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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의사의 부당의료에 속고있다 - 어느 의사의 고백
로버트 S. 멘델존 지음, 김세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고도 불린다. 의사들이 행하는 단순한 진료는 금전적인 관계외에 사람을 "진실로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복합된 것이라는 믿음에 의해서, 나는 적어도 의술은 인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 오래전에 티비에서 본 장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 이야기는 아이를 자연분만 혹은 수중분만을 다룬 듯 한 이야기인데, 누군가가 제주도에 내려가 할머니에게 옛날에는 아이를 어떻게 낳았는지 여쭈어 보는 장면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집에서, 의자에 앉아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아울러 그렇게 배 아파서 낳지도 않았다며, 지금처럼 낳아라고 한다면 너무 힘들다(?)고 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게는 의문이 가시지가 않았습니다. "배 아파서 낳지도 않았으며, 의자에 앉아서...?"
지금은 현대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하나같이 꿈을 꿉니다. 백살을 사는 날이 얼마있지 않아 열릴 것이며, 사람들은 무지와 질병에서 해방될 것이라며... 하지만 지은이가 보기에는 이러한 날은 요원(遙遠)해 보입니다. 의사들은 부작용에 대해, 얼마만큼의 치료 가능한지에 대해,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의료 처치에 대한 신뢰와 새로 출시된 모든 신약을 테스트해보고자 하는 열의, 두번째는 약에 대한 지독한 무지, 세번째에는 투약을 처방하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동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환자가 가진 증상의 심리적인 원인을 찾거나 환자가 필요로 하는 동정적이고 인정 많은 상담을 할 만한 시간과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129쪽). 즉 그들은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열의로 인하여, 병든 사람을 낳게 하는 것이 아닌 실험 도구로 더불어 신약을 테스트 해보고자 하는 열의 또한 앞서서의 자기 일에 대한 실험과 도험 정신으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기현상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투약을 인하여 경제적인 이득은 제약회사와의 암묵적인 밀거래가 이루지면서 한편으로 몸이 아파 찾아온 환자를 영구히 자기 아래 두어 계속적인 금전적인 이득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지은이가 보기에 산부인과에 특히 심한 듯합니다. 한 명이라도 더 자기 아래 두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는 찾아가는 의술에서 앉아서, 권위로 대치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대의학에 대한 맹신과 정보의 불평등으로 인하여 의사를 선생님으로 모시며, 진정으로 자기의 병을 고쳐줄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14쪽에 메리라는 가장적인 인물을 통해, 한 번 병원에 찾게된 여성 환자가 어떻게 구속되는가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물론 이 장면은 극단적인 연출이기도 합니다) 메리는 최근에 결혼한 여성이며 건강상태는 양호합니다. 그는 임신을 하여 산부인과에 찾아가는 순간에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낯설기만 한 산부인과적 기술을 줄줄히 사용하여 임신을 가능하면 어렵고, 위험하며, 괴로운 경험으로 만들고 난 연후에야 의사가-엄마가 아니다-아기를 낳게"됩니다.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로! 아기는 신생아실에 만연한 수많은 감염 위험에 놓이게 되며, 친자식 여부를 나중에 판결지어야 하는 아픔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메리와 아기는 소아과 의사를 방문하게 되면 의사는 모유 대신에 식이 요법과 위험한 예방 접종을 권합니다. 의사는 별 의미도 없는 수많은 테이터를 수치로 환산하여 아기에 줄을 세우듯이, 여기에서 벗어나면 큰 탈이라도 날 듯이 겁을 줍니다. 메리는 세포진 검사(자궁 경부의 세포를 채취하여 자궁경부암을 진단하는 검사)를 받게 되며, 그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궁적출술(히스테렉토미)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수술하는 동안 의사는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나팔관과 난소를 같이 적출할 것인지 결정하고, 성기능 장애로 정신과 의사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의사는 "페경기가 앞당경짐으로써 어떤 불편함이 생기는지 아예 언급하지도 않는다." 이렇듯이 메리는 의사의 말만 믿고 병원에 다녔는데, 병을 몸에 안고 살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이러한 행위가 의사들이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에 의한 "계획적인 치료"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상당히 극단적인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러한 선상에 모든 행위가, 정보 불평등에 의해서 비롯되며 의사들은 이로인해 상당한 상술(商術)을 행하며, 금전적인 부와 물질적인 풍요, 마음놓고 이성의 몸을 훔쳐보는 행위를 한다는 점입니다. 가장 문제점은 그들이 그러한 행위가 습관에 의해 길들여진 다음이기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으며, 아이에게 행하는 진료조차 부끄러움이 없다는 점입니다.
앞부분에서 의사와 약사와의 검은 거래, x-레이로 인한 방사능 등에 대한 이야기를, 중간 부분에서는 여성의 몸에 대해, 나머지는 임신을 하고 나서 병원에 찾는 순간부터 아기와 산모에게 행해지는 의사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의사들이 이러한 행위를 한다 내 말을 무조건 듣어라!"라고 말한다면, 그도 다른 의사처럼 윤리적인 문제는 나중에 치더라도 신뢰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내어놓는 대안-'의사들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진짜 답을 달라고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149쪽)'는 부분 등이 책의 군데군데 보입니다. 현대의학이 가지는 위험성과 환자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들을 너무나도 자세히 들려주고 있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일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은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아울러 20여년 전에 출간된 미국 도서라는 점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렀기에 현재의 의사들은 예전같지 않다.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변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와 비슷한 혹은 하나라도 닮은꼴이 있다면 하는 걱정이 머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의사들의 자발적인 정보공개를 통해 환자들과의 거리를 좁혀야 할 것입니다. 의사들이 우선적으로 정보공개를 통해 환자와 신뢰관계를 형성한 다음에, 책에서 말한 내용이 과거지사(過去之事)이며 극단적이라면 잘 설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환자와 일반인들은 정보공개에 대한 요구를 높이며, 서로간의 정보 공유를 통해서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을 우리나라 의학계에 던지는 화두(話頭)로 삼고 싶습니다.
앞서서의 의문입니다.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으면 왜 아버지는 들어갈 수 없는지, 아울러 산부인과 이외(以外)에는 아기를 낳을 수가 없는걸까요? 또한 계속적으로 아기를 낳는 행위가 가족의 축복이 아니라 불안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에 대한 물음입니다.
'진정한 전환점은 산모가 자연스러운 자궁의 수축과 중력을 이용해 아기를 낳도록 도와주던 분만 의자가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의사들은 산모가 높은 테이블 위에 등을 평평하게 대고 무릎을 세우고 눕는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산모들은 사실상 자기 힘으로 아기를 낳기가 힘들어졌고, 의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236쪽)' 계속적인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가? 아니면 의사들의 상술에 불과한 진료행위인가? 이 부분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생명의 축복을 돈으로 계산하는 의사라면 다른 어떠한 부분도 돈으로 계산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