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달라는데 책 읽어주는 대통령
[오마이뉴스 김헌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2주년 성적표가 나왔다. 못했다는 평가가 58%였다. 잘한 일이 많다는 응답은 25%였다. 취임 초기 90%대의 지지도는 아니더라도, 당선 당시 득표율의 절반이다. 대통령이 외로울 만하다. 여론과 동 떨어졌다고 탄식할 만한 수치이다. 반대로 국민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국민과 단절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론조사의 흐름 상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2년 반은 특이하다. 5년 단임제의 특성 상 다른 대통령들의 지지도는 한 해가 지날 수록 지지도가 뚝뚝 떨어지는 계단형 하락흐름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6개월만에 30%대의 지지도를 기록한 이후 낮은 지지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간헐적 일시 상승이 나타나는 파고형이다. 전반적 평가는 낮아도 가끔 승부수를 건다고 표현되는 대통령의 스타일과 일치하기도 한다.

'잘 못했다' 58% - '잘 했다' 25%

대통령의 지지도가 일시 상승할 때는 3번이 있었다. 재신임정국, 탄핵정국 그리고 지난해 말 자이툰 부대 방문 이후 해외를 순방하며 국익외교를 펼치기 시작한 이후 독도 문제 등으로 대일 강경발언을 했던 올 3월까지의 시점이다. 대체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낮지만, 대통령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면 밀어주는 국민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시점별 지지도 평균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은 ‘젖달라는 아이한테는 젖을 주어야 한다’는 여론 제1의 법칙을 어기고 있다. 노 대통령의 취임 6개월 평가에서 국민이 원하는 최우선 과제는 ‘경제회복(59%)’으로 압도적 1위였다. 취임 2년 반 조사에서 나타난 최우선 과제 1위 역시 ‘경제회복’으로 취임 6개월 때보다 더 올라가 67%를 혼자 차지했다. 부정부패 척결을 비롯한 갈등해소, 정치개혁, 인사정책, 언론정책, 남북관계를 다 합쳐도 그 절반이 안된다. 반면에 많은 조사에서 노 대통령이 가장 잘한 분야는 ‘정치개혁’이었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이나 지식층과 달리 대중은 논리적이지 않으며, 복잡하지도 않다. 대중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봐서는 안되는 이유는 그들은 자신의 생명력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들이댄 의리와 대의와 같은 복잡한 논리는 공허하다. 지금 우리 대중은 ‘밥을 달라’고 외치고 있다. 참여정부 2년 간 대중은 ‘경제’를 외치고, 대통령은 ‘정치’를 외쳤다. 대통령이 정치만을 챙겼다는 말은 아니다. 대중 역시 경제만을 요구한 것도 아니듯이 말이다. 대략 그렇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정치 측면에서 보여주었던 그 결단과 승부수를 경제분야에서 보여준 것을 국민들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배고픈 아이에게 젖은 안주고 책을 읽어준다면 아이는 계속 운다.

대중은 '경제'를, 대통령은 '정치'를

다만, 우리 경제가 별로 나쁘지 않다는 말은 복통터지는 소리이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참여정부의 관료들이 경제에 대한 거시지표도 나쁘지 않고, 외국에서의 국가경제 신인도가 올라갔다는 항변은 ‘해서는 안될 말’이다. 많은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주기 때문이다. ‘다 잘 사는데 너만 못산다’는 말이다. 돌려서 생각해 보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할 수 밖에 없다. 부익부 빈익빈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또 하나의 잘못은 일관성의 부족인 동시에 초심의 상실이다. 그것은 혼란스러움을 의미한다. 참여정부의 탄생 즉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는 크게 봐서는 ‘확 뒤집기’이다. 우리 사회 곳곳의 부정부패, 타락한 기득권 그리고 권위주의 잔재를 청산해달라는 국민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요구를 가졌던 개혁성향의 국민 역시 취임 초부터의 관료세력의 중용,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비정규직문제, 부동산 문제 등에서 대통령에 등을 돌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상당수는 민노당에 대한 지지로 전환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안 대통령은 안정을 지향하는 보수층의 요구를 만족시켰던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지지층의 불만과 비지지층의 불안이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의 대연정 제안까지 포함해 양 측 모두에게 만족을 준 적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쪽이라도 확실히 설득했던 적도 없었다.

