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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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도 사랑과 같아서 친구 사이에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발생한다. 친구를 닮고 싶은 마음, 나보다 다른 이랑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질투를 한다. 선택을 해야 할 때 내 의견을 지지하고 따라주기를 바란다. 청소년기의 우정은 더욱 그러하다. 가족과 부모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공유하는 친구는 막대한 힘을 지닌 존재다. 우정을 테마로 한 『함께 걷는 소설』에서 백수린, 이유리, 강석희, 김지연, 천선란, 김사과, 김혜진은 각양각색의 우정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작가, 끌리는 제목의 단편을 먼저 읽어도 좋다. 백수린, 이유리, 김지연, 김사과의 단편을 다시 읽으면서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마음을 만났다. 친구가 전부였던 시절,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싶었던 마음 말이다.


백수린의 「고요한 사건」은 십 대에게 친구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잘 보여준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온 ‘나’는 ‘해지’와 ‘무호’와 보냈던 시절을 회상한다. 어디에 사는지, 공부를 잘하는지 구분하여 친구들이 갈라졌다. 나는 재개발 주택에 살았지만 성적이 좋아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같은 동네의 해지와 무호뿐이었다. 무호와 해지의 관계는 그들과 나의 관계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십 대의 우정은 영원할 거라 믿지만 시절 인연처럼 한 시절의 우정으로 끝나기도 한다.


해지에게 나는 그저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당시 나를 때때로 슬프게 했다. (「고요한 사건」, 26쪽)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말이다. 김사과의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에서 ‘이수영’은 대학에서 ‘한비’를 만난다. 평범한 이수영과 달리 한비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수영은 한비가 이끄는 세계에 매혹된다. 수영은 한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한비에게 수영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수영은 둘 사이의 관계가 우정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와 다르게 나와 닮은 부분에 끌려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강석희의 「우따」에서 프랑스 파리의 명문 학교에서 만난 ‘나’와 ‘우따’는 인종차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한국에서 온 나와 아프리카 출신인 우따. 대놓고 백인 학생들이 무시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교묘한 차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따와의 만남, 우따가 일으킨 사건은 나를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현실과 타협하고 불의를 외면하려 할 때 우따의 편지를 읽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나간다.


더 나은 무엇이 되자. 그때 만나자. (「우따」, 98쪽)


친구는 이렇게 중요하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만나는 일은 어렵고 좋은 친구를 두었다면 성공한 거라 말하는 것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는 일만큼 좋은 친구가 되는 일은 어렵고 중요하다.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잘못된 것을 고쳐주고 언제 어디든 함께 갈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는 존재도 친구뿐이다. 이유리의 「치즈 달과 비스코티」 속 돌과 대화하는 ‘나’와 애니메이션 <월리스와 그로밋>을 좋아하는 ‘쿠커’는 그런 친구다. 남들이 뭐라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일, 그게 진짜 우정이라고.

김혜진의 「축복을 비는 마음」은 그런 공감과 연대로 이어진다. 어른의 우정에 대한 것이라고 할까. 10대, 20대를 지나 맺는 관계는 일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설 속 ‘인선’과 ‘경옥’도 그러했다. 청소 일을 하는 ‘인선’은 신입 ‘경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인선은 그냥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경옥은 따지듯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이상한 건 경옥의 말을 인선이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경옥이 건넨 말 때문이라는 것을 인선은 나중에 알았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고, 듣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그 말을 자신이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한 번쯤 그런 말을 해 주길 몹시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누구도 그런 다정한 말을 건넨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된 거였다. (「축복을 비는 마음」, 234쪽)


