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노동자 전태일 우리시대의 인물이야기 7
위기철 지음, 안미영 그림 / 사계절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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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태일의 분신에 대해서 나는 그닥 관심이 없었다. 이 인물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서? 라는 말 한 마디면 끝이었다.  

그런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를 읽고 있는데, 씨앗 문장과, 씨앗책, 그리고 이웃 도서들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책을 읽는 중에 또 다른 책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이웃도서라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가 여러 차례 언급한 <<전태일 평전>>에 급관심이 생겼다. 아직 <<전태일 평전>>책은 없으나 아동용 도서가 있으니 우선 이거라도 읽어보자 맘 먹었다.  

 ■풀빵 

전태일의 어린 시절의 고단한 삶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놀라운 것은 그렇게 어렵게 살았으면 삐뚤어질 법도 하고, 마음이 고약해 질 법도 한데, 전태일은 남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평생 가지고 살았다는 거다. 청계천 평화시장 내 피복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견습공들,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의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점심 사 먹을 돈이 없어 점심 시간이 되면 그저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이 모습을 보고 전태일은 자신의 버스비를 가지고 풀빵을 사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 오느라 통행금지에 걸려서 집으로 들어오지도 못했다고 하니, 보통 우리네 심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그 풀빵을 먹고 그들은 얼마나 감사함을 느끼고, 또 얼마나 눈물이 났을까? 그것이 태일의 차비였다는 사실을 알았을테니 말이다. 그들을 위해 좀 더 힘이 되어 주고 싶어서 재봉사 일을 하다가 재단사 일을 해야 겠다고 맘 먹은 태일은 그저 노동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근로기준법 

그가 노동현실에 눈 뜨면서 사게 되는 값비싼 책 한 권, 그것은 어느 노동법 학자가 썼다는 근로기준법 해설서였다. 당시 2,700원을 주고 샀던 그 책은 한자가 많아 배움이 짧았던 태일에게는 엄청 어려운 책이어서 그는 꼬박 하룻밤을 세워 한 장밖에 못 읽은 날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얻은 새로운 사실은 태일의 행동에 불씨가 되고 있었다.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에서 인용한 전태일 평전의 내용) 달라져야 한다, 노동 현장이 달라져야 한다!

  ■대학생 친구 

그가 원했던 것은  이렇게 어려운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도와 줄 많이 배운 대학생 친구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에게 이런 동무 하나 있었더라면 그의 삶은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운동권 학생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때를 돌이켜 보니 그들은 공장에 불법 취업도 하고, 노동자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기도 하였는데, 왜 전태일과는 인연이 안 닿을까? 그런데, 시기적으로 이러한 대학생들의 활동보다 전태일의 분신이 먼저였고, 이러한 활동들의 기폭제가 된 것도 어쩜 전태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보회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하는 것이 낫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부당한 노동현실을 바꿀 수도 있다. 그리하여 전태일을 회장으로 하여 모임이 결성되는데 그 모임의 이름이 '바보회'였다.  

이 책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가난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다. 이 명제는 많은 인권 책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열심히, 많이 일한다는 사실을 두고 보았을 때 이는 사회 구조적인 모순이요, 빈곤의 악순환의 끊기 어려운 고리인 것이다. 그 고리를 끊기 위해 가난한 이들만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빈곤의 중심에 놓여 있었던 전태일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어린 여공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일한만큼 대우받으면 모든 것이 나아질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웠다. 백방으로 뛰어 보아도 그들을 도와 줄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근로기준법을 공부한 전태일은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결정하기로 맘을 먹는다. 이런 노동운동을 하려 하니 아는 선배가 바보같은 짓 하지 말라고, 그렇게 노력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며, 기계처럼 일하는 바보가 되기보다는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바보가 되자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이 모임의 이름이 결정되었다.

 ■불꽃 

약자의 편을 드는 이보다 강자의 편을 드는 이가 많다. 태일이 아무리 뛰어다니며 도와 달라고 애원해도 모른척 하는 사람들, 노동자를 보호해 주어야 할 근로감독관 조차도 사장들의 편이고, 불의를 물리쳐야 할 경찰들조차도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으니 전태일의 가슴은 얼마나 답답하고 아팠을까? 자신을 불사르는 일, 얼마나 많은 밤을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을까?   

죽어가면서 그가 했던 많은 말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어머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담대해지세요. 어머니, 우리 어머니만큼은 저를 이해해 주실 수 있지요? 저는 이 세상 어두운 곳에서 버림받는 목숨들, 불쌍한 노동자들을 위해 죽습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조금도 슬퍼 마세요. 두고두고 더 깊이 생각해 보시면, 어머니도 이 불효 자식을 원망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어머니 제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꼭 이루세요.  

우리가 하려던 일, 내가 죽고 나서라도 꼭 이루어주게. 아무리 어려워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네. 내 죽음을 헛되이 말게.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전태일의 모습에서 비장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죽기 직전 그가 했다는 한 마디 말에 나는 그만 주루룩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배가 고프다......"

평생을 배고픔에 시달리며 살다가 다른 이들을 위해 또 배가 고프다가, 그렇게 죽어가면서까지 배가 고팠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의 삶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면서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가난에 굽히지 말고, 부유함에 오만하지 말고, 언제나 성실하고 정의롭게 살아가야 할" 이 땅의 아이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해 보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이 책 표지부터 제목까지 아이들의 시선을 잡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태일의 시대와 우리 아이들의 시대가 너무 멀어졌기도 했거니와 이 책에 무지한 어른(나)이 이 책을 한 번도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정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 나만 몰랐나 보다. 이미 1판 21쇄를 찍고 내가 읽은 책이 2판 8쇄니 말이다.) 

머리말에서 위기철 선생님이 한 부끄러운 고백, 그 고백을 빌어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얘들아, 선생님이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할게. 어린 시절 가게에 가서 물건을 훔친 일이 있었어. 조그만 손에 쏘옥 들어갈 물건이었으니 아마 작은 사탕 하나 정도였을 거야. 아무도 보는 사람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떨리더라. 그런데, 갑자기 내 등 뒤에서 누가 "뭐해?" 하면서 툭 치는 거야. 친구였어. 친구도 내가 한 일을 알지 못했지만 그 때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그 날 이후 나는 다시는 양심에 꺼리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어. 전태일은 그런 사람이야. 나쁜 짓을 하고 있을 때,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 혼자만 욕심 부리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나타나 "너 거기서 뭐해?" 하고 물을 사람 말이야. 너희들이 이 책을 꼭 읽어보면 좋겠어.  

그렇게 말해주면 교실의 친구 중 누군가는 이 책을 읽을 거다. 만약 아이들이 머리말을 읽는다면 그 이야기가 선생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가 머리말을 읽지 않는다고 보았을 때 이 이야기는 "엄마, 우리 선생님도 도둑질을 했대~"가 되어 어머님들에게 전달 되겠지? 그러다가 학년말 문집에 이야기를 쓰는 거다. 감동깊게 읽었던 전태일의 이야기를.  그렇게 하면 아이들의 마음에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더 깊이 새겨질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충격요법이랄까?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너무 긴 시간이 걸리는 거 아니가!" 하고 한마디 거든다.  

하여튼 이 책은 머리말부터 나의 마음을 몽땅 빼앗아 가 버렸다.  

이번 방학도 이렇게 멋진 책 한 권을 만났으니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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