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중드를 보기 시작했다. <성한찬란>


캡쳐 이미지에 보이는 두 주인공은 인기 있는 배우들이고 많은 작품에 출연하므로 어느새 나도 익숙하다.

배경은 당연히 CG인듯하지만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던 장면이라 나도 모르게 핸드폰으로 보고 있다 캡쳐를 했다^^;

둘은 연인 관계도 아니고 현재는 남주가 여주를 짝사랑중이다. 다만 여주는 다른 남자와 약혼하기로 되어 있는 상황.

남주는 이때 죽을지도 모르는 전장에 나가게 되었다. 스토리는 참 뻔한데 두 배우의 안타까운 듯한 표정과 연기가 좋아서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당연하듯 이 둘이 커플이 될텐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총 56부작인데 이제 20부 정도 본지라 다 보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초반에 캐릭터가 너무 붕붕 뜨나 싶어 주저했는데 가면 갈수록 볼만하다.




2.


어느덧 단풍철이다. 

사실 아주 화려한 빨강, 노랑보다는 물들기 시작하여 다층적 색감을 자랑할 때가 나는 좋다^^

요즘이 딱 그래서 산책할 때마다 황홀하다.

실물은 훨씬 예쁜데 사진에 다 담기질 않아서 아쉽지만 어쨌든 요즘은 걸어다니며 구경하는 맛이 참 좋다.

이 시기를 충분히 누리고 즐겨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조금 더 지나면 추워서 돌아다니기 어려운 계절이 되니~^^




3.


어제 저녁 뜬금없이 옆지기가 라이언 술잔 세트를 들이밀었다.

역시 산 건 아니고 어디서 얻었다는데 과연~?

요새 카카오가 말이 많아서 떨이로 파는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술잔은 실용적이라 버릴 일은 없을 것 같다^^




4.


맥북 프로를 사려고 몇 년째 고민을 하고 있다가 겨우 결심이 섰지만 환율이 너무 올라서 포기해야할 것 같다.

400에 살 수 있는 것이 이제 500은 주어야 살 수 있게 되버렸으니.

결심이 너무 늦었다.



5. 


샬롯 브론테의 책으로 몇 년전 <제인에어>는 읽었다.

그래서 주문한 <빌레뜨>를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마음에 든다. 

나는 이렇게 주관을 가지고 나아가는 인물을 좋아하는데 내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서다. 


돌벽이 있다고 감옥이 되는 건 아니고

철창이 있다고 새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네. (리처드 러블레이스의 시 「감옥에서 앨시아에게」(To Althea, from Prison)


몸이 건강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 특히 자유의 날개를 빌릴 수 있고 희망의 별빛의 인도를 받는 한, 위험과 외로움과 불안한 미래는 우리를 짓누르는 악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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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0-21 13: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단풍이 들었네요 오매 ^^
빌레트 표지는 아무리 봐도 근사합니다
라이언 술잔 귀여워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10-21 13:49   좋아요 4 | URL
네. 남쪽은 11월초쯤 단풍이 절정이라고 하더군요^^ 위쪽 동네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ㅎㅎ
빌레트 표지 덕분에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네요~^^
라이언 캐릭터는 저도 좋아해서 집에 이것저것 있는데 술잔은 처음이라 좋습니다. 아마도 자주 홀짝이지 않을까 싶어요~ㅋㅋㅋ

mini74 2022-10-21 14: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중드. ㅎㅎ 랑야방 좋아했던 ~ 최근엔 중국웹소설 조카 추천으로 봤는데 재미있었어요. 폐후의 귀환? 여장성 ~ 라이언 귀엽습니다. 남편은 코스트코에서 맥북에어 싸게 판다고 문자를 ㅎㅎ 모른척 했습니다 ~ 단풍 좋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10-21 14:08   좋아요 3 | URL
오 미니님 랑야방 보셨다니^^ 전 아직 못봤는데 이 작품이 스토리가 아주 탄탄하다고 칭찬이 자자하길래 보려고 합니다ㅎㅎㅎ
ㅋㅋㅋㅋ 남편분맘 제맘이네요^^; 옆지기는 맥북프로 비싸져서 어쩌냐며 신나하는듯한 반응ㅠㅠ
단풍 예쁘죠^^

건수하 2022-10-21 1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제 주변에 중드 좋아하시는 분 한 분 있는데... 거리의화가님도 보시는군요.

라이언 도꾸리 세트 넘 예쁜데요? :)

거리의화가 2022-10-21 14:19   좋아요 2 | URL
오 중드를 보시는 분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제 주변은 하나도 없습니다ㅋㅋㅋ
중드 보다가 중국어 들리면 좋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새 작품 나오면 찾아보고 있어요 물론 현대물은 잘 안보고 고전물만 좋아해요^^*
라이언 귀엽죠^^ 제가 이 캐릭을 좋아하니 가져온 것 같아요^^

건수하 2022-10-21 15:17   좋아요 3 | URL
제 주변에도 많진 않습니다 ㅎㅎ 서재활동도 하시는 분 한 분 계시고 한 분이 더 계신데 그 분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 무협채널에서 보시더란…

거리의화가 2022-10-21 17:03   좋아요 1 | URL
앗 서재활동 하시는 분 중에 계신다구요? 누구신지 제가 잘...ㅠㅠ 아마도 친구로 등록안되어있을수도 있을듯합니다. 무협채널이라면 많지는 않아서 중화TV, AsiaN 등등 그쪽일 것 같고요ㅋㅋ

건수하 2022-10-21 17:19   좋아요 1 | URL
여성주의책같이읽기는 안하시고..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시진 않아서 모르실 수 있어요 :) 그래도 저를 서재로 이끌어준 감사한 분이에요.

