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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똥 싼 날 ㅣ 보물창고 북스쿨 5
오미경 지음, 정지현 그림 / 보물창고 / 2010년 1월
평점 :
내 아이랑 일기쓰기를 해 보니 나는 참 나쁜 선생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학년 희망이의 선생님은 일 주일에 3편의 일기를 써서 매주 월요일에 검사를 맡게 하신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해서 2편 쓰게 하는 날이 많은 나는 요즘 들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 교직 경력에 2학년을 운좋게도(?) 4번을 했다. 그 때 나는 아이들에게 일기는 매일 써야 하는 생활습관임을 강조하면서 일기장을 2권 준비하게 시켰다. 전담시간이 없는 1, 2학년은 한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기 때문에 일기를 검사할 시간이 없다. 일기 검사란 내게 있어서는 '사인 해 주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과 소통하는 시간'이기에 검사 할 시간이 제법 필요하다. 그래서 한 권을 학교에 두고 가면 오늘 당장 쓸 일기장이 없으니 다른 한 권이 필요한 것이다. (왜 2권의 일기장을 준비해야 하는지 끝까지 이해하지 못 하는 친구도 있다. 오늘 일기장 돌려 받지 않았다고 자꾸 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머니들께도 안내장을 보내드렸으나 읽지 않는 듯했다.)나는 두 권의 일기장을 번갈아 가면서 검사를 해 주고! 그 때는 내가 아이들의 삶과 교육에 무척 애정이 많은 열혈교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되짚어 생각해 보니, "일기 쓸 것이 없어요."를 외치는 아이들을 다그쳐서 일기를 쓰게 하느라 우리 반 엄마들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욕(?)을 해 가면서 말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아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아이를 낳아 보아야하고 그리고 그 아이를 학교에 입학 시켜 보아야한다고 선배 선생님들께서 말씀 하셨나 보다.
이 책에는 가짜 일기를 쓰는 (진짜 일기는 비밀 일기장에 쓰는) '여깡' 김예강과 일기 쓰기를 무지무지 싫어하는 '쩐새우' 전세호가 나온다. 그 아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정한 일기를 쓰는가가 흥미롭게 전개 된다.
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전세호의 뒤에는 일기검사를 열심히 하는 선생님을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하는 그의 엄마가 있다. 선생님은 나(세호)에게 일기는 똥싸는 것과 같은 아주 쉬운 일이라고 하시지만, 변비로 고생하는 내게는 똥 싸는 것처럼 힘든 일이다. 선생님이 제안한 '나만의 열매따기' 미션을 완수한 친구들은 선생님네 농장에 초대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약속을 하게 되는데... 세호에게는 특별히 '일기 한 달 빠뜨리지 않기 과제'가 강제적으로 주어진다. 그 과정에서 부모의 불화로 거짓 일기를 쓰는 예강이의 모습을 선생님께 알리면서 비밀이 있을 경우 그 일기장을 접어 내면 읽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게 된다. 세호는 일기를 못 쓴 날 하루-일기를 쓴 척하고 그냥 눈 딱 감고 접어 내고 마는데! 하지만 양심은 살아있는지라 무지 그 사실이 찔리는데... 그 사실을 아시고도 선생님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호의 미션 수행을 인정 해 주시는데!(여기서 잠깐, 나도 아이들에게 일기장 접어 내도 된다고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펼쳐진 일기장의 빈 페이지나 날짜만 고쳐 쓴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 심란했던 나날이 있었다.)
이야기의 결론은 그들은 행복했더란다~ 이다.
유쾌한 글읽기! 희망이 연령대(초등1, 2학년)의 어린이가 읽으면 독서시간이 즐거울 책이라 여겨진다.
덧붙여 둔 '꼼꼼히 읽고 곰곰히 생각하기'도 나름 유익하다. 이런 류의 글들을 나는 때로 사족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 글은 일기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가령, 유명한 일기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하는)도 제공하고 있어서 내게는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아이들에게 일기에 관해서 할 말은 무진장 많지만, 그 많은 이야기 속에 그래도 포함시키고 싶은 대목이 많이 있기 때문에 더욱 반갑다.
얇아서 금방 읽히는 책, 거기에 재미까지 보태어지니 더욱 즐겁다.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