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는 바빠서 독서시간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다. (벌초도 못가고 있으니..) 맞벌이라 육아와 집안일의 일부를 부담하다 보니 짜투리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전쟁 읽기를 마무리하고 진화심리학에 대한 읽기를 계획했었는데 한국전쟁과 관련해 읽은 책들 중에 후기를 남기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8월에 소개된 책들중에는 관심을 끌 만한 책이 있었다. 2010년 상반기 한국을 달구었던 천안함과 4대강을 주제로 한 책이 출간되었다. 



 
〈천안함을 묻는다- 의문과 쟁점〉
강태호 엮음/창비 1만6000원

 

미국과 정부와 보수언론 및 단체들은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짓고 있는다. 그러나 이에 반해 일반 시민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는 시민들도 많지만 의구심을 갖고 있는 시민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러시아의 천안함 리포트와 관련해 8월말 뉴욕타임스에 실린 전 주한미국대사 그레그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타격을 주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난처하게 할 것이기 때문”은 천안함 사건이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준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문제점 중에 하나는 합조단의 발표가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의문에 대해 해명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내용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아마도 천안함 사태에 관한 종합적인 분석서로는 첫 책이 될 <천안함을 묻는다>는 사건 발생부터 지금까지 발표되거나 알려진 주요 사실들을 점검하고 설득력 있는 의문들을 제기해온 각계 전문가들 14명의 글과 좌담을 실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넉 달이 훨씬 더 지났고, 그동안 남북관계를 비롯해 나라 안팎에서 그 사건 때문에 경천동지할 일들이 벌어졌는데도 우리는 아직 사건 초기단계에서부터 품어온 그런 의문들을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 다국적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했다는 합조단 발표도, 그것을 토대로 한 대통령 담화도 그런 의문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천안함 공격의 주체도, 사과도, 재발방지 약속도 얻어내지 못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은 오히려 정부의 북한 소행 주장의 근거를 한층 더 의심스럽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천안함 사태가 북한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는 대통령 담화와 이후 정책의 토대가 된 합조단 발표 내용의 허와 실을 따지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하여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가 아니라 ‘북한의 소행이라는 이제까지의 주장들은 근거가 없거나 박약하다’는 쪽으로 나아간다. 전문적 소양을 갖춘 이들의 논리적 분석을 통해 산만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 숱한 주장들을 비중 있는 것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이다. 사실보도의 육하원칙을 천안함 사태에 적용하면 우리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천안함을 침몰시켰는지 모른다. 오직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무엇’, 곧 천안함이 침몰당했고 46명의 아까운 젊음이 희생당했다는 사실뿐이다.
....
이런 의혹과 사건의 실체 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책은 거기에만 매달리진 않는다. 부실한 근거를 토대로 서둘러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바람에 자기 덫에 갇힌 외교와 남북관계 및 국방개혁 좌절 등 천안함 사태가 야기한 정치?외교?안보상의 파장을 다루고 어떻게 그 덫을 빠져나와야 할지 그 출구와 해법도 모색한다. 필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태 이전부터 이미 길을 잘못 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평화체제 수립 쪽으로 남북관계의 틀을 새로 짜고 외교안보정책의 방향도 거기에 맞춰 전환하라고 촉구한다. 더 늦기 전에 빨리.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3906.html

 

〈나는 반대한다-4대강 토건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서〉
김정욱 지음/느린걸음 1만5000원



4대강 문제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4대강사업과 대운하사업관의 연관성을 밝히려면 PD수첩이 방송 두세시간 전에 전격 방송취소가 되는 등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40여년간 환경공학을 공부한 김정욱교수가 4대강의 정부 주장의 허구성을 증명한 책을 펴냈다.

