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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2
이태하 지음 / 책세상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쓴다는 것은 표현하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자기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조금더 설득력 있게 하는 표현이다. 즉, 글쓰기->설득력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설득력 있는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쉬워야 할 것입니다. 글이 어렵다는 것은 아무리 자기의 주장이 뛰어나다고 대중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지은이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시작(14쪽)'했다고 합니다. 이런 선을 긋는다는 점을 왈가불가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
'요컨대 형이상학의 위험은 그것이 실제로는 어떠한 지식도 제시하고 있지 않으면서 지식이라는 환상을 주는 기만적 성격에 있으며 바로 그것이 형이상학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종교적 명제 역시 형이상학적 명제와 같이 어떤 사태를 기술하는 서술적 기능을 지닌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적 기능을 지닌 것이라고 본다(33쪽)'
위와 같은 표현은 책을 읽는 처음부터 나와서 제 머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우선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투의 글쓰기입니다. 형이상학의 거부 이유를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는 점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에 의한 뒷받침, 근거는 어디에 없습니다. 이런 점은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한 글쓰기일 뿐입니다. 두번째로 글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는 형이상학을 거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형이상학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즉 그의 머리 속에서 거부하는 것을 일반화시켜 책을 읽는 이들에게 주입(세뇌)시키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책을 읽으면서 형이상학에 대한 실체도 모른체, 형이상학은 허장성세로 씌여진 볼 품없는 것이니, 거부해도 된다는 내용으로 머리에 정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번째로는 문장을 길게 쓴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하 부분은 이렇게도 줄 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적 명제는 형이상학과는 달리,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적 기능을 지닌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라고 고쳐도 무방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특히 오늘날처럼 다양한 세계관이 범란하는 가운데 신아의 정체성과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 있는 평신도나 그들을 영적으로 올바로 인도하고 양육해야 하는 성직다들에게 종교철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히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24쪽)'는 점은 과합니다. 나는 어느 독단이나 독선에 치우친 강압보다는 다양성에 입각한 세계관에 의해 자유로운 사고를 하며, 자유롭게 주위사람들과 의사교환을 하며, 좁은 세계관적 가치관을 넓혀 갈 것입니다. 아울러 기독교의 논의를 이야기하면서 종교철학이라고 말하는 지은이는 자기의 색깔을 명확히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내재된 권위의식과 독단독선을 거름종이 거스런 다음에 글쓰기를 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추신: 제가 이 책을 평한 부분은 지은이의 사상적 사고보다는 그의 사고관적 글쓰기입니다. 앞서서 말했듯이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논리적인 설득입니다. 흑이면 흑, 백이면 백이라는 자기의 색깔을 나타내고 좀 더 쉽게 글쓰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1/3을 읽고 접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