바람돌이 2022-10-21 16: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악 라이언이닷. 심지어 술잔이닷! 에코 탐나라. 왜 울 남편은 저런걸 안가져오는것인가? ㅎㅎ
제가 발사믹소스를 직구로 사서 먹는데 오늘 들어가보니 가격이 다 많이 올라있더라구요. 왜 이렇지 하고 고민했는데 환율 오른 생각을 못햇었군요. 화가님 맥북 얘기 들으니 알겠네요. ㅠ.ㅠ 지난번 주문할 때 싸다고 막 좋아하지만 말고 좀 많이 사놓을걸....ㅠ.ㅠ

거리의화가 2022-10-21 17:05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남편분께 이 글을 전달해드려야하는데~ㅎㅎㅎ 술잔 귀엽네요. 청하나 백세주 이런거 먹을 때 좋을듯합니다ㅋㅋ
아... 직구 가격 어마무시합니다. 비타민 등도 다 올라서 이제 국내것만 먹어야할것 같아요ㅜㅜ

단발머리 2022-10-21 17: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풍이 예쁘네요. 가을이 저 모르게 ㅋㅋㅋㅋㅋ 살금살금 왔다갔나요. 저 혼자 겨울이라 저는 춥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빌레뜨> 너무 예뻐요. 저도 책이 있거든요. 진짜.... 실물이 더 예쁜 ㅋㅋㅋㅋㅋ 아름다운 빌레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10-21 17:07   좋아요 3 | URL
그쵸. 요 며칠 날이 춥더니 단풍이 그새 올라왔습니다. 저도 추위는 많이 타서 나갈 때 목도리 칭칭 매고 다녀요. 남편이 오버한다고 하지만 안 추운게 장땡입니다^^;
단발머리님도 빌레뜨 사놓으셨군요^^ 이 달안에 일단 빌레뜨는 읽을 수 있겠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아무래도 읽기 힘들 것 같아요ㅠㅠ 다미여 읽을땐 그것만 읽는 것도 힘들듯해서~ㅎㅎ 암튼 이뻐서 더 만족스러운 빌레뜨입니다! 내용도 재미나네요~ㅋㅋ

서곡 2022-10-21 1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드화면과 단풍이 너무나 잘 어우러집니다 북플 말고 서재로 들어오니 신비로운 스킨도 함께요 킬포는 귀여운 라이언 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10-21 17:27   좋아요 2 | URL
네. pc로 들어오면 스킨 보는 재미도 있더라구요~^^;
가을 느낌의 배경이라 더 몰입이 된 것도 있는 듯합니다~ㅎㅎㅎ
다들 라이언을 좋아해주시네요!ㅋㅋ

scott 2022-10-21 1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드 기본이 오십 부작이여서 멀티 플레이어 인 저도 보다가 어느 순간에 이탈을 ㅎㅎ
술병도 깜찍한걸 안고 오시는
옆지기
가을 단풍 보다 멋져요 ^^

거리의화가 2022-10-21 17:47   좋아요 2 | URL
ㅎㅎㅎ 요즘엔 중드도 웹드나 숏드가 올라오는데 영 제 취향이 아니더라구요 이야기를 강제로 자르니 뭔가 엉성한ㅋㅋㅋ 무협이 특히 긴 것 같아요^^; ㅎㅎ 옆지기에게 칭찬 마니해줘야겠어요*^^*

희선 2022-10-22 0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영상도 가을 같네요 바닥에 가랑잎 떨어진 걸 보니... 저런 곳 실제 걸으면 참 좋겠습니다 지금이 걷기에 좋고 단풍도 예쁘죠 시월이 지나고 십일월이 오면 좀 쓸쓸한 느낌입니다 아직 시월 한주 남았습니다 술잔 예쁘네요 거리의화가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10-23 08:19   좋아요 2 | URL
저렇게 낙엽이 가득 쌓인 길을 걸어본지 오래되었습니다. 아파트라 쌓이기 전에 다 치워버려서ㅎㅎㅎ
지금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걷기 딱인 듯싶습니다~ 어제도 도서관 왔다갔다하면서 만걸음 넘게 걸었어요ㅋㅋ
희선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Caesar

Today, when someone has to make an important decision, people "You‘re about to cross the Rubicon." Crossing the Rubiconmeans that you‘re about to do something that you can‘t undo. We getthis expression from the story of Julius Caesar‘s return to Rome. - P267