일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하는 말이나 추가 수당에 대해 언급하는 일, 인선이 한 번도 듣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나를 인정하고 응원하고 격려하며 부당한 일에 대해 함께 나서는 이가 친구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우정이 아름다운 연대로 확장된다는 걸 말하는 소설이었다. 친구가 곁에 있어 든든하다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또래가 아니어도 성별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공통 관심사 하나로 우리는 친구가 된다. 어떤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어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존재. 『함께 걷는 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이다. 나도 그들에게 좋은 친구이었으면 한다. 우리들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살아가자는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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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5-2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은 제게 너무나 배울점 많고 다정하신 알라딘 친구! 자목련님을 더 소중히 여기겠어요 이미 소중하지만....😍

자목련 2023-05-23 10:40   좋아요 0 | URL
은오 님, 더 다정한 자목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서괭 2023-05-2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군요! 백수린 작가 장편 출간되었던데 자목련님이 곧 읽고 리뷰 써주시지 않을지☺️

자목련 2023-05-23 10:41   좋아요 1 | URL
이미 출판된 책 가운데 친구를 소재로 한 단편을 골라 엮은 테마단편집이에요.
음,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우선 책을 주문하고요^^
 
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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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대를 살다 보면 위인의 등장을 기대한다. 새로운 기운을 불러올 존재,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열어줄 거라 믿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우상이 탄생하는 배경이라고 할까. 그러나 대중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한순간 매몰차게 돌아서기도 한다. 처음 만나는 이탈리아 작가 알도 팔라체스키의 『연기 인간』를 통해 대중의 심리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확인한다.


제목인 『연기 인간』에서 무엇을 상상하는가? 나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존재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상징적 의미로 말이다. 하지만 소설엔 진짜 연기 인간이 등장한다. 33년 동안 굴뚝에 있다가 세 명의 노파가 불을 피우면서 생겨난 존재다. 세 명의 할머니 페나(고통), 레테(그물), 라마(창)의 이름을 따서 ‘페레라’라 불린다. 세상의 모든 관심은 그에게 향한다. 온몸이 연기로 이루어진 인간,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사람들은 단순하고 솔직한 그와 대화를 원하고 왕의 초대를 받기에 이르고 법전 집필이라는 임무까지 맡긴다.


“나는…… 나는…… 아주 가벼워요. 나는 아주 가벼운 사람입니다.” (11쪽)


왕과 만나기 전 그를 찾아온 이들은 그들 칭송하기에 바쁘다. 시인, 화가, 박사, 사진가, 대주교와 대화를 나누는 연기 인간은 자신은 연기로 되어 있는 가벼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대화체로 이뤄진 독특한 형식을 지닌다.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무대에 오른 연기 인간과 그를 보려고 모여든 관객들, 그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그를 숭배하는 격이다. 굴뚝에서 그를 꺼낸 세 노파만이 아는 게 아닐까.


유명 인사와의 만남에 이어 귀부인들의 다과회에서 그는 사랑, 시기, 열정, 질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귀부인 각자가 어떤 삶에 대한 고해성사 같은 것이다. 대중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정의하고 기뻐한다. 연기 인간과 나누는 대화는 철학적이고 분위기는 신비롭다. 이런 대화를 보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람들은 인생의 가장 나쁜 순간에 죽습니까, 아니면 죽음이 인생의 가장 나쁜 순간입니까?” (145쪽)


소설 속에는 이처럼 존재, 죽음, 사랑, 자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등장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단 하나의 사랑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며, 삶이라는 형태가 하나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 연기 인간을 따르는 군중의 모습은 마치 예수를 떠올리기에 충분한다. 그가 굴뚝에서 보낸 시간이 33년이라는 걸 기억하자. 그러나 예수의 제자가 그를 부정했던 것처럼 사람들도 페럴라를 부인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궁정의 하인장인 ‘알로로’가 페럴라처럼 되려고 불을 질러 죽은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페럴라 때문이라고 믿는 딸의 울부짖음에 시민들은 동요한다. 페럴라를 숭배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를 비난하고 매도하기에 바쁘다.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여 죄를 벌하라 말한다. 그들은 페럴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환호하던 이들이다. 재판에서 그들은 페럴라가 협잡꾼, 경멸스러운, 추악하고, 무능한, 무덤에서 꺼낸 시체라고 증언한다. 페럴라의 변호는 단호하다.


