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쿨 할아버지 잠깬 날 사계절 저학년문고 5
신혜원 그림, 위기철 글 / 사계절 / 199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학년을 가르칠 때 아이들이 이 책을 무척 좋아했다. 이 책 읽으려고 "예약"을 외치며 줄줄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쓸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교과서에 실린 꽃담이 이야기(<내가 하나 더 있었으면>)가 실려 있다. 1, 2부로 구성 되어 있는데, 1부는 꽃담이가 펼치는 이야기로 <녹슨 열쇠>, <달빛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거야>, <내가 하나 더 있었으면>으로 구성 되어 있고, 2부는 네 개의 이야기가 단편 동화로 펼쳐진다.  

먼저, 1부를 들여다 보자. 이 책은 정말이지 동화적인 상상이 풍부한 책이며, 동화가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하면서 동화에 취해 약간 나를 몽롱하게 만들어 버렸다.  

<녹슨 열쇠>를 찾은 꽃담이는 열쇠의 정체가 궁금해서 가족들에게 물어 보지만, 모두들 바빠 건성으로 대답하고 만다. 화가 난 꽃담이는 입을 닫아 버리고, 그걸 알아 챈 가족들은 꽃담이의 맘을 풀어 주려고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데, 그 말들에 꽃담이는 결국 '깔깔깔' 웃으며 다들 엉터리라고 말한다. 아빠가 그런 꽃담이를 보며 하시는 말씀  "이 열쇠는 꽃담이 입을 채운 자물쇠를 여는 열쇠구나!" 

<달빛 때문에>는 꽃담이의 꿈속 이야기다. 잠이 와서 못 견디겠는데, 찍찍이, 야옹이, 멍돌이, 음메소가 차례로 나타나 만지고 핥고 밟고... 그리고는 달빛 때문에 생각이 났노라며 들쥐, 들고양이, 들개가 되러 숲에 가는데 함께 가자고 한다. 음메소에게는 꽃담이가 선수를 쳐서 너도 들소가 되러 가느냐고, 달빛 때문에 가느냐고 짜증 섞인 말을 하는데... 그리고는 다시 푹 쓰러져 잠이 드는데! 이번에는 진짜 아빠가 학교 가라고 깨우는 거다. 꽃담이 왈 "아빠도 달빛 때문에 들아빠가 되고 싶은 생각이 났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거야>는 놀이터에 놀러 갔는데, 시소, 그네, 미끄럼틀이 더이상 쿵덕 거리지도, 흔들리지도, 미끄럽지도 않아 꽃담이를 즐겁게 해 주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거야."라고 말을 한다. 더 이상 아이들의 마음을 맞춰 놀아주고 싶지 않다는 거다. 꽃담이는 너무 심심했고, 다시는 놀이터에서 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돌아서서 집으로 오는데 엄마는 혼자 책만 읽고 계신다. 자기를 쳐다 보지도 않고 말이다. 참고 참았던 눈물을 으왕~ 하고 터뜨리는 꽃담이. "엄마도 엄마가 하고 싶은 일만 해요?" "그럼.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지." "좋아요. 그렇다면 마음대로 해요. 이제부터 나도 엄마랑 안 놀아 줄 거야!" 현명한 엄마의 대답은 "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은 꽃담이와 놀아 주는 일이야. 그게 바로 엄마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지." 라고 말하며 꽃담이를 꼭 안아 주신다.

<내가 하나 더 있었으면>에서는 꽃담이가 아빠의 심부름도 귀찮고, 학원 가는 것, 숙제하는 것도 귀찮아 "내가 하나 더 있었으면"이라고 말하자 꽃담이가 하나씩 더 생겨 모두 스무 명이나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다. 자기 일을 실컷 해 준 것은 좋은데, 그 꽃담이들 덕에 아빠는 진짜 꽃담일 찾지 못하신다. 보통 이런 경우 다른 부모들과 달리 꽃담이 아빠의 대처 방법은 "우와! 예쁜 딸이 스무명이나 되어 너무 좋구나!"였다. 그리고는 1번 꽃담, 2번 꽃담... 하는 식으로 번호이름까지 달아주신다. 진짜 꽃담이는 15번 꽃담이가 되어 책상 밑에서 자게 되었는데. 15번 꽃담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너무 많은 건 싫어!'라고 생각했으니! 다음 날 19명의 꽃담이는 모두 사라졌을까? 