최근의 대연정은 그런 점에서 지지층을 이반시키기에 충분한 소재이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경제와도 먼 얘기일뿐더러 그 동안 대선과 총선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시대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우리 사회의 수구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이념과 노선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바람은 세대대결의 형태로 지역주의를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있던 중이기도 하다.

대연정 제안은 'YS 손목시계 보여주기 2탄'

분명 현 여권은 민주당을 호남지역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새롭게 창당했다. 노 대통령은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야당과의 연정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야당 역시 어이없어 하듯이 말이다. 야당과의 대연정은 대통령이 한참 ‘세상’을 뒤집으려다 보니, 360도 회전으로 원위치로 돌아온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YS 손목시계 보여주기‘ 2탄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노풍‘으로 상징되는 경선 당시의 지지층을 한 번에 다 날린 그 때의 아픈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은 대중의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소흘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도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여러 고비 마다 대중을 끌어안고 격려하고 설득하는 데에는 인색했다. 또한 차분히 경제를 잘 챙기길 원하는 국민과 달리 때가 되면 대연정과 같은 정치 승부수를 던졌다. 재신임 때 등과 마찬가지로 국민은 놀라움과 함께 언짢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올인’은 때로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건다’는 찬사를 받을지 몰라도, 대중의 입장에서는 불안과 함께 모험주의자를 바라보는 불쾌함, 즉 원래 말 뜻 그대로 ‘전재산을 도박에 거는 가장’에 대한 원망과 불안이 섞일 수밖에 없다. 비록 지금까지 몇 번의 ‘큰판’에서 대통령은 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의 입장에서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왠지 실력으로 사는 사람 같지가 않은 것이다. 행여나 대통령 주변에서 이런 ‘올인’ 버릇을 말리지 않고 ‘인생은 한 방으로 사는 것’이라며 부추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대중이 못 쫓아가는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는 대중이 갈 수 있는데까지만 가는 것이 옳다. ‘합의 없는 전진’을 계속해서는 안된다. 항상 대중의 한 두 발자국 앞에 가야 되는 것이다. 자신이 이끄는 무리에서 멀리 떨어져 ‘저 곳으로 가야한다’고 외치며, 뒤처지고 있다고 호통을 치는 것은 지도자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지금은 대중보다 한참 앞장서 가기도 모자라, 자신을 지지하는 층과 함께 정치를 해온 정치세력인 당도 떼어놓고 가는 모양새이다.

아무리 옳은 길이라도 대중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아무리 옳다고 한들 따르는 대중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목표점까지 못간다. 지금 대통령은 자신의 목표지점에 집착하며 대중의 마음이 서있는 지점은 외면하고 있다. 대중은 지금 지쳐있다. 자살 하는 젊은 가장에게, 희망의 불빛이 되어야 할 대통령의 대연정 승부수가 어떤 의미로 다가설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한다.

남은 임기 2년 반이 지나도 잘못된 구질서와 권위주의의 해체는 대통령의 큰 업적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탄핵 때 이미 보았듯이 많은 국민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능력에는 고개를 갸웃할망정 대통령의 진정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억울해 하거나 조급해 할 필요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간다면 앞으로도 낮은 지지도가 올라가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한 발 헛딛으면 남아있는 지지층마저 붕괴하는 위험한 처지이다.

대통령이 경제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최근 밝힌대로 양극화 문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정치 부문에 투입할 정력을 경제문제에 투입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 모두를 다독이며,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의 정책노선을 묵묵히 걸어갔으면 한다. 지금은 역사를 생각하며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할 때가 아니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퉁퉁 부은 발을 주물러 주어야 할 때이다.

