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 -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아이교육
이상금 지음 / 사계절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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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딱 두 종류의 책 만은 읽기를 거부한다. 아니, 좀 더 시간이 흐른다음에 볼 요량을 가지고 있다. 우선은 시집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힘든 일이다. 소설을 특히 좋아했던 내게 시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였다. 단어의 쓰임이나 이해 등에서, 무엇보다도 소설을 통한 긴박감이 시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었던 것이 우리 사이를 멀게 하지 않았나 생각을 가져봅니다. 소설은 앉은 자리에서 주~욱 읽어내려가지만 시는 머리맡에 놔두고 틈틈히 꺼내어 한 편 씩 읽어가는 것이 나에게는 '다 읽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어린이 특히 유아책입니다.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면, '그림책'입니다. 아기를 무척 좋아하는 나이기에, 아기가 생기는 친구가 있다면 옷 대신에 그림책을 선물하고 합니다. 특히 어느 인터넷 서점의 어린이 책에 대한 어머니의 서평, '우리 아이가 너무 좋아해요!', '아이가 흉내내기 말을 좋아해요~~'라는 말을 보면, 세상을 넓게 보여주는 어머니의 눈과 아이에게 들려주는 사랑에 대해 조급함이 가슴에서 졸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고른다는 것은 나에게 즐겁지만 힘든 일입니다. 소설을 통해 읽기에 대한 이해와 차를 멀리 타야 본전을 뽑는다는 생각이, 책도 글자가 많아야 된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그림책에 대한 선택은 항상 서투르기만 합니다. 더구나 아무리 어린이 책을 읽어 보아도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그런 감저은 내 머리에서는 떠오르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은 예전에 독서치료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는 듯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꾸짖거나 일방적으로 주입하기 보다, 책을 통해 스스로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피터의 의자(26쪽)]나 [병원에 입원한 내 동생(27쪽)] 등등 좋은 그림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들려줍니다.(31쪽~71쪽) 또한 다양하게 상을 받은 작품에 대해서도 책이 거론됩니다. 무엇보다도 저 처럼 책을 고르기가 어려운 사람이나 어린이 책이 없다는 사람에게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몇 몇 아쉬운 장면이 눈에 띄였습니다. 우선은 편집에 대해서 마음에 크게 동(動)하지가 않았습니다. 지은이는 상 받은 외국 작품을 많이 선호하는 듯한데, 전 책을 거의 다 읽기 전 까지 어떻게해서 뽑히며 누가 주관하는지를 몰랐습니다. (187쪽 상의 유래가 나옴, 상을 주관하는 사람은 도서관 사서들임) 두번째로 다른 책에 대한 비하(卑下)가 너무 심합니다. 만화와 그림책(85쪽) 장면에서는 만화책을 너무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시선으로 옳고 그름을 분간하여야 할 텐데 일방적이다시피 정도로 만화는 저질이라고 말을 합니다. 열린 생각으로, 그림책에 대한 관심의 반이라도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세번째로 큰 틀을 생각하지 않고 글을 적어 간 듯합니다. 처음에 읽었던 신선함은 갈수록 사라지고 지은이의 사견(私見) 등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야기도 일화성 애기를 간혹 보이며,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억지논리(근거 없는 주장)를 펴는 듯한 장면이 눈에 띄게 보입니다. 아울러 학자적인 자세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을 가져봅니다. 다양한 실험이나 연구, 책 등을 거론하였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위의 이런 점은 좀 더 보완을 해야 할 듯합니다.

분명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읽혀서 좋은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와 누가 그림책에 대해 상을 주는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Heart Start운동이라든가... 처음 어린이 그림책을 고르는 사람이나, 왜 그림책을 읽혀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면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추신; 지은이의 말을 옮겨 봅니다. '어린이 편에 서서 어린이를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제일 확실하고 제일 좋은 방법으로 그림책 함께 보기를 권한다(19쪽)' 집에 아기 나이 * 달(月)만큼의 어린이 책이 꽃혀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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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날 깨우지 말아줘!
피오나 스타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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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무슨 꿈을 꾸셨나요? 혹시 용이 하늘로 승천하거나 호랑이와 싸워서 이기지는 않았나요? 또는 맑은 냇물에 돈다발이 떠내려 오지는 않았나요?