“나는 가볍습니다.” (253쪽)


흥미로운 소재와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1911년에 출간된 이 실험적인 소설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를 완벽하게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대중심리와 잘못된 집단지성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모르는 사이 새로운 연기 인간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닐는지 경각심을 일깨운다. 시대적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등장하는 가짜 신과 그를 맹목적으로 따른 대중의 모습은 닮은 정도가 아니라 똑같지 않은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가. 우리가 놓치는 건 그 모든 게 연기처럼 가벼운 존재로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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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5-13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연기라니.. 반전인데요 ㅋㅋㅋ 당연히 상징일 줄 알았습니다.

자목련 2023-05-15 09:40   좋아요 1 | URL
저도 읽기 전에는 상징이구나 싶었어요. 근데 연기 인간, 여전히 상상은 잘...

책읽는나무 2023-05-13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연기가 그 연기가 아녔어요?ㅋㅋㅋ

자목련 2023-05-15 09:41   좋아요 1 | URL
연기에 대한 저마다의 상상과 해석!

서니데이 2023-05-16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100년 전에 쓴 책이지만, 아주 오래전 이야기 같은 느낌이예요.
세 노파가 불을 질러서 생겨났지만, 그 이전부터 있었던 존재라는 설정처럼요.
잘읽었습니다. 자목련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5-17 09:30   좋아요 1 | URL
왕, 귀족 같은 인물이 등장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예수를 따올리게 한 설정도 그렇고요.
서니데이 님, 즐거운 수요일 보내세요^^
 
모든 열정이 다하고 쏜살 문고
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임슬애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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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들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마주할 때, 자연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때, 생과 사의 순간을 경험할 때가 그렇다. 그러나 곧 잊고 만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며 주어진 일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울며 살아간다. 사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다 또 드는 생각, 사는 게 별거 아닌데 왜 나는 이렇게 사는가?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휩쓸리듯 사는 게 맞나 싶은 거다. 버지니아 울프와 20세기 영국 문단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는 비타 색빌웨스트(근데 나는 왜 처음 듣는 작가인가)의 『모든 열정이 다하고』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소설을 읽는 누군가 말할지도 모른다. 소설 속 레이디 슬레인은 노년이지 않냐고, 아흔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래선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자식들의 편에 설지도 모른다. 무슨 말이냐고? 그러니까 이 소설은 남편이 죽고 아들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다른 지역에서 혼자 지내는 할머니 이야기다. 영국 총리까지 지낸 남편의 장례식이 끝나고 레이디 슬레인은 여섯 명의 자식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싱글은 케이와 이디스를 제외한 나머지 넷은 어머니의 부양과 유산을 셈하며 서로 충돌하다.


레이디 슬레인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30년 전에 본 집과 중개인 이름까지 기억한다며 그 집으로 향한다. 원하던 집을 계약하고 하녀 제누와 단둘이 살기로 한다. 자식들의 방문도 최대한 금지했다. 거대한 저택과 자식들의 돌봄도 거부하는 할머니라니. 이상한 할머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주변을 의식하고 살아가니까. 총리의 아내였던 레이디 슬레인이라면 그 가족들에겐 얼마나 많은 시선이 따라오겠는가.


이제 레이디 슬레인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헌신적인 아내로 여섯 자녀의 어머니와 할머니, 증손자까지 둔 그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남편인 헨리 홀랜드는 좋은 사람이었다. 부모님도 그와 결혼을 원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마음을 말할 수 없었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인도, 중국 등 여러 곳을 다니며 만찬과 파티를 열고 사람들을 만났다. 남편이 사랑의 증표로 끼워주는 반지를 주렁주렁 달고서. 하지만 이제 아니었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과 같이 사는 일도 총리의 부인으로 사는 일도 원하지 않았다. 나만의 공간에서 말이 통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살고 싶었다.


