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에 대해서는 나온 책들이 많고
그 중에는 꽤 괜찮은 책도 있다.
우선 <원조비사>라고 - 일명 몽고비사로 번역
되어 있는 책이 있는데
이는 정복전쟁이 막 끝나자
위대한 영웅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다들 모여 한마디씩 늘어놓은 것을
잘 정리한 일종의 영웅서사문학이다.
두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내용을 들춰보면 충격적인 것들이
많이 담겨있다.
특히 징기스칸이 어려서 - 16세 정도
이복형제를 활로 죽인 일은
지금 우리 개념으로 보면 솔직히 충격이다.
이유는 딱 하나.
사냥한 새 한마리를 그냥 집어 갔기 때문이다.
또 어려서 겪었던 여러가지 고난에 대해서
쭉 서술해놓았는대
이런 것들 중 상당수는 위인전에 고스란히
실려있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고 의심하는 그의 성격
특히 개가 두려워 피해다녔다는 둥 하는 면모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면모들이다.

이책 <몽고비사> 이외에 현대에 나온 해설서들도 몇권있다.
그 중에서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것을 추천하고 싶다.
여러가지 사료들을 적절히 비교해가면서
정말 제대로된 역사는 무엇인가를 꾸준하게 탐구해가는
솜씨가 뛰어나다.

이렇게 두권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100만명 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들이
개,쥐를 잡아먹고 살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세계를 정복했다면
그 안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징기스칸이 놓여있고
그의 인간경영학이 세상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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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9-1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에서는 (아시죠? 그 신간) 이복형이 갖는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들판으로 유인해 자신의 친동생과 앞뒤에서 활을 쏴 죽였다고 나오더군요 하여간 저도 갑자기 세계를 지배하게 된 몽골의 그 저력이 뭐였는지 넘 궁금합니다 지식산업사 책이라, 꼭 읽어 볼께요 ^^
 

오스만족은 원래 터키의 동부에 거주하던 유목집단이었다. 비슷한 생활을 하던 셀주크 제국은 그보다 앞서 제국을 건설했지만 이들이 몽고족에게 격파되자 오스만족에게는 기회가 주어졌다. 빠른 속도로 주변을 정복해나간 이들은 곧 대제국을 건설하게되었다. 헝가리의 귀족을 격멸시킨 바예지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메메드 등의 업적도 크지만 무엇보다 대제라고 불리우게된 술레이만이 남긴 업적에 주목해야한다.
그가 남긴 군사적 승리들도 경이롭지만 기독교인들로부터 가장 기사다운 이교도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태도 또한 주목받아야한다.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고 패자를 모욕하지 않았던 그의 인품은 대외적인 교섭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프랑스왕과는 동맹을 맺어 합스부르크 왕가를 견제했고 폴란드의 군주는 직접 조공을 하러 왔다. 오스트리아가 맺은 조약의 내용을 보면 스스로를 속국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업을 이루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무적에 가까웠던 군사력을 꼽아야할 것이다. 제국의 초기 정복시대에는 진자라는 유목민 출신 기병이 주력이었다. 종교로 단결된 정신력과 성과물의 공정한 배분이라는 합리적 가치과 결합되어 이들은 정복전쟁에 몸을 던지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엄청난 폭발력은 제국을 성립시키고 확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제국이 어느정도 부피가 생긴 다음에는 초기의 열정만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
유목시절에는 거의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던 귀족층이 왕조에 도전하게 되고 정복전쟁에 몸을 바쳤던 부족원들의 후손들은 결코 예전처럼 용맹하지도 적극적이지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복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제국의 구성원 중에서 동족의 비율이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이때 정복 제국은 첫번째 위기를 맞게된다.
이 단계에서 대부분의 유목국가는 외부의 새로운 도전세력에 의해 자리를 양보하거나 내부의 도전으로 붕괴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험은 꾸준하게 확대되었고 유능한 행정관료들은 새로운 제도를 창안해서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게 된다. 당시 아랍사회의 학문과 지식이 서구보다 나은 편이었고 이들의 대규모 참여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는 그 시점에서 매우 뛰어난 합리성을 발휘하였다.
오스만이 만들어낸 제도 중 매력적인 것은 예니체리였다. 7-8세의 기독교 소년들을 뽑아 개종과 함께 교육을 시켜 행정관도 뽑고 군사력으로 길러낸 이 제도는 매우 독특한 창안물이다. 결혼을 할 수 없지만 하루 한끼의 식사는 황제가 내리는 특식을 받았던 이들은 개인적인 관계로 술탄과 맺어지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서구의 기독교 세계가 아직 기사와 용병의 합으로 이루어진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근대적 의미의 상비군 역할을 하는 예니체리는 무적의 군사력을 발휘하게된다.
여기에 보완적으로 사하피라는 급료를 받는 지방기병을 유지하였고 다양한 분야에서 징집병도 동원해서 거대한 무력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기술적 발전으로 대포가 활용되게 된 것 또한 새로운 유목민의 도전을 막아낼 수 있게 해주었다.

