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인사이트 6월호에서 재미있는 또 다른 기사는 바로 북한과 관련된 두 기사이다. 

첫번째 기사는 '중국은 북한을 경제로 보고 한국은 이념으로 바라본다'이고 두번째는 '고령화 남한, 젊은 북한 내치다'이다.
 

"국제사회의 제재 결의안 내용 중 유권해석이 필요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인프라 사업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 사업도 중단했지만, 중국은 북중 경제협력이 유엔안보리의 제재결의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중국은 북한을 경제로 바라보지만, 한국은 이념으로 바라본다. 이념은 대결을 부르고, 경제는 협력을 부른다."
(133쪽,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2MB는 실용정부라는 말로 이념이 아닌 실용을 국정기조로 삼겠다고 했다. 이념과 실용이 무엇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의미한 경쟁과 갈등을 그만두고 상생하기 위한 방법을 찾겠다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2MB가 말하는 실용은 이념과 별반 다름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해서 그렇다. 심지어 인도주의적 지원조차 이념에 의해 반대되었다. 천안함 사건이 아직 결론난 것이 없는데도 (처음 제기된 의혹들 중에 해결된 것은 없고 군당국의 거짓말만 드러나고 있는 형편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에 대한 대결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이야말로 실용주의가 필요한 때인데 말이다.

 

또 다른 기사 '고령화 남한, 젊은 북한 내치다'에서는 북한을 어떻게 실용주의적으로 봐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중국이라는 변수를 생각하면, 남한 경제가 받을 타격은 더욱 명확해진다. ... '개성공단이 없을 때 많은 남한 기업들이 중국을 찾았다. 그러나 중국은 몇 년 안에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흡수해버린다.' 이는 기업자체로도 불운이지만, 남한 경제 전체로서도 불운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흡수된 기술을 이용해 남한과의 기술격차를 더 줄여왔기 때문이다. 남한이 북한과 교역한다는 것은, 남한 기업이 자신의 기술을 중국에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남하는 북한과 교역함으로써 '중국의 남한 따라잡기'를 지연하는 효과도 얻고 있었던 것이다.

.... 지난해 9월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통일토리아, 북한 리스크 재평가>...에서 통일코리아가 40년 뒤인 2050년에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독일과 프랑스를 추월하여 세계 8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핵심 이유 중 하나가 고령사회로 접어들지만 기술이 뛰어난 남한과, 기술은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북한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 효과였다.

....

남한이 '싸워야 할 상대'는 이미 북한이 아니다. 대결 상대는 세계 경제대국이며 빠른 속도로 추격해오는 중국이다. 싸울 상대를 잘못 택해 싸운다면 그것은 자해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변수를 모두 넣어서 남북교역 중단에 따라 손익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

(135쪽, 김보근 한겨레기자) 
 

http://blog.daum.net/rainaroma/16098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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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6월호에는 "부자들은 왜 덜 벌어야 하나"라는 제목의 도발적인 기사가 떠 있다.  

  "대기업 회장들은 세계화가 깊이 진척된 경제세계에서 진화한다. 그들은 미국이나 영국 동료들의 것과 비교해 자신의 보수를 측정하며, 노동자 임금은 중국의 노동비용에 견줘 평가한다.

최저임금 노동자는 TV나 잡지를 통해 막대한 재산이나 황금 낙하산, 딜러들의 천문학적 보너스와 같은 멋들어진 장면을 바라보면서, 중국 노동자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행복해야 한다. "

(71쪽, 부자들은 왜 덜 벌어야 하나. 티에리 페슈)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며칠 전 최저 임금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 세계10위권 경제대국임을 자랑하면서 항상 선진국과 비교하지만 정작 최저임금을 이야기할 때는 그 대상이 달라진다. 기업 경영의 곤란을 이야기하면서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정작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 최저임금은 4,110원에서 올해 4,320원이 된 것이다. 일 8시간 주당 40시간을 일한다면 한달에 받는 돈은 100만원이 되지 않는다. 4인가족 최저생계비가 200만원에 육박하는 현실에 최저임금제는 최저생계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윗글에서 이런 모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경영인들은 그들의 보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자 노력한다. 물론 월가에 일하는 일년에 수천억씩 버는 CEO와 비교는 힘들겠지만 그런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우리나라의 CEO들의 경우도 연 소득이 십억이 넘는 경우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정의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경영인들의 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그들은 회사를 책임지기 때문에 그런 위험에 대한 보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현재의 경영인들이 과거의 경영인들보다 뛰어나다고 볼 근거도 전혀 없으며 회사가 위험해진다고 그들이 그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회사의 위험은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뿐이고 그들은 또 다른 회사나 기관의 경영인으로 쉽사리 옮겨간다. 그들만의 리그로...  


