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산하어린이 57
권정생 지음 / 산하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들라면 나는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강아지 똥>>이 아니라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를 들고 싶다.  

그 책에서는 권정생 선생님식의 유머가 살아있고,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묻어난다. 그런데, 오늘 이 책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를 만나고 나서 마음이 살짝 흔들리려고 한다.  

하느님이라면 전지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세상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그런 대단하신 분인데, 권정생 선생님은 그런 분을 우리 옆집 할아버지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 동화가 월간잡지 <<새가정>>에 두 해 넘게 연재 되면서 하느님을 욕되게 한다고 독자들로부터 여러 차례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이해 못 하는 것을 아이들은 훨씬 바로 깨달으리라는 권정생 선생님 말씀. 나도 이 책에서 선생님의 뜻을 이해했다면 어린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어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예수님은 '가난한 이웃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다. 세상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신 하느님이 어느 날 아들 예수에게 땅으로 내려 가 보자고 하신다. 그렇게 해서 바람에 쓸려쓸려 내려 온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땅으로 내려와서 인간의 모습으로 살기로 했으니 전지전능한 능력을 쓰는 것은 반칙이다. 가장 가난한 동네를 택하셔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처지가 되신 하느님. 고아원에서 생활했다는 공주님이라는 5살 반(정확한 나이를 몰라서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아이)이라는 여자 아이와 전쟁통에 가족과 헤어져 그 가족이 살아있다면 북한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지내시는 과천댁 할머니와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신다.  

점쟁이 집에 갔다가 살풀이 굿을 하라는 말도 듣고 전도사의 손에 이끌려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교회도 다니시는 하느님. 무슨 하느님이 이래? 하면서 웃음이 쿡쿡 나온다. 하느님의 위치를 우리 이웃으로 끌어내려 주신 권정생 선생님이 한없이 고맙다. 그 어떤 훌륭한 목사님의 설교보다도 그 어떤 근엄한 하느님의 모습보다도 아이들에게는 이 동화의 하느님의 모습이 더 근사하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권정생 선생님 동화에는 늘상 평화 이야기가 나오고, 통일 이야기가 나온다. 세 해를 땅에서 보내신 하느님은 그래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는 이 세상을 보면서 다시 하늘로 올라 가려 하시지만, 예수님이 이 땅이 통일될 때까지만이라도 이곳에 있자 하시니 하느님은 아직도 우리 옆집에 살고 계시는 거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래도 살아가려고 과천댁 할머니도 열심히 일을 하시는데, 같은 또래이신 하느님이 너무 일을 안 하신다는 거다. 물론 공주님을 열심히 돌보고(?) 계셨지만 말이다. 일 좀 하시지...  

재미있는 동화다. 한 번 읽어보시길~ 

사람들은 아직도 이웃 사랑보다 기적만 바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제가 옛날에 기적을 보여 준 것이 잘못이었어요.  (164쪽)

아버지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이 세상 어딘가에 오히려 제 십자가보다 몇 갑절 힘들게 이웃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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