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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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만나고 알아간다는 건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일이다. 거기에 사랑이 더해지면 그 세계는 더욱 단단해진다. 한 번 진입한 세계를 빠져나오는 일은 어렵다. 어떤 세계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갇히거나 흠모한다. 이전의 세계는 단숨에 무너진다. 태어남과 동시에 발 들이는 세계는 가장 가까운 이들과 연결된다. 부모, 형제, 친구, 선생님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그게 전부라고 여긴다. 그랬던 전부가 사라지고 다른 전부가 생기는 계기는 저마다 다양하다.


제시 버튼의 장편소설 『컨페션』의 ‘엘리스’에게도 그런 한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다. 스무 살 엘리스가 운명처럼 이끌린 ‘코니’와의 만남. 이성이 아닌 동성, 거기다 또래가 아닌 자신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은 유명 작가였다. 엘리스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어떤 확고함. 둘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같이 살기로 한다.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모든 걸 다 공유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어쩌면 그건 스물의 엘리스에게만 해당되었는지도 모른다. 1980년 엘리스의 사랑은 뜨거웠다.


그런 엘리스를 찾는 한 여자가 있다. 2017년 9년을 사귄 남자친구 조와 동거를 하는 서른다섯 살의 로즈. 자신을 낳고 사라진 엄마를 찾기로 한 것이다. 어린 시절 항상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엄마의 흔적을 더듬는다. 엄마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오직 한 권의 책 「초록 토끼」뿐이다. 엄마에 대해 함구했던 아빠는 이제야 책을 쓴 작가가 엄마와 긴밀한 사이였다고 알려준다. 그게 자신이 아는 전부라고. 딸이 엄마의 삶을 닮을까 걱정했던 아빠는 조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안정된 삶을 이어가길 원했을 것이다. 로즈를 낳은 엘리스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로즈는 「초록 토끼」의 작가 ‘코니’에 대해 수소문한다. 그녀의 다른 책 「밀랍 심장」을 읽고 현재의 정보를 찾는다. 엄마 엘리스를 아는 유일한 여자, 코니. 로즈는 그녀를 반드시 만나야 했다.


소설은 1980년 엘리스와 2017년 로즈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과거와 현재, 그 둘을 이어주는 건 코니뿐이다. 엘리스는 코니의 모든 걸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코니가 글을 쓸 때는 혼자여야 한다는 걸 안다. 더 많을 시간을 보내고 싶기에, 뭐든 함께해야 하기에 코니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미국행에 동행한다. 그곳에서 엘리스가 견뎌야 할 시간은 너무도 길고 힘들었다.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과 코니의 친구들과의 모임에 항상 엘리스가 있었지만 코니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확인이 필요했던 엘리스에게 코니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일 때문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스물셋의 엘리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일에 당당하고 멋진 코니에 비해 엘리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엘리스에게 전부였던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럼 2017년 현재의 로즈의 세계는 어떤가. 부모의 재정 지원으로 백수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남자친구는 조는 엄마를 간절하게 찾아야 하는 로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엄마에 대해 단 한 가지라도 알고자 신분을 속여서라도 코니의 비서가 되겠다는 로즈를 이상하게 여긴다. 로즈에겐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로즈가 아닌 로라가 되어 관절염을 앓는 노 작가 코니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원고를 대신 타이핑하면서 엘리스에 대한 질문을 할 기회를 엿본다. 로즈가 아닌 로라는 자유로웠고 객관적으로 로즈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조금씩 코니와 가까워질수록 로즈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이유를 잊은 채 이대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코니가 삶을 마주하는 태도는 아름다웠고 어느덧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이 지난 삶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소설은 끝내 엘리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코니가 로즈가 엘리스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로즈가 태어난 상황에 대해 알려주지만 엘리스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로즈를 두고 떠난 엘리스의 마음을 짐작할 뿐이다. 로즈를 낳고 우울증에 힘들었던 엘리스는 코니가 그리웠고 화해하고 싶었다. 그건 코니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기분이 들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 지나갈 것이라고 말해주는 대신 항상 엘리스에게 어딘가를 가 보라고 제안했다. (436쪽)