결국 유목제국은 종교적권위를 통한 새로운 가지 창출과 막강한 물리력을 통해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게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게 된다. 청왕조는 이전의 어느 유목민족보다 오랫동안 큰 문제 없이 중국을 통치할 수 있었다. 이들 또한 유교와 과거라는 중국제국의 기본요소를 잘 흡수하였고 여러가지 보완적인 제도를 만들어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다. 대포는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위력을 발휘해서 유목민들을 제압하는데 효과적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해양민족이 원래 아니다보니 우수한 배를 만들어 바다를 누비기 보다는 필요한 때마다 해적을 고용하는 방법을 취했다. 원래 해군은 나름대로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데 무작정 용감한 육군을 배에 태워 내보내는 방식으로는 노련한 기독교 해군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육지만큼 바다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정화된 제국도 여전히 쇠퇴를 만들어내는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물리력을 동원한 정복은 결코 무한정 뻗어나갈 수는 없었다. 로도스라는 작은 섬 하나를 공략하는데도 5만명 이상의 군사들이 희생된 것을 보면 당시는 아직 대포를 비롯한 공성무기가 성을 중심으로한 방어 진용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 같다. 따라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촘촘이 건설해놓은 수많은 성들을 모조리 점령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소모가 따른다. 즉 확장의 한계효용은 계속 감소하게 되고 따라서 제국은 더 이상 과거의 모델로 발전해가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오던 예니체리와 같은 물리력들이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어 국내정치에 개입하게 된다. 이는 러시아의 귀족으로 만들어진 황실근위대가 제위계승에 꾸준히 간섭했던 것이나 로마의 황제근위대가 제멋대로 황제를 폐위시켰던 것과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예니체리의 완전한 해체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했다.
오스만 제국의 경제력은 상당부분 동방과 서방의 교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과정에서 이탈리아의 여러 상업도시들과는 악어와 악어새같은 의미의 공생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동방항로와 신대륙을 발견해서 새로운 국부를 획득해가자 상업도시와 제국은 동시에 타격을 입게된다.

전제국가의 약점은 군주에게 있다. 유능한 군주가 등장해서 과업을 수행할 때는 제국의 발전이 많았지만 무능한 군주는 전쟁터보다는 할렘을 좋아했고 의심이 많아 친족을 죽이고 재상을 노예 취급하며 마구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토인비 식으로 말하면 창조력의 쇠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제국은 톱카피 궁전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남겼고 할렘의 문화는 지금도 터키탕이라는 야릇한 이름의 문화를 변방까지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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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을 꼼꼼하고 충실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역히 보인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열심히 거리를 달려가는 사람들 앞뒤에는 창밖으로 내던지는 무엇이 있다. 밤을 보내면서 만들어진 다양한 유형의 배설물들이다. 바로 이렇게 쏟아지는 오물들과 가끔씩 극장문을 닫게 만들고마는 전염병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하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이런 의학상식은 보편적인 것이 되지 못해있었다. 전염병 중에 가장 무섭게 여겼던 페스트만 하더라도 병균을 옮기는 쥐를 잡아 태워죽이는 방 식의 해결책은 한참뒤에나 보급된다.

어쨌든 이렇게 거리에 쏟아져있게되는 똥물을 피하기 위해 여자가 안쪽으로 걷게되고 또 되도록 굽이 높은 구두를 신게되었는데 이것이 하이힐이 되었다는 문화사적 상식도 하나 머리에 챙겨두자.

