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 불멸의 음반 100 최악의 음반 20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마티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카라얀, 번스타인 1990년대 최고의 지휘자 둘을 만난 것은 음악회나 CD가 아니라 가끔씩 보게 되는 사진에서였다. 어쩌다 방문한 집에는 크지 않은 흑백사진이 걸려 있곤 했다. 카라얀 혹은 번스타인의 사진이었다. 20대 후반에 들어 음악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히면서 발견한 클래식에서 그 때 그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그리고 연주회에 자주는 아니지만 발걸음을 하기 시작하면서 카라얀이나 번스타인 말고도 위대한 거장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씩 클래식에 관심을 두면서 클래식이라는 거대한 음악은 왠지 만만하게 보면 안 될 거리를 두고 봐야 할 무언가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은 그렇게 견고하게만 보였던 클래식의 속살을 보여준다. 결국은 클래식이라는 것이 음악이라는 산업안에서 존재하고 또 발전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클래식~'은 음반 산업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 음반 산업의 역사가 바로 클래식이다. 축음기가 발명되고 LP라고 불리던 커다란 레코드판이 생기면서 일반 대중들은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듣게 된다. 카루소부터 시작된 음반의 역사는 19세기 후반의 음악부터 현재까지의 클래식을 연주회장을 찾지 않아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노란색딱지의 DG, EMI 그리고 Philips는 그 이름만으로도 좋은 음반을 보증하고 있는 것 처럼 이 음반 레이블의 역사를 속속 들쳐내고 있다.

 

책을 읽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 이야기가 나왔을때는 흥이 났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주회장에서 직접 본 에드가 마이어, ... 

 

부록처럼 붙어 있는 명반 100선과 최악의 음반 20선은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직 클래식 애호가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막 초보를 떼려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베토벤 교향곡 5,7번, 자크 뒤 프레의 엘가 협주곡 등 너댓개의 앨범을 찾아내곤 만족스러워했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두 부류 정도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클래식을 좋아했고, 클래식의 매력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록, 팝 등의 대중음악을 거쳐 재즈와 클래식을 나눠 듣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클래식을 듣는 이들은 또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을 공부하듯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들을 섭렵하고 명반을 찾아 듣는 사람과 그냥 내키는 데로 듣는 사람. 첫번째 부류는 클래식에 신성한 지위를 부여하고 숭상한다면 두번째 부류는 클래식 또한 음악의 한 부류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즐긴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실 얼마전 문학계에 흥미진진한 논쟁이 하나 있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대변되는 소셜네트워크(SNS) 사회 답게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를 통해 논쟁이 진행되었지만 나는 카페, 블로그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았다. 물론 이런 논쟁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더 이상 논쟁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끝나버렸지만,  논쟁이 끝나고 열흘이 넘어서야 이 논쟁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논쟁의 주역은 소설가 김영하와 비평가 조영일이다. 김영하는 2000년대 주목받던 신인작가였고, 지금은 중견작가라 할 만큼 자신의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조영일의 이름은 덜 알려져 있지만 고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비평고원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소조라는 닉네임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독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중적인 독자들에게는 김영하가 인문학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에게는 소조가 더 친근할 것이다.

 

논쟁의 시작은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김영하의 신춘문예 비판에서 발단이 되었다. 김영하는 작가란 '타인이 아닌 자기자신의 긍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조영일은 작가세계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신춘문예에 목메기 보다 차라리 영민한 한 명의 독자가 되라고 권한다. 그리고 현 문학권력 제도내에서의 작가로써의 긍지는 불가능하다가 말한다. http://cafe.daum.net/9876/ExU/10234

 

이런 논쟁 와중에 최고은씨 사건이 불거지면서 둘의 논쟁은 조금 더 구체화된다. 본격적인 작가론, 작가와 세계와의 관계가 드러나게 된다. 김영하는 '작가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조영일은 예술가들의 실제적인 참여를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김영하는 조영일을 '예술을 사회변혁의 수단으로 삼으라고 선동하는 비평가'라고, 조영일은 김영하를 '낭만적 예술론에 빠져 배부른 소리'라고 비판한다.

http://cafe.daum.net/9876/ExU/10264

 

결국 김영하가 트위터와 블로그를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하겠다며 이 논쟁은 끝났다. http://cafe.daum.net/9876/ExU/10265

 

 - 논쟁의 과정을 아주 잘 설명한 한국일보 기사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102/h2011021418362284210.htm  )

 - 트위터리안과 조영일의 인터뷰 : http://cafe.daum.net/9876/ExU/10271

 - 기타 기사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63516.html

 

이번 논쟁은 어떻게 애초부터 성립하기 힘들었다. 모호한 언어를 쓰는 작가와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비평가의 싸움은 언제나 비평가가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작가와 비평가의 논쟁이라는 점에서 작가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  작가는 언제나 꿈을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대중 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논쟁의 주제이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예술론에 입각했던 낭만주의 문학론과 한국문학권력 비판에서 시작한 현실주의 예술론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문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이 문제는 사실 많은 문인들이 달려들만한 논제였다. 그러나 문학논쟁은 곧 막을 내렸고 내노라 하는 작가, 비평가들은 그 논쟁의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에는 21세기 소셜네트워트 사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기존 문인(비평가 포함)들은 트위터나 블로그에 취약했을 테니까...

