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 마음이 멍든 아이들을 위한
이지성 지음 / 성안당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들어간 미니홈피에 반가운 쪽지가 있었습니다. 2년 전 가르쳤던 아이, 지금은 초등학교 최고 학년으로서 그 때 멋진 아이였으니 얼마나 더 멋져졌을까 기대를 하고 들어간 그 아이의 미니홈피에서 저는 전기충격을 한 방 먹었습니다. 모두모두 들어와서 자기 다이어리를 꼭 보라고 되어 있었는데 아이의 다이어리에는 같은 반 여학생에 대해 엄청난 비난의 글이 언어폭력 수준으로 담겨 있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많이많이 퍼가라는 말과 함께! 그걸 보며 함께 낄낄거리는 녀석들과 조금 심하다고 얘기해 주는 친구, 그리고 화제의 주인공이 쓴, 욕으로 도배된 댓글들을 보며 저는 갑자기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그리고 제게까지 쪽지가 간다는 걸 모르고 아마도 전체쪽지를 보냈을 아이에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했습니다. 아이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다이어리항을 감추었더군요.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이 책은 제 마음이 이렇게 착찹할 즈음에 제 손에 쥐어졌습니다. 이 책을 미리 읽었더라면 그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 좀 더 멋지게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남습니다.

사실, 이 책을 만나고서는 솔직히 책을 펼쳐들기가 조금 겁이 났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나를 알고는 있으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못난 나를 질책하는 책이면 어쩌나,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면 어쩌나, 교사로서의 나를 더 자신없게 만들면 어쩌나, 그리고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들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요.

피노키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말썽꾸러기 피노키오, 거짓말을 해서 자꾸자꾸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그런데, 저자는 우리에게 그런 피노키오의 제페토 할아버지가 되라고 합니다. 피노키오 때문에 감옥에서 고생하고 돌아와서도 단벌 외투를 팔아 교과서를 사 주고, 상어 뱃속에서 2년 동안 고생하면서도 피노키오를 만났을 때 꾸짖거나 화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 준 제페토 할아버지의 사랑이 기적이 되어 피노키오를 착한 아이로,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피노키오와 같은 처지에 있었지만, 인간에서 당나귀로 변해 일만하다가 병들어 죽는 ‘호롱불 심지’! 그의 죽음 뒤에는 그에게 포기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수용과 긍정의 말을 해 줄 제페토 할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정말 가슴 깊이 새겨 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겸손하게도 자기에게는 특별한 상담 기법도 없고, 뛰어난 이론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고 하면서 자신이 아이들에게 한 일을 담담히 이야기 해 줍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진심으로 잘 들어주고는 아이들 손을 이끌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컵 떡볶이와 음료수를 하나 사 주기만 했을 뿐이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제자리를 잘 찾아갔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처음 걱정했던 것만큼 그렇게 힘들 것 같지 않습니다.(하지만, 사실은 무척 어려운 일일수도 있습니다. 아이들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해도 많은 것이 해결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는 제게는 적어도 그렇습니다.)

친구를 따돌리던 아이가 전폭적으로 친구의 수호천사가 될 수 있게 해준 이야기와 그릇의 물을 넘치게 하는 것이 한방울한방울 떨어지는 물이라면 아이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아이의 그릇이 남보다 크기 때문이라는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글을 다 읽고 나니 스쳐지나가는 얼굴들이 몇 있습니다. 특별한 도움이 필요했기에 좀 더 애정을 가졌던 친구들도 생각이 났지만, 조금 더 잘 대해 주지 못해 오랫동안 불편하게 가슴에 남아있던 친구들에 대한 미안한 맘이 자꾸 들어 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후회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더 큰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의 긍정적인 힘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됩니다.

아이에게 절대적인 긍정의 말을 해 줄 것과 아이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는 반드시 변한다는 피노키오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매일 우리 반 아이들을 좀 더 따뜻한 맘으로 만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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