영화에서 여주인공과 정략결혼을 하게되는 에섹스공은 실제 역사책에 이름이 나올 정도로 꽤 명문으로 알려져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관련된 일화중에 유명한 것이 진흙탕 위로 망토를 깔아 좀 더 우아하게 넘어가게 했다는 것이 있다. 바로 월터 롤리라는 측근이 이 일화의 주인공인데 에섹스 공이라는 사람도 비슷한 유형으로 여왕의 가까운 존재였다.
따라서 에섹스공이 자신의 부인감을 여왕의 면전에 보이고 결혼승낙을 받는 장면은 사실과 그리 거리있는 대목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결혼에서 나오는 자금으로 담배농사를 지어볼까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당시 신대륙의 북반부는 스페인이 탐구했던 남반부와는 다르게 애당초 콜럼버스가 기대하던 것과 같은 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땅에 담배가 꽤 잘 가꾸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인간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작물을 키우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이 있게 되었다. 에섹스공이 향하는 곳이 바로 버지니아로 불리우는 땅이다. 처녀로 늙어죽게 되어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기념해서 붙여진 곳이다. 농사짓기 좋은 지역이라 후일 대농장주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조지 워싱턴일 것이다.
어차피 신대륙이라는 곳에 기득권을 주장하는 땅주인은 없고 보면 왕실에 가까운 사람이 특허장이라는 종이 한장을 들고 여기가 내땅이오 하고 선을 긋기는 쉬울 것이다. 그래서 앞서 설명했던 식으로 수익성 좋은 담배농사를 짓는 다면 괜찮은 벌이가 될 것이다. 그 기본 자금을 얻기위해 신흥 Gentry 계급과 통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게 보일 것이 없다. 후일 미국의 졸부들이 유럽의 귀족들과 돈과 이름을 교환해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서 결혼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는 것을 상기해주기 바란다.
어쨌든 우리의 여주인공은 이런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여 결혼에는 응하지만 무엇인가 자신만의 삶을 위한 일탈 또한 전개한다.

셰익스피어의 경쟁자 겸 친구로 나오는 말로라는 극작가 또한 실존인물이다. 매우 촉망받는 젊은이였지만 영화에서 처럼 일찍 죽고 만다. 술집에서 벌어진 사소한 시비로 결투까지 이어져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 대목을 교묘하게도 활용해서 극에 삽입한 재주는 인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

극단에서 여자 단원이 허용되지 않은 것은 물론 성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실제로 조선에서도 유랑극단의 여단원들이 매춘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보면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했던 것 같다. 덕분에 매우 밋밋하고 재미없는 여자 역할을 보게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여자배역이 작은 것도 제대로된 여자배우 역할을 구하기 힘들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당시 채무자들에게 무자비하게 고문하는 장면도 시대배경과 잘 맞는다. 서구사회에서 고문이 정말 없어지게 되는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였다. 채무자의 인권에 대한 보호가 확립되는 것도 그렇게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에는 한가지 명백한 오류가 나오는데 막바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끝나는 장면에서 여왕이 스스로를 대영제국의 우두머리로 표현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존재로서 매우 가난하고 척박한 땅에서 간신히 오랜 전쟁의 끝에서 간신히 회복해가는 상태였다.
여왕이 우아하게 생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굳이 전쟁을 벌이지 않고 대내적으로 관용정책을 펼쳐서 모두를 포용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매우 검소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인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행위였다. 겸손히 대카톨릭 군주인 스페인 왕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조심스럽게 행동했었을 것이다.
영국이 해외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내륙의 전쟁에서 쇠락해진 스페인을 대신해서 강국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은 한참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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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한참을 울게되었다. 스토리는 거의 알고 있었고 진행 또한 느릿느릿해서 급한 성격과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물이 나왔다. 무엇보다 부모님 세대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다 보게 되니 언뜻 앤서니 홉킨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작품 <남아있는 나날들>과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주인공은 철도와 함께 한평생을 보냈다. 기관차에 석탄을 부어넣는 화부에서 출발해서 운전을 하다가 승진해서 역장으로 한참을 보내고 이제 막 정년을 앞두고 있다. 맡은 일에 너무나도 충실하게만 살아온 사람이다.
철로라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만큼 큰 자유를 허용할까? 프랑스에서 인상파 화가들이 활약할 수 있었던 기반에는 철도가 있었다고 한다. 화가들이 기차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바라보니 빠르게 스치는 풍경을 느끼며 전통과는 다른 터치를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행동반경을 넓혀주는 철도였지만 종사자들에게도 똑 같은 자유가 주어졌을까?
그 보다는 꽉 짜여진 틀이라는 개념이 더 들어맞을 것 같다. 워낙 빨리 달리다보니 길의 일부분만 흐트려져도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기차운행은 종사자들을 매우 엄격한 규율속에 생활하도록 만든다. 다양한 수신호를 주고 받으며 점검하고 또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삶을 조금 확대해보면 그대로 우리가 요즘 이야기하는 공장굴뚝의 시대가 느껴지지 않을까? 한번 들어가면 평생을 머물게되는 직장, 엄격한 연공서열, 자신의 일은 정말로 자신이 사명을 다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 등 일본 내지 한국식의 사회구조를 잘 나타내는 셋트가 바로 철도가 아니였을까?