인생은 참 이상하지 않은가…… 전 남자친구가 코니를 데려오다니. 그리고 인생은 기적이 아닌가, 코니가 오고 싶어 하다니. 할 이야기가 너무 많고 서로 용서할 일도 너무 많았다. (455쪽)


그러나 둘의 만남은 영원한 이별로 이어졌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사랑했던 기억을 품고 엘리스는 떠났다. 그녀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녀의 삶이니까. 로즈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조와의 이별과 그 이후 로즈가 결정한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떤 결정도 후회는 남는 것이다. 엘리스와 로즈는 코니를 만나면서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 이전과는 다른 삶,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기쁨을 느꼈다. 설령 그 세계가 춥고 쓸쓸하더라도 괜찮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막연하게 로즈가 엘리스를 찾기를 바랐다. 엄마와 딸 사이에 흐르는 어떤 뜨거움을 기대했던 것 같다. 소설을 다 읽고 둘이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느꼈다. 로즈는 엄마가 어떤 생을 살았는지 알았고 그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엘리스의 인생에서 엄마는 일부일 뿐이고 전부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생을 살든 누구를 사랑하든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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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눈
장정옥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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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옥의 소설집 『숨은 눈』을 읽으면서 자꾸만 제목을 ‘숨은 눈’이 아니라 ‘숨은 눈물’이라고 여겼다.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을 수많은 여성들이 생각나서 그랬다. 내 어머니와 언니와 친구와, 기사의 실제 인물, 소설의 주인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 중 어느 하나는 나와 닮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소설의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서 한동안 멍했다.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여자의 마음을 묘사할 수 있는지, 여성작가라서 가능했던 것일까. 6편의 단편엔 저마다 여자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이 있다. 왜 저렇게 살아갈까, 단호하게 끊어버릴 수 없단 말인가. 한숨이 나오기도 했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표제작 「숨은 눈」은 이혼한 여자의 심경을 다룬다. 결혼생활 25년의 마무리는 이혼이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편. 진부하고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기엔 너무도 복잡했다. 이혼을 했지만 딸과의 관계는 단칼에 끊어지지 않는다. 이혼한 전 남편의 간병인이 되는 상황이라니. 상상할 수 있을까. 담석으로 입원한 전 남편. 사랑이라고 우겼던 여자와는 헤어졌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자신이 병상을 못 지키면 딸애가 해야 할 일이었다. 딸을 위한 선택이다. 이상한 건 이혼을 한 후 어디선가 전 남편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서도 그런 생각에 시달렸다. 엘리베이터의 거울, CCTV, 심지어 관리사무소의 수족관 속 물고기의 시선까지 자신을 몰래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여자에게 결혼은 무슨 의미일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삶. 평범하고 평탄한 일상을 꿈꾸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때로 이혼으로 이어진다.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감을 참아내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함께 살아온 시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도 정리할 수도 없다.