/김헌태 기자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김헌태 기자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TNS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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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라는 문구 땜에 오금저립니다. 잡으러 오면 잘못했다고 싹싹 빌래요^^;기사 제목 보니까 재치가 번뜩인다 싶다가 이내 씁쓸해집니다. 이 기사 보믄 노사모들을 또 휘딱 뒤집어것습니다. /050822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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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ticket 2005-08-22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개혁을 일단 해야, 나중에 경제 회복이 되지 않을까나요?
노대통령이 한 일에 대해선 별루 아는 바 없지만, 되었어야 했을 사람이니까, 된 것 아닐까나?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해도 무슨 이유가 다 있잖아요.

진주 2005-08-22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언니, 전 정치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정치와 종교, 야구 이야기>는 온라인에서 댓글놀이 하기엔 부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05-08-2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언니/이런 것에 뒤집어지면 노빠구요, 노사모라면 고개를 끄덕끄덕 해야지 않을까요...빠와 사랑의 차이점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5-08-22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rryticket 2005-08-23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치 얘기,,넘 넘 싫어해요..정치의 ㅈ 자도 모른답니다.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데, 떠나 살면서 애국심과 자국민의 긍지를 가져야 하는데 하며 씨부렁대지만, 누가 물어보면 하나도 모른다고 대답해야 되어요. 정치인, 이름 아는 사람이라곤 노무현, 이명박 뿐이랍니다.

진주 2005-08-2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저도 잘 모르는 정치판이지만 저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웬만하면 좋게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제가 사는 지역이 정치색이 강한 도시라....그들의 말을 듣다보면 자꾸 무게 중심이 흔들리려고 해요. 저는 노사모도 노빠도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대통령이니까 임기 기간동안에 존경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거든요....근데 하도 충격적인 발언을 일삼으시니까...에...놀랐다고나 할까...에에..^^;

제게만 보이시는 언니, 어머...고백을 하시니까 제 가슴이 뛰잖아요!^^*

언니, 앗..잠시 잊고 있었네요. 언니가 외국에 나가 계신다는 걸요. 위에서도 잠시 말했지만..저는 기본적으로 누가 되었건 나랏님에 대한 존경을 갖추고 있는 사람인데 그래도 언니만큼은 되겠어요? ㅎㅎㅎ저도 외국에 나갔을 때 태극기만 봐도 눈물이 핑그르르르......^^;;

merryticket 2005-08-2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그럴려고 노력한다는 말이지, 실제론 잊고 살아요.
태극기 봐도 눈물 안나고요, 그저 어느 빌딩 만국기 달아 놓은 것 보면서 태극기 없음, 아니 왜 안달아놨어?" 그정도랍니다.
 



만두님~~~~~

보내주신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가 토요일에 왔습니다.

예상대로 무지무지 재미있습니다. 토요일 저녁부터 실금실금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반 정도 읽어 버렸지 뭐예요? "책값이 왜 이렇게 비싼겨?"하며 무척 미안해 하면서도 책장은 솔솔 잘 넘어가더이다 ㅡ.ㅡ

그..그런데...연필 꽂은 거 보이시죠? 가만 살펴 보시면 연필이 두 개 꽂힌 걸 아실 거에요. 보이는 저 연필은 윤이가 꽂은 거에요. 제가 책 읽을 땐 연필과 포스트*을 책갈피로 쓰는데 녀석도 저처럼 연필을 써더군요. 이거....13살이 보기엔 거시기한 것도 있는데 녀석은 재밌다고 덥썩...이겅^^;

만두님,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050822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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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8-2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 세살이면 모든 것을 다 알고도 모른 척 할 나이...아닌감유? ^^
이 책이 요새 알라딘에서 대세인가봐요. 음... 유행의 기운을 타야하나 말아야 하나... 진주님 리뷰 보고 나서 결정 해야쥐~ ^^

