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배가 난파되어 제주도에 머무른 일행…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춘향전을 다 알면서도 읽지 않은 것과 같다. 나 역시 하멜에 대한 이름만 들어왔기에, 그의 기록을 더듬어 보기로 했다.낯선 조선 땅에서 13년 20일을 보내면서 그는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이러한 호기심을 가진다는 것은 예상외의 실망을 안게 될 것이다. 부유층이거나 아담 스미스가 유럽을 여행하던 당시처럼 하멜이 유랑을 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은, 익숙한 것에 대한 선입관일뿐이다. 하멜에게는 하루 하루를 어떻게 견디어 그리운 고향으로 갈까하는 생각일 뿐이다. 즉, 지은이가 글을 쓴 목적은 옮긴이가 말하듯이 월급을 타기 위한 수단이다. 아울러 13~15년의 시간이 흐른 지난 다음의 글은 세월의 여과 장치를 거쳐 인상 깊은 것만 남았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이 가능하다. 하멜이 조선에게 느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월급은 받기 위해서 그들의 생활이 조금은 억측이 되었다하더라도,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사또는 그들에게서도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백성을 괴롭히는 사또는 그들에게도 불편한 존재이다. 그가 제주 목사(이원진; 33쪽)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성은 같다는 것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앞서서 말했지만 목적의식에 의한 글쓰기와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 쓰여진 글은 단순한 반복과 무료함일 뿐이다. 하멜이 조선에서 커다란 무엇을 느끼거나 감동을 받았기를 바란다는 기대는 혜성처럼 멀어져갈 뿐이다. 깊이 있는 인상에 대한 단락적 회상에 머무른 작품이다. 지은이의 여유가 못내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으니, 나의 여유로 그를 볼 수 밖에 없다.후담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송두율 교수를 떠올린다. 얼마 전 신문에 7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고 싶어도 고국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변함이 없나 보다. 유치한 감정이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그들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어주길 바란다. 아울러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텍스트에 갇히지 말고, 자유로운 상상을 한다면 나보다 더 큰 감동에 휩쌓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