 

개인적으로 이번 논쟁은 의미가 있었다. 20세기 후반 불었던 문학권력 논쟁이후 처음 문학에 대한 논쟁 다운 논쟁이었으니까. 재미있는 사실은 문학권력 논쟁 당시 문학권력 비판이 문학 밖에서 이루어졌던 점이고(강준만에서 시작) 이후 비주류 비평가들의 참여(이명원 등)가 있었을 뿐이다. 주류 문단에서 김정란이 유일하게 참여했었는데 김정란에 대한 사이버폭력까지 이루어졌었다. 

 

비평가 조영일은 한국문학비판을 계속 해 오고 있다. 이번 논쟁을 계기로 그의 비평을 손에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게 될 것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개인적인 목표 중에 하나가 신인작가들의 소설집(혹은 시집)을 매월 한권씩 사는 것이었다. 이는 독서보다는 독자로써 한국문학의 발전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실천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못했다. 항상 몰려드는 독서목록 때문이었다.

한국문인들의 년간 평균 인세수입은 300만원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조영일의 분석을 빌리지만 문학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 내외라는 것이다. 하루키의 IQ84의 선인세가 10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문학에 대한 한국출판사는 너무 인색하다.  이런 현실은 여전히 독자들에게 독서 이외의 것을 고민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문으로 봤을 때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었는데 인터넷으로 살펴보니 괜찮은 책들이 있었다. 위키리크스 2권, 동물과 관련된 3권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함께 묶어 읽어볼 만 하다. 

 
2000년대 지식인으로 꼽히기도 한 우석훈의 책이 출간되었다. 1990년대 박노자, 홍세화, 진중권, 강준만 등에 의해 이루어진 논쟁과 비판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조국, 장하준, 우석훈 등으로 대변된다. 
 

<88만원 세대> 현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해 온 우석훈은 근래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토건주의가 바로 한국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이야기한다.

 

디버블링
우석훈 지음/개마고원•2만7000원


 

"뭔가를 계속 짓고 부수면서 돈을 돌게 하고 경제를 지탱하겠다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요란한 포클레인 소리는 지금도 어디서나 들리는 익숙한 소음이다. 경제가 결국 먹고사는 문제, 집을 따뜻하게 하는 문제라면 대규모 공사만큼 방을 빨리 데우는 방식도 없다. 역사가 그랬다.
그러나 더는 삽이나 콘크리트 앞에서 경제란 놈이 꿈적도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대규모 토목공사 벌인다고 수백만명의 백성들이 벽돌을 지어 나르고 품삯을 받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여전히 온통 공사판이다. 토건주의, 공사주의라는 두툼한 옷을 벗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제 그것이 거품만 키울 뿐이라는 것을 알아도 멈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한국 토건 경제의 풍경은 애처롭다. ‘거품붕괴’(디버블링)의 공포를 안고서도 계속 거품 유지용 ‘군불’을 때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생태경제학자 우석훈은 <디버블링>에서 “어렵더라도 빨리 탈토건 경제로 방향을 잡지 않으면, 거품이 터져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국민경제를 생태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구체적 처방부터 보면, 이런 것들이다.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정규직 △재택근무 그리고 완전 연봉제 도입 △사교육 폐지 △주 4일제 수업 도입 △등록금 100만원.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정규직 방안은 이른바 ‘워크 셰어링’(work sharing) 개념이다. 삶이 불안하고 팍팍한 것은 버는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 미래의 막연한 불안 때문이다. 하여 종신고용을 약속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깎는 방안을 제안한다면 여러분은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직원들이 죽어라 일해야 직성이 풀리는 토건 경제 시각으론 납득할 수 없겠지만, 발랄한 창의력의 시대에서 일주일에 5일 일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또 공장 일은 기계가 다 하고 그나마 있는 직원들은 비정규직으로 채워 쥐어짜는 방식이 토건 경제라면, 생태 경제는 숙련가를 키우는 방식이다. 생산과 혁신의 바탕인 지식의 축적을, 언제 잘릴지 모를 비정규직에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5367.html

 

2월에 소개된 책들 중에는 방대한 작업이 돋보이는 책이 있다. 철학자 이정우의 세계철학사와 역사문제연구소의 한국사 작업이 있다.