꿈,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가 깊은 잠에 빠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명확한데 꿈을 꾸고 나서 그 의미를 찾아내기는 다양한 방법이 전해오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인 방법에 의해 해몽을 하고 프로이드는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어 심리적인 측면에서 탐구를 하였습니다. 그의 제자 융은 집단 무의식과 원형, 자아의 완성 등에 의해서 꿈을 해몽한 듯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나타내는 말은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꿈이라는 것은 개인의 삶과 밀첩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꿈을 꾼 사람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 즉 개인이 가장 적합한 해몽을 할 수가 있다'라는 결론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지식이 없이 해몽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이 책 [꿈]은 어떨까 합니다.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언듭 되어있습니다. 우선 꿈이라는 것 부터 시작하여, 열가지 주제를 통하여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해몽, 꿈속에서 나타난 물건 등에 의한 현실적인 의미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누구의 꿈을 보기를 들면서 해몽도 하여 줍니다. 그리고 유명한 사람들의 꿈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오며, 다양한 그림은 옮긴이의 말처럼 본전 생각나지 않게 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점은 프로이드나 융이라는 심리학자만 알고 있었는데, 다양한 연구가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해몽은 좀 더 쉽게 접근하게 하도록 도와 주었으며, 간간히 나오는 심리학 용어는 예전에 읽은 심리학 책을 떠오르게 해 주었습니다.(캘빈 홀이라는 이가 적은 [프로이드/ 융 심리학 입문(범우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지식은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으며 거미줄처럼, 지식과 세계관을 폭넓게 확장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지은이도 분명히 인지를 하고 있지만 뒤로 갈 수록 꿈해몽에 대해 닫힌 생각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지은이의 심리와 생활 습관에 의한 추론적 해몽(우리는 꿈 꾼 사람이 될 수가 없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해몽을 하기에 '추론'이라는 말을 썼습니다)을 하여야 하는데, 심리적인 측면에서 해몽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심리적인 의미를 프로이드는 성적인 것과 모두 연계시켰습니다. 또한 심리적인 의미가 가지는 뜻 만으로 해몽이 이루어지다 보니 다른 사람이 같은 꿈을 꾸어도 그들의 생활 습관이 달라도 해몽이 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은이가 조금더 여유를 지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 책은 꿈이라는 것에 막연한 신비감이나 두려움을 안고 있다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다양한 심리적인 용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민족이 가지는 집단 무의식이나 원형에 대한 특수성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에 절대적인 해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셔야 할 것입니다. 꿈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 오늘 머리맡에 이 책을 놔두고 꿈 꾸시지 않으실렵니까?

여담: 꿈이라는 것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실이나 잠에서나 똑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가 있군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꿈을 꾸어 보세요!! 저, 저야 물론 여자친구가 생기는거~~ 좋은 꿈 많이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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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조사에서 사회 조사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8
이성용 지음 / 책세상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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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라는 것을 볼 때면 항상 궁금한 것이 하나 따라 다닌다. 어느 누가 누구의 의뢰를 받아 조사를 하였으며 표본 오차가 '+- '얼마라는 숫자이다. 이 숫자는 절대로 다섯손가락 안에서 오락가락 하며, 신뢰도도 90% 이상을 나타낸다. 과연 이러한 신뢰도는 어떻게 측정이 가능하며 +-의 근거 기준은 무엇일까하는 것이다. 정말 이들의 말이 옳다면 난 점쟁이를 찾아 가는 대신에 그들에게 가서 물어 볼 것이다. 이런 막연한 궁금증으로 '조사'라는 말만 보고 이 책을 들었습니다.

