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들어가는 말

제목이 무척이나 눈에 밟히던 책이다. 다른 이들의 서평을 몇 편 읽었지만, 언뜻 내용이 와 닿지 않아 쉽게 읽어지지 않았던 책이다. 하지만, 책의 가치를 빨리 눈치채지 못하고 이제야 읽었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무척 많은 이야기를 내게 걸어 준 책이다.

아주 가까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이외에는 무척이나 눈이 어두운 나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레반’이라는 용어의 정확한 뜻도 이해하지 못해 키보드를 두드려 검색해야 했고, ‘파쉬툰인’과 ‘하자라인’,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단어도 따로 메모해야 했다. 탈레반의 ‘인종청소’가 무엇인지도 다시 떠들쳐 보았고,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이라는 나라의 이름도 헷갈려 몇 번씩이나 입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가 지니는 우리와 닮은 어떤 모습들에 신기해했고, 책을 통해 만난 새로운 그들만의 문화는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9․11테러에도 끄덕하지 않았던(관심이 없었던)나를 부끄럽게 만들어 버렸으니 문학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참으로 대단한 이 책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2. 거짓말, 통쾌한 거짓말

책을 덮은 후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은 바바가 어린 아들 아미르에게 했던 말이었다.

“한 가지 죄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도둑질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바에 대한 원망이 섞인 아미르의 독백 ‘내게는 동생이 있다는 것을 훔쳤고, 하산에게서는 신분을 훔쳤으며 알리에게서는 명예를 훔쳤다. 오로지 그 자신의 명예와 긍지를 위해서.’도 마음을 흔든다.

이 이야기를 몇 가지의 거짓말에서부터 풀어보고자 한다. 

먼저, 아미르 대 하산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짓말, 아미르와 하산 대 바바, 알리, 그리고 라힘칸 사이에서 일어나는 바바에 관한 거짓말,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마음의 짐을 벗도록 도와주는 아미르와 라힘칸 사이에서 일어나는 통쾌한 거짓말이 그것이다.

아미르와 하산은 어린 시절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고, 하산의 아버지인 알리는 그들에게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사람들 사이에서는 시간조차 깰 수 없는 형제애가 존재하는 법이라고 여러 차례 말을 한다. 파쉬툰과 하자라인이라는 신분의 벽을 넘어 아미르와 하산은 정말로 형제와 같은 진한 무엇을 간직하며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보낸다. 하지만, 신분에서는 우월했지만, 아버지의 사랑이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하산에게 분배되는 것에 대해 묘한 질투심마저 느끼던 아미르는 연싸움에서의 승리와 마지막 연을 얻어 내는 것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아미르를 돕기 위해 연이 떨어지는 방향을 감각적으로 알아채는 하산은 그 연을 쫓아 달려간다. 그러던 중 하산을 노리던, 아세프 일당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봉변을 겪게 된다. 파란색 연을 손에 쥔채. 뒤쫓아 간 아미르는 그러한 하산을 목격하지만, 그 순간을 외면하며 도망치면서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며 바바의 마음을 얻기 위한 희생양으로 하산이 필요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 결과 12살 아이의 모습으로 마음의 짐을 지닌 채 26년간을 살아가게 되는 아미르. 그 아미르가 진실을 외면하는 첫 거짓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그 보다 앞선 거짓말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미르와 하산의 출생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어른인 바바, 알리, 그리고 라힘칸에 의해서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 안에서 택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변명을 앞세워 아미르와 하산이 이복형제임을 바바의 죽음 이후,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바바의 친구였던 라힘칸이 밝혀준다. 이미 하산도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거짓말은, 아미르와 하산 사이에서 있었던 은밀한 비밀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라힘칸이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면서 시작된다. 라힘칸은 아미르에게 카불 어딘가에 고아가 되어 남아 있는 하산의 어린 아들을 구해 와서 보다 더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미국인 부부에게 넘겨 주라고 부탁하지만, 그 미국인 부부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하지만, 그 거짓말로 인해 아미르는 오랜 세월 하산에게 지고 있었던 빚을 갚고 마음의 짐을 벗어 버릴 수 있게 된다. 이 통쾌한 거짓말이 우리를 편안한 결말로 안내한다.