집은 자기만의 생을 지니고 있다. 마치 어디선가 불어온 화합의 숨결이 네모난 벽돌 상자 안으로 흘러들어, 감옥 같은 벽을 무너뜨리고 온 세상에 그 내부를 내보일 때까지 머무는 듯했다. 집이란 아주 사적인 것이었다. (66쪽)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식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숨겨진 탐욕은 진절머리가 났다. 그들을 떠나 런던이 아닌 나만의 집에서 레이디 슬레인이 아닌 ‘데버라’로 살기로 한다. 집주인 ‘벅트라우트’ 씨와 수리를 맡아준 ‘고셔론’ 씨의 방문 만으로 충분했다. 그들과 나누는 작은 대화, 농담은 편안했다. 언제나 자신과 모든 걸 같이하고 걱정하는 든든한 ‘제누’도 함께. 가만히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는 시간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인생은 호수야. 레이디 슬레인은 복숭아 향기가 풍기는 따뜻한 남쪽 벽 아래 앉아서 생각했다. 그 잔잔한 표면 위로 풍기는 따뜻한 벽 아래 앉아서 생각했다. 그 잔잔한 표면 위로 수많은 형체를 반사해 내는 호수, 태양이 금빛으로, 달이 은빛으로 물들이는 호수, 가끔 구름이 어둠을 드리우고 파동이 물결을 이루지만 결국에는 잔잔함을 되찾는 호수. 넘치지 않는 수면. 호수, 즉 인생은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지 않으며 단단하게 압축하기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인의 인생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질문하면서 삶을 압축해 버린다. (126쪽)


새로운 인물 ‘피츠’의 등장도 나쁘지 않았다. 아들 케이의 나이 많은 친구였던 그는 혼자 사는 수집가 노인으로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레이디 슬레인은 처음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 인도에서 만찬에서 본 사람이라는걸, 그때 둘 사이에 떨림이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떠올렸다. 피츠는 레이디 슬레인이 아닌 ‘데버라’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이었다. 내면의 목소리,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 말이다. 둘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던 건 아니다. 은밀한 만남이나 연락조차 없었다. 헨리의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레이디 슬레인으로 살았던 시절은 끝났으니 노신사의 방문과 담소는 즐거웠다. 그 사실을 모르는 케이만이 피츠와의 약속이 줄어드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리고 케이가 목도 피츠의 죽음. 놀라운 건 수많은 소장품을 박물관이 아닌 레이디 슬레인에게 남겼다는 것이다.


남편 헨리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시선과 자식들은 레이디 슬레인을 주목한다. 그 많은 유산을 어떻게 할지 말이다. 하녀 제누도 내심 기대한다. 그 돈이면 마님을 더 잘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디 슬레인은 예술품을 국가에 기증했고 돈은 병원에 기부했다. 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멋진 결정. 피츠 역시 그랬을 거라 레이디 슬레인은 믿었다. 자식과 손주의 방문은 막았지만 증손녀의 소식은 기껍게 받아들였다. 파혼을 하고 자신을 찾아와 음악가가 될 거라는 증손녀와의 대화는 영혼이 통하는 것 같다고 할까. 증손녀도 같은 걸 느꼈다. 증손녀가 떠나고 맞이한 죽음.


