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재미가 먼저다 - 나무 말고 숲을 보게 하는 과학 상식
장인수 지음 / 포르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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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떠올리면 지구과학, 물리, 화학으로 머리가 아팠던 수업 시간과 동시에 알코올램프 수업을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따라온다. 무조건 암기를 했던 시절, 시험만 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니 과학을 좋아하거나 어떤 원리를 이해하고 과학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과학이 우리 일상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과학으로 우리가 어떤 이로움을 얻고 있는지 『과학, 재미가 먼저다』를 통해 배우고 알게 되었다.


저자 장인수는 12년 동안 EBS에서 강의를 해온 물리 선생님으로 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강사다. 그러니 이 책은 과학이 어렵다는 편견을 지닌 학생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학습용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라는 과목을 좀 더 쉽고 좀 더 재미있게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까. 그런 점에서 ‘나무 말고 숲을 보게 하는 과학 상식’이라는 부제처럼 일반 상식을 채우기에도 적절하다. 나 같은 독자에게는 배움이라는 측면보다는 그렇구나 정도로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 사실 배워야 하는 공부라고 생각하면 뭐든 다 어렵지 않은가.


책은 인체의 과학, 일상 속의 과학, 길 위의 과학, 우주의 과학, 네 가지 주제로 과학을 알려준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고 그것의 원리를 알려주고 현재 어떻게 발전하여 우리 생활에 적용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설명에 있어 그림이나 표를 통해 빠른 이해를 돕는다. 빛의 반사와 굴절을 통해 무지개가 생기는 원리를 배우고 하늘이 왜 파란색인지(사실,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을 알려준다.


귀가 아파서 고생한 기억 때문인지 소리에 대한 부분은 집중해서 읽었다. 소리를 듣는 귀의 구조를 보면서 귀지가 고막 쪽으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그래서 자꾸 귀지를 파면 혼을 냈구나 싶었다. 현대 사회에서 소음은 피할 수 없지만 듣기 좋은 잡음인 백색소음이 인기를 끄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TV소리를 크게 듣게 되는 현상이 노화로 인한 달팽이관의 청세포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니 서글퍼지기도 했다. 10대 청소년이 들을 수 있는 음역대와 40대 어른들이 들을 수 있는 음역대가 다르다는 설명은 세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국의 쇼핑몰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불량 청소년을 내보내기 위해 40~50대를 위한 소리를 발생시켰다는 사례는 인상적이다. 혼을 내거나 꾸짖는 대신 연령대에 따라 가청 진동수가 다르다는 원리를 적용해 멋지게 해결했으니까.


일상 속의 과학은 훨씬 재미있고 흥미롭다. 에어컨이나 히터의 위치가 밀도와 연관되었다는 사실, 삼투압 현상을 이용해 김장을 담든 선조의 지혜와 물속에 오랜 시간 손을 담그면 쭈글쭈글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그럼 바닷물에 사는 동물은 삼투 현상으로 배추처럼 절여질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호기심을 유발하고 재미를 불러오는 것, 그게 과학을 배우는 즐거움이라는걸.


게, 홍합, 해파리, 상어, 가오리 같은 동물들은 바닷물의 농도와 자기 몸의 농도를 같게 만든다. 몸과 바닷물의 농도가 같으면 물이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민물에 사는 물고기는 삼투 현상으로 물이 계속 몸으로 들어온다. 따라서 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많은 양의 오줌으로 물을 배출하면서 몸의 농도를 조절한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가서 생활하다가 산란기가 되면 다시 강으로 돌아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강에서 생활할 때와 바다에서 생활할 때 삼투 현상에 대비하도록 본능적으로 진화해 왔다. 삼투 현상을 대비하는 물고기에게서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99쪽)


무선 이어폰을 블루투스에 연결해 음악을 듣는 일상은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파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저자는 하나의 원리를 먼저 설명하는 대신 일상 속 과학으로 접근해 관심을 유도한다. 이런 강의 형식이 인기의 요인이 아닐까 싶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당연하지만 자연과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중요하다. 환경친화적이라고 말하는 자원이 과연 그럴까. 이제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풍력 발전소의 설치, 그에 따른 소음으로 고통받는 주민,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했지만 나중에 폐기되는 패널은 중금속 덩어리로 남는 일은 대책이 필요하다. 버려지는 것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매일 마시는 커피를 활용한 사례는 많은 이들이 기억하면 좋겠다.


