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생활사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3월
품절


봄바람은 사람을 바람나게 한다. 봄바람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솜털을 간질이는 듯 몸에 감기는 미미한 감촉. 겨울바람의 투박스러움을 한번 상기해보라. 마른 대지를 날아온 바람은 대지의 따스한 열을 받아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면서 공중으로 떠오른다. 봄이면 사람의 마음이 설레는 것도 이 상승기류 때문이다. 봄바람은 단순한 설렘이 아니다. 그러니 억누를 길도 없으며, 억누를 이유도 없다. 사람도 자연이기에.-12쪽

식물은 인간이 꿈꾸는 연금술사이다. 공기중에 340ppm만으로 존재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순수한 탄소를 분리해내고, 분리한 탄소들을 재결합시켜 이파리를 만들고 가지를 만들고 꽃을 만들고 열매를 만든다. 부산물로 배출된 산소는 또 얼마나 귀한 것인가. 도대체 얼마만큼의 이산화탄소를 압축해야 도토리 열매 하나가 될까.-82쪽

이토록 복잡하고 치열한 숲에서 민달팽이의움직임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이다. 거대한 숲은 달팽이에게 무한의 공간이요, 영원의 공간이다. 이 복잡한 숲에서 모두가 자신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는데 어쩌자고 저 민달팽이는 붉은 색으로 도드라지는 것일까. 짙푸른 초록 이끼 위를 기어가는 붉은 민달팽이. 이 정도의 오기라면 구차한 껍질 따위를 벗어던지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 테지.-93쪽

붉은 단풍잎의 자잘하고 갈라진 잎의 가장자리에 작은 보석을 총총히 박아 장식한 서리꽃, 뽀송뽀송한 산쑥의 솜털에 매달린 작은 얼음 방울들, 마른 풀 위에 빛나는 소금 결정을 뿌려놓은 듯 반짝거리는 서리, 키 작은 솔가지 끝에 수정처럼 달려 있는 얼음방울, 서리는 나뭇잎의 질감과 모양을 살려 최상의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옅은 아침 햇살에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가을 서리꽃, 가장 극적인 아름다움의 하나이다. 아주 추운 아침에는 서리꽃은 그대로 얼음으로 굳어져 한낮 동안 빛난다. 그것이 상처가 될지라도 아름다움에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다.-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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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8-20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한여름에 저는 이 책의 여름 부분을 읽었답니다. 봄엔 봄 단락을 읽었구요. 가을이 오고 있으니 가을을 읽을 차례에요. 겨울부터 읽은 거니까... 이 한 권을 읽는 동안 1년이 걸린 셈이지요 ㅎㅎㅎ 차윤정씨의 글은 탐구와 더불어 서정이 있어서 참 좋았어요. 가을이 오면 가을 서리꽃의 극적인 아름다움을 만나길 기대합니다...

진주 2005-08-2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너무 아끼지 말아라. 구석구석 메모도 하고 연하게 줄도 쳐라!"
를 외치던 제가, 이 책은 정말 아껴 아껴 읽느라고 줄을 안 쳐 두었더군요.
베끼고 싶은 문장이 더 많았는데, 요것만 올립니다. 저도 플레져님처럼 일년 내내 끼고 살 것 같아요. 아아..플레져님을 만난 게 참 기쁩니다. 서리꽃은 저도 자주 화두로 삼아 썼는데...우리 같이 가을을 기다려요..아 보고 싶다.서리꼿..

icaru 2005-08-27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에게도 치열한 삶이 있다. 작은 종자 하나에서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싹을 틔우는 일에서부터 잎을 만들고,줄기를 키우고, 뿌리를 키우고, 꽃을 만들고, 열매를 만드는 어느 것 하나 거저 되는 법이 없다..... "
자연을 그저 정신적 위안처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나무는 또하나의 긴장일지도 모른다고 신갈나무 투쟁기에서는 말했지요... 살떨리는 삶의 현장을 나무에게서도 볼 수 있다는 의미로....
책을 읽으면서...도피처같은 위안이 아니라...지구상에 살아가는 생물들의 숙명이랄까요...그런 것에...공감을 얻었습니다...나무나...나나... 박터지게 살아내려 하는 운명은 같은 것!!

진주 2005-08-2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맞아요. 숲은 그저 사람이 밖에서 보는 것 처럼 마냥 평온하고 한가로운 건 저을대~ 아니죠..박터지게 살아내려는 운명!!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