 

세계철학사1-지중해 세계의 철학


이정우 지음/길•3만8000원 


"철학자 이정우(52•사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가 <세계철학사1-지중해 세계의 철학>을 펴냈다. 전체 3권으로 기획된 대작의 제1권이다. 지은이는 2000년 철학연구공동체인 철학아카데미를 세운 이래 줄곧 철학사 강의를 해 왔는데, 그 강의록이 이 저작의 바탕이 됐다. 전체 3권의 첫 권이라고는 해도, 이 한 권만으로도 200자 원고지 4000장, 840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지은이는 앞으로 2년에 한 권씩 ‘아시아 세계의 철학’(제2권)과 ‘근현대 세계의 철학’(제3권)을 펴낼 계획이다. 이 세 권이 모두 출간되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철학사 전체를 포괄하는 저작이 등장하게 된다. 지은이는 초국적 기업 중심의 비인간적 세계화를 넘어 보편성을 지닌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 과제를 해결할 비전을 찾아내려면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를 역으로 음미한 뒤 현재로 돌아오는 거시적인 지적 성찰이 필수적이다. 세계철학사 집필은 과거를 경유해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이 저작은 ‘세계철학사’라는 이름에 진정으로 어울리는 기획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서구에서 나왔던 세계철학사 저작들은 사실상 서양철학사를 몸통으로 삼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도와 중국의 철학 전통에 지면을 할애하더라도, 서구 철학사의 ‘전사’(前史)로 배치할 뿐이었다. 이런 식의 구도는 옛소련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의 <세계철학사>에서도 반복됐는데, 지은이는 이런 배치가 ‘헤겔적 편견’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한다. 헤겔은 <철학사 강의>에서 비서구 지역 철학 전통을 철학사의 전사(프리히스토리)로 보았으며, 그런 전통은 오늘날 탈근대철학의 기수인 들뢰즈 철학에서조차 엿보인다는 것이다. “근대 서구인들에게 비서구 지역들은 반드시 ‘전그리스적’이어야 했다.” 지은이는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 인도와 동아시아 철학 전통을 제2권에서 ‘아시아 세계의 철학’으로 따로 서술한 뒤, 제3권 ‘근현대 세계의 철학’에서 다시 종합할 계획이다.

 

......

그런데 세계철학사를 그리스에서 시작하는 것도 서구적 편견의 소산은 아닐까? 지은이는 그리스에서 철학사를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철학’이라는 말도 그리스에서 출현했기 때문이다. “민주정과 철학이야말로 그리스 문명이 인류에게 선사한 두 가지 아름다운 선물이다.” 지은이는 철학이라는 독특한 사유양식이 민주주의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전제군주와 일부 귀족계층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사회에서는 철학이 탄생할 수 없다.” 그리스가 일찍이 민주주의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 그리스 문명이 바다를 중심으로 한 해양 문명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육지로 직접 연결되지 않은, 조그만 나라들로 쪼개진 곳에서는 거대권력이 나타나기 어렵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5372.html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1~5
역사문제연구소 기획/웅진하우스•각 권 1만8000원
  
 
"제대로 된 역사책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역사책엔 어느 쪽에서든 보는 자의 눈높이와 시선의 각도가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린 최소한 불리하다고 비틀고, 불편하다고 눈감지 않은 ‘착한 역사책’을 늘 만나고 싶어한다. 
 

역사문제연구소가 그런 책을 내보자고 기획을 했고, 17명의 학자가 뜻을 함께했다. 원시시대에서 남북국시대까지, 고려시대, 조선시대, 개항에서 강제병합까지, 일제강점기 등 우리 역사를 다섯 권에 담았다. 전문 분야별로 팀을 쪼개 공동 작업을 했지만, 책을 완성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만큼 공이 많이 들어갔다. 
 

우선 시각의 건강성을 유지하려는 일관된 긴장이 책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통일신라시대가 아닌 남북국시대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그중 하나다. 신라 우위의 한국사 체계를 이어온 남한에서는 주저 없이 그 시대를 통일신라로 정의했고, 발해를 강조하는 북한에서는 발해와 후기신라시대로 구분했다. 발해와 신라가 200년 넘게 땅을 맞대고 융성하며 경쟁했던 시대는 당연히 남북국시대로 부르는 것이 온당한 시각일 것이라는 게 지은이들의 생각이다.

 

또 우리는 발해를 지배계급인 고구려 유민이 피지배 계급 말갈족을 복속시켜 세운 나라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 고구려는 이미 말갈, 선비와 거란 같은 여러 유목민을 거느린 다민족국가였다. 발해 시조 대조영은 말갈족 출신으로 일찍 고구려 중앙정부에 진출해 무장으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그는 고구려인이었고 또 말갈족이었던 것이다. 발해를 세운 고구려 지배계층엔 고구려 왕족인 고씨 외에도, 말갈족 출신 관료, 말갈족 추장들까지 포함돼 있었다. 발해는 지배층, 피지배층 모두에 고구려계와 말갈계가 공존했던 다민족 융합국가였다. “한민족 형성사 속에서 말갈족이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할 때 고구려문화를 계승발전시킨 말갈족의 발해는 한국사의 일원으로 올바르게 자리잡을 것이다.” 

 

역사의 장면 장면은 스스로 다면적이고 중층적일 때가 많다. 그것을 잡아내느냐 마느냐는 보는 이의 몫일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 외국자본이 경쟁적으로 한국에 진출해 광산, 철도, 전기 등 각종 사업을 벌였다. 국사 교과서는 이권침탈로만 보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대한제국의 대외정책 전반을 놓고 볼 때 투자유치 방법으로 열강간 세력균형을 유도한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4158.html 

 

 

 

 

 

 

 

 

2월에 소개된 책 중에 가장 관심있는 책은 바로 <음식과 요리>이다. 그러나 7만8천원이라는 가격대가 아무래도 걸린다. 하지만 책장 한쪽에 꼽아 두고 싶은 책이다. 

