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의사의 부당의료에 속고있다 - 어느 의사의 고백
로버트 S. 멘델존 지음, 김세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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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고도 불린다. 의사들이 행하는 단순한 진료는 금전적인 관계외에 사람을 "진실로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복합된 것이라는 믿음에 의해서, 나는 적어도 의술은 인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 오래전에 티비에서 본 장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 이야기는 아이를 자연분만 혹은 수중분만을 다룬 듯 한 이야기인데, 누군가가 제주도에 내려가 할머니에게 옛날에는 아이를 어떻게 낳았는지 여쭈어 보는 장면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집에서, 의자에 앉아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아울러 그렇게 배 아파서 낳지도 않았다며, 지금처럼 낳아라고 한다면 너무 힘들다(?)고 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게는 의문이 가시지가 않았습니다. "배 아파서 낳지도 않았으며,  의자에 앉아서...?"

지금은 현대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하나같이 꿈을 꿉니다. 백살을 사는 날이 얼마있지 않아 열릴 것이며, 사람들은 무지와 질병에서 해방될 것이라며... 하지만 지은이가 보기에는 이러한 날은 요원(遙遠)해 보입니다. 의사들은 부작용에 대해, 얼마만큼의 치료 가능한지에 대해,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의료 처치에 대한 신뢰와 새로 출시된 모든 신약을 테스트해보고자 하는 열의, 두번째는 약에 대한 지독한 무지, 세번째에는 투약을 처방하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동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환자가 가진 증상의 심리적인 원인을 찾거나 환자가 필요로 하는 동정적이고 인정 많은 상담을 할 만한 시간과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129쪽). 즉 그들은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열의로 인하여, 병든 사람을 낳게 하는 것이 아닌 실험 도구로 더불어 신약을 테스트 해보고자 하는 열의 또한 앞서서의 자기 일에 대한 실험과 도험 정신으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기현상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투약을 인하여 경제적인 이득은 제약회사와의 암묵적인 밀거래가 이루지면서 한편으로 몸이 아파 찾아온 환자를 영구히 자기 아래 두어 계속적인 금전적인 이득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지은이가 보기에 산부인과에 특히 심한 듯합니다. 한 명이라도 더 자기 아래 두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는 찾아가는 의술에서 앉아서, 권위로 대치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대의학에 대한 맹신과 정보의 불평등으로 인하여 의사를 선생님으로 모시며, 진정으로 자기의 병을 고쳐줄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14쪽에 메리라는 가장적인 인물을 통해, 한 번 병원에 찾게된 여성 환자가 어떻게 구속되는가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물론 이 장면은 극단적인 연출이기도 합니다) 메리는 최근에 결혼한 여성이며 건강상태는 양호합니다. 그는 임신을 하여 산부인과에 찾아가는 순간에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낯설기만 한 산부인과적 기술을 줄줄히 사용하여 임신을 가능하면 어렵고, 위험하며, 괴로운 경험으로 만들고 난 연후에야 의사가-엄마가 아니다-아기를 낳게"됩니다.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로! 아기는 신생아실에 만연한 수많은 감염 위험에 놓이게 되며, 친자식 여부를 나중에 판결지어야 하는 아픔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메리와 아기는 소아과 의사를 방문하게 되면 의사는 모유 대신에 식이 요법과 위험한 예방 접종을 권합니다. 의사는 별 의미도 없는 수많은 테이터를 수치로 환산하여 아기에 줄을 세우듯이, 여기에서 벗어나면 큰 탈이라도 날 듯이 겁을 줍니다. 메리는 세포진 검사(자궁 경부의 세포를 채취하여 자궁경부암을 진단하는 검사)를 받게 되며, 그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궁적출술(히스테렉토미)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수술하는 동안 의사는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나팔관과 난소를 같이 적출할 것인지 결정하고, 성기능 장애로 정신과 의사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의사는 "페경기가 앞당경짐으로써 어떤 불편함이 생기는지 아예 언급하지도 않는다." 이렇듯이 메리는 의사의 말만 믿고 병원에 다녔는데, 병을 몸에 안고 살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이러한 행위가 의사들이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에 의한 "계획적인 치료"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상당히 극단적인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러한 선상에 모든 행위가, 정보 불평등에 의해서 비롯되며 의사들은 이로인해 상당한 상술(商術)을 행하며, 금전적인 부와 물질적인 풍요, 마음놓고 이성의 몸을 훔쳐보는 행위를 한다는 점입니다. 가장 문제점은 그들이 그러한 행위가 습관에 의해 길들여진 다음이기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으며, 아이에게 행하는 진료조차 부끄러움이 없다는 점입니다.

