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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 왕자 - 詩說: 시적인 이야기
윤대녕 지음, 하정민 그림 / 열림원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지난밤에 너무 아파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긴잠을 자고 나서인지, 전날보다 머리는 맑았으며 난 무엇을 읽을까 고민을 하다가... 조금은 읽혀지기 쉬운 책을 들었다. 에스키모의 왕자, 과연 그는 어떤 존재일까?
우리는 어릴 적에-아직 철부지 시절, 가슴 가득 꿈을 꾸거나 대학 시절 첫 사랑에 불타오를 때 까지 스스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내 안의 에스키모 왕자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서히 성장해가는 것이다. 우리가 꿈 꾼 대로 나아가거나 사랑이 이루어지면 에스키모 왕자는 나와 동일시되며, 내 가슴속에 산다. 하지만 꿈과 사랑을 접고, 시간에 쫓기여 산다면 서서히 죽어간다. 주인공에게, 7, 8살 때 에스키모의 왕자가 찾아오고, 스무살 사랑이 싹틀 때에. 한 여인의 죽음으로 긴 잠을 자든 왕자는 내가 5년 동안 시계회사를 잠시 휴직한 뒤에야 비로소 숨을 몰아쉬며 나타난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살을 하고 나서는 일상에 더욱 부대꼈으며, 그러면 그럴수록 에스키모 왕자는 숨을 쉬기가 곤란하게 된 것이다. 즉 에스키모 왕자는 '꿈' 속 주인공이며, 사랑을 불태우는 열정의 사나이다. 그런 그에게서 사랑을 빼앗고, 꿈을 접게 하였으니...
난 윤대녕이라는 지은이를 처음 접했지만 그가 쓴 글은 낯설지가 않았다. 시간의 소중함을 언뜻 이야기하는 내용은 어릴적에 해적판(?)으로 읽은 '모모'라는 작품이 떠올랐으며, 바쁜 일상에 묻혀서 자기 자신을 망각한다는 비판적인 느낌은 인문사회서적을 읽으면서 내가 쫓는 문제이자 대안을 이끌어 내기 위한 행동에서 계속 고뇌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여자에게서 지령을 받아 이곳 저곳을 여행하는 소설 속 주인공은 어느 영화에서 본 듯 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시처럼 깊고 산뜻한 그림소설'이라는 출판사의 문구는 책을 읽기 전에는 강한 호기심이였으며, 읽고 난 다음에는 짚은 상업성 냄새만 난다. 어쩌면 내가 너무 황금만능주의의 일상에 찌들었기 때문이리라...
위의 모든 생각이 일방적인 착각이며, 시의 문체에 대한 무지에 의한 것이더라도, 다음은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서하원이라는 이를 만나서, 그의 권고대로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비일상적이다. 물론 이 책은 '시적인 언어'로 쓰여지고 표현된 글이기에 여기에 대해서 가타부타하지 못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서하원이라는 상징성, 인격체가 가지는 의미가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 어머니로서 상징되지 않고, 연인으로 머물러 있다. 여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내지 우월감에 의한 글쓰기가 아닌가 한다. 그가 자연이나 어머니로서의 은유로 다가와 '지친 일상에 자아를 찾는 여행'을 하게끔 했을 때, 더 깊이가 녹아날 것이다. 단순히 여인으로 머물런 서하원에 대한 애정은 여행을 갔다와서 다시 그와 여행을 가는 설정으로 마무리를 짓는다.(지은이의 눈높이가 연인간의 사랑이기에 그가 이끌어 내는 결론은 자연스럽기는 하다) 서하원을 어머니의 은유로 표현되었을 경우, 주인공인 나의 불완전성도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며, 성찰의 계기로 삼기에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서하원에 대한 성찰이 너무 엷게 드리워진 것이 아쉽다.
즉 지은이의 문명 비판에 대한 시적인 글쓰기는 너무 유치하며, 내용상의 설정 또한 연인간의 사랑이야기로 마무리 지어, 깊은 은유를 담아내지 못한다.
추신: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이뉴잇(인간)이라 부른답니다. 에스키모의 왕자 -> 이뉴잇 왕자. 지은이의 이러한 제목은 이미지의 연출이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