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 타계와 동시에 한겨레 곽윤섭기자의 기자의 글을 유심이 읽었는데 이번에 조금 더 자세하고 가이드가 될 만한 기사를 올렸다.
http://photovil.hani.co.kr/586382
타계소식에 페이퍼를 하나 작성했는데,( http://blog.aladin.co.kr/rainaroma/9031621 ) 이번 기사를 가이드로 삼을 생각이다.
그 사이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구매했고,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를 찾았다. <본 다는 것의 의미>는 못 찾고 있다.
아래는 기사 내용 중 책 소개 부분이다.
1965년엔 당시 아직 세상에 살아있던 예술계의 권력인 화가 피카소에 대한 책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를 출판했다. 세기적 거장의
후기 작업을 두고 존 버저는 냉정하게 비판했다. “1943년 이후로 피카소는 시들시들해졌다. 과거의 모든 위대한 화가들의 선례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더 이상 성숙하지 못했다. 그의 실패는 그가 적절한 주제를 찾을 능력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이었다”라고 썼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존 버저와 프로듀서인 마이크 딥이 만든 ‘웨이스
오브 시잉’은 1972년에 BBC에서 30분짜리 4부작으로 방영된 미니시리즈로 전통적인 서양의 심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사진의
탄생에 주목하여 “사진에선 전시가치가 제의가치를 전면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성격 전체가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 발터 베냐민의 저작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끌어온 ‘ 웨이스 오브 시잉’의 1부의 첫 장면에서 존
버저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작품의 복제품에서 일부를 커터칼로 도려내며 도발적으로 시작한다. 복제(특히 사진을 통한)한 옛
거장의 회화작품의 맥락은 그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 존재했던 것과 완전히 단절되어있다고 주장한다.
1975년에 발표한 <제7의 인간>이다. 이
책은 서유럽과 북유럽에 거주하고 있는 이민노동자들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취재하여 썼는데 세계화와 노동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혜안이 놀랍다.
<말하기의 다른 방식> 카메라는 모습을 실어나르는 상자이며 사진은 대상을 선택하는 문화적인 구성이란 것이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선택한다면
사진에 포함이 될 것이고 거부한다면 사진의 프레임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이 선택과 거부를 통해 문화적 정돈이 이루어진다. 구성(프레임에 넣는
것)과 정돈(넣지 않는 것)의 기준은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사진가의 삶과, 주장, 의견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또한 그 사진이 실리는
신문, 책, 전시에 따라 다르게 비칠 것이다. 이것은 같은 사진이 어떤 이념을 가진 신문에 실리는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몇 권의 책을 읽기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존 버거의 책을 네권 정도 읽고 제프다이어와 함께 엮은 <사진의 이해>와 더불어 <지속의 순간들> 그리고 수전 손택의 책까지 계획은 하고 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