 

음식과 요리

해럴드 맥기 지음•이희건 옮김/백년후•7만8000원


"이 책의 어떤 부분이 그토록 매력적이었을까? 이씨는 “음식과 요리에 대해 우리가 빠뜨리고 있던, ‘왜’와 ‘어떻게’를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통 과학자들은 요리를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고 요리사들은 과학적 이해 없이 음식을 만든다. 그러나 ‘왜’와 ‘어떻게’를 통해 그 둘은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다. 이를테면, ‘왜 어떤 고기는 흰색인데, 어떤 고기는 붉은색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해답은 근섬유의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갑작스럽고 빠른 운동을 하는 근섬유와 달리, 오랫동안 지속적인 운동을 하는 근섬유는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산소를 전달해주는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다. 그 단백질이 고기를 붉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음식을 ‘어떻게’ 만드느냐와 연결되게 된다. 결국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의 맛과 영양을 좌우하게 되는 셈이다. 인간 아기의 몸무게가 갑절로 늘어나는 데에는 100일이 걸린다. 그러나 송아지의 경우엔 50일 걸린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뭘까? “소젖은 모유보다 단백질과 미네랄 비중이 갑절 이상 높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세상의 음식들을 들여다본 이 책에는 이러한 깨달음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과학적 사실들만을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씨는 “보편성을 근거로 한 ‘통찰’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역사•문화 등에 대한 인문학적인 지식이 깔려 있어, 음식과 요리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좋은 고기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마블링’ 기준에 대해, 지은이는 “미국 소농장주협회가 농무성에 로비를 펼쳐 도입된 기준이며, 다량의 마블링이 결코 소고기의 연한 육질과 맛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밝힌다. 또 그 뒤에는 경제적 요구에 따라 고기의 맛을 단순•표준화하는 ‘도시형 대량생산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단것을 먹기 위한 유럽의 사탕수수 대량재배는 식민지 경영과 노예노동 없이는 불가능했으며, 농장 소유주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부는 산업혁명 초기의 돈줄이 됐다. 농업혁명은 관개시스템을 장악한 극소수가 다수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위계사회의 시작이었으며, 곡물을 중심으로 한 식단의 단순화를 낳은 “편식의 주범”이기도 하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5364.html 

 

번역가로 유명한 이윤기의 유고집이 두권 출간되었다. 번역가로 유명하지만 실력있는 소설가였던 만큼 그의 소설집과 산문집은 반가운 일이다. 

 
유리 그림자 이윤기 지음/민음사•1만원
위대한 침묵 이윤기 지음/민음사•1만원 

 

"지난해 8월 예순넷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뜬 이윤기의 유고 소설집과 산문집이 나왔다. 소설집 <유리 그림자>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단편 넷이 실렸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에는 다섯 묶음에 모두 37편이 수습됐다.

 

이윤기(사진)의 소설은 교양과 지혜를 큰 특징으로 한다. 그의 주인공들은 교양과 지혜를 갖춘 현자이거나 그것들을 좇는 ‘학생’이기 십상이다. <‘소리’와 ‘하리’>라는 작품에는 “우리 사는 데가 온통 학교가 아니냐”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말은 삶과 세계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  이윤기의 소설은 유머와 지성으로 무장한 에세이적 특성을 강하게 내비친다. 유고 소설집 속 작품들에서 그런 면모는 한결 두드러지는데, 네 작품 모두에서 작가 자신이 실물대로 등장한다는 사실과 그 점은 무관하지 않다. 소설 <‘소리’와 ‘하리’>의 뒷이야기가 산문집 <위대한 침묵>에 실린 ‘오, 소리’에 나오는 데에서 보듯 소설과 산문의 구분은 그다지 엄격하지 않다. 산문집은 양평 시골집 주변에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얻은 자연의 지혜,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던 그의 주변 인물들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작가의 개인사, 그리고 그의 전공인 신화 이야기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미시간주립대 학장이었던 고 임길진 박사를 기리는 작가의 추모글을 작가 자신에게 되돌려준다.


“죽음은 죽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렇듯 잊히지 않고 있으니, 그 떠난 자리가 참 아름답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3002.html



이외에도 가짜논리와 정치의발견 역시 읽어봄직하다.

 

가짜 논리
줄리언 바지니•강수정 옮김/한겨레출판•1만2000원.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붕어빵 장사도, 뻥튀기 장사도, 청소부도, 막일도 모두 해봤다고 말한다. 노점상도, 실업청년도 열심히 살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통령의 대표적 화법이다. 이는 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권위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내 경우엔 그랬으니까…’라며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오류는 매우 흔하다.