책을 들여다 보면, 지식 정보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정보와 숫자 놀이가 더욱 중요할 것이라는 전제를 통해, 자기가 한 공부가 헛되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는 글의 글쓰기에 투영되기에, 어느 지식인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지식은 더 이상 앎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행위에 통제력을 행사하기 때문에(26쪽)' 지식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지식이 중요하지 않았거나 앎 자체로 머물렀을까요? 서구 인물 가운데- 루터가 신약성서를 번역하여 교회가 누리든 지식 권력을 폭로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며, 정보의 우위에서 이익을 가진 이들에 대한 고찰이[기업해체와 인터넷 혁명(세종서적)]에 잘 나와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글쓰기가 눈에 간간히 드러납니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은, 지금까지 일반인들은 여론조사라는 것에 의해 정보의 왜곡이나 설득을 당하는 주체로서의 자아를 형성하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회조사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보고 그의 논의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문조사라 하면 선거 여론 조사로만 생각하고(27쪽)', '불행히도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여론 조사와 시장 조사의 이런 특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54쪽)',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설문 조사의 질을 단편적으로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은 몇 권 출판되었지만, 총체적이면서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은 아직 없다(61쪽)'는 결론을 내리고, 이렇게 때문에 '일부 특수 계층만 아니라 일반이도 설문 조사의 주체자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56쪽)' 위와 같은 책 제목을 정했다고 합니다. 그가 보기에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책이 나오지 않았으며, 설문 조사는 선거용이며, 일반인들은 조사 통계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친구들은 이렇게 단순하게 접근하지만은 않습니다. 아울러 그가 이러한 근거를 어디에서 구했는지에 대한 '주'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말을 너무 쉽게 만들어 냅니다. '사회학의 시각에서 볼 때 소비는 사물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의사교환하는 것이다. 다라서 사회학의 시각에서는 '설문 조사의 소비'는 설문 조사가 수반하는 사회적 의미를 의사교환하는 것을 뜻한다(51쪽)' 누구와 의사교환을 한다는 말인지? 그 주체가 누구를 나타내는가? '소비의 사회학에서 사물의 사회적 의미는 소비자가 그것을 소비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특정 생활 양식을 말한다(51쪽)' 그는 현대 사회를 '소비의 사회'로 보고 있다. '소비를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최고의 선택'이라는 정의는 사회학적 의미에서는 혼란을 가중시킨다. 소비자가 그것의(?) 소비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특정 생활 양식? 쉬운 글쓰기를 하겠다는 그의 결심이 내게는 너무 높은 벽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다만 '제3장 설문 조사의 주체적 소비'는 그가 내세우는-일반인들이 설문조사의 주체로서 설 수 있는 대안적 접근이 아니라 현상을 비판하는 점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어려운 대안을 내놓기 보다는 쉬운 비판을 한다는 또다른 비판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즉 이 책은 사회 조사에 대한 개념-사회 조사의 '총오차'의 개념(제2장 설문 조사의 기초 지식)을 처음 듣는 이라면 한 번 펼쳐 보시면 유익할 듯하지만 그의 어려운 글쓰기가 쉽게 다가오지만은 않게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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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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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어느 변호사가 울프에게 ‘당신의 견해로는 우리가 전쟁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9쪽)’라고 묻자, 울프는 자신과 그 사이에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갈 수 없다는 전제를 한다. 그 “의사 소통의 어려움”을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는 스페인 정부가 일주일에 두번씩 보내는 사진들을’ 보면서, 시험하자고 한다.

1938년, 버지니아 울프가 [3기니]를 풀판하고 난 뒤, 70여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명확하다. ‘당면의 문제가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면,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된다(23쪽)’ 하지만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자연스레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희생자들이 찍힌 사진을 보면서 내안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 타인의 고통으로 느낀다. 1994년 사라예보의 비참한 도시의 사진을 찍은 작가가 그의 다른 작품 소말리아의 사진과 같이 전시했을 때, ‘자신들이 겪는 고틍을 타인들의 고통과 나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사라예보가 겪은 수난을 그저[잔악 행위의] 또 다른 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양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어느 지옥이 더욱 나쁜가?)이었다. 사라예보 주민들은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반발했다(166쪽)’는 모습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간에는 고통을 쉬이 치료하기 위한 자기방어(168쪽)로서의 심리와 ‘대형 사점(또는 공항이나 박물관)을 공공 영역의 주된 모델로 삼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우연하게라도 진지해질 수 있도록 남아 있는 여지를 갖기가 힘들(173쪽)’기 때문이기도 하다.(~175쪽)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해지면서 진지한 사색은 부족하게 만들며, 즉흥적인 사고를 유도하면서, 쉬이 잊혀지게 한다. 대중들이 주목하는 것을 대중매체가 주목하는 것이 아닌, 주객이 뒤바뀐 형태, 대중매체가 주목하는 것을 대중들이 주목하게 되며(155쪽), 우리의 감각이 무감각해져 가는 사회현실에 놓여 있다.(156쪽) 하지만 이 보다 더 한 문제는 사진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방관자 입장을 취하도록 무의식 중에 자리잡는 것이다. 즉 앞서서 말한,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으로 인식하고 t.v의 방송이 지루해지면 쉬이 채널을 돌리 듯이, 다른 사진이나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몇 몇 양심적인 사진 작가들의 작품이 존재한다는 것에 희망을 담을 수가 있다. 우크라이나의 영화감독 라리사 세피트코의 [고양]이나 하라 가즈오가 찍은 일본의 가장 놀랄 만한 다큐멘터리 [가자 가자, 신군](179쪽), 1992년 제프 월이 “죽은 군대는 말한다”라는제목으로 찍은 거대한 사진(180쪽)은 우리를 사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사진은 무엇을 담을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지…

지금까지는 [타인의 고통]을 내가 읽은 방식입니다. 지은이는 차례를 통해 내용을 함축적으로 나타내지 않습니다. 단순히 숫자만 넣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다양한 시선이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내용을 꼼꼼히 정리하다 보면, 사진과 전쟁의 관계라든가, 사진의 왜곡, 상업성에 나란히 놓인 사진, 미국의 쓰러진 병사 얼굴이 나타나지 않은 시점부터 그런 이유-미국에 미침략사 박물관이나 인디언 침략 박물관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왜 아시아와 아프리카등의 어려운 나라들을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체 정면으로 찍은 사진을 찍어 내 보내는지., 왜 우리는 사진을 통해 전쟁을 억제할 수 없는지…