So they gathered together an army and marched downtowards Egypt, ready to attack Caesar. Caesar hadn‘t forgot-ten how to fight, though. He got his own soldiers together anddefeated the Senate army in record time.
Caesar was known for his fast victories. In fact, after one vic-tory, when a friend asked him to describe the battle, he answered,
"I can do it in three words: Veni, Vidi, Vici." In Latin, the languageof the Romans, this meant, "I came, I saw, I conquered!"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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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라고 했지만 그것은적절한 말도 그녀를 제대로 묘사해주는 말도 아니다. 커다란 인형에게도 꼭 맞을 흰 레이스 속옷과 상복 드레스를 입은 얌전한 꼬마의 모습을 떠올리는 데 아이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리는 이제 작은 탁자 옆에 있는 높은 의자에 앉아서, 희게 칠한 목제 장난감 반짇고리를 그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감침질을 한답시고손수건을 한장 들고 있었다. 그녀는 참을성 있게 계속 바느질을 했는데, 그녀가 들고 있으니 꼭 꼬챙이 같은 바늘에 가끔 찔려서 흰케임브릭 천 손수건에 작고 빨간 피가 점점이 찍혔다. 그 심술궂은무기가 말을 듣지 않고 평소보다 더 깊이 찌를 때면 그녀는 움찔하면서도 여전히 조용하고 부지런히 바느질을 했고, 그 모습은 열성적이고 여자다웠다. - P24

"자, 우리 아가, 이리 와서 차 마셔야지. 뭘 좀 먹어야지."
그레이엄이 간식을 먹는 동안 그의 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너무나 희극적이었다. 그가 없을 때는 조용하던 아이는 그가 오기만 하면 안달하는 꼬마 참견꾼으로 변했다. 나는 종종 그 아이가 차분히 자기 일이나 챙겼으면 했지만 결코 그러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그레이엄 안에서 자신을 잊었다. 아무리 시중을들고 아무리 정성껏 보살펴도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그를터키 황제 이상으로 떠받들었다. 그녀는 온갖 접시들을 하나씩 그의 앞에 가져다놓았고, 그가 먹고 싶어할 만한 음식들이 모두 손닿는 곳에 있는데도 무언가 다른 것을 찾곤 했다. - P37

"쉬운 일은 아닐 거야."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내게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거의 갇혀 있다시피 지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최근의 네 생활에 비하면 견딜만할지도 모르지."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그만하면 견딜 만해 보이는 게 마땅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어쩌면 견딜 수 없을지도 몰랐다. 여기 이 방에 갇혀 살면서 남은 청춘을 다 바쳐 남의 고통을 지켜보고 때로는 신경질도 받아주어야하다니! 아무리 좋게 말해도 이미 사라진 추억들도 그다지 행복한건 아닌데! 한순간 가슴이 무너져내렸지만 곧 괜찮아졌다. 불운을현실로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었지만, 나는 원래 상황을 이상화하기엔너무 무미건조한 성격이라 불운을 과장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 P55

런던으로 떠나면서 나는 독자들의 예상만큼 모험심에 차 있거나 대단한 계획이 있진 않았다. 사실 50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런던까지 가고 거기 며칠 머물다가 더 머물러야 할 이유를찾지 못하면 돌아올 돈이 충분히 있었다. 그 여행은 목숨을 건 모험이라기보다는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한 한번의 짧은 휴가였다.
어떤 일을 하든 별로 대단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하면 몸과 마음이 안정을 찾을 수 있지만, 거창한 계획은몸과 마음을 열에 들뜨게 하는 법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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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 - 코펜하겐 삼부작 제3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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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내가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을 전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내가 온 세상을 통틀어 쳐다보고 있는 거라곤 나 자신인 것처럼요." - P88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홀로서기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대부분은 독립을 하면서이지만 큰 상실을 경험할 때도 그렇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찾아와도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토베는 그런 사람이였나. 그의 작품은 갈수록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의 마음은 불안에 흔들리고 끊임없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방황이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토베는 비고가 자신보다 배 이상 나이가 많은 남자인데 자신의 나이는 한창이라는 걸 결혼을 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비고가 출근하고 나면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든다. 매일이 똑같이 느껴지고 지루하게 느껴질 뿐 결혼 이전 자신의 존재가 아득하게 멀리 있다.
결혼 생활이 불만족스러운 토베는 그제서야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과 두 살 밖에 차이 안나는 사위를 보고서 어머니도 난감했을 것 같다. 결혼 생활을 하고 나서야 어린 시절이 행복한 것이었나를 떠올리는 토베가 안쓰러웠다.