진주 2005-08-22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넘도...보고 듣고 아는 게 많아서 이 책 수준이야 뭐....
이 책은 처음 나온 날 부터 제가 눈도장을 꽈악...찍어둔 책인데, 고전과 고어에 관심이 많은데 생생한 근대어를 보고 싶었거든요. (역시나 책값이 문제라서 여태 구입 못하고 미적거리는 걸..만두님이 한방에 해결해 주셨답니다. 만두님 만쉐이~_

물만두 2005-08-2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언니는 모르실꺼야~ 만두가 생각하는걸~ 10월이 오는날에는~ 그때서 알게 될꺼야~ 흐흐흐 그나저나 책 벌어져요. 책갈피를 쓰라고 하심이^^;;;

진주 2005-08-2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일이 지나도 반을 못 읽을 땐 할 수없이 책갈피로 교체합니다.
며칠 동안 꽂아 두는 건 괜찮지 않을까요?
네네..이 책은 특별히 만두님을 다루듯 살살 다루겠습니다. 얼른 책갈피로 교체!

panda78 2005-08-2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재밌죠! ^^ 저도 이 책읽고 근대에 대한 관심이 팍팍 생겨가지구요.. 저도 생생한 근대어 좋아요. 더 보고 싶어요. ^^
 

소나무에 대한 예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建木 ; 소나무, 머리에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황 지 우-

 

***********

오늘, 아이들과 시를 읽었다. 원고지에 시를 베껴 쓰고 느낌을 나누면서 황지우시인이 느꼈던 소나무에 대한 경외심같은 존경을 우리도 느끼었다. "오. 날마다 진저리쳐지는 살아 있음의 모욕이여."라던 김용택 시인처럼 우리도 마음 속엔 끊임없이 용서해 주어야 할 한 사람을 품은 가혹한 삶이다.

"자, 우리가 용서해야 할 한 사람을 생각하며 다시 읽어보자."

한 여름에 앉아, 매서운 겨울날 눈을 뒤집어쓴 소나무의 기품있는 모습에 우리는 예배드리는 자의 심정으로 다시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조렸다. 시를 읽는 아이들 목소리가 차분하다못해 자못 침통하다. 나도 가슴 속 짱돌로 눌러 두었던 억한 감정이 울컷 솟구치려는 순간이다. 저 겨울 눈을 털며 진저리치는 소나무를 마주 대하면 내가 품은 미움도,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련다,하며 순순히 녹아지려는가.

......

낭송이 끝나니 지표 위에서 가장 기품있는 건목 사이로 후두끼는 눈발도 끝났는지 고요만이 우리를 에워싼다. 그런데 나는 어쩌자고 그 기품있는 분위기를 깨뜨리는 파한집에나 실릴 말로 침묵을 깼는지. 학생들이 누굴 닮겠는가 선생닮지. 그 선생의 그 학생. 내가 한 말? "흠.......너희들.......용서할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닌가보구나. 너무 침통해." 한 마디 했을 뿐인데 방금까지 내면 세계에서 힘들게 용서의 작업을 하던 숭고하며 진지하던 아해들은 얼굴이 벌개지며 쓰러지며 웃어제꼈다. 이런.

/050820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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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20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웁...^^

날개 2005-08-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진주님한테 수업 듣고 싶어요..! 머리에 쏙쏙 들어가겠다..ㅎㅎ

진주 2005-08-2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님,시를 읽더니 그 순진한 녀석들이 맘 속에서 "용서했다, 말았다,했다 말았다"하느라 번민이 가득하더라구요.번민이.. 후후후...
만두님도 찔리시는 거죠..용서하세요-제가 비싼 책 고른 거, 참 오늘 받았어요. 사진 찍어 올릴 게요.
날개님, 수업료가 쬠 비쌉니다. 별로 갈촤 주는 것도 없음시롱. 머리에 쏙쏙 들어가는 것 보단 뒤집어져 웃다 배만 아플 텐데요..^^*

검둥개 2005-08-2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진주님, 아, 이 시 참 좋으네요. ^^

진주 2005-08-2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정개님 반가워요.
이 시 참 좋지요? 황지우 시인은 참 당당한 분인 거 같아요. 나이를 먹더라도 저런 당당한 패기는 잃지 않고 살고 싶어요...