2부에서는 이 책의 표제작인 쿨쿨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쿨쿨 할아버지 잠 깬 날>에서 동물들처럼 겨울잠을 자는지 겨울에는 보이지 않던 쿨쿨 할아버지가 봄과 함께 아파트에 다시 나타나서는 다섯 개의 씨앗을 매일 하나씩 심고 가꾸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동화적인 상상이 풍부한 이 책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읽는 내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면서 작가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두었다. 아파트에서 아이들이 차를 무서워 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마음껏 놀 수 있다면, 동물들이 뛰어 다닐 공간이 많이 있다면, 아파트가 푸른 빛이라면,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다면...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무꾼과 사냥꾼> 이야기는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을 구해 준 나무꾼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은혜를 갚기 위해 선녀의 옷을 숨기라고 가르쳐 주는 사슴에게 도둑질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나무꾼은 그 일을 계기로 환경 지킴이로 거듭 난다. 마찬가지로 나무꾼의 도끼가 무섭다고 사냥꾼에게 자기를 숨겨 달라는 소나무도 고맙다며 사냥꾼에게 두레박을 타고 하늘 나라로 올라 가라고 하는데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도둑이 될 수 없다며 숲 속 나무 지킴이가 된다. 그로 인해서 숲 속의 동물들과 나무들이 모두 안심하고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뱀 이야기>는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 동물들이 처음 생겨났을 때의 이야기인데, 하늘님께서는 동물들에게 각자 하나씩의 재주를 주셨다. 특히 아름다웠던 '보들'이라는 동물은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긴 했으나 그 아름다움에 감사하기 보다는 뻐기고 다른 동물들을 업신여기고 했더란다. 보들의 말에 상처 입은 동물들의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 하늘님이 "앞으로 네가 다른 동물들을 깔볼 때마다 네 몸에 덮인 아름다운 털이 한 줌씩 빠질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지만, 보들은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아름답던 털이 모두 다 빠진 보들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이에 뉘우친 보들이 달려가 사정을 하자 하늘님께서는 "좋다. 그러면 네가 친구를 하나 사귈 때마다 털이 한 줌씩 나게 해 주겠다. 그 대신 친구들이 너와 사귀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마다 네 몸은 조금씩 길어질 것이다."라고 하신다. 맘이 상한 친구들의 맘을 다시 돌리긴 어려웠고 덕분에 보들의 몸은 자꾸 길어지기만 했더란다. 친구가 되어 주기로 한 두꺼비 할아버지는 친구라는 약속을 잊으면 아주 큰 벌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는데. 이제 더 이상 보들이 아닌 뱀이 두꺼비를 잡아 먹으려고 하면 두꺼비 등에서 나오는 독 때문에 혼이 나게 되었다(벌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신기한 열매>는 어른들이 읽었으면 하는 동화다. 나는 예전에 나이가 들면 더욱 철이 들거라 생각했는데, 어른들을 가만히 관찰 해 보면 아이와 같은 속좁음이라든지, 어른으로서의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나 또한 꽉 막힌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참 많이 노력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람됨의 그릇이 저절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그릇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아이들은 사고가 유연해서 내가 잘못 한 일은 무엇이라는 식으로 자신을 잘 되돌아 볼 수 있지만, 어른들은 자기 고집을 꺾기가 무척 힘이 드는 것 같다. 이 동화는 이러한 어른들을 반성하게 할 이야기였다. 하지만, 슬픈 것은 무언가 바뀌어야 할 것 같은 어른들은 이 동화를 절대로 읽지 않을 것 같은... 번개손은 어릴 때부터 거짓말 하고 약한 친구를 괴롭히다 나쁜 어른으로 자란다. 감옥을 제 집 드나들 듯 오가다 보니 이 세상에 번개손을 반겨 줄 사람은 어머니 뿐이신데, 잘못을 뉘우치고 어머니께 용서를 구하려 했으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그 어머니의 무덤에서 후회의 눈물을 흘리다 번개손도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그를 가엾게 여기고 어머니 곁에 묻어 주고는 그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무덤 곁에 꽂아 두었다. 그런데 그 지팡이 끝에 신기하게도 빨간 열매가 하나 달렸다. 그곳을 지나가던 거지, 부자 노인, 강도는 그 열매를 따 먹고 자신을 돌아보고는 지금까지 산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살기로 맘 먹게 되었더라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 재미있다고 한 이유가 다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저학년 아이들에게 책읽기의 맛을 느끼게 해 줄 참 좋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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