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배경을 꼼꼼하고 충실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역히 보인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열심히 거리를 달려가는 사람들 앞뒤에는 창밖으로 내던지는 무엇이 있다. 밤을 보내면서 만들어진 다양한 유형의 배설물들이다. 바로 이렇게 쏟아지는 오물들과 가끔씩 극장문을 닫게 만들고마는 전염병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하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이런 의학상식은 보편적인 것이 되지 못해있었다. 전염병 중에 가장 무섭게 여겼던 페스트만 하더라도 병균을 옮기는 쥐를 잡아 태워죽이는 방 식의 해결책은 한참뒤에나 보급된다.

어쨌든 이렇게 거리에 쏟아져있게되는 똥물을 피하기 위해 여자가 안쪽으로 걷게되고 또 되도록 굽이 높은 구두를 신게되었는데 이것이 하이힐이 되었다는 문화사적 상식도 하나 머리에 챙겨두자.

영화에서 여주인공과 정략결혼을 하게되는 에섹스공은 실제 역사책에 이름이 나올 정도로 꽤 명문으로 알려져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관련된 일화중에 유명한 것이 진흙탕 위로 망토를 깔아 좀 더 우아하게 넘어가게 했다는 것이 있다. 바로 월터 롤리라는 측근이 이 일화의 주인공인데 에섹스 공이라는 사람도 비슷한 유형으로 여왕의 가까운 존재였다.
따라서 에섹스공이 자신의 부인감을 여왕의 면전에 보이고 결혼승낙을 받는 장면은 사실과 그리 거리있는 대목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결혼에서 나오는 자금으로 담배농사를 지어볼까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당시 신대륙의 북반부는 스페인이 탐구했던 남반부와는 다르게 애당초 콜럼버스가 기대하던 것과 같은 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땅에 담배가 꽤 잘 가꾸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인간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작물을 키우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이 있게 되었다. 에섹스공이 향하는 곳이 바로 버지니아로 불리우는 땅이다. 처녀로 늙어죽게 되어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기념해서 붙여진 곳이다. 농사짓기 좋은 지역이라 후일 대농장주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조지 워싱턴일 것이다.
어차피 신대륙이라는 곳에 기득권을 주장하는 땅주인은 없고 보면 왕실에 가까운 사람이 특허장이라는 종이 한장을 들고 여기가 내땅이오 하고 선을 긋기는 쉬울 것이다. 그래서 앞서 설명했던 식으로 수익성 좋은 담배농사를 짓는 다면 괜찮은 벌이가 될 것이다. 그 기본 자금을 얻기위해 신흥 Gentry 계급과 통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게 보일 것이 없다. 후일 미국의 졸부들이 유럽의 귀족들과 돈과 이름을 교환해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서 결혼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는 것을 상기해주기 바란다.
어쨌든 우리의 여주인공은 이런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여 결혼에는 응하지만 무엇인가 자신만의 삶을 위한 일탈 또한 전개한다.

셰익스피어의 경쟁자 겸 친구로 나오는 말로라는 극작가 또한 실존인물이다. 매우 촉망받는 젊은이였지만 영화에서 처럼 일찍 죽고 만다. 술집에서 벌어진 사소한 시비로 결투까지 이어져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 대목을 교묘하게도 활용해서 극에 삽입한 재주는 인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

극단에서 여자 단원이 허용되지 않은 것은 물론 성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실제로 조선에서도 유랑극단의 여단원들이 매춘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보면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했던 것 같다. 덕분에 매우 밋밋하고 재미없는 여자 역할을 보게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여자배역이 작은 것도 제대로된 여자배우 역할을 구하기 힘들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당시 채무자들에게 무자비하게 고문하는 장면도 시대배경과 잘 맞는다. 서구사회에서 고문이 정말 없어지게 되는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였다. 채무자의 인권에 대한 보호가 확립되는 것도 그렇게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에는 한가지 명백한 오류가 나오는데 막바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끝나는 장면에서 여왕이 스스로를 대영제국의 우두머리로 표현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존재로서 매우 가난하고 척박한 땅에서 간신히 오랜 전쟁의 끝에서 간신히 회복해가는 상태였다.
여왕이 우아하게 생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굳이 전쟁을 벌이지 않고 대내적으로 관용정책을 펼쳐서 모두를 포용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매우 검소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인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행위였다. 겸손히 대카톨릭 군주인 스페인 왕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조심스럽게 행동했었을 것이다.
영국이 해외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내륙의 전쟁에서 쇠락해진 스페인을 대신해서 강국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은 한참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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