커피 한 잔을 내린 뒤 남은 원두 찌꺼기는 그대로 매장할 경우, 찌꺼기가 썩으며 온실가스의 일종인 메탄가스를 발생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지렁이를 비롯한 토양 생물들이 카페인에 중독되어 고통받는다. 이 원두 찌꺼기의 성분인 목질 섬유소를 버섯에 배양할 때 이용하면, 버섯이 그 섬유소를 먹고 자랄 뿐 아니라 커피 속 카페인에 자극을 받아 더 빨리 성장한다. 이렇게 자연 물질들의 특성을 알고 잘 활용한다면, 굳이 새로운 친환경 자원을 개발하지 않아도 환경친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165쪽)


과학이 무진장 어려운 것이었다면 이 책을 읽고 나면 한 결 쉽게 다가올 것이다. 무진장 쉬운 과학 이야기라고 감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어렵구나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이 무조건 복잡하고 재미없는 과목이 아니라는 사실은 확인하게 될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추천하는 책,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배우고 공부하면 더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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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윤미연 옮김 / 망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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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가 찾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면 수락할 이가 얼마나 될까? 수상한 사람이라고 신고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상대가 작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아무런 부담 없이 나의 고민이나 걱정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게 인간이다. 익명성 때문에 뭐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시판이 인기 있는 것처럼.


프랑스 소설 『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시작은 조금 엉뚱하다. 영감과 열정을 잃어버린 작가가 ‘나’는 거리로 나가 맨 처음 마주치는 사람을 주제로 책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평범한 할머니였다. 놀랍게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머니 마들렌은 나의 제안을 수락한다. 42년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세상이란 이런 곳이다. 근처에 살더라도 얼굴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우연성이야말로 특별하다. 마들렌이 남편의 이야기를 시작할 즈음 둘째 딸 ‘발레리’가 등장한다. 발레리는 마들렌에게 치매 증상이 있다고 알려주며 나와의 인터뷰가 무리가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소설은 이제 마들렌과 ‘나’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 전체로 확대된다. 발레리가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발레리, 그녀의 남편 ‘파트릭’, 십 대의 딸 ‘룰라’와 아들 ‘제레미’까지.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이 가족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들이다. 너무 흔한 ‘마르탱’이라니 성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느 집이나 그들만의 사정이 있고 비밀이 있듯 발레리의 가족도 그러했다. 가족의 이야기를 써줄 전기작가의 등장으로 호들갑을 떨지만 나에게 들려주는 건 그동안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이다.


신기한 건 그들과 ‘나’의 만남이 별거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르탱네 가족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차마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거다. 그건 ‘나’ 도 마찬가지로 발레리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동거했던 여자친구와의 만남과 이별. 계획에 없던 말들을 하게 된다. 오롯이 소설을 전제로 만났지만 조금씩 그들의 가족에게 물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권태와 피로에 진력이 난 한 가정에 스며들어 갔다. 이 가족은 정해진 루틴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함께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부딪히는 이리 없이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탑승자들. 아파트의 이런 비극이 흔한 것이라 해도, 흔하다고 해서 고통스럽지 않다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삶은 권태와 피로를 느끼는 기계장치에 불과할까? (52쪽)


아무런 설명 없이 떠나간 첫사랑을 만나고 싶은 할머니 마들렌, 남편 파트릭과 시들해진 관계를 고민하고 이별을 결심한 발레리, 직장 상사와의 갈등과 가족 간의 소통 부재로 힘든 파트릭, 모든 관심이 SNS와 축구인 제레미, 가족이 과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룰라. 어쩌다 보니 ‘나’는 마르탱네 사람들의 사람들의 모든 걸 알게 되었다. 룰라가 사귀는 남학생을 만나게 되고, 발레리의 생각도 모르고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파트릭, ‘나’는 둘 사이에서 무슨 역할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한다.


