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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원작, 송병선 옮김, 민음사)
(헥토르 바벤코 감독)
삶이라는 이 난해하고 부조리한 과정을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하라고 한다면(이렇게 과감하고도 허황된 요구를 과연 누가 할 수 있으랴만....),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관계'와 '영향'이다. 이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는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멀고 가까운 관계 속에서 미처 다 감지하지 못하는 크고 작은 영향들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고,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미워하면서, 일상의 삶이 기우뚱거릴 만큼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때로는 아주 무심하게 그냥 지나치면서, 어떻게든 누군가의 삶과 겹쳐지려 애쓰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자기 삶에서 지워 버리려 애쓰면서, 누군가를 알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알지 못한 채, 또는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 사이 누군가와의 보이지 않는 관계망 속에 일찍부터 들어가 있으면서, 그렇게 우리는 자기 앞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만나 어떤 관계를 이루고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느냐가 어쩌면 그 삶의 궤적 전부일지도 모른다. 나는 때때로 '영향(影響)'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곤 하는데, 그 말이 가리키는 그대로 '그림자'와 '메아리'― 바로 그것이 관계라는 것의 본질을 놀랍도록 명쾌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그가 만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언가가 조금씩 달라진다. 둘은, 둘의 사이는 변화한다. 내가 그의 그림자가 된다. 그가 나의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 둘은 서로 만나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여기 두 남자, 아니 두 사람이 있다.
비좁고 음습한 감방,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동성애자와 혁명을 꿈꾸는 냉소적인 정치범. 이 둘은 서로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지니고 서로 너무도 다른 성격과 방식으로 살아 왔고, 그 '다름'은 감방이라는 이 좁은 공간 안에서 자연히 부딪히게 된다. 경멸과 혐오와 차별과 몰이해...... 그 부딪힘은 '갇혀 있는 현실'을 잊기 위해 시작된 다섯 편의 영화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진행된다. 그리고, 마지막 영화 이야기가 끝날 즈음 두 사람은 어느덧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그림자가 되고 서로의 삶에 깊은 메아리를 울리게 된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두 죄수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끌고 나가는 한 권의 책, 무척 흥미롭고 뜻밖에도 이야기가 풍부하다.
발렌틴(라울 줄리아)은 기자 출신으로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검거된 정치범이며, 또 다른 한 명은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된 몰리나라는 동성애자이다. 몰리나(울리엄 허트)는 교도소 쪽으로부터 발렌틴의 조직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알려주면 석방해 주겠노라는 제안을 받는다.
감성적인 몰리나는 감옥 생활의 따분함을 잊기 위해 그가 보았던 영화를 발렌틴에게 이야기한다. 헐리우드 영화에 빠진 순진한 동성애자와 단호한 좌파 행동가의 거리가 쉽사리 좁혀질 리 없다. 처음에 몰리나는 나치 치하에서 적을 사랑하는 여가수의 이야기를 발렌틴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발렌틴은 마르크시즘에 입각하여 그 영화에 대한 평을 한다.
"이건 더럽고 추잡한 나치 영화란 말이야!"
"아니야, 더럽고 추잡한 것은 바로 너지, 영화가 그런 것이 아니야."(81쪽)
현실의 고통을 잊고 싶은 몽상가와 현실을 직시하려는 투사의 팽팽한 관계는 소설 속 영화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누그러지고 변화한다. 몰리나와 발렌틴은 생각과 감성의 차이를 계속 드러내지만, 어느 시점부터 두 사람의 언어엔 촉촉한 기운이 번진다. 모두 여섯 편의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이 서서히 둘은 서로의 그림자가 되고 메아리가 된다.
두 사람의 대화 가운데 무척 인상적이었던 대목 하나. 자신이 생각하는 '남자다움'에 대해서 나누는 두 사람의 견해는 이렇게 서로 다르면서도 아름답다.
― 몰리나 : "남자에게 가장 근사한 점은 멋지게 생기고 힘이 센 거야. 힘이 세다고 과시하지 않지만, 자신있게 나아가는 그런 태도지...... 자기가 뭘 원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야. 물론 전혀 겁내지 않고."
― 발렌틴 : "그 누구에게 허풍 떨지 않는 것...... 심지어 권력을 쥐고 있더라도. 아니, 남자가 된다는 것은 그 이상의 무엇이야. 그건 명령이나 팁 따위로 그 누구도 깎아 내리지 않는 것이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 네 옆에 있는 누구에게나 자신이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또 마음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 (89 - 91쪽)
혁명 투사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자기 존중의 자세를 배우는 몽상가. 그리고, 처음에는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동성애자로부터 진정한 사랑의 자세와 인간애를 배우는 혁명 투사.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마침내 '몸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하나가 된다. 그 육체적 합일의 순간이 막 지나고 나서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는 그 어떤 연인의 사랑의 장면보다도 아름답고도 슬프다.
