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는 것에 대한 혐오

이쯤이면 괜찮아, 이쯤이면 괜찮아

누구나  제 삶을 의심하지 않기 위해 견디고 있다

나는 나를 의심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2004년 10월 24일 오후  

 

Dominic Miller, Adagio in G Minor

 

도미니크 밀러...
1960년 아르헨티나 출신의 기타리스트, 작곡가
어쿠스틱 기타를 위주로 컨템퍼러리 재즈, 뉴에이지 스타일
깔끔하고 품격 높은 감성적 연주
스팅의 명곡 'Shape Of My Heart' 공동 작곡
www.dominicmill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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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한 마디


나 한 마디


가을 깊어가는구나



-- 다카하마 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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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0-23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늘의 하이쿠 꼭꼭 읽는다는 거 아시죠? 저 가을 깊어가는 길 좀 걷어싶어라...
또 벌써 주말이네요. 라일락와인님, 왜 이렇게 세월이 무섭도록 빠르대요?

2004-10-23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4-10-23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을 느끼시는군요. 나이가 드셨다는 증겁니다^^ 하이쿠하면 왜 몸 할아버지가 생각나 주책없이 웃게 되는 지... 좋네요. 우리 마음 통하였을까요^^

에레혼 2004-10-23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쿠'를 사랑하는 이 안님, 저런 길 보면 정말 하염없이 걷고 싶어지지요.....요즘 제가 빠져 있는 말, 길과 풍경입니다. 우리, 언제 저런 길 한번 같이 걸어 볼까요? 서로 아무 말 안 해도 많은 말들이 오고갈 것 같은......

물만두님, 하이쿠와 몸 할아버지의 관계, 그 연상 작용의 모태가 된 만화책 한번 봐야겠네요, 언제 기회가 있으면 빌려 주세요

에레혼 2004-10-23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님, 제 방의 사진들 중 아주 적은 일부만 제가 찍은 것이구요, 대부분은 제 그림 창고에 저장돼 있는 것들을 가져다 쓰는 겁니다. 그 사진들이 다 어디에서 왔느냐구요? 제가 마실 다니거나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길 위에서 마주친 것들이랍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있는 사진들을 좋아해요.......
 

 

새로 이사한 집 가까이에 커다란 못이 하나 있습니다. 어쩌면 그 못이 저를 이 동네로 오도록 끌어당겼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제 오후 늦게, 산책 삼아 슬슬 걸어가 보았습니다. '금산못'이라고도 하고 '금호 저수지'라고도 불리는 크고 깊은 못까지...... 저의 발걸음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가는 길에 한 가게 앞 간이 뜰에 피어 있는 분꽃을 만났어요. 어릴 때 집 마당에도 이 진달래빛 분꽃과 노란 색 분꽃이 심겨져 있었지요. 작고 정겨운 세간살이 같은 꽃. 소꿉놀이 할 때  어떤 재료로 쓰였더라.......





 

 

 

이런 건물들 앞을 지나서....... 철물과 만두집이 한 간판에 적혀 있는 저 가게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서 기웃거리게 합니다. 아무리 봐도 철물들만 잔뜩 쟁여져 있을 뿐 만두를 팔 것 같지는 않은데, 저 '만두'가 의미하는 게 그 '만두'가 아닐까요? 그 옆의 댄스 교습 학원. 창문에 커다랗게 로만 재즈, 에어로빅... 그리고 한쪽 편에 "프리 댄스= 나이트 댄스 + (?)"라고 적혀 있습니다. 괄호 안에 들어갈 정답이 뭐지요? 퀴즈를 푸는 사람처럼 혼자 속으로 묻곤 합니다.





 

 

 

 

 

 

 

 

 

자, 이제 저수지 입구에 다 왔습니다. 언제나 그런 곳의 초입에 있기 마련인 주점 문앞에 이런 술단지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더군요. 막걸리 300리터라면 몇 사람이 하룻밤을 작파할 수 있는 용량이 될까요? 저 정도를 마셔 줘야 술 한 동이 비웠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런 길을 따라 오른쪽 편으로 못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렇게요..........


 

 

 

 

 

 

 

 

 

 

 


 

 

 

 

 

 

 

 

 

 

 


 

 

 

 

 

 

 

 

 

 

 

못 주변에서 만난 풍경들, 저 '찜갈비집' 플래카드를 잠시 봐주실래요? "MBC, KBS, SBS에 출연하고 싶은 집"이라고 씌어 있군요. '출연한 집'이 아닙니다. '출연하고 싶은 집'이랍니다. 그 깜찍한 기대와 유머에 빙그레 웃고 맙니다.