나는 마르탱 가족에게 가능한 한 감정 이입되지 않으려 노력하며서 그들을 관찰해야 했다. 약간 냉담하게, 임상적으로, 일종의 서사적 거기를 유지하면서.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인물을 유기적으로 느끼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으니까. (145쪽)


‘나’의 노력으로 뉴욕에 살고 있는 첫사랑과 연락이 닿아 그를 만나러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소설 때문에 늦은 시간 발레리와의 만남은 파트릭을 자극했고, 그 일로 둘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알게 되었다. 파트릭에게 발레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말이다. 갑질하는 사장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복수하며 사직한 파트릭을 발레리는 응원했고 가족은 더욱 단단해진다. 결말에 이를수록 더욱 흥미진진하다. 마치 우리네 생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며 삶이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듯하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소설이다. 거기다 누구나 한 번씩 빠지는 매너리즘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 쓰기의 매너리즘에 빠진 작가, 부부 사이의 권태기, 직장 생활의 위기, 성장하는 자녀와 느끼는 세대 차이나 소통의 부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고 느끼는 감정들이다.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우리 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이니 이 소설은 알려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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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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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는 아무도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의논할 대상이 없다는 건 얼마나 막막한 일인가. 주변에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 말을 들어줄 이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그 삶은 스스로 무너진다. 그건 어른의 삶에 한정된 게 아니다. 어떤 삶을 살든, 어느 나이를 살든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간과하는 것도 그것이다. 그런 마음은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사실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는 막연한 말은 무책임하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수상작 『꼬리와 파도』은 그런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비겁한 어른, 상처를 지닌 아이를 이용하는 몹쓸 어른, 지위를 이용해 폭력을 일삼는 어른, 그들을 상대로 연대하며 단단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대견하면서도 아프다. 주변에 의논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게 안타깝고 부끄럽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현장과 실태를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마주한다. 그들만의 위계라 여기며 여전히 자행되는 운동부의 모습, 성적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 무자비한 훈련을 강행하는 코치, 고교 진학을 위해 약자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 가운데 여자 중학교 축구 선수 무경이 있었다. 무경은 축구가 좋았고 친구 지선과 함께 운동하며 우승을 꿈꾸고 국가대표가 목표였다. 그런데 지선이 어려움을 당했다. 합숙 훈련소에서 남학생에게 추행을 당하는 순간 도와준 코치가 그것을 빌미로 지선을 괴롭혔다. 무경은 참을 수 없었고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지선을 향한 공격과 상처뿐이었다.


지선은 학교를 그만두고 무경은 전학을 왔다. 고등학생이 된 무경은 축구 선수 대신 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 태권도 도장을 다닌다. 그곳에서 중학생 예찬을 보게 된다. 예찬은 도장에서 약한 아이였다. 태권도를 잘한다는 이유로 띠가 다르다는 이유로 대련을 핑계로 폭행이 이어졌다. 그 중심엔 고등학생 황동수가 있었다. 예찬은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했다. 그런 예찬에게 무경은 뭔가 달랐다. 태권도를 잘 하면서도 상대를 무시하지 않았고 자신을 도와줬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고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러데 하계 훈련을 다녀온 후 무경과 동수 사이가 심각해 보였다.


동수는 무경의 선배 서연과 사귀면서 무경에게 호감을 느꼈다. 무경은 아니었다. 무경의 자취 집에 동수가 찾아오고 그 광경을 예찬과 서연이 목격했다. 동수는 자신을 좋아하는 서연의 감정을 이용해 폭력을 가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서연은 상담을 신청하고 상담교사에게 의지하지만 상담교사는 이성적인 호감을 표한다. 서연의 경우도 무경의 친구 지선과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도 교사로 존재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학교의 위신이 중요했고 서연의 책임으로 돌렸다.