'지난 3월 4대강 사업에 대한 천주교의 입장을 정하기 위한 주교 회의가 열렸고, 22명의 주교가 참석한 그 토론회에 정부는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과 국토해양부 차관 등 5명 이상을 파견했다. 시민사회 쪽 전문가로는 딱 한 사람, 김정욱 교수가 참석했다. 40분 동안 조목조목 반론을 펼친 김 교수의 발표 뒤 주교들은 만장일치로 4대강 사업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오래 침묵을 지켜온 천주교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때 국토해양부 고위공무원이 4대강 사업은 대운하와는 무관하다며 항의하자, 김 교수가 “당신의 양심에 물어보라”고 했다는 게 김종철 <녹색평론> 대표의 전언이다.

<나는 반대한다>에 이런 얘기가 실려 있다. 1996년 일본. 청소년 폭력 대처방안에 관한 교사들의 세미나를 방청하던 한 고교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겁니까?” 순간 교사들 중 제대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것은 곧바로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됐다. 당황한 문부성(교육부)은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논리적인 이유’를 팸플릿으로 작성하고 있다고 언론에 해명했다. 그때 한 일본 지성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논리적인 이유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래서는 안 되니까 안 된다’라고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김 교수는 말한다. “왜 강을 파괴하면 안 되는 건가? 여기에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말 또한 ‘안 되니까 안 된다’이다.” 그가 보기에 4대강 토건공사는 “멀쩡한 강을 죽일 뿐만 아니라 자연을 파괴하고 결국에는 사람을 살 수 없게 하는 것”이다.
....
<나는 반대한다>는 4대강 사업 반박에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지만, 이 문제가 단순히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기본자세, 무엇이 좋은 삶이고 개발이나 발전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생태친화적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임을 2부 ‘이 땅에 살기 위하여’가 보여준다. 그것이 김 교수의 반박 논리에 더 큰 설득력을 부여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7158.html

 

8월에는 이외에도 흥미로운 책들이 많이 소개된 편이다.
진화심리학 읽기를 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소비자본주의를 읽어낸 '스펜트', 현실속에서 철학하기에 매진해 온 김용석 교수의 <철학광장> 소개기사를 관심있게 읽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5032.html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6017.html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 김순영 옮김/후마니타스 1만원


평생을 민주주의 연구에 몰두해 온 로버트 달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평가받는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가 출간되었다.

'책의 제목이 알려주는 대로 지은이가 여기서 직접 탐구하는 주제는 ‘정치적 평등’이다. 민주주의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이라면, ‘정치적 평등’은 그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정치적 평등은 민주주의라는 다소 추상적인 가치의 실현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수단이자, 민주주의가 얼마나 실현됐는지 그 정도를 재는 척도인 셈이다.

달은 지난 2세기 동안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이 놀라울 정도로 전진했음을 먼저 이야기한다. 1776년 7월 열린 제2차 대륙회의에서 채택한 미국 독립선언서는 이런 구절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곧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러나 이 독립선언서를 채택하는 데 찬성했던 55명의 대표자는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은 그 시대의 법률상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이었을 뿐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도 처지는 다르지 않았다. 지난 200년 사이에 이들은 모두 백인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었다.
....
달은 이어지는 장에서 정치적 불평등이 미국에서 점점 더 커지는 양상을 추적하면서, 그 근본적 원인을 ‘소비문화의 지배’에서 찾는다. 소비문화의 범람이 정치적 참여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적 흐름 위에서 조지 부시 정권의 일탈이 가능했다고 달은 생각한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권력은 시민과 그 대리자인 의회의 통제에서 벗어나 대통령과 행정부에 과도하게 집중됐고, 이런 정치적 불평등의 확대는 미국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을 복구하고 전진시키려면 미국 시민들이 ‘소비주의 문화’의 자장을 이겨내고 ‘시민권 문화’를 되찾아야 한다. 달은 “그동안 미국인들이 잊고 살았던 것”이 있다며 “정치적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확실하게 채택하도록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한층 더 강력한 대중운동을 복원하는 일”이 그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런 대중운동을 어떻게 하면 일으킬 수 있을까? 여기서 바로 답하지는 않지만, 대중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잠복해 있는 감정, 곧 분노와 열정을 끄집어내는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7146.html

 



〈좌우파 사전〉
/위즈덤하우스 3만5000원.