잉크냄새 2005-08-2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네요.

진주 2005-09-2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잉크님..^^
 
숲의 생활사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3월
품절


봄바람은 사람을 바람나게 한다. 봄바람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솜털을 간질이는 듯 몸에 감기는 미미한 감촉. 겨울바람의 투박스러움을 한번 상기해보라. 마른 대지를 날아온 바람은 대지의 따스한 열을 받아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면서 공중으로 떠오른다. 봄이면 사람의 마음이 설레는 것도 이 상승기류 때문이다. 봄바람은 단순한 설렘이 아니다. 그러니 억누를 길도 없으며, 억누를 이유도 없다. 사람도 자연이기에.-12쪽

식물은 인간이 꿈꾸는 연금술사이다. 공기중에 340ppm만으로 존재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순수한 탄소를 분리해내고, 분리한 탄소들을 재결합시켜 이파리를 만들고 가지를 만들고 꽃을 만들고 열매를 만든다. 부산물로 배출된 산소는 또 얼마나 귀한 것인가. 도대체 얼마만큼의 이산화탄소를 압축해야 도토리 열매 하나가 될까.-82쪽

이토록 복잡하고 치열한 숲에서 민달팽이의움직임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이다. 거대한 숲은 달팽이에게 무한의 공간이요, 영원의 공간이다. 이 복잡한 숲에서 모두가 자신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는데 어쩌자고 저 민달팽이는 붉은 색으로 도드라지는 것일까. 짙푸른 초록 이끼 위를 기어가는 붉은 민달팽이. 이 정도의 오기라면 구차한 껍질 따위를 벗어던지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 테지.-93쪽

붉은 단풍잎의 자잘하고 갈라진 잎의 가장자리에 작은 보석을 총총히 박아 장식한 서리꽃, 뽀송뽀송한 산쑥의 솜털에 매달린 작은 얼음 방울들, 마른 풀 위에 빛나는 소금 결정을 뿌려놓은 듯 반짝거리는 서리, 키 작은 솔가지 끝에 수정처럼 달려 있는 얼음방울, 서리는 나뭇잎의 질감과 모양을 살려 최상의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옅은 아침 햇살에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가을 서리꽃, 가장 극적인 아름다움의 하나이다. 아주 추운 아침에는 서리꽃은 그대로 얼음으로 굳어져 한낮 동안 빛난다. 그것이 상처가 될지라도 아름다움에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다.-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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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8-20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한여름에 저는 이 책의 여름 부분을 읽었답니다. 봄엔 봄 단락을 읽었구요. 가을이 오고 있으니 가을을 읽을 차례에요. 겨울부터 읽은 거니까... 이 한 권을 읽는 동안 1년이 걸린 셈이지요 ㅎㅎㅎ 차윤정씨의 글은 탐구와 더불어 서정이 있어서 참 좋았어요. 가을이 오면 가을 서리꽃의 극적인 아름다움을 만나길 기대합니다...