3. 아버지, 아버지와 같은

많은 것을 가진 아미르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아버지, 바바의 절대적인 사랑을 얻는 것이었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커 보이는 아버지에게 자신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 한없이 속상하다. 더군다나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아미르는 하산에게 기우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하산이 자신에게 무척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만) 보잘것 없는 하자르인과 자신이 비교된다는 것이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미르의 바바에 대한 범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외경심이랄까 우러름은 최근에 읽은 <<다산의 아버지께>>를 떠오르게 했다. 억울한 누명으로 유배생활을 하는 아버지에 대한 근심스러움이 무척 컸겠지만, 집안을 돌볼 수 없는 가장에 대한 원망과 현실의 어려움을 생각지 않고 학문을 게을리함에 대한 꾸짖음에 대한 섭섭함, 그리고 아버지의 그 큰 사람됨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속상함이 곳곳에 배어 나오는 학유의 글을 읽었을 때처럼 아버지에 대한 아미르의 마음 또한 다산에 대한 학유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음 붙일 곳 없는 아미르에게 그의 마음을 붙잡아 줄 수 있는 라힘칸 같은 어른이 주변에 있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에게는 라힘칸처럼 아버지의 모습보다도 더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잊혀지지 않는 분이 계시다. 바로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그 당시 선생님의 아들이 같은 학년이었으니 연세도 딱 아버지 정도의 나이셨으리라.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 정말 따뜻하셔서 우리 아버지도 저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선생님의 모습 하나하나는 지금도 내가 그려보는 참교사상이기도 하면서 따뜻한 아버지상으로 아직도 나의 마음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에게 보여주셨던 특별한 사랑도 큰 기억에 남지만, 그 특별했던 사랑이 모든 친구들에게 다 그러했다는 기억이 더욱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다. 당시 아버지가 없는 친구(반에는 모자원이라는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셨는데,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 때 선생님의 시선은 보는 나의 마음 또한 기분좋게 해 주었다. ‘아버지라는 것은 이렇게 따뜻한 것이구나!’하는 것을 우리 아버지에게서가 아닌 선생님에게서 느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니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아미르 또한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라힘칸에서 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바가 아들인 아미르에게 한 거짓말도 나빴지만, 아미르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하고 상처를 준 부분도 부모로서 크게 반성해야 할 점인 것 같다. 그 모습은 어쩌면 세습되지 않아야 할 우리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표상으로서의 바바가 아닌, 늙어 다소 초라해 보이는 아버지로서의 바바에게서 더 인간미가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라면, ‘넘치기 때문에’가 아닌 ‘부족하기 때문에’ 자식을 더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니, ‘아버지라면’이 아니라, ‘부모라면’ 그러해야 하리라.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아울러 원망을 품으면서도 그래도 이다음에 아버지가 된다면 ‘바바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아미르의 독백은 바바의 삶을 더욱 값지게 해준다.

4. 도망치다와 돌아가다(배반과 속죄)

이 이야기는 또한 현실에 대한 도피로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마음이 묶여 버림으로써 갈등을 낳는 것에서 시작되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속죄하는 맘으로 위험을 무릎쓰고 돌아감으로써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게 되어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구조로 진행되고 있다. 도망치는 것은 해방이 아니라 구속이었으며 돌아가는 것은 희생이 따르더라도 치루어 내야 할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아미르는 위험 지역인 카불에서 하산의 아들 소랍을 구해 내기 위해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탈레반이 된 아세프를 만나게 되지만,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며 자신을 믿고 따라 준 하산에 대한 배신을 목숨을 내 놓고 그의 아들을 구해 내 옴으로써 갚아 나가게 된다. 26년간의 마음의 짐을 벗고 드디어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자식을 간절히 원했지만, 자식을 얻을 수 없었고, 어려서 형제애를 가지고 함께 자랐던 하산의 아들을 양자로 받아들였으나 그의 마음을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5. 연

이 글에서 연은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연결짓는 매개로 등장한다. 현재에 머물러 있으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이 된 아미르는 연을 볼 때마다 하산과의 엇갈린 길이 떠올라 괴롭기만 하다. 하지만, 과거의 연을 끊어버린 아미르는 현재에 머물면서 미래를 대신하는 하산의 아들 소랍을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에 너무나도 많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소랍의 미소를 현재의 연을 통해 봄으로써 무언가 일말의 가능성을 보면서 미래를 그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연은 현재의 아미르와 미래의 소랍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열어준다.

어린 시절 연을 직접 만들어 보거나 연싸움을 직접 해 보지 않아 2학년 슬기로운생활 시간의 교육과정에 등장하는 연만들기 지도에서 고전을 겪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연을 날리며 운동장을 달릴 때의 그 상쾌함은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연싸움에서 자신만의 뛰어난 기술로 상대의 연을 끊어버린 경험이 있는 이라면 끊어져 날아올라가는 연과 함께 맺혀 있던 그 무엇들이 저 하늘로 함께 날아올라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으로 시작된 갈등은 연으로 인해 해결이 나고, 연으로 인해 희망의 여운을 남겨 주는 것이다.

6. 나가는 말

뜬금없지만, 나는 작가로 데뷔하게 되는 아미르를 보면서 나의 꿈을 생각 해 보았다. 이 나이에도 꿈이라는 것을 하나 가지게 된 것, 그것만으로도 참 기분좋은 일인 나의 꿈이라는 것은 아이들을 위한 글을 한 편 써 보고 싶다는 거다. 부자간 소통의 문제를 책으로 달래던 아미르, 그의 무수한 책읽기는 창작으로 이어졌다. 엘리너 파전이라는 작가는 <<작은 책방>>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어린시절 ‘작은 책방’이라는 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집의 모든 방이 책방이었지만 작은 책방은 그녀에겐 정말 특별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잘 정돈되어 있지도 않았고 멋지게 꾸며지지도 않았고 다른 방에서 쫓겨난 온갖 책들이 길 잃은 떠돌이 마냥 있었던 공간! 그 속에서 어린 시절 진짜 보물 찾기를 했을 작가의 축복받은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며 한없이 부러웠다. 송승훈 선생님이 언급하셨듯이 외국의 위대한 인물들은 지역의 공공 도서관에서 자신의 인격과 교양을 형성하고, 우리나라의 성공한 이들은 다락방에서 책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책보물을 많이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는 것과 나도 그러한 보물찾기를 함께 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도 무언가를 한 번 끄적거려보고 싶다는 꿈을  가져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연수(독서토론 지도 교사 직무연수)를 신청하였고, 덕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비록 죽은 표현이라고 해도 괜찮다. 나는 이 책에 대한 총평을 ‘참 재미있었고, 참 감동적이다.’라고 적고 싶다. 소설이 남기는 가치는 그것을 읽어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내용이 어딘가에서 본 것도 같고, 통속적이라 할지라도, 혹은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할지라도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혹은 작가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설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이 누리고 있는 인기에 내가 한몫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려 본다. 참 재미있는 소설 덕에 정신적 영양제를 듬뿍 먹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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