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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ㅣ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런던의 어느 변호사가 울프에게 ‘당신의 견해로는 우리가 전쟁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9쪽)’라고 묻자, 울프는 자신과 그 사이에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갈 수 없다는 전제를 한다. 그 “의사 소통의 어려움”을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는 스페인 정부가 일주일에 두번씩 보내는 사진들을’ 보면서, 시험하자고 한다.
1938년, 버지니아 울프가 [3기니]를 풀판하고 난 뒤, 70여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명확하다. ‘당면의 문제가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면,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된다(23쪽)’ 하지만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자연스레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희생자들이 찍힌 사진을 보면서 내안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 타인의 고통으로 느낀다. 1994년 사라예보의 비참한 도시의 사진을 찍은 작가가 그의 다른 작품 소말리아의 사진과 같이 전시했을 때, ‘자신들이 겪는 고틍을 타인들의 고통과 나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사라예보가 겪은 수난을 그저[잔악 행위의] 또 다른 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양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어느 지옥이 더욱 나쁜가?)이었다. 사라예보 주민들은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반발했다(166쪽)’는 모습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간에는 고통을 쉬이 치료하기 위한 자기방어(168쪽)로서의 심리와 ‘대형 사점(또는 공항이나 박물관)을 공공 영역의 주된 모델로 삼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우연하게라도 진지해질 수 있도록 남아 있는 여지를 갖기가 힘들(173쪽)’기 때문이기도 하다.(~175쪽)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해지면서 진지한 사색은 부족하게 만들며, 즉흥적인 사고를 유도하면서, 쉬이 잊혀지게 한다. 대중들이 주목하는 것을 대중매체가 주목하는 것이 아닌, 주객이 뒤바뀐 형태, 대중매체가 주목하는 것을 대중들이 주목하게 되며(155쪽), 우리의 감각이 무감각해져 가는 사회현실에 놓여 있다.(156쪽) 하지만 이 보다 더 한 문제는 사진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방관자 입장을 취하도록 무의식 중에 자리잡는 것이다. 즉 앞서서 말한,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으로 인식하고 t.v의 방송이 지루해지면 쉬이 채널을 돌리 듯이, 다른 사진이나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몇 몇 양심적인 사진 작가들의 작품이 존재한다는 것에 희망을 담을 수가 있다. 우크라이나의 영화감독 라리사 세피트코의 [고양]이나 하라 가즈오가 찍은 일본의 가장 놀랄 만한 다큐멘터리 [가자 가자, 신군](179쪽), 1992년 제프 월이 “죽은 군대는 말한다”라는제목으로 찍은 거대한 사진(180쪽)은 우리를 사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사진은 무엇을 담을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지…
지금까지는 [타인의 고통]을 내가 읽은 방식입니다. 지은이는 차례를 통해 내용을 함축적으로 나타내지 않습니다. 단순히 숫자만 넣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다양한 시선이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내용을 꼼꼼히 정리하다 보면, 사진과 전쟁의 관계라든가, 사진의 왜곡, 상업성에 나란히 놓인 사진, 미국의 쓰러진 병사 얼굴이 나타나지 않은 시점부터 그런 이유-미국에 미침략사 박물관이나 인디언 침략 박물관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왜 아시아와 아프리카등의 어려운 나라들을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체 정면으로 찍은 사진을 찍어 내 보내는지., 왜 우리는 사진을 통해 전쟁을 억제할 수 없는지…
다양한 시선을 담아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지은이는 은유적인 문체로 글쓰기를 하여, 읽는 나로 하여금 두 눈을 반짝 뜨게 했습니다.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다가는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행위를 반복하게끔 하였습니다. 쉬이 읽혀지지만은 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