"또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알아, 발렌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주 짧았지만, 내가 여기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 여기도 아니고 밖도 아닌 것 같은 그 어떤 느낌......"
"........."
"나는 없고....... 너 혼자만 있는 것 같았어."
"............"
"내가 아닌 것 같았어. 지금 난...... 네가 된 것 같아." (289쪽)
결국 몰리나가 교도소의 제안을 받아들여 고뇌와 갈등 속에서 석방하게 되면서, 둘은 작별을 나누게 된다.
"내 생각 많이 할 거야?"
"너한테 많은 것을 배웠어...... 몰리나......."
"발렌틴, 너한테 한 가지 약속할게. 널 떠올릴 때마다, 난 행복할 거야. 네가 나한테 가르친 대로 말이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약속해 줘....... 다른 사람이 널 무시하지 않도록 행동하고, 아무도 널 함부로 다루게 하지 말고, 착취당하지도 말아. 그 누구도 사람을 착취할 권리는 없어." (344쪽)
꽃은 봉오리로 바쳐져도 헛된 희생은 아니라고 했던가. 투사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배운 몽상가는 헌신이라는 이름의 사랑에 마침표를 찍는다. 발렌틴의 전갈을 동료에게 전하려던 몰리나는 거리에서 총격을 당하고, 전기 고문을 받은 발렌틴은 교도소 의무실에서 몰리나라는 거미여인을 꿈꾸면서, 몰리나가 이야기한 영화를 자신의 영화로 만들면서 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동성애자는 혁명가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러 달려가다 죽어 가고, 혁명가는 사랑을 깨달으며 죽어가는, 다시 말해 사랑이 혁명이 되고 혁명이 사랑이 되는 경이로운 역설과 화해의 드라마.......
"나는 성에 있어서 음성적이고 터부시되는 모든 것을 탈신비화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 마누엘 푸익은 영화 감독이 되려다 실패한 사람이다. 1932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푸익은 6살 때부터 극장에 출근하다시피 한 헐리우드 키드였고 실험영화에 심취한 적이 있으며 조감독도 거쳤으나, 결국 감독으로 이름을 남기진 못했다. 대신 소설을 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소설은 영화보다 더욱 영화적이었다. 왕가위 감독은 자신의 <아비정전>과 <해피투게더>가 푸익의 <상심의 탱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76년에 첫 출간된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는 푸익의 대표작이며, 그의 이름을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마르케스와 보르헤스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걸작이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1985년 헥토르 바벤코 감독의 영화로 일반인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왔지만, 원작의 풍부하고 섬세한 울림을 뛰어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 몰리나가 이야기하는 기억 속의 영화는 황색 톤으로 그려지고, 현실 속의 감옥은 푸른색으로 채워진다. 환상으로서 영화와 폭력만 남은 환멸의 시대가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는 셈이다. 핵토르 바벤코 감독이 지휘한 '갇힌 자유인'의 노래는 끝까지 부드럽고 크게 울린다. 윌리엄 허트는 감성적인 동성애자 몰리나 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로 아카데미와 칸느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는 가슴을 적시는 빼어난 연애 소설이다. 몰리나가 "맹세컨대 내 영혼은 모두 당신의 것이고, 내 생각과 삶도 당신의 것입니다. 마치 이 고통처럼..."이라고 '내 편지'라는 곡을 노래할 때, 두 사람의 사랑엔 어떤 이물질이 끼어들 틈도 보이지 않는다. 몰리나의 애절한 노래와 죽음은 동성애에 대한 어떤 변호보다 깊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거미여인의 키스>에 대해 시인 황인숙은 이런 시를 썼다.
"몰리나의 사랑이 불쾌하지 않은 건 몰리나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육체를 벽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몰리나의 가슴은 평화와 우아함과 미소로 가득했다. 몰리나는 진정한 여성이며 진정한 인간이었다. 나는 이 기묘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한 편의 판토마임을 생각했다."
나는 몰리나의 사랑의 자세에 대해 이런 군말을 덧붙인다.
"사랑하는 방식이 그 사람의 존재하는 방식이다"라고. 이 시대는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다양한 잣대로 규정 짓는다. 가령 당신이 소유하는 것이 당신을 말해 준다고 한다. 또, 당신이 보는 것, 당신이 읽는 것, 당신이 만나는 사람이 당신을 말해 준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잣대보다도 이것을 믿고 싶다. "당신이 사랑하는 방식이 당신이 존재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