"가끔씩 당신은 아주 아득해져서 닿을 수 없게 느껴져요. 당신은 너무 매력적이고, 난 당신과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이어서 그는 묻는다. "내가 편지를 써도 될까요? 우편물이 그 사람이 집을 나가고 난 다음에 배달되나요? " 다음날 나는 피에트에게서 러브레터 한통을 받는다. '내 소중한 아기 고양이에게. 당신은 내가 결혼하고 싶다는 상상을 해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여자예요.' 불안해진 나는 비고 F.에게 전화를 건다. "무슨 일이에요?" 나는 약간 퉁명스러운 그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모르겠어요. 그냥 좀 많이 외로워서요." "알았어요. 오늘밤에는 집에 있을게요. 됐죠?" - P30~31

비고에게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온 토베는 피에트라는 남자를 만났다.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으나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그는 순간 비고를 떠올린다. 불현듯 떠오르는 불안과 공포, 자신을 붙잡아 달라고 외치는 듯한 토베의 말이 귓가에 울려퍼진다. 그는 사람을 만나도 사랑을 해도 외롭다고 느낄 뿐이다.

"얼마 전에 어떤 젊은 여자를 만났는데, 굉장히 예쁘고 굉장히 돈이 많은 사람이에요. 우리는 곧바로 사랑에 빠졌는데, 이제 그 사람이 윌란으로 나를 초대했어요. 맨션으로요. 그 사람 가족이 소유한 집이래요. 내일 떠날 거예요. 그래도 당신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라요."
현기증이 난다. 내 집세는, 내 미래는 어떡하라고?
"눈물 금지." 피에트가 단호하게 두 손을 펴 들며 말한다. "제발, 윗입술에 힘 딱 주고 버텨요. 우리 관계에는 어떤 의무도 없었어요. 그렇죠?" - P50

피에트는 이런 말을 던지고 토베를 떠난다.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아... 세상에는 역시 미친 놈들이 많아 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었던 토베는 무너지고 만다. 저렇게 의무 운운하며 떠나버리면 그만인가 죄책감이란 없고 욕망대로 살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에베는 명확한 답이 없는 질문들을 사랑한다. 예를 들자면 그는 흑인들의 피부가 왜 검은지, 유대인들의 코는 왜 매부리코인지 같은 질문에 관한 자신만의 가설을 세워 놓았다. 한 번은 그가 한쪽 팔로 머리를 괸 채 옆으로 누워서는, 매우 도덕적인 고뇌를 담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 적이 있다. "나 지하 저항 조직에 합류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엄숙하게 말했다. "프랑스가 함락된 뒤로 상황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요." 그때 나는 그런 일은 신경 써야 할 아내와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이제 그는 그 생각은 잊어버리기로 한 것 같다. - P71~72

피에트와 헤어지고 난 뒤 토베는 에베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를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아직 비고와 이혼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토베는 비고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에베는 질문을 사랑하고 외부 세계에만 관심이 많은 듯한데 토베는 피에트와는 다른 그가 좋았던 걸까.

독주가 시작되기 전에 조용히 울리는 드럼 롤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나는 임신과 어머니 되기, 그리고 아기 돌보기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왜 에베는 이 모든 것에 나만큼 관심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어 한다. 그는 자기가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거의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는 신문에 실린 내 이름을 볼 때도 믿을 수 없어 한다. 그는 자기가 유명한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가 그 점을 좋아하는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 - P76

"아주 토실토실하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기분이 상해 투덜거린다. "할 말이 그게 다예요? 스물네 시간이나 걸려서 낳으면서, 난 아이는 다시는 안 낳겠다고 맹세했는데, 난 아파서 소리를 치고 비명을 질렀는데, 당신이 할 말이라곤 애가 토실토실하다는 것밖에 없어요?" 에베는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짓지만, 아이가 자라면 아마 더 예뻐질 거라고 말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그러더니 내게 언제 집에 오느냐고, 보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요람 위로 몸을 굽히고 조그만 손가락들을 만지며 말한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고, 어머니고, 아이고, 그렇네요. 정상적인 보통 가족이 됐어요." 그러자 에베가 묻는다. "왜 정상적인 보통 사람이 되고 싶어해요?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데." - P80~81

하지만 에베는 토베를 이해하려는 생각이 없다. 임신은 혼자 한 게 아닌데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고독하고 외로웠을 토베의 절박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지금 이 순간 남자들은 내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이질적인 생명체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몸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종양처럼 달라붙은 점액 덩어리가 몸 주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가기 시작할 수도 있는 말랑하고 부드러운 장기 같은 건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 P113

또 다시 임신을 해버린 토베는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맨다. 이미 딸이 하나 있는 자신이 또 아이를 갖게 된다면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지장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베는 그냥 낳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하면 그만은 아니지 않나. 책임 의식이라고는 없는 그들에게 화가 난다.