 

'한국 사회에서 ‘좌파’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여러 웃지 못할 해프닝 가운데 하나다. 우파 개념의 경우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은데, ‘한국 사회에서 우파란 누구인가’를 정의하기 위해선 상당히 어려운 퍼즐을 풀어야 한다. 사실 좌파와 우파 개념은 차분하게 논의되기보다는 상대에게 딱지를 붙이고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도, 유럽도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경험한 역사의 잔재, 이로 인해 만들어진 특수한 담론지형 안에서 두 개념이 유통되면서 덧칠된 낙서와 얼룩, 흉터가 너무나 어지럽다. 그래서 조국 서울대 교수는 “한국에서 좌파, 우파라는 단어에서는 그 자체로 피냄새가 난다”고 했다.

 

구갑우·김기원·김성천·서영표·안병진·안현효·은수미·이강국·이건범·이명원·이병민·조형근·최현·황덕순 등 각계의 중진 학자 14명이 집필에 참여한 <좌우파 사전>이 한국의 좌파와 우파를 설명하기 위해 귀납적 접근법을 택한 것은 이런 어지러운 사정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기본 입장과 주장, 그들이 추구하는 대안이 어떠한지 살펴봤다.

사안별 입장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좌파와 우파 각각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아가 이 작업은 대한민국 자체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다름아니다. 좌파와 우파가 벌이는 현실에 대한 해석투쟁과 미래에 대한 대안경쟁을 모자이크하면 바로 대한민국이 현재 서 있는 곳, 앞으로 나아갈 곳에 관한 대략의 좌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전’이라는 제목답게 분량 600여쪽에 7개 분야 22개 표제어가 실렸다. 그 목록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좌파와 우파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포괄적으로 대립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곧 좌파와 우파가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한 분석틀이라는 것을 뜻한다. 각각의 표제어는 독립적으로 한국의 현실, 우파의 주장, 좌파의 주장, 대립의 본질과 전망, 더 읽을거리, 사전적 정의의 순으로 구성됐다. 반드시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관심 있는 주제부터 읽어도 좋다.

개념과 현실(좌파와 우파), 민주공화국(국민주권과 대의제·법치주의·애국), 주권의 공존과 충돌(남북관계·한미동맹), 시장과 대안(시장과 국가·신자유주의·노동시장 유연화·소득분배와 경제성장), 공공성과 효율성(업적주의와 사회적 불평등·연대와 경쟁·신빈곤과 사회적 위험·노사갈등과 민주주의·생태위기와 녹색담론), 인권과 사회(범죄와 처벌·자유권적 기본권 제약·소수자 인권), 지식과 권력(역사기술과 정치·영어 공용화론과 영어 몰입교육·대중지성과 전문가 권위·대학과 지식생산·고교 평준화와 학교 다양화).

거칠게 정리하자면 한국의 좌파는 평등의 지속적 확대를 주장하는 반면, 우파는 현존하는 불평등의 불가피성 또는 순기능을 옹호한다. 양측 모두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데 자유에 대해선 영역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좌파는 직접민주주의를, 우파는 간접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좌파와 우파는 사안별로 대립하고, 때로는 입장이 중첩되거나, 심지어는 역전되기도 한다.'

http://blog.aladin.co.kr/mramor/4059524

 

〈독고준〉

고종석 지음/새움 1만3800원


고종석이 오랜만에 소설을 냈다. 그런데 좀 특이하다. 최인훈 소설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독고준>은 2009년 5월23일, 일흔네살 독고준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죽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임 대통령의 자살보다 불과 몇 시간 앞선 그의 자살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소설은 그로부터 일년여 뒤, 독고준의 딸 원이 아버지가 쓴 일기를 읽고 그에 대해 나름대로 논평을 덧붙이는 형식을 취한다. 독고준의 일기는 1960년 4월28일부터 2007년 12월19일까지 햇수로 48년에 걸쳐 있다. 작가는 독고준의 일기와 그에 대한 독고원의 논평을 날짜순으로 싣는 대신, ‘4월’에서부터 시작해 ‘3월’까지 월별로 재배치한다. 그러니까 연도에 상관없이 4월에 쓴 일기를 순서대로 앞세운 다음, 같은 방식으로 5월치 일기를 뒤따르게 하는 식이다.