“그 얘길 또 해야겠습니까?” 이 역시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토론회에서 여야당을 막론하고 과거의 잘못을 들추면 이 말을 한다. “논쟁을 흘러간 옛 노래 수준으로 전락시켜 피로를 유발하는 전략”이다. “선거 때는 이걸 하고 저걸 하겠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설로 일관하면서, 자기가 곤란할 땐 가설에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정치인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에 활발하게 글을 쓰는 줄리언 바지니는 <가짜 논리>에서 부제처럼 ‘세상의 헛소리를 간파하는 77가지 방법’을 풀어놨다. 터무니없이 공포를 부풀리는 언론 기사, 책임을 회피하거나 입에 발린 말을 주로 하는 정치인의 말, 통계의 오류를 범하는 국책기관의 분석 등을 실례로 들고 논리의 약점을 짚었다. 지은이는 “부실한 논리를 들먹이는 건 적들만이 아니며, 우리가 찬성하는 주장의 근거 역시 함량미달일 때가 있다”며 “부지런히 묻고 의심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강수정 옮김/한겨레출판•1만2000원.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2993.html

 


정치의 발견
박상훈 지음/폴리테이아•1만1000원


"이 책은 꼭 정치에 입문할 사람만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정치혐오증을 버리지 못한 사람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이념적 선명성이나 순결성을 외치면서 정치의 가능성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에게 이 답답한 양반들아 제발 제대로 알고서 말하라는 심정으로 쓰인 듯한 책이라는 뜻이다. “운동이 강조된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에서 정당과 정당체제가 나쁘다는 것을 말해주는 지표는 되겠지만 운동으로 정치제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라든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둘러싼 투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상훈의 정치학은 다분히 최장집의 이론적 자장권에 머물러 있다. 정당과 갈등의 중요성을 표나게 강조하는 대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최장집의 글을 꾸준히 읽어왔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정치학 고전에 드는 책을 인용해 정치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는지라 설득력도 높다. 그 가운데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하며 논리를 펼치는 ‘정치는 누가 어떻게 하는가’가 가장 호소력 높다. “선한 목적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면서도 그 수단으로서 강제력이라는 ‘악마적 수단’을 회피할 수 없는 정치의 현실을 이해하지 않고 정치의 길을 나서기는 어렵다”라는 말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빈민운동가인 사울 알린스키의 말들이 많이 인용되고 있는 ‘정치의 기술, 실천의 기술’도 주목할 만하다. 익히 예상하겠지만,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권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체제 내부에서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운동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오바마에 관한 내용도 많이 나오는데, 집권 과정에서는 배울 바가 두루 있겠지만, 최근의 통치 내용으로 보건대 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의 평균적 한계 위에서 서로 협력하고 나날이 진보하는 것의 가치와 보람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말이다. 이 한 구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 이만이 참된 정치가가 될 터다.

 

얇은 책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여전히 운동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이라면 상당히 논쟁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정치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싶은 이라면 든든한 이론적 지원군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 이 책을 읽는 것도 좋을 성싶다.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민주주의 시대에 정치의 가능성은 무엇인지 공부하는 차원에서 읽어보자는 것이다. 술자리에서야 누구나 정치를 알고 있는 듯 호기를 부리지만, 정작 이 정도 수준의 학습도 없이 함부로 정치를 말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3080.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월에 소개된 책 들 중에 별도로 묶어볼 만한 책들이 있다.)
 

음식과 관련해 곤란한 질문은 바로 개고기와 관련된 것이다. 특히 외국인이 묻는다면 더 곤혹스럽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개고기에 반대하면서 쇠고기,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다. 개와 소, 돼지가 무슨 차이가 있지? 개는 깨끗하고 돼지는 더럽다? 집단식 사육방식 때문에 그렇지 돼지는 개처럼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똥,오줌을 잘 가린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간혹 '개 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들은 사람보다 개를 더 우위에 놓는 경향이 있고, 기득권층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이분법으로 놓기는 그렇지만 개를 사랑하지만 사람은 차별하는 사람, 개를 먹지만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도덕적으로 옳을까?


하여간 2월에는 동물과 관련해 3권의 책이 소개되었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 지음•노순옥 옮김/모멘토•1만2000원.

<동물 권리선언>
마크 베코프 지음•윤성호 옮김/미래의창•1만2000원


 

"사람은 다른 동물과 얼마나 다를까?
미국 콜로라도대학 명예교수(생태학•진화생물학)로 제인 구달 등과도 오래 협력해온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가 2010년에 낸 <동물 권리 선언>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건 분명하지만 결코 그들보다 더 우월한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다른 동물들도 사람처럼 인지능력이 있고 온정•사랑•연민•배려•존경•존엄•평화를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존재라는 걸 베코프는 숱한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베코프는 낙관주의자요 현실주의자지만, 인간이 이 사실을 깨닫고 동물들을 지구라는 같은 집에 사는 대등한 동료요 벗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전환을 이뤄내지 못하는 한 자신의 ‘인간다운’ 삶과 미래도 없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그것은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이 철학적인 주제를 쉽고 잔잔하게 풀어가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