"나 임신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아요." "알겠어요." 그는 그에게서 유일하게 호감 가는 부분인 진중한 회색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이야기한다.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내일 저녁에 오면 내가 소파술을 해 줄게요." 마치 그 일이 평소 일과라도 되는 둥 말하는 그는 세상 어떤 일에도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부류의 사람 같다. 안심한 나는 미소를 짓는다. "마취도 해 주실 수 있나요?" "내가 주사를 놓을 텐데, 그럼 당신은 아무것도 못 느낄 거예요." 그가 말한다. "주사요? 무슨 주사죠?" "모르핀 아니면 데메롤이에요." 그가 말한다. "데메롤이 제일 좋죠. 모르핀은 토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 P144~145

나는 임신을 하면 늘 잠자는 데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나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카를은 턱을 문지르며 그 말에 대해 생각했다.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그가 말했다. "내가 클로랄 수화물을 좀 줄게요. 좋은 진정제고 부작용도 거의 없거든요. 맛은 좀 끔찍하지만, 그냥 우유에 타서 마시면 돼요." - P173

"통증이 계속되면 수술을 해줄 다른 의사를 찾아보면 돼요." 아마도 의사와의 대화가 그에게 정말로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우리가 집에 도착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메타돈이라는 알약 처방전을 써 줄게요. 강력한 진통제인데, 그게 있으면 내가 집에 있으나 없으나 크게 상관없을 거예요." 그는 내 타자 용지를 한 장 꺼내 처방전을 쓴 다음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오렸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았다. - P175

내가 에베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할 때마다 카를은 주사기를 꺼냈고 그 특유의 거칠고 무신경한 방식으로 나와 관계를 가졌다. "난 수동적인 여자가 좋아요." - P181~182

토베는 위험한 남자 카를을 만나 점점 약물에 빠진다. 그는 토베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 전공 말고는 관심도 없는 남자다. 게다가 알고 보니 카를은 정신병자였다. 토베가 이 남자에게서 탈출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친다.

진열장 속의 수은제 용기와 온갖 결정들을 담은 비커에서 부드러운 빛이 퍼져 나왔다. 나는 계속 거기 서 있었고, 그동안 내 안에서는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작은 흰색 알약들에 대한 갈망이 시커먼 액체처럼 솟아올랐다. 그렇게 나는 섬뜩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 갈망은 나무줄기 속의 부패병처럼, 혹은 모체가 아무런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아도 자기 혼자 자라나는 태아처럼 내 안에 있었다. - P226

토베는 약물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병원에서 한동안 지낸다. 하지만 병원에서 빠져 나와도 수시로 찾아오는 약물의 충동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그런 그에게 빅토르가 찾아온다.

그의 전체적인 자태는 살짝 흐트러진 듯하면서도 어딘가 악마적인 생명력을 발산하면서 나를 완전히 매혹시켰다. (...) 나는 헬레에게 잠깐만 동생들을 봐 달라고 하고는 빅토르를 내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의자에 앉은 내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 나는 행복과 공포가 뒤섞인 감정으로 가득 찼다. (...) 빅토르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발목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가 말했다. "당신이 쓴 시들을 사랑해요. 오랫동안 당신을 만나 보고 싶었어요." 나는 그의 얼굴을 들어 올려 내 얼굴을 향하게 하고는 말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얘기들은 다 거짓말이라고 항상 생각했어요. 지금까지는요." 나는 그의 머리를 내 두 손으로 감싸고 그 아름다운 입술에 키스했다. - P238~239

"한 200년쯤 너무 늦게 태어난 것 같아요. 하지만 만약 그때 태어났더라면 당신을 만나지 못했겠죠." 그는 나를 품에 안았고, 우리의 욕망은 충족되자마자 또 다시 되살아났고, 아이들은 다시금 야베의 보살핌에 맡겨졌다. "사랑에 있어서 끔찍한 점이 있다면 그거예요." 내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다는 거요." "맞아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항상 엄청나게 고통스러워지죠." - P243

빅토르를 만나도 한동안 토베는 약물에 손을 댄다. 결국 특단의 조치로 도시를 떠나 약물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시골로 터전을 옮긴다. 토베는 그곳에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수년간 빠져 있었던 약물 중독에서 서서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수시로 찾아오는 약물 충동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지만 그럴 때마다 빅토르와 아이들이 의지가 되었다.

이렇게 토베의 결혼 생활은 돌고 돌아 겨우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에 기대고 약물에 의존하는 것만이 토베를 구원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토베는 그 자신만으로 충분히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홀로서기를 꿈꾸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던가. 그 글을 펼치며 살 수는 없었던 것인가.
빅토르를 만나서 겨우 정착할 수는 있었다고 해도 찜찜함이 남았다.

'의존'이란 단어를 되뇌인다. 인간의 홀로서기는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작품 자체로는 별점 5이지만 스트레스를 주는 남자들 때문에 1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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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0 17: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어떤 결정적 순간이라는게 있는거 같아요. 옳고 그름이 있다걸 배워야 하는 시기,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걸 자각하는 시기 이런거요.
저는 아직 이 책을 안 읽었지만 토베라는 분의 이야기를 보면 그 결정적인 순간에 사랑받지 못햇던 기억이 끊임없이 토베를 자신을 사랑해줄 누군가로 밀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건 글을 쓰고 자신의 일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못하는 어떤 근원적인 자존감의 부족 같기도 하구요.

거리의화가 2022-10-21 09:06   좋아요 2 | URL
어린 시절 부모님과 주변 환경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이 소중하고 사랑받을만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커오지 않았나 싶어요ㅠㅠ
충족되지 못했다는 말씀이 적절하다 여겨집니다. 결핍에서 오는 불만이 끊임없는 갈망 추구로 나아가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독서괭 2022-10-20 1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왜 3권 별 네개지? 했는데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군요^^;; 알 것 같습니다.
의존이라.. 결론이 좀 씁쓸하네요.