고추는 빠알갛게 익어가고, 곡식 나락은 햇빛과 바람에 말려지고 있습니다.




 

 

 




 

 

 


 

 

 

 

 

 

 

 

 

 

 

그새 호수 위에는 붉은 기운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손톱만한 달도 새침하게 보이네요.


 

 

 

 

 

 

 

 

 

 

저수지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등산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아, 평상이 있군요, 평상! 그 뒤켠에는 특이하게도 게시판 모양의  거울이 세워져 있습니다. 소정상까지 1.5km 정도.... 온 김에 조금만 더 올라가 볼까요.


 

 

 

 

 

 

 

 

 

 

 

 

 

 

 

 




 

 






 

 

 

 

 

30분쯤 산길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이 하늘은 조금 더 어두운 푸른 빛으로 물들었습니다.


 

 

 

 

 

 

 

 

 

 

 

못에는 붉고 노란 노을이 황금 벼처럼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구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겠지요? 짧은 산책, 괜찮으셨나요?

 

 

Joan Baez-The River In The P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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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10-23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은 그림처럼 그윽하고,간판들은 생활처럼 앙앙불락하여 귀엽고,그리고 추워지는 느낌에 쓸쓸합니다. 잘 봤어요.좋은데요.

2004-10-23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넘 멋있어요. 너무 재밌구요..어제 달이 저랬지요..저렇게 작은 사진은 사이즈를 어떻게 넣나요..배우고 싶어라..그리구 이 노랜 저의 추억의 노래인데..헐..

내가없는 이 안 2004-10-2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 따라 산책 즐거웠어요. ^^

2004-10-23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4-10-2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은 풍경화 같아요. 산책 끝내고 커피 한잔 하러 가요~ ^^

에레혼 2004-10-2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 따라 나오신 님들, 좋으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참나님, 저도 저런 사이즈로 만드는 것 처음 해봤는데, 포토샵에서 이미지 사이즈를 200으로 해서 줄여 봤어요, 보통 다른 사진들은 500으로 했거든요...... 이렇게 설면하면 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네요....... 잘 모르는 대로 한번 시도해 보는 거죠, 뭐.

서재지인들이 제 카메라에 담긴 풍경을 좋다 하시니, 내가 사진 좀 찍나~ 하는 자만심이 슬 고개를 듭니다.^^;; 실은 카메라의 대상이, 빛과 길의 풍경이 모든 걸 다 받쳐 주고 있는 건데 말이지요......
 

 

이곳에 숨어 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송찬호

 

 

이곳에 숨어 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병이 깊어 이제 짐승이 다 되었습니다

병든 세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황홀합니다

이름 모를 꽃과 새들 나무와 숲들 병든 세계에 끌려 헤매다 보면

때로 약 먹는 일조차 잊고 지내곤 한답니다

가만, 땅에 엎드려 귀 대고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종종 세상의 시험에 실패하고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 번씩 세상에 나아가 실패하고 약을 먹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가끔씩 사람들이 그리우면 당신들의 세상 가까이 내려갔다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지난번 보내 주신 약 꾸러미 신문 한 다발 잘 받아보았습니다

앞으로 소식 주지 마십시요

병이 깊을 대로 깊어 이제 약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병든 세계를 헤매다 보면

어느덧 사람들 속에 가 있게 될 것이니까요

 

 

 

 

 

 

 

 

 

 

 

 

 

 

 

 

 

 

 

 

 

 

 

말의 폐는 푸르다

송찬호

 

 

숲은 나무 바깥에 있는 나무의 폐

공기는 푸르다 그 공기에 푸르게

다쳐가는 나무들 숨을 쉴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공기에 다쳐갔던가

 

우리는 아직 숨쉬기 바깥에 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우리는 숨쉬기 직전의 단 한번의 공기들

이봐 자네의 숨쉬기는 어땠나, 한줌의 재였나, 연기였나?

공중에 퉁겨오르는 다친 나무 뿌리를

다시 땅에 밟아넣는다 머리를 쳐드는

포로들을 구덩이에 밀어 처박듯이

 

다친 개들이 아직도 울부짖고 있다

우리가 개가 아니라면

어찌 저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우리가 쓰는 지금 이 말도

이미 오래 전 개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을까

개들이 물어뜯던 말,

사육된 말


 

카티아 카르데날, 나의 길에(En Mi C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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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3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4-10-2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아찔합니다.

