던 저승에서의 삶도 모두 잊혀진다니 다행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는 이제 마음 아프지 않은, 잘못하면 야단 듣고, 잘 하면 칭찬 듣는 평범한 가정, 아니 정상적인 가정에서 아이답게 자랄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하니 안심이다. 동시에 그렇지 못한 이 세상의 태경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짠해졌다.

 

<장수하늘소에게 말 걸기>

최신 휴대폰을 가지고 싶은 새미의 마음이 일으키는 갈등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새미가 유혹에 넘어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과 그 유혹을 이겨낸 것에 대한 안도감으로 글을 읽어내려갔다. 아이들도 이 이야기를 만나면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될 것 같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일을 해 낸 아이는 박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이야기를 이끌어내는데 장수하늘소가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소금 기둥>

남아선호 사상이 사회 병으로 느껴졌었는데, 요즘은 그런 느낌이 많이 줄어 들었다. 아들 꼭 필요없다던 시어머니 때문인지, 딸, 아들 골고루 낳은 안도감 때문에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그래서 그런지 이 이야기는 요즘 아이들도 이런 감정 느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별 탈없이 잘 자라고 있는 이 땅의 딸들에게는 고민거리가 아닌 '신기한 이야깃거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또 딸을 낳아서 슬픈 엄마, 화가 난 할머니! 하지만, 아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모두가 느끼면서 가족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섬에서 살아>

임대아파트 아이들. 죄없는 그 아이들의 마음이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다. '임대'라는 딱지를 붙여 사람을 업수이 여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는 아이들이 무섭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흔한 일이 되어 버려 가슴 아프다. 같은 아파트에 쳐진 울타리, 그 울타리 때문에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 그 섬에 다리를 놓는 일을 아이들이 스스로 해 나가면 좋겠다.

 

 작가의 말처럼 밝고 좋은 이야기 보다도 어둡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 되었지만, 이 책은 아이들에게 고민의 시간을 선물해 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찬찬히 읽어 볼 일이다. 고학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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