100년 전 소설 속 모습이 현재 우리와 다르지 않아 새삼 놀란다. 그러니 『모든 열정이 다하고』는 단순히 노년의 이야기로 말할 수 없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살아오면서 자신만의 방을 가졌는가 묻는다. 타인과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산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설령 너무 늦게 인식하더라도 그 순간을 느끼며 사는 게 인생이라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 독립적이야 할 관계를 생각한다. 성장한 자식의 독립을 인정하듯 부모의 그것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소설 속 레이디 슬레인의 말처럼 인생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인생은 “참 피곤하고, 단편적이고, 고루하고, 허무하지.” (200쪽)라는 걸 깨달으며 그 여정이 끝난다면 다행이다. 피곤하고, 고루하고, 재미없고 허무하지만 각자 인생의 주어진 몫만큼 열정을 다해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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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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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식물에게 말을 건다. 오랜만에 본 화분 속 식물에게 말이다. “안녕, 잘 지냈어?” 그럼 잎사귀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만 같다. 사실 혼자만의 생각이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물을 주고 잎사귀를 매만지는 하나의 의식 같은 것이다. 셸비 반 펠트의 장편소설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을 읽으면서 그 식물들이 생각났다. 식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냐고? 전혀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수족관이 등장한다. 다양한 바다 생물, 그중에서도 똑똑한 문어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문어, 당신이 떠올리는 축구와 문어, 그 문어 말이다.


문어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과 세상, 그리고 상실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 뭔가 재미와 감동이 기대된다면 맞다. 이 소설은 그런 소설이다. 처음부터 대놓고 이렇게 말하면 스포일러겠지만 뭐 당신이 읽지 않는 한 이 감동을 느낄 수 없으니 괜찮다. 그냥 이 소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소웰베이 아쿠아리움의 수조에 갇힌 문어 ‘마셀러스’, 그와 우정을 나누는 아쿠아리움의 70세 청소부 할머니 ‘토바’. 인간과 문어의 우정은 가능한 것일까. 가능하다고 본다. 식물과의 우정도. 참고로 나와 식물 사이의 우정은 조금 더 깊어져야 한다.


토바는 마셀러스가 수조를 탈출하는 걸 알면서 관장에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다시 수조로 들어가게 도와준다. 마셀러스가 수족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심심하고 답답하고, 호기심이 많아서다. 8개의 팔로 흥미로운 것들을 몰래 가져오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마셀러스는 수조 안에서 아쿠아리움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지만 그가 관심을 갖는 이는 오직 토바뿐이다.


바다가 깊숙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런 것들이다. 내가 다시는 탐험할 수 없는 것들.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스니커즈 밑창과 끈, 단추, 복제 열쇠를 모두 챙길 것이다. 전부 다 그녀에게 전해줄 것이다. 그녀의 상실에 위로를 전한다. 이 열쇠를 돌려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155쪽)


토바는 혼자다. 어린 시절 스웨덴에서 미국으로 이주 후 아버지가 지은 집에서 살고 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남편은 암에 걸려 죽었고 그보다 먼저 아들 에릭이 세상을 떠났다. 30년 전, 십 대의 아들 에릭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토바에게는 그랬다. 현재 토바의 삶에는 아무런 희망도 즐거움도 없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동네 친구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마음, 호의와 배려가 조금은 불편하다. 마트를 운영하며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선도 마찬가지다. 아쿠아리움에서 청소를 하는 일, 어린 아들이 올라탔던 동상을 닦는 일, 바다 생물에게 인사를 건네는 반복된 일상을 살아낼 뿐이다.


그러니 하나뿐인 오빠의 죽음에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 오래전 교류가 끊겼고 물건을 챙기러 요양원에 방문할 뿐이다. 그런데 입소 신청서를 쓰고 집을 팔기로 결정한다. 아버지, 남편, 아들의 흔적이 가득한 집을 말이다. 청소를 하다가 팔을 다친 후 집 정리를 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결정한 일이다. 토마에게 더 이상 소웰베이엔 남은 게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토바의 인생에 캐머런이 등장하곤 달라졌다. 캘리포니아에서 생부를 찾아 소웰베이로 온 캐머런. 약물중독의 엄마 대신 이모가 캐머런을 키웠다. 엄마의 돌봄을 기대하기는커녕 연락도 되지 않았다. 서른이 되었지만 일자리도 살 곳도 없다. 여자 친구의 집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대책이라곤 이모에게 받은 엄마의 물건에서 발견한 패물과 졸업 반지와 사진으로 생부를 찾는 것이다. 그 모든 단서가 소웰베이로 오게 만들었다. 캐머런이 생부라 여기는 남자는 부동산 재벌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었지만 소웰베이에서 그를 기다리는 건 외부인에 대한 모든 걸 공유하는 이들이었다.