그가 책임을 맡고 머무르는 역 자체가 더 이상 기차가 나아가지 않는 종착역이다. 꽉 짜인 틀에서 주어진 일에 너무나도 충실하게 사느라 자신의 소박한 욕구도 마음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이 바로 주인공이다.

결혼 17년만에 아이가 생겼어도 그는 아내를 포옹하며 같이 기뻐해주지도 못했다. 그저 공적인 업무시간에 사적인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없다는 원칙만 되풀이 할 뿐이다. 이렇게 고지식한 남편을 나 말고 누가 돌볼수 있을까하는 고운 심성을 가진 아내가 옆에 있다. 하지만 그 아내도 급성 폐렴에 걸려 생사가 걸린 자식의 병원길에 동행해주지도 못하고 제때 큰병원으로 옮기지 못해서 마침내 싸늘하게 식어버린 자식의 몸뚱이를 안고 오는 아내가 탄 기차를 평소와 다름없이 수신호와 구호로 맞이하는 남편에게는 정말 한없는 원망을 쏟아내고 싶었다. 마침내 병약하던 아내도 기차를 타고 병원길을 가게된다. 역시 교대근무자가 없기에 혼자 보낼 수 밖에 없지만 이번만은 그도 그냥 보내기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역에서 몇분을 더 끌어보았지만 그래도 기차는 떠나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내마자 돌아오지 못하는 객이 되고 말았다. 홀로남아 지키는 역은 쓸쓸했다.

그렇게 열심히 앞만보고 주어진 일에 충실했지만 사회는 빠르게 변모하고 만다. 인정과 배려보다는 돈의 효용에 따른 합리성이 더 중시되는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새파랗게 젊은 자식뻘의 아이가 벌써 조직의 상층부에서 자신을 컨트롤하는 지위에 올라가있다. 그리고 매우 유감스럽지만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조직의 뜻을 전달한다. 지금 머무르는 집도 비워야 할 것이다.