앞부분에서 의사와 약사와의 검은 거래, x-레이로 인한 방사능 등에 대한 이야기를, 중간 부분에서는 여성의 몸에 대해, 나머지는 임신을 하고 나서 병원에 찾는 순간부터 아기와 산모에게 행해지는 의사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의사들이 이러한 행위를 한다 내 말을 무조건 듣어라!"라고 말한다면, 그도 다른 의사처럼 윤리적인 문제는 나중에 치더라도 신뢰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내어놓는 대안-'의사들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진짜 답을 달라고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149쪽)'는 부분 등이 책의 군데군데 보입니다. 현대의학이 가지는 위험성과 환자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들을 너무나도 자세히 들려주고 있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일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은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아울러 20여년 전에 출간된 미국 도서라는 점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렀기에 현재의 의사들은 예전같지 않다.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변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와 비슷한 혹은 하나라도 닮은꼴이 있다면 하는 걱정이 머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의사들의 자발적인 정보공개를 통해 환자들과의 거리를 좁혀야 할 것입니다. 의사들이 우선적으로 정보공개를 통해 환자와 신뢰관계를 형성한 다음에, 책에서 말한 내용이 과거지사(過去之事)이며 극단적이라면 잘 설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환자와 일반인들은 정보공개에 대한 요구를 높이며, 서로간의 정보 공유를 통해서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을 우리나라 의학계에 던지는 화두(話頭)로 삼고 싶습니다.

앞서서의 의문입니다.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으면 왜 아버지는 들어갈 수 없는지, 아울러 산부인과 이외(以外)에는 아기를 낳을 수가 없는걸까요? 또한 계속적으로 아기를 낳는 행위가 가족의 축복이 아니라 불안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에 대한 물음입니다.

'진정한 전환점은 산모가 자연스러운 자궁의 수축과 중력을 이용해 아기를 낳도록 도와주던 분만 의자가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의사들은 산모가 높은 테이블 위에 등을 평평하게 대고 무릎을 세우고 눕는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산모들은 사실상 자기 힘으로 아기를 낳기가 힘들어졌고, 의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236쪽)' 계속적인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가? 아니면 의사들의 상술에 불과한 진료행위인가? 이 부분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생명의 축복을 돈으로 계산하는 의사라면 다른 어떠한 부분도 돈으로 계산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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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M과 짜장면 배달 - 개정판
박성수 지음 / 시대의창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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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적인 깊이를 어떻게 극복하며 깊지만 쉽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라는 고민에 의해 비롯된 듯한 글쓰기는, 책을 읽는 내내 쉬이 다가옵니다.

지은이는 CRM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나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이란 '고객전략을 정의하고(Strategy), 경영자원의 분배를 최적화하며(Administration), 고객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Service), 지속적이고 자동화된 프로세스(Automation)/(27쪽)'이라 합니다. 지은이는 CRM을 쉽게 들기 위해 도표나 용팔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이야기 해 줍니다. CRM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저나 혹은 조금은 귀동냥을 하신 분에게는 좋은 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차례가 너무나도 잘 되어 있어, 차례를 보고 이 책을 정리하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하지만 성급하게 차례만 보고 정리를 하게 된다면 지은이가 들려주는 일화나 이야기는 놓치기 쉬울 것입니다.

이 책을 110%활용하는 방법은 아마도, 책을 전체적으로 읽고 나서 차례를 다시 보면서 정리하는 것이라 생각을 가져봅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책의 내용이 너무 평이하다 보니 깊이가 없다는 점을 들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CRM을 회사나 일상에서 적용하고 계시는 분에게는 조금 싱급지 않을까합니다.

CRM, 물질의 풍요에 의해 나타난 전략이라 생각지 말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생각을 가져봅니다. 지은이의 말처럼 여자친구를 꼬시기 위해, 학점을 잘 받기 위해 CRM을 구사하면 어떨까합니다. 저에게는 쉽지만 남다른 깊이로 다가온 CRM입문서였습니다.

추신:crmpark.com이라고 개인 사이트를 운영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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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2
이태하 지음 / 책세상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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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표현하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자기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조금더 설득력 있게 하는 표현이다. 즉, 글쓰기->설득력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설득력 있는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쉬워야 할 것입니다. 글이 어렵다는 것은 아무리 자기의 주장이 뛰어나다고 대중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지은이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시작(14쪽)'했다고 합니다. 이런 선을 긋는다는 점을 왈가불가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

'요컨대 형이상학의 위험은 그것이 실제로는 어떠한 지식도 제시하고 있지 않으면서 지식이라는 환상을 주는 기만적 성격에 있으며 바로 그것이 형이상학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종교적 명제 역시 형이상학적 명제와 같이 어떤 사태를 기술하는 서술적 기능을 지닌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적 기능을 지닌 것이라고 본다(33쪽)'