이혼을 한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달의 노래」에서 그런 감정을 만난다. 이혼 사유는 아빠의 외도였다. 엄마는 미용실을 운영한다. 아빠는 오빠의 학비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집에 온다. 아빠가 올 때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그러니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정작 아들은 그런 아빠를 보려 하지 않는다. 아빠가 다녀갈 때마다 술에 취하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화자인 ‘나’는 몰래 아빠와 여자가 운영하는 식당을 훔쳐본다. “아빠는 숯불에 손을 쬐며 달을 보았다. 나는 같은 피를 나눈 사람끼리 느낄 수 있는 육감으로 숯불을 피우는 아빠의 외로움을 알아챘다.”란 문장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이 위기를 견디고 이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산다는 건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무조건 참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에 뜬 그림자를 보다』속 화자는 많은 시간을 참았다. 도박에 빠진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살던 집을 날리고 경제적으로 무너졌지만 아이에게 아빠를 빼앗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다. 남편은 아빠이기를 포기한 사람 같았다. 남편을 집을 떠났고, 이혼을 선택했다.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간병인을 시작했다. 경력이 단절된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주말마다 만나는 아이와의 시간은 간절했고 이혼 사실을 모르는 어머니가 묻는 아들의 근황에 대해 답하기는 어려웠다. 엄마로 산다는 건 왜 이리 고달픈가.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딸이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낸 「내 마음의 파랑」과 어린 딸을 두고 떠날 수 없는 심경을 고스란히 전하는 「섬」의 엄마의 마음도 애달프다. 자식을 향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나’로 살아가는 이들이 아닌 ‘엄마’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세계의 삶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비혼 주의, 다양한 구성원의 가족,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이들. 경험하지 않는 세계에 대해 섣불리 말해서는 안 된다. 섣불리 누군가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숨은 눈』은 엄마, 아내, 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자화상이다. 다른 세대의 삶은 알고 싶지 않다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들처럼 살라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한다면 그들이 자신과 연결된 이들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현실도피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선택하지 않는 시대. 사랑, 결혼, 가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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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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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만나는 드라마를 시청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설정이겠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드라마처럼 미래의 나를 보면 과거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실망하고 속상해할 것이다. 막연하게 꿈꾸던 미래의 삶, 어른의 삶은 현재 내가 살아가는 삶이 아니니까. 드라마에서는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많은 위로를 전한다. 어렸을 때처럼 단순하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실수는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일이 생기면 사과하라고.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에도 두 명의 태희가 등장한다. 십대의 태희와 삼십대의 태희. 삼십대의 태희에게 현실은 고달프다.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는 삶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십대의 태희는 마냥 신나고 즐거운 건 아니다. 십대의 태희도 현재의 태희에게도 고단하고 지치는 삶이다. 부모님을 비롯해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자신을 외할머니 집으로 보낸 부모님. 십 대 태희는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모와 한 방을 쓰면서 보낸 그 시간은 외롭고도 쓸쓸했다.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에도 두 명의 태희가 등장한다. 십대의 태희와 삼십대의 태희. 삼십대의 태희에게 현실은 고달프다.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는 삶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십대의 태희는 마냥 신나고 즐거운 건 아니다. 십대의 태희도 현재의 태희에게도 고단하고 지치는 삶이다. 부모님을 비롯해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자신을 외할머니 집으로 보낸 부모님. 십 대 태희는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모와 한 방을 쓰면서 보낸 그 시간은 외롭고도 쓸쓸했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태희의 시간을 들려주는데 십대의 태희가 바라본 어른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나는 어떤 어른인가 가만히 생각하게 된다. 과거의 나도 소설 속 태희처럼 어른들의 태도가 싫었고 화가 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온전히 이해받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삼십대의 태희와 마찬가지로 내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지도 못하며 견디는 삶을 살아간다. 어떤 나이를 살든 그때의 고민은 인생 전부의 그것이다. 십대의 태희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아빠, 뭔가 감추는 것만 같은 엄마. 그깟 연애에 목숨을 거는 이모.

이상하게도 삼십대의 태희에게 더 이입되는 게 아니라 십대의 태희에게 더 끌린다. 아마도 과거에 대한 미련, 현재의 나를 만든 과거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 하지만 그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그 시절의 나에게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건 아닐까. 그건 지리멸렬한 연애와 이별하지도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지도 못하는 삼십대의 태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 남자와 헤어진 건 잘했다고 과감하게 사직서를 낸 일을 응원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소설 밖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기에 스스로 자책하는 일은 그만두어도 좋다고 말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지금과 같은 나를 상상한 적도 없다. 과거가 아깝다. 살아갈 날보다 내가 분명히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아까워. 겨우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 (98~99쪽)

그런 의미에서 ‘내가 되는 꿈’이란 제목이 참 좋았다. 우리는 수많은 내가 되는 꿈을 꾸며 살아가니까. 다른 사람이 아닌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소설 속 할머니가 말하는 시간에 대한 부분을 계속 읽고 있다. 내 시간에 거하는 나, 나만이 내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다짐한다.

