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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평점 :
부끄럽지만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한국 역사에 대해 근대사만 조금 알 뿐 그 이전의 역사는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배운 게 전부다. 고조선을 시작으로 유적지 지명이나 빗살무늬 토기 같은 걸 외운 정도 말이다. 그 역시 시험을 위한 공부가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대하드라마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상한 건 나이가 들면서 대하드라마를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팩션 드라마가 아닌 정통 대하사극 말이다. 드라마 속 실존 인물에 빠져들며 인물의 심리에 동화되고 감정 이입이 되면서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배운다고 할까.
11월에 방송 예정인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가제)의 원작 소설 《고려거란전기 : 겨울에 내리는 단비》를 쓴 길승수 작가의 『고려거란전쟁』을 읽으면서 잠깐 드라마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현종과 그의 무한 신뢰를 받은 강감찬의 이야기라고 하는데 강감찬이 동북면병마사가 되어 군대를 지휘했던 나이가 65세라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말 그대로 노익장이 아닌가 싶다.
책 이야기를 해보면 이 책은 『고려거란전쟁』란 제목 그대로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다룬 책이다. 후 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고려를 건국했다. 고구려의 명맥을 잇기 위해 나라의 이름을 고려라 짓고 북방 개척 의지가 강했던 건 알려진 일이다. 왕건이 지방 호족과 결혼하여 수많은 아내와 자식을 둔 것도 하나의 정책이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래서 왕족의 족보가 아주 복잡하다. 왕권과 권력을 위해 친척과의 혼인으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 가계도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림과 사진 자료를 풍부하게 실어 이해를 돕는다. 고려의 모자에 대한 설명만 봐도 그렇다. 성종은 10세 이상 남자는 모두 모자를 쓰고 다니도록 법으로 제정했고 고려가 본격적으로 발전을 시작한 때가 성종이 다스릴 시기였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906/pimg_7630901654006051.jpg)
거란과 전쟁 당시 고려의 결정적인 무기인 ‘검차’라고 불리는 수레도 흥미롭다. 표지에서도 볼 수 있는 검차는 수레에 창이나 칼을 꽂아 방어력을 높인 무기로, 수레가 연결되면 마치 성곽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검차는 기병을 상대하는 데 효과적인 무기였다. 드라마에서는 모자에 대한 고증과 더불어 검진차를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해진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906/pimg_7630901654006053.jpg)
고려를 중심으로 여진족, 거란, 송나라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거란과 고려가 전쟁을 하는 동안 실리에 따라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 송과 거란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볼 수 있다. 그 시절에도 외롭고 힘든 일게 외교였다는 사실도 함께. 거란은 꾸준하게 고려를 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거란이 993년 1차 침공을 시작으로 1018년 구주대첩(우리가 알고 있는 강감찬이 활약한 귀주대첩을 말한다. 책에서는 구주로 통일하며 구주는 지명이다), 나아가 1023년 7차까지. 무려 7번의 전쟁이 있었건 것이다.
거란과의 전쟁에서 고려가 어떻게 대비하고 방어하며 승리를 이끌었는지 배경과 지역적 상황과 시대별로 등장한 거란의 고려의 인물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생각하면 누구나 서희를 떠올리게 된다. 알려진 바로는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한판승을 이룬 것 같지만 그 뒤에는 서희와 함께 거란의 소손녕을 방어하기 위한 성종의 기개가 있었다. 조선의 인조와 확연하게 비교되는 왕이다.
성종은 왕으로서의 책임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왕이라면 위험을 무릅쓰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이 반드시 적중한다고 볼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왕이었다. (71쪽)
길어지는 전쟁에 어쩔 수 없이 현종이 황후의 피난 길 여정이며 그 과정에서 위협을 당하기도 한다. 고려라는 나라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실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는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관리가 있고 그런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나라와 왕을 생각하는 관리가 있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건 현종의 태도였다. 현종은 나중에 그들을 무척 너그럽게 대했다는 점이다. 무릇 왕이라면 자신과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을 섬멸하려 할 텐데 현종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서가 그러하듯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래서 어려웠다. 물론 역사에서 성종, 서희, 천추태후, 현종, 강감찬만 알면 안 되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거란, 송나라의 인물과 고려의 관리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쉽지 않았다. 드라마가 방영되면 책 속 인물과 비교하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고려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는 사실과 우리가 모르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또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