다양한 시선을 담아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지은이는 은유적인 문체로 글쓰기를 하여, 읽는 나로 하여금 두 눈을 반짝 뜨게 했습니다.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다가는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행위를 반복하게끔 하였습니다. 쉬이 읽혀지지만은 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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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시선 <타인의 고통>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8-07 03:58 
    타인의 고통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시울)전반적인 리뷰2007년 8월 5일 읽은 책이다. 이 책의 리뷰를 적으면서 처음 안 사실이 지금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책의 표지와 지금의 표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뭐 이 책의 발간일이 2004년 1월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책 표지 자체도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그림이었기에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와 약간은 상충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에스키모 왕자 - 詩說: 시적인 이야기
윤대녕 지음, 하정민 그림 / 열림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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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너무 아파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긴잠을 자고 나서인지, 전날보다 머리는 맑았으며 난 무엇을 읽을까 고민을 하다가... 조금은 읽혀지기 쉬운 책을 들었다. 에스키모의 왕자, 과연 그는 어떤 존재일까?

우리는 어릴 적에-아직 철부지 시절, 가슴 가득 꿈을 꾸거나 대학 시절 첫 사랑에 불타오를 때 까지 스스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내 안의 에스키모 왕자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서히 성장해가는 것이다. 우리가 꿈 꾼 대로 나아가거나 사랑이 이루어지면 에스키모 왕자는 나와 동일시되며, 내 가슴속에 산다. 하지만 꿈과 사랑을 접고, 시간에 쫓기여 산다면 서서히 죽어간다. 주인공에게, 7, 8살 때 에스키모의 왕자가 찾아오고, 스무살 사랑이 싹틀 때에. 한 여인의 죽음으로 긴 잠을 자든 왕자는 내가 5년 동안 시계회사를 잠시 휴직한 뒤에야 비로소 숨을 몰아쉬며 나타난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살을 하고 나서는 일상에 더욱 부대꼈으며, 그러면 그럴수록 에스키모 왕자는 숨을 쉬기가 곤란하게 된 것이다. 즉 에스키모 왕자는 '꿈' 속 주인공이며, 사랑을 불태우는 열정의 사나이다. 그런 그에게서 사랑을 빼앗고, 꿈을 접게 하였으니...

난 윤대녕이라는 지은이를 처음 접했지만 그가 쓴 글은 낯설지가 않았다. 시간의 소중함을 언뜻 이야기하는 내용은 어릴적에 해적판(?)으로 읽은 '모모'라는 작품이 떠올랐으며, 바쁜 일상에 묻혀서 자기 자신을 망각한다는 비판적인 느낌은 인문사회서적을 읽으면서 내가 쫓는 문제이자 대안을 이끌어 내기 위한 행동에서 계속 고뇌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여자에게서 지령을 받아 이곳 저곳을 여행하는 소설 속 주인공은 어느 영화에서 본 듯 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시처럼 깊고 산뜻한 그림소설'이라는 출판사의 문구는 책을 읽기 전에는 강한 호기심이였으며, 읽고 난 다음에는 짚은 상업성 냄새만 난다. 어쩌면 내가 너무 황금만능주의의 일상에 찌들었기 때문이리라...

위의 모든 생각이 일방적인 착각이며, 시의 문체에 대한 무지에 의한 것이더라도, 다음은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서하원이라는 이를 만나서, 그의 권고대로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비일상적이다. 물론 이 책은 '시적인 언어'로 쓰여지고 표현된 글이기에 여기에 대해서 가타부타하지 못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서하원이라는 상징성, 인격체가 가지는 의미가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 어머니로서 상징되지 않고, 연인으로 머물러 있다. 여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내지 우월감에 의한 글쓰기가 아닌가 한다. 그가 자연이나 어머니로서의 은유로 다가와 '지친 일상에 자아를 찾는 여행'을 하게끔 했을 때, 더 깊이가 녹아날 것이다. 단순히 여인으로 머물런 서하원에 대한 애정은 여행을 갔다와서 다시 그와 여행을 가는 설정으로 마무리를 짓는다.(지은이의 눈높이가 연인간의 사랑이기에 그가 이끌어 내는 결론은 자연스럽기는 하다) 서하원을 어머니의 은유로 표현되었을 경우, 주인공인 나의 불완전성도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며, 성찰의 계기로 삼기에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서하원에 대한 성찰이 너무 엷게 드리워진 것이 아쉽다.

즉 지은이의 문명 비판에 대한 시적인 글쓰기는 너무 유치하며, 내용상의 설정 또한 연인간의 사랑이야기로 마무리 지어, 깊은 은유를 담아내지 못한다.

추신: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이뉴잇(인간)이라 부른답니다. 에스키모의 왕자 -> 이뉴잇 왕자. 지은이의 이러한 제목은 이미지의 연출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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