위와 같은 표현은 책을 읽는 처음부터 나와서 제 머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우선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투의 글쓰기입니다. 형이상학의 거부 이유를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는 점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에 의한 뒷받침, 근거는 어디에 없습니다. 이런 점은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한 글쓰기일 뿐입니다. 두번째로 글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는 형이상학을 거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형이상학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즉 그의 머리 속에서 거부하는 것을 일반화시켜 책을 읽는 이들에게 주입(세뇌)시키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책을 읽으면서 형이상학에 대한 실체도 모른체, 형이상학은 허장성세로 씌여진 볼 품없는 것이니, 거부해도 된다는 내용으로 머리에 정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번째로는 문장을 길게 쓴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하 부분은 이렇게도 줄 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적 명제는 형이상학과는 달리,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적 기능을 지닌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라고 고쳐도 무방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특히 오늘날처럼 다양한 세계관이 범란하는 가운데 신아의 정체성과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 있는 평신도나 그들을 영적으로 올바로 인도하고 양육해야 하는 성직다들에게 종교철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히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24쪽)'는 점은 과합니다. 나는 어느 독단이나 독선에 치우친 강압보다는 다양성에 입각한 세계관에 의해 자유로운 사고를 하며, 자유롭게 주위사람들과 의사교환을 하며, 좁은 세계관적 가치관을 넓혀 갈 것입니다. 아울러 기독교의 논의를 이야기하면서 종교철학이라고 말하는 지은이는 자기의 색깔을 명확히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내재된 권위의식과 독단독선을 거름종이 거스런 다음에 글쓰기를 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추신: 제가 이 책을 평한 부분은 지은이의 사상적 사고보다는 그의 사고관적 글쓰기입니다. 앞서서 말했듯이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논리적인 설득입니다. 흑이면 흑, 백이면 백이라는 자기의 색깔을 나타내고 좀 더 쉽게 글쓰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1/3을 읽고 접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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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생태여행
현진오 외 지음 / 따님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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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시절에 항상 곁에 있어준 것은 뒷뫼입니다. 그리고 앞뫼. 전형적인 시골농촌이다보니 교과서에 나오는 배산임수형의 지형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 뒤, 높은 뫼는 뒷뫼가 되고, 앞에 바라다 보이는 뫼는 앞뫼라 불려지는 것입니다. 겨울이면 깔비(갈비)라는 것을 하러 올라가고, 봄이 오면 참꽃(진달래, 아래 지방에서는 참꽃을 진달래라고도 부릅니다)을 꺽거나 따먹으로 올라갑니다. 뫼 중턱에 파란 솜 같은 것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면 봄이 와연하다는 것도 알게되죠. 어쩌면 특별한 놀이기구가 없기에 자연이 가장 편안한 기구이자 벗이 되어 준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얼마만큼 뫼를 사랑했는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누군가가 이름 없는 꽃은 없다고 해죠. 우리가 그 꽃의 이름을 지어주고도 모를 뿐이지. 올해도 어김없이 참꽃이 피겠죠. 하지만 뫼에는 참꽃만 피는 것이 아닌 수많은 식.동물들이 한울타리에서 지내는데... 전 참꽃의 이름만 기억하며, 나머지는 산에 그냥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설악산이라는, 내 고향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어느 뫼도 수많은 식.동물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 이름이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정말 생소한 이름들의 꽃들이 나오며 많은 사진들이 알맞은 자리를 차지 하고 있습니다.

설악산, 생태기행 . 단순히 정상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고함을 부르는 것이 아닌, 뫼 속에 사는 다른 이들을 만나보며 그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책. 물론 여기에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특히 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지은이는 '설악산 생물권보전지역을 찾아오는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탐방객들이 설악산 생태계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고 책을 펴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설악산을 찾는 학생, 가족, 일반 관광객들이 기존의 등산로를 따라가면서 주변의 생태계에 대한 흥미롭고 유익한 관찰을 하는 것을 돕는 안내서'입니다. 지은이는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뫼가 몸살을 앓고 있기에, 지정된 등산로를 이용할 것을 부탁하지만 그곳에서도 설악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이 책을 구성하였습니다. 아울러 많은 사진들은 어떠한 설명에 대해 쉽게 기억되도록 해 줍니다. 다양한 꽃과 설명 등은 이 작은 책을 이렇게 알차게 만들 수도 있구나라며 절로 감탄사를 나아내게 합니다. 또한 사진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은 그림으로 표현한 점(64쪽)이나 물벼룩 등이 움직이는 모양을 돋보기로 그린 점(53쪽)은 정말 신선했습니다. 새로운 장이 시작 될 때 마다 이렇게 해 보자라는 점과 설악산에서 관찰한 생물을 표시해 보세요라며 사계절별로 분류한 것(101~121쪽)은 지은이들의 수고를 엿볼 수가 있으며, 또한 책을 읽은 다음에 가방에 담아 직접 표시할 수 있도록 알맞게 제본이 된 상태입니다.