서연은 현정을 통해 무경을 찾아왔다. 현정은 서연과 같은 학년으로 무경과 친하게 지냈다. 현경에게도 지선과 같은 친구 미란이 있었다. 어디서든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서연은 무경의 축구 선수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퍼트린 일을 사과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로 한다. 작은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이어 만든 리본은 파도가 되었다. 그 리본에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어른들은 감추려고 급급했지만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세상에 내보였다.


선생이라는 위치로 행한 폭력, 농담을 빙자한 성추행과 언어폭력, 휴직으로 모면한 사과,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현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가득하다. 작가는 현직 교사의 시선으로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문제를 축소시키고 자신의 안위만 염려하는 학교, 그 안에서 아이들을 대변하는 선생님을 향한 질책과 부당한 대우까지. 학교라는 공간은 사회로 확장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사회 곳곳에 약자를 향한 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의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더욱 가혹한 사회. 폭력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도움을 구하는 이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말이다. 더 이상 피해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곁에 우리가 있다는 걸, 연대를 통해 치유하고 성장하는 아름다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다.


우리가 지켜 줄게. 혼자서는 못하지만 우리가 되어, 너를 지켜 줄게.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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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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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미래를 경험할까? 미래를 산다는 게 아니라 경험한다는 것, 도달할 미래에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커서다. 100세 시대가 되었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미래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우주여행,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 보편화된 AI의 시대, 로봇이 일상화된 미래에서 나는 얼마나 그들과 동화할 수 있을까. 배명훈의 SF 소설 단편소설집 『미래과거시제』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배명훈의 그려내는 미래 시대는 기발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나의 상상력과 이해력의 한계가 있다는 말과 같다.


9편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면서도 정말 먼 미래에 먼저 도착한 작가가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표제작 「미래과거시제」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살아가는 인물과 만나는 설정이라고 할까. 아니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는커녕 자꾸면 되돌이표처럼 돌아가는 읽기를 반복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가는 게 우리가 아는 삶이지만 그렇지 않은 삶이 존재한다는 것.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사는 ‘은신’과 보통의 ‘은경’이 만나 연인이 되었다 헤어지는 과정 속에서 ‘은신’의 말에 담긴 비밀. 그것을 ‘은경’이 알아내면서 그들은 다시 만나는 흥미로운 소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배명훈은 언어야말로 시간에 따라 가장 빠르게 변하고 시대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과거시제」에서 다룬 것처럼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독자를 혼란으로 초대한다. 단편을 처음 읽을 때 오타나 편집에서 잘못된 게 아닐까 싶었다. 미래의 대학 역사학과 격리 실습실이 등장하는데 그곳에는 과거 코로나로 인한 기억으로 비말에 의해 전파되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 'ㅊ, ㅋ, ㅌ, ㅍ'를 사용하지 않는다. 즉 이 소설에는 'ㅊ, ㅋ, ㅌ, ㅍ, ㅉ, ㄸ, ㅃ' 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발상과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그뿐 아니다. 판소리 형태로 풀어낸 SF 「임시 조종사」도 있다. 오직 배명훈만이 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소설이라 놀라고 감탄한다.