나는 내 시간을 사는데 거기 누가 들어오는 거야. 그런다고 내 시간이 사리지는 것도 아니고 해가 뜨고 간다고 시간이 가는 거겠나. 내가 알고 살아야 그게 시간이지. (22쪽)

현재의 나의 삶에 만족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후회하고 고민하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십대의 나를 돌아본 적이 있던가. 아니 1년 전, 한 달 전의 나를 돌아본 적도 없는 듯하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느라 나에 대해 생각은커녕 잠시 나를 다독일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최진영의 소설은 그런 이들에게 잠시 나를 들여다보라고, 나는 괜찮은가, 나는 진정한 나로 살고 있는가 살피라고 말한다. 여전히 성장 중인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다.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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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3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서점에 많이 보이던데 제목이 그런 의미였군요~ 리뷰보니 좋은 책일거 같네요^^

자목련 2021-04-14 10:33   좋아요 1 | URL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지금 나의 삶을 생각하게도 하는 소설이었어요. 소설을 잘 표현한 제목이었어요. 새파랑 님, 경쾌한 하루 보내세요^^

2021-04-19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20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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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는 자세한 설명 없이도 그 전체를 짐작하거나 이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건 대부분 슬픔이나 고통에 관한 것이다. 설령 그것이 아름다운 슬픔, 충만한 평온으로 마무리가 되더라도 가슴속 가득한 먹먹함으로 남는다. 가시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은 그런 소설이다. 아름답고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환한 감동을 안겨준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 뻔하지만 결코 뻔할 수 없는 이야기. 인간과 로봇의 우정이라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드럽고 단단한 마음을 보여준다.


소설은 가상의 친구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 에이에프(Artificial Friend) 클라라와 인간 조시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에이에프 클라라는 인간의 선택을 받는 존재로 햇빛이 그녀의 자양분이다. 클라라는 해의 움직임을 살피며 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한다. 에이에프는 흔하게 지식만 가득한 인공지능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 마음을 감지하는 섬세함을 지녔다. 클라라의 능력은 특히 뛰어나다. 그런 클라라를 한눈에 알아본 14살의 소녀 조시는 클라라를 선택한다. 아픈 딸을 위해 어머니는 최신 에이에프를 권하지만 조시의 뜻을 따른다. 이제 클라라는 조시의 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클라라는 모든 걸 조시에게 맞추며 살아가는 어머니, 그리고 조시의 유일한 친구로 등장하는 릭을 관찰하고 살핀다. 클라라에게 가장 중요한 건 조시다. 조시의 일상 전부를 공유하고 조시의 마음을 읽는다. 클라라는 자신이 조시를 위한 존재라는 걸 잘 안다. 가족이면서도 온전한 가족은 될 수 없다는 걸. 조시의 건강 상태와 감정의 흐름에 따라 그에 맞게 조시가 원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오롯이 클라라의 시선으로 미래의 삶을 보여준다. 클라라를 비롯한 에이에프가 어떤 기능을 가졌으면 어떻게 발전했는지, 조시의 집에서 모임을 갖는 아이들과 릭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클라라를 통해서 말이다. 그들을 구분하는 어떤 경계는 지금과 다르지 않다. 서로의 에이에프를 평가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모습이나 그들과 교류하지 못하는 릭을 통해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생활을 가늠할 수 있다.


조시의 건강 상태에 따라 어머니와의 불화는 깊어진다. 그런 조시를 보면서 조시의 언니를 잃을 슬픔을 반복할까 봐 두렵다. 어머니는 클라라가 조시를 복제할 정도로 완벽해지기를 원한다. 조시가 떠난 후 클라라를 통해 조시를 보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아는 클라라는 자신의 자양분인 해에게 기대기로 한다. 클라라에게 태양은 신과 같은존재, 해가 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해가 쉬는 곳이라 여긴 헛간에서 해와 마주한다. 릭의 옆집에 있는 헛간까지 가는 가는 과정은 험난하다. 오직 조시를 위한 일이라는 말에 릭은 선뜻 클라라를 도와준다. SF 소설에서 해를 믿는 인공지능 로봇이라니. 하지만 조시를 향한 클라라의 순수한 마음은 분명히 해도 도와줄 것 같았다. 클라라에게는 해의 기적을 목격한 경험이 있었고, 조시를 위해서 해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었다. 그게 자신의 전부라도 말이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클라라가 원하는 대로 조시가 낫게 될 거라는 걸 말이다. 언젠가 클라라와 조시의 이별할 거라는 사실도. 뜨거운 슬픔을 느낄 수 있다. 로봇인 클라라가 인간의 마음을 아는 건 가능할까.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고 온전하게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클라라는 가능할 것만 같다. 소설에서 클라라가 마음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말해주듯. 인간인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다고 할까. 


