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 전통문화 즐기기 1
청동말굽 지음, 박동국 그림, 한영우 감수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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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세운 궁궐이나 임진왜란 때 불타 대원군이 다시 지은 것이 지금 남아 있다. 경복이라는 이름은 왕의 은혜와 어진 정치로 모든 백성이 아무 걱정없이 잘 살아간다는 뜻으로 정도전이 시경에 나와 있는 말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강녕전-왕의 침질, 교태전-왕비의 침실, 자경전-대비가 사는 곳

사정전-사신을 맞고 보내던 곳, 해시계가 있음. 사정전의 동쪽에는 만춘전(왕이 책을 읽거나 신하들과 잔치를 벌이던 곳)이 있고 서쪽에는 천추전(왕이 책을 읽거나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살피던 곳)이 있다.

근정전-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외국에서 온 사신을 맞거나 왕의 즉위식과 혼례식 같은 중요한 궁중 행사를 치르기도 했으며 정식조회가 열리기도 한 곳으로서 왕의 부지런한 자세가 정치의 으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품계석-신하들의 위치를 표시하는 돌. 동쪽에는 문관인 동반이, 서쪽에는 무관인 서반이 서는 곳. 동반+서반=양반

일월오봉산도-근정전에 있는 어좌 뒤의 병풍. 다섯 봉우리의 산(동악-금강산, 서악-묘향산, 남악-지리산, 북악-백두산, 중악-삼각산)과 해(왕)와 달(왕비)이 그려져 있다.

경회루-연못 안에 있는 누각, 나라의 중요한 잔치를 하거나 외국 사신을 맞던 곳이다.

지와 매회틀(매우틀 혹은 매화틀)-왕과 왕비가 용변을 보던 곳, 용변을 보는 그릇 안에 매회(재)를 넣어 소리와 냄새가 나지 않게 하고, 왕이 용변을 보면 시중 드는 사람이 비단으로 뒤를 닦아 주었다 한다.

수라상과 기미상궁-12첩 반상, 왕보다 먼저 수저를 든 기미상궁

이상은 이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여 본 것이다.

왕이 머무는 강녕전과 교태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있을 수 없다고 하여 용마루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왕은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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