정말 내가 뫼를 좋아하고 사랑한다하면서 '무엇을 사랑했나'라고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또한 자연보호니 환경보호니 하면서 어떠한 실천적 행위를 강요는 덜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있는 그대로(自然) 곁에 두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아울러 이 책이 설악산에만 머무르지 말고 우리가 숨쉬는 혹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모든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저 또한 이 책을 통해, 비록 설악산에는 가보지 않(못)하더라도 우리집 뒷뫼에 대해 더 애정을 가질 것이며 나름대로 애쓸 것입니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플 정도로 아름다운 책입니다.

자연보호에 대해 거창한 구호 대신에 따스한 관찰을 통해 더 큰 것을 일깨우 주는 책이 아닐까합니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작은 책은 설악산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챙겨가야지 하는 욕심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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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사금파리 - 손때 묻은 동화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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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이렇게 살았는데, 지금은 얼마나 먹을 것이 풍부하며 기계가 발달이 되어 여유를 즐기느냐? 너희들은 지금은 안락함과 평온함을 십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불만만 하는구나라고 다그친들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궁핍하지만 넉넉했고 옷에 때가 누덕누덕 붙었지만 가슴가득 뫼 보다 큰, 정(情)을 키워가며, 그 시절을 그려봄으로써 나를 시나브로 빨아들이는 글이라면 나는 내 옷깃을 여미며, 스스로를 돌아볼 것입니다.

즉 세상을 보담는 눈은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 처럼 서열을 메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추구하는 점은 같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은 인간 삶에 대한 성찰-우리가 같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글쓰기에 이러한 지향점이 빠져 있다면 그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물론 웃음이 어떤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하여 필요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글에 대해서만은 개인적으로 가혹하게시리만큼 높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의미없는 단어들의 조합에 불과합니다. 세상에 대한 근심걱정이 겹쳐져 앞날의 불안을 나타내기 위해 역동적인 글쓰기를 하든, 지난날의 우리 모습을 통해 옷깃을 여미는 자세를 갈구하든, 앞서서 말한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위한 글쓰기여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가 말하는 손때 묻은 동화, 조금은 허구스럽다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책은 다섯가지의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옛날의 사금파리]입니다. 이 내용은 남편을 일찍 여인 어머니가, 어린 딸을 궁핍한 시골에서 흙때묻히며 키우기 보다는, 산꼭대기 집이지만 서울에서 키우려는 욕심에서 벌어진 일화를 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서울이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과 놀기를 꺼려 하고 신식 옷을 입은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마음은 소학교에 입학에 까지 이어지며, 이는 가히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보는 듯합니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이러한 극성스러움을 달갑게 반길리가 만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인지, 이야기가 끝나야 하는데 갑작스레 어머니의 이야기가 뚸어나다합니다.('뛰어난 이야기꾼')스토리 전개상 너무 갑작스레 나온 이 장면에 잠시 당혹감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억지 교훈이나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글쓰기는 다음 이야기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내용은 지은이의 그저 옛날 일일 뿐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놀라운 일]이라는 이야기에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젊은 부부가 임신을 하고 난 뒤, 세상을 보는 눈이 시나브로 옮겨 가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두 부부의 확장적 사고는 참으로 놀랍지만 할머니의 시선은 어딘가 폭력(?)적입니다. 할머니가 아이에게 줄 것은 이야기 선물-사물을 만날 때에는 겉모습을 보지 말고 속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 사물의 비밀을 보는 시선이 폭력적이죠. 밤의 비밀은 가시같은 밤송이 속에 숨겨진 달콤하고 고소하고 오돌오돌한 밤알의 맛이며, 딱딱하고 무섭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모진 발톱으로 사람들에게 덤비는 게의 비밀은 제일 처음으로 맛있는 게살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는 지난 가난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이라 하더라도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글쓰기의 표현으로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내 아이에게 '게'를 보여주며, '저봐! 딱딱하고 무섭게 생겼지? 그리고 저 모진 발톱으로 사람을 물어, 하지만 네가 먼저 저것을 잡아 먹으면 돼. 왜냐면 게살이 맜었거든'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봐! 게는 저렇게 생겼단다. 저 집게 발은 우리들의 손과 같은 일을 한단다. 사람이 먼저 헤치지 않는한 게와 우리는 같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단다'라고...

일흔을 넘기신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말씀으로는 너무 잔인하며, 노련한 작가의 글쓰기에는스토리 전개가 너무 엉성하며 삶에 대한 깊이도 없습니다. 그리고 책의 장정과 그림도 눈에 거슬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그림은 책상에 앉아서 그린 듯하고 책 장정은 책값을 더 받기 위한 상술로 밖에 보이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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