http://blog.daum.net/rainaroma/16098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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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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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책, 한국전쟁을 알고 싶다면 이 책부터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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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비평 창간호 세번째 꼭지는 "이상문학상"을 주제로 한다. 여러 문학상 중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것이 "이상문학상"이고, 수상집을 출간하고 그 수상집이 항상 베스트셀러라는 점에서 상업적인 면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상문학상"은 또한 서울대 국문과 출신, <문학사상> 학맥의 편파성이 심하다는 점에서 "문학권력논쟁"의 한 가운데 있고, 또한 수상작의 출판권을 <문학사상>이 소유하는 공정성의 위배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시장과 우상 : "이상문학상"을 비판한다.

고봉준(문학평론가)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문학상과 문화산업

오늘날 문학은 작가와 작품을 배출하는 "생산"시스템과 그것을 배포, 소비시키는 "유통" 시스템으로 구성된 하나의 제도로 자리잡았다. 90년대 이후의 문학은 "스타 시스템"을 통해 성장해 왔으며, 그 성장의 동력 대부분을 문학상이라는 제도적 장치로 부터 공급받아 왔다.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몇 가지 잡음들

"문학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음으로 지금까지 문학상의 성공사례로 평가받던 이상문학상은 2000년 1월 24회 이인화의 "시인의별"의 수상과 더불어 공정성논란이 제기 되었다.

논란의 초점은 첫째, 심사대상작품의 조건에 대한 문제로 심사대상작이 되지 않는 작품을 선정한 채 추후 변명식 해명으로 논란이 시작되었다. 둘째, 심사위원에 대한 문제로 서울대 국문과 출신에 주관출판사인 <문학사상> 학맥으로만 이루어져 편파성이 심하다는 점이다.

 

상업주의와 문학상

이상문학상의 상업성을 그대로 드러보이는 대목은 바로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낸다는 점에 있다. 한 해 동안 주목받았던 작품을 한권에 실어낸다는 데 부터 베스트셀러의 요건을 갖추게 되는 이상문학상은 수상자들로 하여금 수상작의 소유권을 향후 몇년간 출판사가 소유하고 수상작이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될 경우 <문학사상>의 동의를 받게 하고 있는데, 이는 공정한 문학 시장 형성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이런 문제는 2000년  김승옥, 박완서, 이청준, 조세희, 김주영, 김원일 등의 작가에 의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제작-배포 금지 및 그간의 저작권사용료 청구"소송이 발생한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광장의 축제를 위하여

문학상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는 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들이 문학상 제도를 통해 자신들의 문학적 권력을 강화시키려 하는데 있고, 문학상을 수여하는 대가로 스타작가들에게 암묵적인 계약을 강요한다는 데 있다.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학상 자체의 이름에 맞는 작품을 선정해야 하며, 해마다 수상작을 선정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수상작을 내지 않거나, 수상을 거부하는 건설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200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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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비평] 창간호의 두번째 꼭지는 '동인문학상'을 다루고 있다. '동인문학상'은 수상 거부 등 논란이 많은 문학상이다.

개인적으로도 <조선일보>의 비도덕성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동인문학상'의 '동인'이 친일 문인이라는 점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이다. '동인문학상'을 얼씨구나 하고 수상하는 작가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동인문학상' 수상하시는 분들이 다 고명하신 분들이지만,,, 특히나 이문구의 동인문학상 수상 당시 이문구의 감격에 찬 수상소감은 평소 이문구가 보여주었던 행동과는 반대되어 보였기에 상당히 실망스러웠다.(이때 평론가이자 시인인 김정란교수가 아웃사이더에 그 실망감을 표현한 글을 실었었다.)


우리나라의 문학에 있어서 신문매체와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하다. 신문매체는 문인들로 하여금 작품 발표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였고, 또한 칼럼이나 기자의 형태로 경제적 안정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신춘문예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 신문매체의 기사를 통해 문학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해졌고, 결국은 한국문학의 권력화를 조장하기에 이르렀다. 문학권력논쟁에 조선일보가 주요 대상중의 하나였던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즉, 신문매체가 작가-비평가-출판사로 조직화되고 위계화된 한국문학의 불합리를 정당화시켜 문학권력과 신문매체간의 문언유착을 확대시켜 나갔다.