보츠와나의 사파리에서 새끼 코끼리가 굶주린 사자들 밥이 됐다. 그때 100여마리의 코끼리들이 몰려오더니 사자들을 내쫓고 피투성이의 사체를 코로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훌쩍이면서 차례차례 예를 표하고 순서대로 물러섰다. 코끼리떼가 인간의 총에 죽임을 당한 코뿔소를 애도하는 광경도 목격됐다. 2008년 12월 중국의 한 서커스 공연장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미니자전거에 올라타기를 거부했다. 조련사가 회초리로 원숭이를 때리자 분노한 다른 원숭이 두 마리가 조련사를 공격했다. 한 원숭이는 조련사의 귀를 잡아 비틀고 다른 원숭이는 그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목을 물었다. 조련사가 회초리를 떨어뜨리자, 한 마리가 그것을 집어들고 부러질 때까지 조련사를 계속 때렸다. 레버를 누르면 음식이 나오게 돼 있는 실험실에서 우리에 갇힌 쥐가 처음엔 열심히 레버를 누르다가 그렇게 하면 다른 쥐가 전기충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레버 누르기를 거부했다. 토큰을 넣으면 음식이 나오는 원숭이 실험실에서 수컷 다이아나 원숭이는 아직 그 기술을 배우지 못한 암컷을 위해 자신의 토큰을 넣어 먹게 해주었다.


.....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철저한 ‘종(種)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2009년 1월 지은이가 사는 마을에 코요테 한 마리가 나타나 원반던지기 놀이를 하던 여인을 공격했다는 신고가 떴다. 달려온 콜로라도주 야생동물관리국 직원들은 코요테를 사살했다. 그 전에도 지은이가 애완견 제스로와 원반 물어오기 놀이를 할 때 종종 인근 붉은여우들도 함께 놀고 싶어했다. 문제의 코요테는 여인을 물지도 않았고 난폭하게 굴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관리들은 사전 예방 조처라는 명목으로 다섯 마리의 코요테를 추가로 사살하기까지 했다. 그해 6월에는 얼어붙을 듯이 찬 바다를 160㎞ 이상 헤엄쳐 아이슬란드 스카가피외르뒤르 해안에 간신히 도착한 북극곰 한 마리를 현지인들이 사살해버렸다. 인간에게 위험하다는 일방적 이유만으로.


멀리 갈 것도 없다. 곳곳에 덫을 놓아 멸종위기의 산양이나 방사한 반달곰들을 죽이고, 먹이를 찾으러 민가로 내려온 멧돼지를 사살하는 게 당연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돼지만 300만마리를 넘고 오리•닭 등을 합하면 무려 1000만마리가 넘는다는 구제역 생매장 참극도 현재진행형이다.


...
“이 세상이 모두 우리의 집이고 모든 살아 있는 존재가 이를 공유하고 있으며, 모든 존재는 서로를 보살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대로는 우리 삶이 존엄할 수도 풍요로울 수도 없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베코프는 말한다.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강점은 지향점은 선명하되 설득방식은 온건하고 현실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베코프는 일거에 실험실을 폐쇄하자거나 모두 채식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먼저 생각을 바꾸고 일상의 가능한 일부터 하나하나 바꿔가보자고 권한다. 예컨대 우리가 먹는 고기 양을 조금 줄이기만 해도 산업구조가 바뀌고 온난화 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단다. 그걸 위해 베코프는 반대자들에게도 온정적으로 접근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온정이 온정을 낳고 세상을 가속적으로 밝고 풍요롭게 만드는 선순환 효과를 동물한테만이 아니라 인간끼리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5374.html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쓴 멜라니 조이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교수는 해마다 학생들에게 개와 돼지에 대한 생각을 묻는 수업을 한다. 학생들의 대답은 비슷하다. 개는 귀엽고 다정하지만, 돼지는 더럽고 멍청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은이는 이런 편견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면서 학생들에게 “왜 우리는 돼지는 먹고 개는 먹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학생들은 “먹기 위해 돼지를 키운다. 왜 그런지는 생각 안 해봤다”고 답한다.

 

지은이는 소나 돼지를 당연히 고기로 소비할 수 있다는 생각 뒤에는 육식주의가 도사리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채식주의처럼 육식주의도 확고한 이데올로기이지만, 육식주의는 채식주의와 달리 현실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 부정을 통해 지탱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이를 육식주의의 비가시적 특성이라고 이름 붙인다. 현실에서 돼지는 태어난 지 2~3주 뒤부터 더러운 우리에 쑤셔 넣어지고, 6개월 뒤에는 도축장으로 향한다. 돼지는 도축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때로는 산 채로 사지가 절단되고 분리되며,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른다.

 

지은이가 한국의 개고기 소비에 대해 적은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은이는 “계몽된 서양에서는 개와 고양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후진적인 사회에서는 그걸 본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은이의 논리대로라면 소고기나 돼지고기, 개고기 소비 모두가 잘못된 육식주의이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4146.html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할 헤르조그 지음•김선영 옮김/살림•1만8000원
 
"매일 쇠고기를 먹으면서 개고기 먹는 걸 혐오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흔하다. 60%의 “미국인이 동물들은 살 권리가 있다”와 “우리는 고기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데에 모두 동의한단다. 어시장 연례행사에서 상인들의 죽은 생선 던지기를 보고 즐기면서도 죽은 고양이 시체를 그렇게 주고받는다면 기겁을 할 사람들이 많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키스까지 퍼붓는 사람이 모피 생산을 위해 밍크 항문에 전기충격을 가하거나 바다표범 머리를 몽둥이로 내려치는 잔혹에는 어떻게 그토록 무감각할 수 있는지.