거리의화가 2022-10-21 09:11   좋아요 2 | URL
ㅎㅎㅎ 토베 자체에는 애정이 들지만 만나는 남자들이 다 쓰레기ㅋㅋㅋ
리뷰라는게 결국 사심이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문장과 묘사는 아름답습니다~^^

청아 2022-10-20 2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삼부작 클리어 하셨군요!! 저도 비슷한 이유로 별하나 뺐어요ㅎㅎ 토베에게는 애정이 가득~^^♡

거리의화가 2022-10-21 09:14   좋아요 2 | URL
ㅋㅋㅋ 역시 미미님 찌찌뽕입니다!ㅎㅎ 저도 작가에 대한 애정은 샘솟지만 만나는 남자들이 다 너무했어요ㅠ 토베 디틀레우센이라는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되어서 여러 모로 좋은 읽기였어요^^ 까먹지 말고 얼른 소장 들어가야겠어요~ㅎㅎ

mini74 2022-10-20 2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왜 나쁜 남자들만 ㅠㅠ 화가님 리뷰 읽는것만으로도 저도 씁쓸하네요. 화가님 별 하나 뺀 이유가 이해가 갑니다 ~

거리의화가 2022-10-21 09:15   좋아요 3 | URL
하~~~ 만나는 남자들마다 진짜 너무 찌질해서 아주 짜증이...ㅋㅋ 그 중 카를은 용서할 수가 없어요. 직업윤리 의식도 엉망이잖아요. 의료인이 이러면 되나-_-;;; 싶어서~ㅎㅎ

페넬로페 2022-10-20 23: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코펜하겐 삼부작 순식간에 다 읽으셨군요.
마지막의 거리의화가님 느낌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거리의화가 2022-10-21 09:17   좋아요 4 | URL
네. 시리즈라 흐름이 끊기면 재미가 반감될 것 같아 단번에 읽었어요. 책도 얇고 스토리라 금방 읽힙니다^^ 마지막이 좀 허탈하더군요. 어쨌든 해피엔딩이 되긴 했으나~ 그동안 고생한걸 생각하면 어휴...ㅎㅎ

희선 2022-10-21 0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약에 의존하고 사람에 의존하기... 그런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다가 그렇게 되는지, 어린 시절 때문일지...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고, 여러 가지 때문이었겠지요 더 나중에 태어났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를 텐데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런 사람 많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10-21 09:18   좋아요 3 | URL
말씀처럼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단독자로서 실존의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희선님 감사합니다^^
 
청춘 - 코펜하겐 삼부작 제2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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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에 내가 두려워했던 것을 하나 떠올린다. 착실한 숙련공. 나는 숙련공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도 없지만, 미래의 모든 밝은 꿈을 가로막는 건 '착실한'이라는 단어다. 그 단어는 비 내리는 하늘처럼 온통 회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스며 나오는 밝은 햇빛을 느낄 만한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 P22

토베는 착실함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느꼈다. 지금도 그런 가르침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성인이 되기 전까지 어른들은 내게 '착실함'을 강요했다. 그것이 분명한 강요였는데도 나는 크게 거부하지 않았다. 만약 못견뎌내면 어떤 형태로든 본인을 망가뜨리게 되지 않을까. 토베의 청춘은 이렇게 시작부터 밝지 않다.

여기서 사는 한, 나는 외롭고 이름 없는 삶을 살아갈 운명에 처해 있다. 세계는 내 어떤 부분도 인정해 주지 않고, 내가 모서리 하나를 겨우 붙잡을 때마다 내 손아귀를 슬쩍 빠져나간다. 사람들은 죽고, 그들 머리 위의 건물들은 헐려 나간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지속되는 건 오직 내 어린 시절의 세계뿐이다. - P48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경제는 좋지 않았고 전쟁의 광풍이 불었다. 하지만 그런 외부적 상황은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죽을 것 같을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을 살아갈 수 없어서 토베는 과거를 떠올린다. 여전히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는 낯설기만 하다.

나는 미칠 듯 화가 날 때면 늘 나중에 후회할 말을 한다. "책을 읽고 싶어요." 나는 말한다. "그리고 글도 쓰고요." 아버지는 내게 도대체 무슨 글을 쓰고 싶으냐고 묻는다. "시요!" 나는 소리 지른다. "시를 굉장히 많이 썼고요, 예전에 제 시들이 훌륭하다고 말해 준 편집자도 있었어요." "저것 보라지." 아버지는 커다란 손으로 자기 얼굴을 문지르며 말한다. "쟤도 제정신이 아닌거야. 쟤가 저런 거 하면서 노닥거리는 거 알고 있었어?" "아니." 어머니의 대답은 퉁명스럽다. "근데 그건 쟤가 알아서 할 일이잖아. 쟤가 글을 쓰고 싶어 한다면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건 분명해." (...)
"토베." 아버지의 목소리는 부드러워져 있다. "언제 네..... 그 ...... 시들 좀 나한테 보여줄 수 있겠니? 내가 그런 걸 좀 아니까 말이야." 내 분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뉘우치고 참회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건 우리 어머니에게는 없는 능력이다. - P103~104