가장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고 경험할 수 있는 「수요곡선의 수호자」에서는 심해도시 건설 현장이 등장한다. ‘유희’는 명목상 관리 감독에 불과하다. 크고 작은 로봇들이 일하며 실제로 현장을 지휘 감독하는 것은 회사 AI였다. 그곳에서 ‘유희’가 발견한 ‘마사로’는 오직 소비를 위한 로봇이다. ‘마사로’ 고래상어 감상을 하러 바다 밑으로 떠났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유희’에게 발견되었다. 인간이 아닌 로봇이 등장한 가장 최초의 목적은 대량 생산을 떠올렸을 때 미래에 이런 일을 하는 로봇의 등장도 가능하겠다. 예술, 창작도 가능한 ‘ChatGPT’의 등장을 생각할 때 마사로 같은 로봇의 소비로 작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인간 본연의 창작활동이 사라진 미래는 나에게는 아찔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우주선과 외계인의 등장이 일상이 된 미래를 생각하면 「인류의 대변자」에서 우주선이 한국의 서울, 가장 높은 빌딩은 꼭대기에 정박하는 설정은 친근할 정도다. 재미있는 건 외계인을 응대하는 이들의 방식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들. 배명훈의 외계인은 변신이 자유롭고 다리가 셋, 머리가 하나, 눈이 세 개, 팔이 여섯이 모습이다. 하긴 외계인의 모습을 규정하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 외화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다. 아무튼 이 소설에서 빵 터졌는데 특정한 날, 비행 금지를 요청하는 부분이다. 우주선, 외계인이 등장하는 시대에도 변함없는 수능이라니. 배명훈의 센스라고 할까.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하아, 국가에서 관리하는 대학 입시 기본 시험입니다. 크게 다섯 과목으로 나눠서 보는데 3교시가 영어에요. 시작하자마자 듣기 평가가 있는데 전국적으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조건으로 녹음된 문제를 틀어야 해요. (…) 외계인도 외국인도 예외는 없습니다.” (193~194쪽, 「인류의 대변자」)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을 배경으로 한 「접히는 신들」은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준 단편이다. 목성, 화성, 지구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미래에서 외계인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종이처럼 2차원으로 펼쳐서 보낸 다음 목적지에서 3차원으로 접는 방법으로 이동했을 거라는 설정. 미래에는 외계인 발굴도 고대 유물에 속할지도 모른다. 외계인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자기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을까. 누군가가 찾아내 맥박을 타진할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홀로 고독했을까. 먼지에 파묻힌 자신의 디자인을 찾아내 하나하나 고이 접어 3차원 공간에 되살려줄 그 귀한 손을 만나게 될 때까지. (162쪽, 「접히는 신들」)


처음 소설을 읽을 때는 표지를 자세히 보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보니 소설의 고스란히 담긴 듯했다. 표지부터 이미 『미래과거시제』가 시작된 느낌이라고 할까. 각 단편마다 작가노트가 있어 소설에 대한 접근이 수월한 점이 있지만 쉽지 않은 책이었다. 『미래과거시제』에 대해 단순히 재미의 유무로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배명훈이 꿈꾸고 추구하는 미래가 있다고 할까. 내게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궁금하고 기대되는 미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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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03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명훈 작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맛집 폭격>이었는데 그게
벌써 9년 전이네요. 놀라워라.

소설집이군요. 낭중에 도서관에
서 만나 보는 것으로.

자목련 2023-04-04 09:12   좋아요 1 | URL
배명훈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빠르고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ㅎ
 
너에게 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야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이경옥 옮김 / 빚은책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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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랑에 빠진다는 말들을 하지만 나는 사랑이 온다고 생각해.”

“온다…… 고요?”

“응, 맘대로 오지. ‘우와아 왔다!’하는 사랑도 있고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와 있는 사랑도 있어. 오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야. 불가항력이라서 그 사람이 아닌 사랑에 휘둘리는 거지.” (「금붕어와 물총새」, 45쪽)


어떤 책은 한 구절이나 한 문장이 전부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짐작했겠지만 2022년 일본 서점대상 2위 작품인 아오야만 미치고의 단편소설 『너에게 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야』는 제목이 그렇다. 각각의 단편소설이지만 하나로 이어진 연작소설로 그 중심엔 하나의 초상화가 있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 혹은 작은 단역으로 등장하는 초상화. 그러니까 초상화에 담긴 사연, 초상화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맞겠다. 청초하고 싱그러운 초상화를 상상하며 읽는 것도 좋다.