 

2. 신문매체 문학상과 문학권력

신문매체들의 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상징권력인 문인들을 이용하여 신문의 특권화된 지위를 보장받으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또한 신문매체들의 문학상이 ‘동인문학상’, ‘미당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 친일문인들의 이름을 빌리고 있다는 점 또한 그들의 친일행동을 은폐시키려는 문학권력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3. 조선일보와 동인문학상

특히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신문매체의 문학상중에 가장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이다. 이런 논란 속에서 ‘동인문학상’은 2000년 종신심사위원제 도입과 단편이 아닌 단행본 소설집으로 심사대상을 변경하고 나섰다. 그러나 종신심사위원제는 그 자체가 문학권력의 권력화를 가속화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심사위원들 자체에서도 이념적으로 한쪽으로만 편향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인문학상’ 자체가 이념적으로 한 쪽 문인들을 중심으로 문학권력을 구성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런 문제들 속에 2000년 이후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동인문학상’의 후보작이 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인문학상’의 문제는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황석영은 ‘동인문학상’ 후보작 거부와 관련하여 세가지 이유를 드는데, 첫째는 <조선일보> 자체가 반개혁적 수구 세력이라는 점, 둘째는 ‘동인문학상’이 문언유착을 통해 한국문단을 종속화시키려는 언론권력의 속성, 셋째는 친일문인인 ‘동인’에 대해 문학적으로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석영의 이런 거부이유는 동인문학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그대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동인문학상’의 경우 근래 들어 문인들 사이에 거세게 일고 있는 안티조선운동에 대해 권위있는 문인을 심사위원으로 만들고 또한 조선일보에서 수여하는 문학상을 수상케 함으로 안티조선운동에 대한 방어막을 형성하려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4. 문학상 제도의 혁신을 위하여

신문매체의 문학상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문언유착의 연결고리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문학상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검토를 통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찾는 일이 시급하고, 문인들 또한 그런 문학상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겠다.

부록....

 

* 황석영<동인문학상 후보작을 거부한다> (한겨레신문 2002.7.20)

....요즈음 <조선일보>는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는 종전보다 더 반개혁적이면서도, 문화면에서는 ‘다양성’을 보여 주려고하는 교묘함을 보이고 있으며, 보다 이질적인 문인들에게는 단 몇 매짜리의 칼럼 한 편에 다른 신문의 무려 다섯 배나 가까운 원고료를 지불하고 있다..... 문학상의 상업주의와 사이비 권력놀음 따위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상은 <조선일보>가 특정 문인 몇 사람을 동원하여 한국문단에 줄 세우기 식의 힘을 ‘종신토록’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문학상이 세계관의 표현일진대 나는 <조선일보>측의 ‘동인문학상’ 뿐만 아니라 현대문학에서의 동인의 위치에 대하여도 이견이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귀측의 심사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일단 밝혀두려고 한다.

 

 

* 고종석<동인문학상 생각> (한국일보 2003.12.25)

나는 왜 안티조선에 공감하는가?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썼듯, 그 신문이 수구 냉전 복고 세력의 선전국일 뿐만 아니라, 신문 지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기 쉬운 글쓰기의 권력화를 가장 비도덕적으로, 현저히 정치적으로 드러내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는 왜 동인문학상에 비판적인가? 역시 다른 자리에서 지적했듯이 그 상이, 특히 심사위원단의 종신화와 상금의 파격적 인상 그리고 상시적 독회 평가의 기사화를 뼈대로 한 세 해 전의 개편 아래, 한국 문단에 대한 조선일보의 아귀 힘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4.5.30)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동인문학상’을 중심으로
- 하상일(문학평론가)

1. 한국문학과 언론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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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 2014-03-20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특히나 이문구의 동인문학상 수상 당시 이문구의 감격에 찬 수상소감은
평소 이문구가 보여주었던 행동과는 반대되어 보였기에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

정말 작가 이문구가 감격의 찬 수상 소감을 했는지 직접 보셨습니까?

뱉으면 말이고 쓴다고 글이 아닙니다. 작가가 고인이 된 지 11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작가는 위암 말기에 투병 중 이었죠. 대부분의 생활을 중환자실을 오가는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기뻐서 상을 받았다는 그 당시 작가의 체충은 20kg나 줄어들어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어 할 때이나,

주변에 본인의 병환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고, 수상에 대한 부분도 마지막까지 통보를 병원에서 받은 분입니다.

동인문학상으로 온갖 험한 말들을 쏟아졌고, 험한 말을 내뱉으며 이름을 알리려는 무명씨들이 들러붙었죠.

그렇게 3년간 투병끝에 돌아가신 분입니다. 수 많은 수상자들 중에 궂이 해당 작가를 거론하며,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런 글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