그뿐인가. 모피코트를 입고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안고 가는 여성, 돼지고기는 거부하지만 고등어는 먹는 자칭 ‘채식주의자’, 훨씬 많이 자행되는 쥐 실험엔 침묵하면서 원숭이 실험 연구자에게만 테러를 가하는 과격 동물보호운동가, 투계를 잔인하다 비난하면서 닭튀김이나 치킨버거는 맛있게 먹는 사람, 7만마리의 닭을 희생시키느니 차라리 같은 고기양을 지닌 대왕고래 한 마리를 희생시키는 게 낫다며 고래를 먹자는 캠페인을 펴는 동물보호단체….

 

인간과 동물 관계 연구의 권위자인 할 헤르조그 웨스턴캐롤라이나대학 심리학과 교수의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은 동물에 대한 인간 사고와 행동방식에서 드러나는 이런 비일관성과 역설 뒤의 심리학, 동물 애호가나 보호론자들이 자신의 신조에 집착하면 할수록 일상생활에서 더 첨예하게 부닥치게 되는 도덕적 난관들을 흥미로운 사례들을 동원해 현란하게 파헤친다.


....


지은이가 드는 인류동물학의 뜨거운 쟁점 세 가지. 첫째, 돌고래 등 동물과 함께 놀고 교감하면 우울증이 치료되고 자폐증이 낫는다는 얘기가 옳은가? 둘째, 사람들은 자신이 키우는 개를 닮아간다는 얘기는 정말인가? 셋째, 어려서 동물을 학대한 아이는 결국 폭력적인 성인으로 자랄까? 첫째는 아니고 둘째는 맞고 셋째 또한 아니란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5373.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월에 소개된 책 들 중에 별도로 묶어볼 만한 책들이 있다.)

 

어산지는 누구인가? 현재 그는 성폭행혐의로 기소되어 런던에서 전자발찌를 찬 채 경찰의 감시하에 있다. 전세계의 정보를 뒤흔든 그는 파렴치한 성폭행범인가? 아무래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부는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려는 듯 하다.


하지만 그가 성폭행범으로 몰리는 과정은 너무나 이상하다. 두 명의 여성에게서 성폭행으로 신고되었는데 두 명의 여자 모두 그와의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성관계 도중 콘돔이 찢어진 상황에서 성관계를 거부할 수 있고 이 때 성폭행이 성립된다고 하는데 문제는 두 건 모두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 여성 중 한명은 스웨덴 출신 미국 공무원인데 CIA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 사건에 미국 정부가 깊숙히 관련되었다고 의심되는 이유이다.


위키리크스는 한동안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대한민국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 정부의 고위 공무원들이 중국을 비하하거나 중국 관료를 비하한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2월에 위크리크스에 관한 책이 두권 출판되었다. 한권은 독일 <슈피겔>지의 기자들에 의해, 다른 한권은 위크리크스 설립에 관여했던 위키리크스2인자에 의해 씌여졌다.



<위키리크스-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마르셀 로젠바흐 등 지음•박규호 옮김/21세기북스•1만5000원

"그리하여 “아날로그 세상과 디지털 세상, 현실 정치와 인터넷 속 도전자들 사이의 한판” 거대한 싸움은 권력 쪽의 승리로 끝난 듯이 보인다.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국가의 적’ ‘초국가적 위협’으로 규정한 미국 주류사회는 사이버 세계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을 정비하는 한편 위키리크스 사이트를 집중 공격해 접속 불능의 마비상태에 빠뜨렸다. 서버를 임대해주고 있던 아마존도 정치적 압박 때문에 임대를 철회했다. 머니부커스와 스위스 우체국 자회사 포스트파이낸스 등이 위키리크스 계좌를 정지시켰고 지불서비스업체 페이팔도 협력 해지를 통보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 역시 위키리크스로 들어가는 돈의 송금업무를 중단했다. 이제 남은 자금조달원은 독일 헤센주 국스하겐의 비영리단체 ‘바우 홀란트 재단’ 하나뿐이다.

 

백악관은 정부 부처와 기관, 하원 도서관 컴퓨터의 위키리크스 및 폭로협력 매체 사이트 접속을 원천 차단했다. 위키리크스 활동 중에 ‘불법’으로 확정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도. 지은이들은 유죄 판결을 받은 적 없는 위키리크스에 대해 무죄추정주의를 적용하지 않겠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개인신상 정보와 외교관들 아이티(IT) 정보까지 수집하는 명백한 불법 ‘간첩활동’을 하도록 지시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계좌는 왜 정지시키지 않고, 꼭같이 기밀문서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 등 유력 매체들은 왜 그냥 두느냐고 힐난한다.