긴 머리 여자의 초상화다. 빨강과 파랑 물감만 사용해서 그렸는데 머리카락의 음영이 보라색 그러데이션으로 되어 있다. 사르륵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표현이 훌륭했다. 빨간 옷, 가슴팍에는 파란 새 브로치. (118쪽)


초상화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단편 「금붕어와 물총새」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그 묘한 떨림과 설렘의 감정이 가득하다. 교환학생으로 멜버른에 온 ‘레이’는 한 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에서 호주로 온 대학생 ‘부’와 연애를 시작한다. 레이가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한이 정해진 연애를 시작한다. 말이 기한부 연애지 그게 가능할까. 부는 레이가 떠나기 전 자신이 아는 화가의 모델을 부탁한다. 정성껏 차려입은 레이와 그를 그리는 화가, 그들을 바라보는 부. 레이와 부의 연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 번째 단편 「도쿄 타워와 아트센터」는 무명화가의 그림에 반해 그림이 아닌 액자를 만드는 액자 공방에 취직한 ‘소라치’의 이야기다. 공산품 액자가 아닌 예술 작품을 아름답게 뒷받침하는 액자를 만드는 일을 소라치는 아직 해보지 못했다. 거래하는 화랑에서 전시를 위한 액자를 주문했고 작품을 확인하는 순간 소라치는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사장에게 말한다. 대학시절 여행으로 다녀온 멜버른에서 본 화가의 그림이었다. 짐작했겠지만 바로 그 〈에스키스〉란 제목의 초상화였다. 그림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액자를 만드는 일, 자신이 원했던 순간과 마주한 소라치.


이쯤 되면 세 번째 「토마토 주스와 버터플라이피」에서 초상화는 어떻게 등장할까 궁금해질 것이다. 이 단편은 천재 만화가와 그의 스승이자 경쟁자인 만화가의 이야기로 그 둘이 만나는 카페에 초상화가 걸려있다.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스승은 제자가 지닌 만화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마지막 네 번째 단편 「빨간 귀신과 파란 귀신」은 오래된 연인이 헤어진 후 1년 만에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다. 도쿄의 수입 잡화점에서 일하는 ‘나’는 영국 출장을 준비하다 여권을 연인과 살던 집에 놓고 온 걸 알게 된다. 아직 그 집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연락을 한다. 그는 그 집에 살고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찾으러 간다. 둘이 살던 공간은 그대로였다. 고양이가 있는 것만 빼면. 그런데 ‘나’는 이때 공황장애 증상으로 출장 대신 휴가를 얻게 된다. 일 자리를 잃게 될까 두려운 나에게 사장은 건강을 챙기라고 말한다. 쉬고 있는 동안 그가 집을 비우게 생겼다면서 고양이를 봐 줄 수 있냐고 부탁한다. 고양이와 그 집에서 지내면서 그를 떠나온 게 바로 자신이라는 걸 확인한다. 나에게 다시 사랑이 온 것이라고 할까. 처음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전체를 관통하는 건 초상화라 할 수 있지만, 한 편 한편이 경쾌하고 맑은 수채화처럼 읽힌다. 연애와 사랑뿐 아니라, 각자의 일과 소중하게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따뜻하고 담백한 이야기. 숨은 그림 찾기처럼, 보물 찾기처럼 숨겨진 그림과 연결된 사람들을 발견하는 순간 작은 탄성이 터진다. 우리네 보통의 삶에서 사랑은 어떻게 특별하게 존재하는 것일까. 나의 사랑은 지켜지고 있는가. 가만히 살아가는 일상의 기쁨을 생각한다. 주변을 돌아보고 나를 둘러싼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보드랍고 따뜻한 봄 햇살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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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3-03-3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읽고 기록해 둡니다. ^^
사람 plus 떨림(설렘) => 사랑
다가오는 사람한테 떨림이 있으면 사랑이 오고
없으면 사람만 오는 것 같아요. ^^;

자목련 2023-03-31 08:30   좋아요 0 | URL
떨림은 결국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니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 오는 게 아닐까 싶은...
아, 잘 모르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