“말씀하신 마음이요.”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시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321쪽)


인간과 로봇의 우정을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성숙된 선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항상 상대의 마음을 지켜보고 관찰하는 애정이 있다면 그 어떤 험난한 미래가 와도 걱정 없을 것 같다. 인간과 유사한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에 우리가 지켜할 마음은 어떤 것일까. 어쩌면 그건 클라라가 조시에게 보여준 마음일지도 모른다. 태양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마음. 그래서 나는 클라라의 기쁨을 가장 보여준 이 부분이 참 좋았다.


해의 무늬가 벽, 바닥, 천장 여기저기에 평소와 달리 강렬하게 나타났다. 서랍장 위에는 진한 주황색 삼각형이, 단추 소파에는 눈부신 곡선이, 카펫 위에는 빛나는 막대들이 길게 그어졌다. (409쪽)


소설 속 미래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불안한 미래, 인간의 모든 걸 대신할 수 있는 로봇과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모두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클라라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미래를 꿈꾸는 희망을 키우게 만든다. 해의 무늬가 소설 밖 내게로까지 전해져 주변이 온통 따뜻하고 환해진 기분이었다. 이 선명한 따뜻함을 전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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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2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점 가니까 이 책이 그렇게 많이 안펼쳐져 있어서 아쉽더라는.. 따뜻함을 전하고 싶은 책이 맞는거 같아요. 주변에 선물하고 싶은 책입니다^^

자목련 2021-04-12 11:25   좋아요 2 | URL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안 펼쳐져 있는 걸까요.
네, 참 좋았어요. 새파랑 님, 활기찬 한 주 보내세요^^

coolcat329 2021-04-12 11:27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선물했어요. 근데 막상 저는 아직 읽지도 않았네요.

coolcat329 2021-04-12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기 전이라 한 단락만 읽었는데 ‘환한 감동‘을 준다니 기대가 더 큽니다.

자목련 2021-04-12 11:29   좋아요 3 | URL
쿨캣 님, 천천히 읽어도 좋아요. 좋은 책은 언제 읽어도 좋으니까요!

레삭매냐 2021-04-12 1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시구로 선생이나 이창래 선생 같은
분들이 계속해서 디스토피아 미래에 대한
소설들을 쓰는 걸 보면, 그 미래가 정말
가까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책은 가을 쯤 다시 한 번 읽어 볼까 싶습니다.

자목련 2021-04-13 15:33   좋아요 0 | URL
언제부턴가 소설이 현실보다 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때로 소설 읽기가 두렵기도 하고요. ㅎ
 
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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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흑에서 왔다.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영원이란 무형의 형태 테두리 갇힌 암흑이 나의 근원인 셈이다. 방향성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홀로 그곳을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7쪽)


지독하게 슬픈 문장이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암흑이 근원이라는 걸 말하는 생은 얼마나 외로울까. 감히 내 맘대로 짐작할 수 없지만 문장 그대로 읽노라면 너무 슬퍼진다. 온통 어둠뿐인 세상, 혼자라는 막연한 인지, 그리고 여기 있다는 존재의 무력감.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까.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야 하는 게 생이라지만 한없는 쓸쓸함에 무너질 것만 같다.


조해진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끝에 정체성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존재의 위로, 혹은 나도 다르지 않다는 이해의 몸짓이라고 할까. 『단순한 진심』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어떤 마음들, 그 삶에 개입할 수 있는 맨 처음의 마음은 어떻게 생성되는 것일까. 이 소설은 단편 「문주」에서 시작되었지만 조해진의 말대로 그것과는 전혀 다른 소설이다.


