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며 국이며 나물이며 허름한 음식 몇 가지를 남보다 재빨리
맛있게 차려낸다고 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급할 땐 식당을 차릴까 보다 떠들었는데
오늘 아침 텔레비전에서 소개해준 한 맛집을 보고 그런 생각이 쑥 들어갔다.
1인당 5천 원짜리 백반 집인데 식당 한쪽에 잡채며 제육복음이며 나물이며
뷔페 식으로 차려놓고 얼마든지 손님들이 더 드실 수 있게 배려해 놓았다.
엄청난 반찬 가짓수나 무한리필 제공되는 음식의 양은 그렇다고 치자.
삶아서 양념 끼얹은 꼬막과, 3년 묵혀 맑게 우려낸 멸치젓국과,
손님이 데리고 오는 아이가 자라서 단골이 될 것을 내다봐야 한다는 주인의 말에
놀라자빠졌다.
꼬막은 간단한 것 같지만 한 접시 만드는데 품이 보통 드는 게 아니다.
먼저 엷은 소금물에 깨끗이 씻어서 삶아서 한 개 한 개 일일이 까서
양념장을 끼얹으면 되는데 삶아도 입이 벌어지지 않는 놈들을 억지로 떼내면
손톱 모서리가 부러지는 일은 다반사요 날카로운 껍질에 베이기 일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꼬막 한 가마니를 하루종일 씻고 손질할 자신이 없다.
메인 요리도 아닌데.
다음은 멸치젓국. 멸치젓국은 어디라 하더라? 어느 섬의 것을 한꺼번에 사와서 통째로
창고와 옥상, 아무튼 엄청난 양의 멸치젓을 3년 동안 묵힌다.
그렇게 숙성된 멸치젓국을 한 방울씩 맑은국물로 이슬을 받듯
받아 모아서 김치며 요리에 사용하는데, 멸치젓 담은 통의 크기와 갯수만 보고도
입이 딱 벌어졌다.
부모와 함께 온 취학전의 아동은 돈을 안 받고, 4학년까지의 아이들은 3천 원의 밥값을 받는데.
아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마련된 특별 메뉴 탕수육에 열광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바삭바삭 맛나게 생긴.......
23년 된 식당.
식당을 차리며 1, 2년 안에 손님들을 끌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안된단다.
손님들이 데리고 온 아이가 자라서 단골이 될 것을 내다봐야 한다고.
자신의 식당에 그렇게 많은 단골들이 찾아오는 데 23년이 걸렸다니!
인내심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고, 김치찌개 한 냄비, 꼬막 한 접시 상에 올리면서
심혈을 기울였다느니 흰소리나 하고 엄청난 일을 한 것처럼
유세를 떠는 나같은 사람은 식당 차릴 생각은 하면 안 되겠다.
책장수님이 어느 날 실직이라도 하면 조그만 밥집을 열어 가족을 부양할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는데.....
하루아침에 그 비상금을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