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말 일본 가나자와에 다녀왔다. 쿠로베 알펜루트를 다녀온 후 다음날 가나자와 여정은 윤봉길 의사의 암장지로 시작했다. 윤봉길의사가 의거를 거행했던 당시 상해 주력부대가 가나자와이다 보니 가나자와까지 압송했다. (사형집행이 연기되며 가나자와까지 온 점도 있다.)

윤봉길 의사는 사형집행 후 묘역 없이 매장됐다. 매장된 곳은 공동묘지와 이시가와현 군 전사자 묘역 사이 길이었다. 일본인들이 유해를 밟고 다니게 했다고 해석된다. 

일단 윤봉길의사를 다룬 두 권의 책에서 관련된 부분을 발췌한다. 

 발굴 4 일째 되던 3 월 6 일 박성조가 매장할 때 독경을 했다는 각존원의 야마모토 료도라는 여승을 데리고 왔다 . 여승은 헌병이 가리키던 곳 보다 더 육군 묘지 가까운 통로를 가리키면서 그곳에 북침으로 매장했다고 알려 주었다 . 그곳은 며칠 동안 발굴단이 휴식처로 사용했던 장소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 한복판였다 . 박동조가 소금을 가지고 와서 일대를 깨끗이 하고 술을 따르는 의식을 마치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 25센티미터 정도 파니 지층이 달랐다 . 다시 60 센티를 파자 십자가 형태의 나무 틀이 나오고 , 구두가 나오고 관 뚜껑이 보였다 . 뚜껑 을 열었다 . 8 푼 두께의 관이었다 . 함성이 울렸고 전원이 모여 손으로 흙을 파내니 '홈스팡'의 상의에는 피의 흔적이 역력 했다 . 조각 조각 된 옷을 제쳐 놓으니 나무뿌리가 꽉 들어차 있으나 유골이 나타났다 . 모두 일손을 멈추고 묵념을 올렸다 . 당시 가나자와 외과 대학 학생 였던 주정균은 이건우와 함께 들어가 맨손으로 정중히 뼈 하나 하나를 모았다 . 머리 부분에 탄흔이 있는 것을 보고 흐느끼는 대원도 있었다. 주정균의 육성 증언에 의하면 , 이마에 총상이 있었고 후두부에 구멍이 있었으며 , 옷에 피가 위에서 아래까지 묻어 있었다고 하였다 . 그는 수습된 뼈 를 정성 을 다하여 알콜로 소독 하였다 . 9 시반 부터 시작한 유골 수습이 4시간 반이나 걸렸다 한다 . 유골 은 모두 201 개 수습 되었는데 , 7 개가 모자랐다면서 이는 손뼈 등이 고문으로 상하여 13 년의 세월 을 견디지 못하고 소나무 뿌리 속에서 없어 진 것이라고 하였다 . 유골을 수습한 후 '순국의사윤봉길지구‘ 라고 쓰여진 새관에 옮겼다 . 


유해는 가나자와 재일본조선인 연맹 본부 사무실에 옮겨 졌다가 3 월 8 일 아침 가나자와역 을 떠나 다음 날 아침 도쿄의 우에노 역에 도착하였다 . 먼저 발굴한 이봉창 , 백정기 의사의 유해는 동경 의 간다에 있는 오키쿠배규에 있는 전 일본 육군 대학 건물내의 신조선 건설 동맹 사무실에 모셔져 있었다 (자유 신문 , 1946 년 4월 3일). 윤의사의 유해가 우에노 역에 도착하자 이미 사무실에 안치되어 있던 이봉창 ,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앞세우고 나가 윤의사의 유해를 맞이 했다 . (182-183쪽)



 성지로 조성 될 수 있었던 것은 가나자와 일대에 살고 있던 재일 동포들과 양심적인 일본인 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 입은 바 크다 . 박동조 , 박성조 , 박인조 선생 과 김진수님,장태화 님의 암장지 발굴과 조성 사업 , 그리고 가나자와 지역의 박현택 회장 , 암장지를 영구 임대 할 수 있도 록 행정적으로 지원해 준 야마데 전 가나자와 시장 , 다무라 교수 , 한자와 교수 , 고 히라타 시의원 , 모리모토 도의원 , 모리 시의원 , 아마 모토 시의원 , 전 후루카와 학산시 의 원 , 야마구치 학산시의원 등 많은 분들의 열성적인 참여와 양심적 일본인의 마음 이 합쳐져 서로 손을 굳세게 잡은 결과다 . 윤봉길 의사를 통해 한 · 일 양국의 국민들은 서로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54






* 윤봉길 의사 암장지 가는 길이다.구글맵에서 윤봉길의사 암장지가 검색된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에 묘지석들이 끝나고 공원이 보일때 좌측으로 보이는 샛길로 들어가면 된다.


샛길로 들어서면 다음과 같은 공원묘지 표지석이 나온다.


샛길로 들어서면 바로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안내판이 나온다.

윤의사 순국비는 오른쪽으로 올라가고, 암장지는 정면 방향이다.


조금 가다보면 왼쪽으로 공동묘지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이시가와현 군 전사자 묘역이 있다.

정면에 있는 좁은 길로 직진하면 된다.


조금만 가면 오른편에 윤봉길의사 암장지가 보인다.



윤봉길 의사 암장지.


자료고를 열었다. 빨간색 수첩이 방명록이다. 



며칠전에 관련기사가 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9-05-12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봉길의사의 업적이 항일 독립 투쟁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우리가 너무 잊고 지내왔음을 느끼게 됩니다... 양재역 매헌윤봉길 기념관을 찾는 이도 많지 않은 요즈음 우향님께서 의미있는 방문을 하셨습니다^^:)

雨香 2019-05-12 22:43   좋아요 2 | URL
가나자와에 윤봉길의사의 암장지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윤봉길 전기 두 권을 읽고 다른 자료들을 찾으며 윤봉길 의사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됐습니다.
올해가 1919년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이라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역사저널 그날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는데, 이 기회에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많은 연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