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사금파리 - 손때 묻은 동화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옛날에 내가 이렇게 살았는데, 지금은 얼마나 먹을 것이 풍부하며 기계가 발달이 되어 여유를 즐기느냐? 너희들은 지금은 안락함과 평온함을 십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불만만 하는구나라고 다그친들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궁핍하지만 넉넉했고 옷에 때가 누덕누덕 붙었지만 가슴가득 뫼 보다 큰, 정(情)을 키워가며, 그 시절을 그려봄으로써 나를 시나브로 빨아들이는 글이라면 나는 내 옷깃을 여미며, 스스로를 돌아볼 것입니다.

즉 세상을 보담는 눈은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 처럼 서열을 메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추구하는 점은 같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은 인간 삶에 대한 성찰-우리가 같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글쓰기에 이러한 지향점이 빠져 있다면 그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물론 웃음이 어떤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하여 필요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글에 대해서만은 개인적으로 가혹하게시리만큼 높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의미없는 단어들의 조합에 불과합니다. 세상에 대한 근심걱정이 겹쳐져 앞날의 불안을 나타내기 위해 역동적인 글쓰기를 하든, 지난날의 우리 모습을 통해 옷깃을 여미는 자세를 갈구하든, 앞서서 말한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위한 글쓰기여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가 말하는 손때 묻은 동화, 조금은 허구스럽다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책은 다섯가지의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옛날의 사금파리]입니다. 이 내용은 남편을 일찍 여인 어머니가, 어린 딸을 궁핍한 시골에서 흙때묻히며 키우기 보다는, 산꼭대기 집이지만 서울에서 키우려는 욕심에서 벌어진 일화를 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서울이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과 놀기를 꺼려 하고 신식 옷을 입은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마음은 소학교에 입학에 까지 이어지며, 이는 가히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보는 듯합니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이러한 극성스러움을 달갑게 반길리가 만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인지, 이야기가 끝나야 하는데 갑작스레 어머니의 이야기가 뚸어나다합니다.('뛰어난 이야기꾼')스토리 전개상 너무 갑작스레 나온 이 장면에 잠시 당혹감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억지 교훈이나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글쓰기는 다음 이야기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내용은 지은이의 그저 옛날 일일 뿐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놀라운 일]이라는 이야기에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젊은 부부가 임신을 하고 난 뒤, 세상을 보는 눈이 시나브로 옮겨 가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두 부부의 확장적 사고는 참으로 놀랍지만 할머니의 시선은 어딘가 폭력(?)적입니다. 할머니가 아이에게 줄 것은 이야기 선물-사물을 만날 때에는 겉모습을 보지 말고 속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 사물의 비밀을 보는 시선이 폭력적이죠. 밤의 비밀은 가시같은 밤송이 속에 숨겨진 달콤하고 고소하고 오돌오돌한 밤알의 맛이며, 딱딱하고 무섭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모진 발톱으로 사람들에게 덤비는 게의 비밀은 제일 처음으로 맛있는 게살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는 지난 가난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이라 하더라도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글쓰기의 표현으로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내 아이에게 '게'를 보여주며, '저봐! 딱딱하고 무섭게 생겼지? 그리고 저 모진 발톱으로 사람을 물어, 하지만 네가 먼저 저것을 잡아 먹으면 돼. 왜냐면 게살이 맜었거든'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봐! 게는 저렇게 생겼단다. 저 집게 발은 우리들의 손과 같은 일을 한단다. 사람이 먼저 헤치지 않는한 게와 우리는 같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단다'라고...

일흔을 넘기신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말씀으로는 너무 잔인하며, 노련한 작가의 글쓰기에는스토리 전개가 너무 엉성하며 삶에 대한 깊이도 없습니다. 그리고 책의 장정과 그림도 눈에 거슬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그림은 책상에 앉아서 그린 듯하고 책 장정은 책값을 더 받기 위한 상술로 밖에 보이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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