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라고 했지만 그것은적절한 말도 그녀를 제대로 묘사해주는 말도 아니다. 커다란 인형에게도 꼭 맞을 흰 레이스 속옷과 상복 드레스를 입은 얌전한 꼬마의 모습을 떠올리는 데 아이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리는 이제 작은 탁자 옆에 있는 높은 의자에 앉아서, 희게 칠한 목제 장난감 반짇고리를 그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감침질을 한답시고손수건을 한장 들고 있었다. 그녀는 참을성 있게 계속 바느질을 했는데, 그녀가 들고 있으니 꼭 꼬챙이 같은 바늘에 가끔 찔려서 흰케임브릭 천 손수건에 작고 빨간 피가 점점이 찍혔다. 그 심술궂은무기가 말을 듣지 않고 평소보다 더 깊이 찌를 때면 그녀는 움찔하면서도 여전히 조용하고 부지런히 바느질을 했고, 그 모습은 열성적이고 여자다웠다. - P24
"자, 우리 아가, 이리 와서 차 마셔야지. 뭘 좀 먹어야지." 그레이엄이 간식을 먹는 동안 그의 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너무나 희극적이었다. 그가 없을 때는 조용하던 아이는 그가 오기만 하면 안달하는 꼬마 참견꾼으로 변했다. 나는 종종 그 아이가 차분히 자기 일이나 챙겼으면 했지만 결코 그러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그레이엄 안에서 자신을 잊었다. 아무리 시중을들고 아무리 정성껏 보살펴도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그를터키 황제 이상으로 떠받들었다. 그녀는 온갖 접시들을 하나씩 그의 앞에 가져다놓았고, 그가 먹고 싶어할 만한 음식들이 모두 손닿는 곳에 있는데도 무언가 다른 것을 찾곤 했다. - P37
"쉬운 일은 아닐 거야."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내게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거의 갇혀 있다시피 지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최근의 네 생활에 비하면 견딜만할지도 모르지."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그만하면 견딜 만해 보이는 게 마땅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어쩌면 견딜 수 없을지도 몰랐다. 여기 이 방에 갇혀 살면서 남은 청춘을 다 바쳐 남의 고통을 지켜보고 때로는 신경질도 받아주어야하다니! 아무리 좋게 말해도 이미 사라진 추억들도 그다지 행복한건 아닌데! 한순간 가슴이 무너져내렸지만 곧 괜찮아졌다. 불운을현실로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었지만, 나는 원래 상황을 이상화하기엔너무 무미건조한 성격이라 불운을 과장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 P55
런던으로 떠나면서 나는 독자들의 예상만큼 모험심에 차 있거나 대단한 계획이 있진 않았다. 사실 50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런던까지 가고 거기 며칠 머물다가 더 머물러야 할 이유를찾지 못하면 돌아올 돈이 충분히 있었다. 그 여행은 목숨을 건 모험이라기보다는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한 한번의 짧은 휴가였다. 어떤 일을 하든 별로 대단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하면 몸과 마음이 안정을 찾을 수 있지만, 거창한 계획은몸과 마음을 열에 들뜨게 하는 법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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