간신히 얻은 아쿠아리움의 일자리는 힘들고 사정을 알고 도움을 준다는 마트 사장 이선은 간섭이 심하고 선배 청소부 할머니는 잔소리가 많다. 패들 숍을 운영하는 에이버리의 친절은 이상하다. 그 모든 게 자신을 향한 애정이라는 걸 캐머런은 알지 못한다. 이모 외에는 어떤 이에게도 그런 마음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아쿠아리움의 문어 때문에 토바 할머니와 자주 만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문어를 대하는 토바 할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태도.


대체로 나는 구멍을 좋아한다. 내 수조 위에 있는 구멍이 내게 자유를 준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에 생긴 구멍은 싫다. 심장이 세 개인 나와 달리 그녀의 심장은 하나뿐이다. 토바의 심장. 그 구멍이 메워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368쪽)


마셀러스는 캐머런과 토바의 관계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다. 그 둘 사이를 자신이 연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쯤 되면 모두가 짐작했을 것이다. 소설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인생은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일들이 많다. 그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는 순간 삶은 충만해지는 게 아닐까. 너무 늦게 알아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비밀에 다가가는 일에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 절망과 좌절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은 그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따뜻한 소설이다. 명민한 화자는 따뜻함에 신선함과 재미를 더한다. 상실과 상처로 얼룩진 우리네 삶이 어떻게 치유되는지, 그 치유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우리의 대단한 화자 마셀러스는 이미 알고 있는 그것 말이다.


비밀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인간들은 비밀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폭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최악의 의사소통 능력, 그것이 인간이란 종의 특징인 듯하다. 다른 종이라고 훨씬 나은 건 아니지만, 청어조차 자신이 속한 무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며 그에 따라 헤엄쳐 나간다. 그런데 왜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수백만 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걸까? (80쪽)


문어를 생각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최초의 소설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어디서든 문어를 보게 된다면 나도 모르게 인사를 전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 한동안은 문어숙회의 맛은 잊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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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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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거창한 질문인가. 생각해 보면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향하는 쪽의 끝에는 행복과 구원이 있다. 오롯이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이에게 세상과 다른 사람의 삶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가족, 이웃, 사회와 적당히 어울리며 살아야 한다. 사는 건 이렇게 어렵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에 등장하는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가 바라는 삶도 그게 다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지만 일요일에 늦잠을 자고 목욕탕에 다녀오고 동네를 산책하는 일만으로 충분했다. 바느질하는 아내와 한가롭게 누워 잡지를 읽는 남편의 모습. 비 오는 출근길엔 남편 소스케의 구멍 난 구두를 보며 하나 장만해야 한다고 거드는 아내. 모든 게 평화로워 보인다.


소스케의 일상은 단조롭다. 출근과 퇴근 후 오요네와 저녁 식사와 짧은 대화. 부족한 게 없는 듯 보이지만 허전함이 느껴진다. 주인집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에 허전함의 원인이 바로 아이였다는 걸 알았다. 소설 초반에 아이에 대한 계획이나 언급이 없어 혼자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복선처럼 깔리는 작은 집과의 문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소스케의 태도는 『산시로』와 『태풍』 속 등장인물과 비슷하다. 어떤 다급함이나 간절함은 찾기가 어렵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다르게 흘러가는 게 삶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고요한 풍경 같았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부부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소스케의 남동생 고로쿠의 거처였다. 고로쿠는 아버지의 죽음 후 숙부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집과 유산을 숙부가 관리했고 소스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숙부가 죽었고 숙모는 더 이상 고로쿠의 학비를 지원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고로쿠는 형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기를 바랐지만 소스케는 차일피일 작은집 방문을 미루고 있었다. 고로쿠가 자신처럼 대학을 그만두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딱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오요네도 다르지 않았다. 소스케를 채근하는 대신 남편의 의견에 동조할 뿐이다.


