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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아버님께 ㅣ 진경문고 1
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 보림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최고의 책이라며 권해주시는 분의 말씀에 책을 받아들자마자 설레임이 함께 했다.
내가 읽겠노라 산 <<책만 보는 바보>>를 나보다 먼저 읽은 남편은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 머리말에서부터 감동받은 책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주고받았던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를 읽고 싶어 검색해 봐도 잘 찾아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작가의 책이 또 있다면 언제든 다시 사 보겠다던 남편은 안소영의 책이라는 말에 나보다도 책을 더 반기는 눈치다. 다 읽은 남편의 책에 대한 이야기로 그날의 저녁식사 시간은 길어졌지만, 좋은 책을 만났다는 기쁨에 들떠 행복한 시간이었다.
억울한 유배생활 중에 나라를 원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만도 했건만, 숭고한 정신으로 승화시켜 위대한 저술활동을 펼친 정약용에 대한 그 큰 감동 못지않게 길고 가혹한 기다림의 세월은 다산의 것만이 아니었다는 표현처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살아감에 대한 막막함, 아버지를 대신하여 져야 할 큰 짐에 그 평생이 힘들었을 학연과 학유형제의 아픔도 절절히 느껴진다.
초기 교회사에서 익은 이름들, 이벽, 황사영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103위 순교성인 중에서도 그 이름이 아주 친숙한 이승훈 베드로, 정하상 바오로, 정정혜 엘리사벳 등과 얽혀 있는 다산의 가족사는 그 당시 고난과 박해로 가세가 기울고, 나라의 역적으로 몰려 매일이 슬픔이었겠지만, 신자인 내게는 참으로 대단한 집안이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목숨까지 아끼지 않은 초대교회 성인성녀들에 대한 큰 감동과 함께 정약용의 집안을 다시 보게 된다.
15년 전 헤어진 동생이 쓴 『주역사전』의 서문을 쓰며 학유의 둘째 아버지, 정약전(그의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쓴 <<물고기 소년 과학자 되다>>가 궁금해진다. 빨리 읽어 봐야 겠다.)은 말한다.
“만약 약용이 부귀하고 영화로워 만족한 삶을 누렸다면 이러한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섬에 유배되어 죽을 날이 머지 않았으나, 약용과 같은 시대에 살고 한 형제가 되었으며 이 책을 읽고서 서문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아무런 유감이 없다. 아! 약용 또한 아무런 유감이 없을 것이다.”
이 말과 아울러 개인적으로나 가족사적으로는 무척이나 불행한 18년이었지만, 우리 역사적으로는 그의 18년 유배 생활이 얼마나 축복된 선물이었을까 하고도 생각해 본다.
아버님의 해배를 위해 백방으로 애쓰던 학연이 한가닥 희망을 걸고 찾아간 외숙부님에게서 그간 아버님의 안부 편지 한 장 없음에 대한 서운함을 전해 듣고 망설임 끝에 정약용에게 편지를 쓴다. 그 때 정약용이 큰 아들 학연에게 쓴 편지가 맘에 크게 남는다.
“학연에게 답한다. 보내 준 편지 자세히 보았다. 내 너에게 일러 줄 말이 있으니,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다. 옳고 그름의 기준과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여기에서 또 네 가지의 등급이 나온다. 가장 높은 것은 옳음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옮음을 지키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쫓아 이익을 얻는 것이고, 가장 낮은 네 번째 등급은 그름을 쫓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너는 나에게, 홍의호에게 편지를 해서 비굴하게 손을 내밀고, 강준흠과 이기경의 마음을 살 수 있도록 애걸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세 번째 등급으로, 그름을 쫓아 이익을 얻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조차 마침내는 아무런 이익이 없이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리해야겠느냐....”
참으로 그 꼿꼿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대목이다.
학문을 깊이 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만을 쫓기에는 짊어지고 나가야 할 짐이 너무나도 많았던 그의 두 아들, 학연과 학유. 기울어가는 가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집에 찾아 와 도움을 달라고 하는 이웃 친지들을 내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의술을 이용하는 학연에 대한 아버지로서, 학자로서의 못마땅함의 표현은 실사구시의 실학자의 모습일까 의아한 맘도 들게 하지만, 그게 바로 시대적 상황이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억울한 누명으로 유배생활을 하는 아버지에 대한 근심스러움이 무척 컸겠지만, 집안을 돌 볼 수 없는 가장에 대한 원망과 현실의 어려움을 생각지 않고 학문을 게을리함에 대한 꾸짖음에 대한 섭섭함, 그리고 그 큰 그릇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속상함이 곳곳에 배어 나오는 학유의 글은 그대로 전달되어 가슴 찡하다.
아는 것이 부족하여 책의 그 큰 뜻을 잘 이해하여 풀어낼 수는 없으나 이 책은 분명 읽는 이를 만족시켜 주리라 생각하며 읽어 후회없을 책임을 이야기 하고 싶다.
*근데, 권장연령이 초등 5, 6학년인데, 과연 아이들이 힘들이지 않고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독서력이 뛰어난 아이들이라면 가능하겠다. 중학생들이라면 큰 감동을 느끼면서 즐거운 글읽기가 가능하겠다. -이건 순전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