어머니는 자신을 비웃고 이해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아버지는 상처를 주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시를 쓰는 사람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글을 쓸 공간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할텐데도 토베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부모가 원망스럽다. 이 당시 이렇게 자신의 능력을 포기하고 매몰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당신이 내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여자일 거예요." 3년 동안 일자리가 없는 상태로 지낸 그는 덴마크에서 썩어 가느니 차라리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다고 한다. 그는 생활 보조금으로 살아간다. 일을 했을 때는 택시 한 대를 가진 사람 밑에서 그 택시를 운전했는데, 운전 말고는 어떤 기술도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 니나와 나는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은 피하자고 의견을 모았었지만, 실업자가 아닌 남자를 찾기는 어렵다. 10시가 되자 쿠르트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다. 달빛은 밝고, 마음은 조금 흔들린다. 나는 머지않아 영웅적인 죽음을 맞을 한 남자와 함께 거리를 걷고 있다. - P109~110
나는 그대로 서서 인적이 거의 없는 거리를 걸어가는 그를 지켜본다. 코트도 없는 그는 두 손을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다. 그는 곧 죽을 것이고, 나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다. - P111

토베는 크로그가 부자고 어마어마한 서재를 갖고 있어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고 자기 시를 이해해준다하여 헤어지고 나서도 끊임없이 그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쿠르트와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로 해서 토베는 만나자마자 그의 죽음을 생각하며 헤어진다. 당시 이런 죽음들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상황이 현실이다. 푸틴은 전쟁에 나갈 병사를 위해 강제 동원령을 내렸다. 총알받이가 되기 싫다며 일부는 탈출을 감행하고 그럼에도 동원당해 나간 병사들의 운명은 장담하기 어렵다. 과거는 왜 현실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내 시들이 출판돼서 시에 대한 감각을 갖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바람이 왜 그토록 간절한지는 나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어둡고 구불구불한 길들을 지나며 다가가고 있는 목표다. 그것이 내가 아침마다 일어나고, 인쇄소에 나가고, 룅렌 양 맞은편에 앉아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 같은 그의 시선을 여덟 시간 동안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다. 그것이 내가 열여덟 살이 되는 바로 그날 집에서 이사를 나가고 싶어 하는 이유다. 빙 앤뱅이 밤새도록 시끄럽게 울부짖는다. 술 취한 사람들이 카페 뒷문에서 우리 건물 마당으로 쫓겨난다. 그곳에서 그들은 소리치고, 욕하고, 싸운다. 아침이 찾아올 때까지, 마당과 이 거리에 고요함은 찾아오지 않는다. - P115~116

나는 우리 가족이 너무 피곤하다.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어 할 때마다 그들과 부딪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결혼해서 나 자신의 가족을 꾸린 뒤에야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121

토베는 열여덟살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 때가 되면 그는 자유를 찾는 것이다. 지금 집은 외부 환경이 좋지 않고 부모와도 사사건건 부딪치니 머릿속만 복잡해진다. 집을 나가기만 하면 앞으로 자신의 시 세계가 펼쳐질거라 믿는다. 과연 그의 믿음처럼 미래는 장미빛일까.

"우리, 반지를 빼야 할 것 같아요. 난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나도 당신을 정말로 사랑한 적이 없어요." 내가 말한다. "없죠." 그는 주억거린다. "알아요." 완전히 당황한 그가 엄청나게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바람에 나는 그를 따라잡으려고 거의 달려야 한다." "우리 어머니는 당신이 나한테 너무 과분하대요." 그가 설명한다. "당신은 돈도 많고 책도 좀 읽고, 뭐 그런 사람이랑 결혼해야 할 것 같아요." "네." 내가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집 현관 앞에 도착한 그는 언제나처럼 내게 부드럽게 키스하더니 자기 손가락에서 반지를 비틀어 뺀다. 그가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내 것도 그리로 들어간다. - P139

토베는 악셀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가 여자를 수시로 바꾸는 인물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 그런 말이 들릴까. 무시하고 약혼을 했다. 학생이라 돈을 못 벌고 있는 자신과 비교해서 돈을 벌고 있고 시를 쓰는 것으로 돈을 벌 수도 있는 토베에게 열등감을 느낀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 핑계를 대는 건 너무하지 않나. 여러 모로 치기어리다는 생각 뿐. 아니다 다를까 그와 파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모는 잘했다고 칭찬한다.