하지만 대다수 기성 언론들은 위키리크스 활동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면서 “새로 밝혀진 건 거의 없다”는 권력의 김빼기 작전을 재빨리 수용하고 비아냥거렸으며, 미국 동맹국들 역시 워싱턴이 제시한 모범답안을 그대로 따랐다. 친미로 올인한 한국 언론들한테서 예외를 기대할 수 있을까. 서방의 대중매체와 정치권의 이런 굴종적인 자세를 두고, 지은이들은 만일 모스크바나 베이징에서 중국이나 러시아 기밀문서가 유출되었을 때도 과연 그런 논조를 취할까 하고 되묻는다.

 

기성 매체들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함으로써 사회가 자신의 실존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위키리크스의 파격적인 도전이 이미 자신들이 기득권자인 기성체제의 안전성을 깨뜨릴까 두려워 정부를 편드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그러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어산지는 이제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뿐,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선언했다. “최초의 진짜 정보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터는 위키리크스이고 당신들은 전투병력이다.” 디지털인권운동 ‘전자프런티어재단’ 공동설립자이자 ‘사이버공간 독립선언문’ 작성자인 존 페리 발로는 수많은 인터넷 유저들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탄압자 못지않게 저항자들도 나름 군대와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탄압이 시작되자 페이스북과 트위터 지지자와 팔로어 숫자가 가파르게 치솟는 거대한 국제연대 물결이 일어나고 바우 홀란트 재단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엄청난 기부금이 몰려들었다.


베트남전 개입 구실을 조작한 정부 문서를 폭로한 대니얼 엘즈버그는 공개적으로 “아마존의 비굴함에 구역질이 난다”며 아마존을 탈퇴했고 정부 조처를 수용한 다른 기업들에 대한 계약 해지와 불매운동도 거세졌다. 위키리크스의 ‘콘텐츠 미러링’ 호소에 발맞춰 불과 며칠 만에 세계 곳곳에 1200개 이상의 미러 서버가 생겨나기도 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 사이트가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의 공격으로 다운되고, 공화당 리더 세라 페일린과, 어산지를 기소하려던 스웨덴 검찰청 사이트 등이 디지털 집중포격을 당했다. 사상 최대의 사이버 국제봉기가 벌어진 것이다.
....
그 한편에선 중국 인권운동가들이 ‘거번먼트리크스’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만들고 있고, 돔샤이트 베르크는 위키리크스 비판자들과 함께 ‘오픈리크스’를 만들고 있다. 발칸리크스, 인도리크스, 브뤼셀스리크스, 트레이드리크스 등 지역적 내용적으로 특화된 많은 대안들은 이미 떴다. 민주주의와 인터넷 주권의 미래는 이런 수천 수만의 위키리크스들이 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분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4157.html

 

<위키리크스-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 지음•배명자 옮김/지식갤러리•1만3800원



한때 위키리크스 2인자로도 불리던 초창기 핵심멤버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가 줄리언 어산지와 결별한 뒤 쓴 책.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잘 아는 비판자의 시선으로 본, 아직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위키리크스의 속내와 실체. 원래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 일렉트로닉 데이터시스템(EDS) 독일지사에서 보안전문가•프로그래머로 근무하던 그는 2007년 어산지와 의기투합해 이후 3년 동안 위키리크스의 토대를 구축해간다. 세상을 뒤흔든 비밀문서들의 입수와 사실 확인, 폭로 과정과 제보자(정보원)의 신변보장 방법 등이 구체적인 일화들과 함께 흥미롭게 소개돼 있다.

 

아울러 그들이 왜 헤어지게 되는지, 두 사람의 견해 차이와 결별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를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 극단적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극단적으로 천재적이다. 극단적으로 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인 편집증이다. 극단적인 과대망상이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와의 결별 뒤에 위키리크스에서 활동한 세월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보람 있었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어산지에 대해서도 부정으로 일관하진 않는다. 기밀문서 폭로를 이유로 그를 간첩법 위반으로 처벌하거나 미국으로 송환하는 데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일련의 대형 폭로 작업을 통해 위키리크스의 위상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어산지의 존재감도 커가는데, 그 과정에서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가 “독재자라고, 항상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린다고, 나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자주 비판하게 된다. 수학에 능한 해커 출신의 어산지는 뛰어난 머리를 지녔으나 대인관계는 원활하지 못했고, 조직을 자신의 아이디어대로, 자기 중심적으로 끌고 가려는 의지가 강했다. 위키리크스 운영전략을 두고서도 둘은 충돌했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가 대형 폭로에만 몰두하면서 다른 많은 작은 프로젝트들을 소홀히 하는 걸 못마땅해했고, 권력과도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효율적으로 대응하자는 쪽이었다. 그는 어산지 1인체제로의 권력집중이 초래한 폐해, 미디어 스타로서의 처신, 재정 운용상의 불투명성 등을 특히 문제삼았다. 그는 위키리크스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점들을 보완한 새로운 폭로 인터넷 매체 ‘오픈리크스’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4164.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