진주 2005-08-2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너무 아끼지 말아라. 구석구석 메모도 하고 연하게 줄도 쳐라!"
를 외치던 제가, 이 책은 정말 아껴 아껴 읽느라고 줄을 안 쳐 두었더군요.
베끼고 싶은 문장이 더 많았는데, 요것만 올립니다. 저도 플레져님처럼 일년 내내 끼고 살 것 같아요. 아아..플레져님을 만난 게 참 기쁩니다. 서리꽃은 저도 자주 화두로 삼아 썼는데...우리 같이 가을을 기다려요..아 보고 싶다.서리꼿..

icaru 2005-08-27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에게도 치열한 삶이 있다. 작은 종자 하나에서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싹을 틔우는 일에서부터 잎을 만들고,줄기를 키우고, 뿌리를 키우고, 꽃을 만들고, 열매를 만드는 어느 것 하나 거저 되는 법이 없다..... "
자연을 그저 정신적 위안처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나무는 또하나의 긴장일지도 모른다고 신갈나무 투쟁기에서는 말했지요... 살떨리는 삶의 현장을 나무에게서도 볼 수 있다는 의미로....
책을 읽으면서...도피처같은 위안이 아니라...지구상에 살아가는 생물들의 숙명이랄까요...그런 것에...공감을 얻었습니다...나무나...나나... 박터지게 살아내려 하는 운명은 같은 것!!

진주 2005-08-2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맞아요. 숲은 그저 사람이 밖에서 보는 것 처럼 마냥 평온하고 한가로운 건 저을대~ 아니죠..박터지게 살아내려는 운명!! 오호!
 
숲의 생활사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오오!

자칭 숲 예찬론자인 나는 이 책을 손에 쥔 순간부터 격정적인 감정의 홍수상태에 빠졌다. 오호! 오! 아아... 책 속에 흠뻑 빠져 수없이 나도 모르게 쏟아낸 감탄사들. 돈 모아서 생전처음 비발디의 사계 LP판을 산 날의 감흥이다. 전축 위에서 빙그르 돌아가던 레코드판에서는 말로 표현 못할 아름다운 선율로 감수성 예민하던 내 어린 가슴을 흔들어 놓았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지은이 차윤정씨를 은근히 흠모하는 마음까지 생겨버렸다. 대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녀는 정말 숲을 사랑한다. 그리고 숲에 대해서 전문가이다.

숲 탐방 전문가이며 조경학과 교수로 일한다고 한다. 숲에 대한 방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과히 존경스러울 만하다. 그동안 나는 꽃 이름이나 나무 이름 정도만 단편적으로 주어 들어 까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원론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배울 수 있어 더없이 유익했다.(일례로, 초록숲에 왜 흰꽃이 많이 피는지 그 이유를 알게되었다)


둘째, 사진을 잘 찍는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자면 책값이 너무 비싸서 하마터면 도서관에서만 빌려 볼 뻔 했다. 200여 쪽 분량에 정가가 15000원이다. 나는 책값이 어떻게 책정되는지는 모르지만 책을 받아보니 도감처럼 실린 훌륭한 화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글 쓰는 이가 직접 찍은 사진이라 소재에 딱 맞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은 생동감 넘친다. 사진술도 굉장히 뛰어나다. 200여점의 사진은 출중한 사진사도 와서 울고 갈 만큼 아름답고 섬세하다. 작가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풍경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사진만 감상해도 좋다. (메마른 가지끝에 앉아 봄비를 맞으며 온몸으로 희열을 느끼는 달팽이 사진은 압권이다)


셋째, 문학적인 감수성이 돋보인다.

자연과학계열로 분류시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이 책의 문장들은 수려하다. 은유로 반짝이는 한 편의 시요, 삶을 관조하는 가슴 따뜻한 수필이다. 생태적인 이야기를 다룬 책들은 응당 학명이 어떻고 과나 속이 어떻고 하며 딱딱하게 나갈 수밖에 없을 텐데 어쩌면 그녀는 이다지도 매혹적인 문체를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가끔은 문학적인 표현이 지나친 감도 있긴 하다. 은유가 지나쳐 정확하게 무얼 설명하는지 독자가 흐릿할 때도 있다. 그래서 글솜씨를 지나치게 뽐내다가 줄기를 잠깐씩 놓친다고 날카로운 지적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문체는 숲을 사랑하는 생활에서 우러나왔다고 나는 변호해 주고 싶다. 자연을 깊이 사랑하면 누구라도 시인이 되고야 만다. 자신의 현란한 지식만 피력하는 책은 졸음도 동반해서 독서만 방해하지만 이 책은 숲을 뜨겁게 사랑하는 작가의 가슴과 만나는 인격적인 독서가 될 것임을 장담한다. 숲과 열애에 빠진 사람, 또는 숲과 사귀어 보고 싶은 사람, 숲을 알고 싶은 사람, 숲을 통해 넉넉한 쉼을 얻고 싶은 사람, 그리고 삶이 너무 고달픈 사람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왜냐하면 겉으로 평화로운 숲에서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생존을 향한 치열한 몸부림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되 눈물겹게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다. 그 감동으로 치졸한 내 인격이 좀 더 겸허해지고 시들었던 내 삶도 숲을 뚫고 들어오는 화살같은 햇빛닮은 희망도 한가닥 건지리.