"편집자님이랑 있으면 어떤 나쁜 일도 생기지 않을 것 같아요. 여기 있는 동안에는 세계 대전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같고요." 비고 F. 묄레르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진다. 그는 다시 입을 연다. "다른 일들은 너무도 암울해 보여요. 난 어쩌면 당신을 위해서는 이런저런 일을 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는 없어요." 내가 그런 말들을 하게 된 건 와인 때문이다. 어른들은 세계정세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할 때면 모두들 내게서 뒤로 물러난다. 그에 비하면 내 시들과 나는 그저 바람이 아주 슬쩍만 불어도 날아가 버릴 먼지 알갱이들에 불과하다. "그럴 수는 없겠죠." 내가 말한다. "하지만 편집자님은 갑자기 돌아가시지 않을 거고, 이 건물도 무너져 내리지 않을 거잖아요." - P202~203

악셀과 헤어진 뒤 토베는 안정적인 남자를 찾았던 것일까. 그는 비고 F.뮐레르라는 남자를 만난다. 어쩌면 그의 직업이 가장 그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내부와 외부가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그의 눈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남자. 가벼운 마음에 묵직한 바위 같은 남자를 바랐고 그렇게 '비고'와 결혼한다.

나는 시를 쓴다는 점에서는 조금 색다른 사람이지만, 동시에 평범한 면도 많다. 다른 모든 젊은 여자들처럼 나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고 나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싶다.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는 젊은 여자로 살아가는 일에는 어딘가 고통스럽고 취약한 면이 있다. 그 길의 앞에는 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항상 내 시간을 팔아넘겨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서 오직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너무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 P218

토베는 시를 쓰는 것 외에는 자신이 평범한 다른 여자들과 같다고 생각한다. '특이하다? 특별하다!'라는 말을 들어온 그가 원했던 것은 어쩌면 안정감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한때 모험을 감행하고 싶을수는 있으나 전부를 내내 모험에 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토베의 고민이 지금의 여성들의 현실적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비고 F.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다. 그는 오직 예술가들만 좋아하고, 예술가들하고만 시간을 보낸다. 나는 내게 존재하는 제법 평범한 점들은 뭐든 그에게 숨기려고 애쓴다. 나는 새로 산 원피스가 마음에 든다는 사실을 그에게 숨긴다. 나는 내가 립스틱과 볼연지를 쓰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볼 때면 내 옆모습이 어떤지 보려고 거의 삐끗하기 직전까지 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긴다. 나는 나와 결혼할 수도 있는 그의 마음을 흔들 수도 있는 모든 것을 숨긴다. - P221~222

상대에게 온전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다. 하물며 내가 찜한 상대인데 그의 마음에 들길 원한다면 부족한 부분과 감추고자 하는 부분을 되도록 숨기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이렇게 나를 숨기며 만난 관계는 결코 건강하지 못함을 우리는 안다. 토베는 그렇게 결혼이란 제도로 뛰어든다.

청춘은 어떤 색일까? 코펜하겐 삼부작 2권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적어도 초록빛은 아닌 듯하다. 청춘은 끊임없는 내면의 불안과 현실과의 싸움에서 오는 좌절과 고통의 기록이다. 지나가면 덧없음에도 그때만큼은 간절해서 연약하게 만드는 마음이다.

젊음 그 자체는 그저 덧없고 연약하며 잠시뿐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통과해야 한다. 젊음에 그 밖의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 - P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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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0-19 21: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이 누군가에겐 참 잔인하고 벗어나고 싶은 시절이라는게 슬퍼요. 아이땐 모두가 행복하면 좋을텐데말이지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10-19 21:49   좋아요 3 | URL
청춘은 구속받길 원하지 않아서인걸까요. 자유를 갈망했던 그가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불안과 방황이 토베의 청춘이었던 것 같아요ㅠ

새파랑 2022-10-19 21: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도 아직 젊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ㅋ 겉모습은 그게 아니지만 😅

거리의화가 2022-10-19 21:51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 새파랑님 역시!!!👍👍👍 리뷰쓰다 우울했는데 단번에 날려주시네요^^ 저도 마음은 젊다 말하고 싶습니다ㅋㅋ

scott 2022-10-19 23: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베의 청춘 넘 안타깝고
연이어 결혼한 남편놈들 ㅠ.ㅠ


화가님 청춘은 푸르른 초록!

그리고 현재는 핑크빛 ^ㅅ^



거리의화가 2022-10-20 08:56   좋아요 1 | URL
아... 3권 읽다가 폭발하는 줄 알았어요. 짐작은 했지만 너무한 놈들ㅠㅠ

ㅎㅎㅎ 핑크빛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일이 새롭다는 느낌으로 살려 노력중입니다. 스콧님도 매일을 즐겁고 행복하게^^

희선 2022-10-20 0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혼 잘 모르고 결혼해도 자신을 다 보여주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토베처럼 하면 피곤할 듯합니다 마음이 편해져야 하는데... 토베는 그런 걸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듯하네요 시대가 그러기도 했고... 그나마 시와 글이 있어서 다행이다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10-20 09:00   좋아요 1 | URL
토베가 작품 외에는 흔들리는 면이 많았던 것 같아요. 결혼해도 자신을 다 보여주진 못하죠. 다 안 보여주는 게 오히려 서로에게 피곤함을 덜 주기도 하는 듯 싶구요^^;
시와 작품만이 그녀를 지탱해줄 수 있었던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