최인훈의 두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독고준>에서 최인훈 소설의 주인공 모습을 찾아내는 것은 재미난 놀이와도 같다. 최인훈 소설에서 연상의 화가 이유정과 기독교 소수 종파 신도 김순임 사이에서 갈등하던 독고준은 결국 김순임과 결혼한 것으로 나온다. 대학생 독고준을 동료로서 끌어들이려 했던 정치 동아리 ‘닫힌 세대’의 친구 김학은 오래도록 준과 교분을 유지하며 문민정부 시절에는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와 함께 원산의 중학생 시절 방공호에서 경험한 낯선 여자의 부드러운 팔과 뭉클한 감촉, 누이를 버리고 월남해 새롭게 가정을 이룬 매부 현호성, 먼 친척들을 찾아 안양 부근 시골을 찾아갔다가 허탕친 이야기 등의 세목이 여기서도 되풀이된다.

<독고준>의 집필 의도가 최인훈 소설의 단순한 되풀이에 있지는 않다. 고종석의 소설은 최인훈 소설에서 대학생에 머물렀던 독고준의 장년기와 노년기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 점에서 <독고준>의 작가는 자유로이 상상력을 발휘했겠지만, 그 상상력은 <회색인>과 <서유기>의 작가가 그어 놓은 금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는 없는 상상력이다. 고종석은 최인훈이 그렸던 청년 독고준이 좀더 나이를 먹게 되면 아마도 이렇게 되었으리라는 예상과 기대에 가능한 한 충실하게 장년의 독고준을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5871.html


 

관련기사 : 동서고금 작품’ 패러디의 즐거움
 
'최인훈은 박태원의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을 이어받아 1960,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연작 장편을 쓴 바 있다. 만년의 대작인 <화두>에서는 조명희의 소설 <낙동강>(1927)이 작품을 끌어 가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최인훈은 이밖에도 <금오신화> <열하일기> <옹고집전>처럼 고전의 제목을 빌려와 현대의 이야기를 하거나, <춘향뎐> <놀부뎐>처럼 고전을 지금의 관점에서 다시 쓴 단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고전 패러디는 소설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어서 낙랑 설화를 재해석한 <둥둥 낙랑둥>, 온달 이야기를 변형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심청 이야기를 다시 쓴 <달아 달아 밝은 달아> 같은 희곡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기자 출신 작가 고종석은 많은 소설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특히 초기 단편들에서 고전 패러디에 큰 의욕을 보였다. 첫 소설집 <제망매>(1997)에는 표제작과 <찬 기 파랑> <서유기> 등 신라 향가와 중국 고전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쓴 작품 셋이 포함되었다. 표제작은 월명사가 지은 향가와 마찬가지로 죽은 누이동생을 추모하는 내용이지만, 나머지 두 작품은 같은 제목의 원작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더라도 원작의 제목이 주는 아우라는 고종석의 새로운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게 마련이다.

그 고종석이 이번에는 다름 아닌 선배 작가 최인훈의 소설을 상대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가 지난달 12일부터 인터넷서점 인터파크에 연재하고 있는 소설 ‘독고준’은 최인훈의 두 장편 <회색인>과 <서유기>의 주인공 독고준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최인훈의 두 소설에서 독고준은 아직 대학생 신분이지만, 고종석의 ‘독고준’은 그 뒤 소설가로 일가를 이룬 뒤 일흔네 살 나이로 자살하기까지 장년기의 독고준을 그 딸의 시선으로 다룬다. 독자로서는 최인훈의 두 소설과 고종석의 신작을 비교해 가며 읽어 보면 특별한 독서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법하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37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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