고로쿠는 오요네가 화장대를 놓고 쓰는 방으로 옮겼고 당분간 숙모가 학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자신의 공간이 사라졌지만 오요네는 불만을 말할 수 없다. 고로쿠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결석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일이 잦다. 그런 고로쿠에게 형과 형수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모습은 뭐랄까 선을 긋는 것처럼 보인다. 지루하다 정도는 아니지만 평탄하게 흐르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주인집에 든 도둑이 소스케의 집 뒤꼍에 서류함을 버리고 간 것이다. 물건을 돌려주는 일을 계기로 주인인 사카이와 교류가 잦아진다.


사카이의 풍족한 삶,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모습과 소스케와 오요네의 단출함을 비교하면서 그들 부부의 과거를 들려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부유한 대학생이었던 소스케, 친구의 누이로 만난 오요네. 둘은 점차 친밀해지고 친구가 병을 얻어 요양을 떠난 곳까지 소스케는 찾아간다. 그 이후 소스케는 친구를 배신하고 학교에서 퇴출당하고 부모를 버렸다. 짐작했겠지만 오요네는 누이가 아닌 아내였다. 그들은 그렇게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유산과 아기의 죽음. 오요네는 그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 믿었다.


그들의 생활은 폭이 좁아질수록 더 깊어져갔다. 그들은 육 년 동안 세상과 산만한 교섭을 하지 않은 대신 육 년의 세월에 걸쳐서 서로의 가슴을 파냈다. 그들의 생명은 어느새 서로의 밑바닥에까지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 본다면 여전히 두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볼 적에는 도의상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였다. (172쪽)


육 년이라는 시간을 둘만을 바라보며 하나로 살아온 그들에게 고로쿠의 미래와 사카이와의 교류는 뿌리를 흔들 정도의 어려움은 아니었다. 사카이의 입에서 몽골에서 온 동생과 동생의 친구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친구는 바로 오요네의 전 남편이자 소스케의 친구였다. 그들을 소개해 준다는 사카이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없었던 소스케는 전전긍긍한다. 관청 일도 집중할 수 없고 오요네에게 말할 수도 없다. 소스케는 병가를 내고 산사로 도망친다. 소스케의 행동은 비겁하다. 소세키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삶의 위기는 가능하다면 모면하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사에서 지내는 동안 소스케가 얻은 건 무엇이고 깨달은 건 무엇일까.


제목인 『문』이 의미하는 건 내면의 ‘문’이었다. 저마다 하나씩 간직한 자신만의 문. 그 문을 열 용기와 힘은 결국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누군가 문을 열고 지나갈 것이고 누군가 문을 외면할 수도 있다. 소스케처럼 처량하게 그 옆을 지킬 수도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문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나는 문을 열어달라고 왔다. 그렇지만 문지기는 문 안쪽에 있어서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는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단지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오너라”라는 목소리만 들려왔을 뿐이었다. (264쪽)


그는 그 문을 통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을 통과하지 않고 끝날 사람도 아니었다. 결국 그는 그 문 아래에 꼼짝달짝 못하고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265쪽)


『산시로』와 『태풍』보다는 좋았던 소설이다. 담담하고 슴슴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다. 가을의 풍경으로 시작하는 『문』은 가을에 읽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가을을 지나 겨울에 접어들어 새해를 맞이하고 봄을 기다리는 일의 반복이 인생이라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말로 기뻐요. 이제 봄이 되어서” 오요네의 말에 “응, 그렇지만 또 겨울이 올 거야”라고 대답하는 소스케의 말은 묘한 여운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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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4-28 0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읽으면 좋을 소설!
기록해 둡니다^^

자목련 2023-04-28 09:05   좋아요 2 | URL
네,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읽어도 좋을 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