이제 정말로 정년을 얼마남기지 않은 날에 철도원 생활을 같이 시작했던 동료가 기차를 타고 왔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일들을 회고한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일본판 포레스트 검프라고나 할까? 짤막한 배경장면들을 활용해서 일본사회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느라 겪어야 했던 힘들었던 집단적 잠재의식을 개인의 시선으로 보여나간다.
회사의 이익에 맞서서 동료들이 단합해가지고 취업열차를 운행하게 했던 점은 가슴 뿌듯한 추억이다. 이제 막 취업하러가게 된 어린 고교생들을 싣고 가면서 고향에 대한 좋은 기억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기적소리를 울려줄 정도로 자상한 마음가짐들이었다. 그 뒷면에는 전원취업을 기뻐하며 도회지에 나가서는 모두 열심히 먹고 살아라는 격려를 하면서 만세 삼창을 하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가 힘을 합쳐 잘 살아 보자는 소망은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서울역과 미아리에서 보듯이 그렇게 도회로 나간 소년 소녀들 중에는 힘에겨운 일에 눌려서 옆으로 삐져나가 술집의 매춘부로 도심의 부랑인으로 살아가게된 존재들도 꽤 있을 것이다. 씁쓸했던 부분을 옆으로 젖혀놓고서라도 고생을 추억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시간이다.
탄광촌이 지금은 노인밖에 없는 소멸해가는 공간이지만 과거에는 엄청난 달러를 벌어와 전체 국민을 먹여살렸던 그야말로 효자산업이었다는 회고도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 하나 데리고 달랑 왔다가 탄광사고로 목숨을 잃은 어떤 아버지의 모습도 생각난다. 한국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눈물겨운 사연들이다. 사진 한장 변변한 것이 없어서 아이가 어린 마음으로 그려낸 아버지의 영정은 바로 산업현장에서 고유의 인격이라기 보다 대체될 수 있는 그리고 소모되는 기계의 부품으로 취급되며 살아가다 짓눌려버린 우리의 아버지들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부모가 없어진 아이를 보면서 집에 자손이 없기에 거두어 대를 잇게하고도 싶었지만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어 포기했는데 되돌아보니 너무도 아쉽다.
그러던 중에 조그마한 아이가 역앞에 나타나서 왔다갔다하다가 옛날 인형을 놓고 갔다. 한밤중에는 다시 그 아이의 언니가 와서 재롱을 떨다간다. 정말로 귀여운 아이였다. 따끈한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더니 눈을 감게하고 입에 뽀뽀를 하는 그런 사랑이 담뿍안기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이아이도 여전히 인형을 놓아두고 갔다. 다음날 정말로 묘하게 자신의 아내와 닮은 제법 큰 아이가 나타났다. 상당히 구닥다리 교복을 입은 이 아이를 보면서 너무도 아름답다고 느낀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맛있게 요리를 해놓고 같이 먹자고 한다. 잠시 여러이야기를 하면서 참 이쁘다고 생각하는 때에 전화가 한통화 온다. 현실이 너의 행복은 환영이라고 깨우쳐주려는 것이다. “아 이제야 알겠다. 너야 말로 나의 아름다운 딸,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줄 알았던 너가 이렇게 커서 나에게 왔구나.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사회에서 조금만이라도 출세 했다면 도회지에서 근무할 수 있었겠지. 그랬다면 감기 정도 걸린 것으로 작디작은 너를 싸늘하게 식혀서 땅에 묻지는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먼저 간 사람들 중에 보고 싶던 얼굴이 나타나게 되면 그건 다음 차례가 자신이라는 메시지라고 했던가? 딸은 떠나가면서 인형은 들고 갔지만 아직도 식탁에는 보글거리는 찌게가 남아있다. 꿈일까 생시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눈발을 헤치고 달려온 제설차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을 따름이다. 한참을 달려와보니 눈에 뒤덮인 역에 쓰러져 조용히 누워있는 우리의 주인공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 철도원의 삶의 매듭을 보여주면서 그렇게 영화는 매듭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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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왔다는 점,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비디오를 집어들었고 무려 2시간이 넘게 보았다.

2차 대전 중의 몇년간을 - 대략 40년에서 44년 까지
그리스의 작은 섬에서 실제 벌어졌다는 일을 가지고
보여주었다.
작은 섬이 이탈리아에 점령되고
평화롭지만 긴 점령기간 끝에
주민과 이탈리아 군인들이 서로 이해하며
동화되다가 마지막에 독일에 대항해서
함께 싸운다.

여주인공도 아름답고 행동도 귀엽게 봐줄만하지만
영화 전체로는 별로 집어들고 싶은 메시지가 없다.
그리스 전쟁은 이탈리아가 먼저 시작했고
역량이 안되자 -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14000명이 8000명에게 밀리고
동맹군의 체면 때문에 독일이 개입한다.
이탈리아는 리비아에서도
영국군에게 먼저 도발했다가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박살이 났고
롬멜이 급파되게 된다.
도대체 역량이 안되면 벌리지나 말지
히틀러가 무솔리니 한테 싸워달라고 나선 것도 아니다.
어쨌든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고깝게도
이탈리아 군에게 점거 당한다.
하지만 이 군대는 정말 놀기만 좋아하는 날라리들이다.
그 덕분에 서로 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막바지에는 갑자기 독일군에 맞서서 함께 싸우다가
대거 희생된다.
이것도 정말 우스운 진행이다.
거의 의미 없는 개죽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쟁 영화를 보고 싶다면 명작으로 꼽히는 옛날 작품을 보고
예를 들면 <콰이 강의 다리>
연애 영화를 보고 싶다면 다른 작품들을 추천하는 게 좋겠다.
예를 들면 <구름속의 산책>, <You've got mail>, <When harry met s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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