에레혼 2004-10-23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詩我一合雲貧賢님, 오늘[어제!] 저 시가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병이 깊을 대로 깊어 이제 약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렇게 병든 세계를 헤매다 보면 / 어느덧 사람들 속에 가 있게 될 것이니까요"에 감정이입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감정 이입은 때로 무책임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
이즈음 저녁마다 저 노래를 하염없이 듣고 있습니다. 니카라과 태생의 가수라고 하는데, 그 애조 띤 음성과 가락이 우리 정서에 잘 맞지요?

귓속말님..... 기다리고 있어요! 이 설렘이 좋아요. 가슴속의 작고 여린 촛불 같은....... 그대도 부담 대신에 즐거운 설렘만 느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쩐지 미안해지려고 하네요.

숨은아이님, 층층 계단 오를 때 걸음 조심하세요!^^



hanicare 2004-10-23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인 줄 알았습니다.

2004-10-2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쓴 시 같군요..흐흐흐

에레혼 2004-10-2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이 이미 먼저 썼을지도 모르지요......
 

 

아침에 청소를 하다가, 문득, 그냥, 불현듯, 오래 걸어 온 끝에 밀려드는 갈증처럼, 영화를 보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디오도,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더빙된 영화도 아닌 '고전적으로' 극장에서 보는 영화....... 무엇이 목말랐던 것인지, 무엇이 그리웠던 것인지.......

알렉산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21그램>을 보았다. 극장 안에는 나를 빼고 한 쌍의 젊은 연인이 있을 뿐이었다.

<아모레스 페로스>의 그 강렬하고 지독한 운명적 우연과 인연의 교차를 기억하고 있는 나는 <21그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고 있는 바가 없었다. 첫 장면이 시작될 때  아, 숀펜이 나오네... 했을 정도로. 난 외우기 어려운 이름의 이 감독의 진지하고 엄숙한 질문법이, 실수로 뒤엎은 직소 퍼즐처럼 시간의 조각들을 한데 뒤섞어 제멋대로 배열해 놓는 그의 스타일이, 흐릿하고 탁한 모래알을 뿌려놓은 듯한 거친 화면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한마디로 나는 그의 방식이 좋았다. 요즘 유행하는 유머와 따뜻한 가벼움을 외면할 수 있는, 그의 뜨거운 묵직함이.

영화를 보고 나와 친구의 서점에서 책을 한 권 골랐다.  나카무라 유지로와 우에노 치즈코의 왕복 서간집<인간을 넘어서-- 늙음과 젊음, 남과 여>. 우연히, 세상의 인상적인 만남의 순간이 알 수 없는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그저 우연히 이 책의 차례를 보고 마음이 확 쏠렸다.  아라비아해의 석양, 늙음의 섹슈얼리티, 어린아이의 시간, 다극화하는 자아, Never say "Next time"....... 이 책의 부제인 늙음과 젊음, 남과 여의 문제는 언제나 그래 왔고, 특히 이즈음 내가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주제이다.

친구를 보면서, 나는 나의 '나이듦'을 실감한다. 그의 피로한 얼굴, 물기 빠져 버린, 되풀이된 세탁으로 적당히 탈색돼 버린 듯한 표정, 열정이 채 증발하지 않은 그 위에 심드렁함을 걸치고 있는 몸의 언어, 그리고 간간이 별뜻없이 찾아드는 가벼운 침묵. 그 공기. 그리고 지는 시월의 석양. 이렇게 우리의 2004년 시월이, 또 한 번의, 그러나 어느 것과도 닮지 않았을 이 가을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알라딘의 적립금으로 주문한 디브이디 타이틀 두 개를 저녁 무렵 받았다. 쟈크 리베트의 <알게 될 거야>와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 지난번에 주문했던 오즈의 <가을 햇살>과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은 품절이라고 나중에 연락이 왔었다. 이번엔 내가 원하던 것들이 무사히 나에게까지 당도했다. 늘 원하던 것을 무사히, 그리고 쉽게 얻게 되는 건 아니다.

 

...................

갑자기 모든 것이 하나의 상징으로, 하나의 맥락을 가진 숨겨진 의미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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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10-22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21그램 볼 생각입니다. 최근 기대되는 영화 중 하나네요.

에레혼 2004-10-23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 저는 좋았어요. 전작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터라, 이 감독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몇 해 전 우연히 보았던 <아모레스 페로스>는 그 뒤 비디오로도, 디브이디로도 구할 수가 없어요, 소장하고 싶은데......

님, 이 영화에 대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게 더 좋으리란 생각입니다.

2004-10-23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레혼 2004-10-2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님, 그런 계기로도 우리는 만나게 되곤 해요, 이름, 목소리, 어떤 말 한마디에 이끌려서......
들러주셔서 반갑구요, 물론 여기 있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 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