 

/050819ㅂㅊㅁ

 

꽁지: 봄, 여름, 가을, 겨울동안 격동하는 숲의 모습을 순환적으로 그렸습니다. 비발디가 사계를 숲에서 지었다는 게 틀림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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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5-08-19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쓴 리뷰와 비교되네요. 책만큼 님의 글과 마음도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전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봤다가 도저히 빌려볼 책이 아닌 것 같아서 다보고 구입을 한 책입니다. 예린이와도 가끔 이 책의 사진들을 뒤적이며 같이 즐거워하는 책이예요. 그 뒤 차윤정 씨의 다른 책을 찾아봤는데 대부분 품절이더라구요. 이 책도 알라딘에서는 그 때 품절이어서 다른 곳에서 구입했었는데....
어쨌든 좋은 책에 멋진 리뷰입니다. ^^

미네르바 2005-08-1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부터 보관함에 잠자고 있었는데, 진주님의 글을 보니 당장 사고 싶어졌어요. 저는 이유미씨의 책은 몇 권 읽었는데, 차윤정씨 책은 아직 읽지 못했거든요. <신갈나무 투쟁기>도 보관함에 있는데, 함께 사야겠어요. 탱스투까지 함께 누릅니다. 직접 사서 읽고 싶네요. 아마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바람돌이님처럼 후회하고 다시 살 것 같아요^^

진주 2005-08-1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엇. 그러네요? 다른 때는 리뷰쓰기 전에 다른 사람이 쓴 걸 훑어 보기도 하는데 이번엔 워낙 감동적으로 읽은 터라 얼른 옮기고 싶어서.....
리뷰 쓴 지금은요, 연주가 끝나고 차분하게 앉아 격정적이던 부분을 연상하는 것 같습니다. ^^

panda78 2005-08-19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저 신갈나무 투쟁기 샀는데 무지 기대됩니다. 숲의 생활사도 이참에 장만해야겠군요. ^^ 진주님 리뷰를 읽으니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엔리꼬 2005-08-19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바로 뽐뿌입니다... 신갈나무 투쟁기도 몇년 전부터 살까 말까 고민했던 리스트였는데, 이 책은 더더욱 끌립니다...

플레져 2005-08-20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동감! 추천 꾸욱~ (밑줄긋기에 단 댓글로 제 마음을 대신합니다...^^)

미설 2005-08-20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무리 하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살짝쿵 추천~~

진주 2005-08-2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이 책 읽으며 님 생각도 했다는 거...모르시죠?
판다님의 댓글을 읽는 순간 제가 갑자기 투명해진 거 있죠. 듣기에 아주 좋은 표현-마음이 깨끗해진다! 오홋.
서림님처럼 환경친화론적인 생활을 하시는 분께는 더없이 좋은 책일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플레져님^^
미설님, 참 신기했더랬지요. 문자로 읽은 것이 꿈 속에서 그대로 장대한 숲의 파노라마로 펼쳐지다니...이런 특이한 경험은 자주 없을 듯..ㅋㅋ

읽어주시고, 추천하신 분들...정말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