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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ㅣ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평점 :
많이 본 제목인지라 덥석 손에 들었다. 도서관에 가니 이런 부분에서 자유롭다. "혹시 실패하지 않을까?"
이 제목이 눈에 익은 것은 책이 좋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여러 번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도감이 망가졌다. 어디로 갈까? (소녀가 말한다.)
를리외르 아저씨에게 가 보렴.(어른들이 말한다.)
를리외르가 뭐지? 책 의사 선생님 같은 사람인가? (소녀가 찾아 나선다.)
유럽에서 인쇄 기술이 발명되어 책의 출판이 쉬워지자 발전한 실용적인 직업이 를리외르라 한다. 작가가 를리외르의 작업광경을 보고 감탄하여 만들어 내었다는 이 책은 읽는 이에게도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아저씨라기보다는 소녀의 입장에서 보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의 작업장은 아름다운 책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책은 낱낱이 뜯기어 기계로 가장자리를 다시 가지런히 잘라 실로 꿰매어진다. 낱장들은 풀칠 후 말리고 책등은 책이 잘 넘어가게 망치로 두드려 둥글려 준다. 이러한 일은 대를 물린 작업이 된다. 소장가치가 있는 소중한 책 한 권이라면 이런 재탄생은 정말 감동이다.
작업하는 할아버지는 소녀의 쏟아지는 질문에도 귀찮아 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일을 하신다. 소녀의 호기심은 할아버지의 작업을 방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소녀와 할아버지의 대화가 물흐르듯이 이어진다. 그 사이 많은 여백이 느껴지기도 한다.
남겨진 페이지 하나가 맘 쓰이는 소녀, 절대 버리지 않을거니 걱정 말라는 할아버지. 소녀가 좋아하는 아카시아 나무는 표지가 되어 다시 살아난다. 새로운 제목을 안고 태어난 책은 소녀에게는 그야말로 보물이 된다.
작업을 하면서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아버지 이야기.
얘야,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아.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아이들은 이 책을 통해 책 만드는 공정을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책 또한 인쇄소에서 기계로 팍팍 찍어냈겠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아름답다 이야기 해 주니 를리외르의 아름다운 손길이 느껴진다.
저는 소피예요.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그냥 를리외르 아저씨라고 부르렴. 를리외르라는 말에는 '다시 묶는다'는 뜻이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