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 부역한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1942~1944년 1,590명의 유태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고도 전후 자신이 레지스탕스였다는 경력을 내세우며 파리 경찰국장을 역임하는 등 권세를 누리다가 1981년 전력이 폭로돼 1997년 재판에 회부,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2차세계대전 중 나치에 부역한 비시정부 아래에서 보르도 지방 치안 책임자를 지내면서 유대인 1500명의 추방을 명령하는 서류에 서명하는 등 대규모 유대인 추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종전 후에도 파리 경찰국장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고 역대 정권의 비호를 받기도 했다. 드골 정권 하에서 파리경찰국장, 지스카르데스탱 정권 때 예산장관까지 지냈다.
83년 희생자 유족의 고발로 기소됐다. 그러나 그를 재판정에 세우기까지는 14년이 걸렸다.
그는 체포된 뒤 나치협력 혐의에 대해 자신도 레지스탕스였으며, 당시 공직에 남아있는 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그가 유대인을 강제수용소에 보내도록 명령한 문서에 서명한 사실이 민간단체의 추적으로 밝혀졌다.
97년에서야 재판에 회부됐고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그는 99년 10월 항소심 하루 전에 스위스로 도주했다가 붙잡혀 와 10년형이 확정됐다. 파퐁은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항소했으나 항소심 당시 스위스로 도주,재판에 궐석했다는 이유로 항소 권리를 부인당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이와관련해 프랑스 법원이 그에게 항소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인권침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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