35년 전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극작가 화자인 ‘나’는 자신의 이름을 찾아 한국에 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는 서영의 메일이 그 시작이었다. 뱃속에 아이(우주)를 품지 않았더라면, ‘이름은 집’이라는 서영의 메일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한국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나’이면서 ‘문주’인 그녀는 한국에서 그녀가 알지 못했던 자신의 삶의 기억을 하나씩 마주한다.


처음에 소설을 읽으면서 철로에서 그녀를 구해준 기관사를 찾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다. 그녀에게 ‘문주’란 이름을 지어준 사람, 그 사람이 들려주는 어떤 이야기를 말이다. ‘문주’란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나’가 서영의 집에서 머물면서 건물 1층 복희식당에서 주인 할머니와의 관계. 할머니를 찾는 폐지 줍는 노파.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흐르는 어떤 증오와 연민들. 그들이 지나온 시간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처음에 ‘나’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목격자이자 이방인의 관찰자에 불과했다.


자신을 구해준 기관사의 현재를 찾아가는 과정과 ‘나’가 마주하는 주변의 일상들을 통해 알게 되는 어떤 삶들. 한 번씩 밥을 먹으면서 서로를 관찰하듯 나누는 복희식당에서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 복희란 이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슬프고도 애틋하다. 조금씩 그녀의 삶에 다가가는 ‘나’는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그녀를 돌보고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험난하고도 가여운 삶을 알게 된 것이다. 주인 할머니의 이름이 아닌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이름, 그녀가 살리고 싶었던 이름이었다. 식당 주인인 ‘추연희 ’할머니 앞에 나타난 ‘백복순’과 그녀의 딸 ‘백복희’. 타인이었던 이들이 만나 조금씩 서로의 삶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일, 그것을 단순히 인연이나 운명이란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그 셋은 하나였고 하나였기에 복희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결정이 이별이었다.


백복희로 태어났지만 스테파니로 살아온, 나와 넘버 원 닮은 여자. 우리의 닮은 구석은 눈매나 입매만은 아닐 터였다. 삶의 어느 장면에서 우리는 같은 자세로,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하며 투명한 벽 앞에서 있곤 했을 것이다.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 생애의 접힌 모서리가 절박하게 닮은 사람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20쪽)


연희가 ‘나’를 통해 보았던 모습은 복희였을 것이다. 살아내기 위해 전부를 걸어야 했던 시대의 여성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 말이다. 부디 더 나은 세상에서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게 전부였다.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복희란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겠지만 복희란 이름을 간직해 주기를 바랐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가 나나였지만 문주란 이름을 찾아 한국에 온 것과 같은 마음으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근원이 되는 게 이름일까. 그 이름을 부르는 이가 없다면 나는 사라지는 것일까. 이름에 담긴 사랑과 애정,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보살핌을 받는다는 안도. 그러니 나나로 불렸던 시간도 충만했지만 그 이전, 기억 저편에 자신을 문주로 부르며 돌봐준 이들을 생각하면 또 다른 안온함이 있다. 그래서 ‘나’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생모, 그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그녀가 전하는 말이 전하는 힘은 세다.


나는 이렇게 실아 있습니다. (252쪽)


조해진의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단편 「문주」의 다른 이야기라 더욱 궁금했다. 조해진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 스스로를 돌보며 연대하는 여성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이야기. 한 사람의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수 있는지 가만히 생각한다. 이름을 잊은 채 살아간 수많은 연희와 복순이 살아온 삶을 생각한다.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어떤 생을 알았든 무조건적인 환대 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저마다 고유한 이름에  담긴 측정할 수 없는 크기의 사랑을 느낀다. 그 사랑이 전해져 마음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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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4-05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읽은 이 소설 참 좋았어요. 저도 ˝나는 암흑에서 왔다˝라는 첫 문장 인상적이었어요.

자목련 2021-04-06 16:11   좋아요 1 | URL
아프면서도 따뜻한 연대가 느껴졌어요. 고단한 여성의 삶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이가 여성이라서 더욱 좋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