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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는 '그린 하우스 앞'이었다. 지난해 이맘때 약속 장소도 같았다. 그때는 건물이 공사 중이었다. 올해는 아예 낯선 간판과 산뜻한 인테리어로 새롭게 단장한 신축 건물이다. 이제 그린 하우스는 사라졌다. 사라져 버렸으나 우리의 기억 속에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그린 하우스 앞에서 우리는 만났다. '그린 하우스 앞'이란 말은 '*대 앞'이란 말처럼 그 언저리에서 한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하나의 독립된 고유명사인 셈이다. 추억은 때로 융통성 없이 고집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그 거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추억의 공간 가운데 하나인 '오리지날'에 찾아 들어가 추억의 메뉴를 주문했다. 야채와 오징어 튀김, 그리고 라면과 쫄면 사리가 들어 있는 떡볶이. 식초와 간장과 약간의 설탕과 고춧가루가 적당히 배합된, 그 위에 송송 썬 실파와 깨소금이 섞여 있는 양념 간장의 맛 또한 정감 있는 튀김의 모습과 함께 여전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맛은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달라진 것은 구체적인 맛이 아니라 공기였을지 모른다. 오랜 시간의 빛과 기억의 먼지를 통과해 온 공기의 질감. 오래 입어 날긋날긋해진 옷소매처럼 고단하고 원숙해진 공기의 질감.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추억을 저장하는, 추억과 버무려진 맛을 기억하는 회로는 어느 지점에선가 자의적인 왜곡과 조작을 거쳤을지 모를 일이다. 기억은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해서 우리가 기댈 만한 기록이지만, 언제나 과거의 공정한 영수증이 돼주지는 못한다.

 



가미분식 앞을 지날 때는 첫 임신 때 입덧을 하면서 눈물겹도록 가미의 주먹밥이 먹고 싶었다던, 당시 미국에 가 있었던 친구 J가 생각났다. 나는 가미의 주먹밥만큼이나 가미 우동에 딸려 나오는 그 달착지근한 짠지무침의 맛을 때때로 그리워했다. 어느 해인가는 혼자 학교 앞을 배회하다가 가미에 들러 우동을 사먹기도 했다. 그 즈음에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J를 만나기도 했으나, 이제 나는 J와 연락이 끊어졌고 혼자 가미 우동을 먹는 순간 같은 건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의 한 토막은 거리를 걷다가 문득 발부리에 채이는 돌멩이처럼 돌연 의식의 수면 위로 튀어 오르곤 하는데, 그 숨어 있는 맥락과 뿌리를 추론하는 일은 난해하고도 흥미롭다.
우리가 지녔던 감정들이 어떤 공간에 희미하게나마 각인된다고 생각하면, 평소에 무심결에 스쳐 갔던 곳이라도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흘러서 쌓여 현재 '여기'의 느낌과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면 '여기'는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공간이 된다.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이나 한 시절을 보낸 학교 앞 거리에 대한 애착 같은 것도 어찌 보면 그 공간이 간직하고 있었던 기억에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 가면 그 기억들이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서 그때의 감정과 기분을 불러내 주는 것 같은....... 

 


 
미고에서 치즈 케이크와 티라미슈 등 조각 케이크 몇 가지를 골라 가지고(미고는 인기가 있는 곳이어선지 빈자리가 없는 데다가 전 좌석이 금연이었으므로) 바로 옆 건물 2층의 카페로 올라갔다. S가 얼마 전 외국 여행길에 샀다는 디카를 꺼냈다. 적당히 어둡고 따뜻한 불빛 아래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창에 포착돼 있는 바로 몇 초 전의 내 모습이 낯설고도 기묘해 보였다. 녹음기를 통해서 듣는 자신의 목소리, 카메라의 필터를 통해 비쳐지는 자신의 얼굴은 왜 그리도 불안정하고 생경한 느낌을 주는지....... 과학적인 설명에 따르면, 그건 모두 거리와 [시간] 속도의 차이에서 오는 낯섦이라고 한다. 내 입에서 귀까지의 거리와 시간, 내 두뇌가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 한 대상으로서 외부에 보여지고 있는 나의 모습간의 거리에서 오는 차이. 어쩌면 기억이 갖고 있는 환상과 왜곡 역시 같은 원리에 기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S는 요즘 회사에서 임원진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경영 마인드 익히기 트렌드에 부응해 '도요타 자동차 회사'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고 토로한다. Y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시민단체에서 원불교 교무 집에서 마련한 식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원불교 교무는 어떤 식단을 먹는지 무척 궁금했으나...) 미묘한 이유로 동료에게 양보했다는 얘기를 꺼낸다. K는 한동안 이유 모를 불면증과 식욕 부진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데다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는데, 병원에서 우울증 초기에 나타나는 증세라고 진단했다는 얘기를 담담하게 한다. 그 탓에 오랫동안 몸과 마음이 두루 시달렸을 테지만, 그 결과 지금 겉모습은 보기 좋게 가뿐해져 있다. 우리는 '나이 듦'을 어느 지점에서, 어느 순간에 실감하는지를 저마다 얘기하며 쓸쓸하게 웃었다.


훈훈한 등불 같은 추억과 몇 장의 흑백사진 같은 기억과 희미한 미래의 희망이 교직되어 흐르는 시간. 그 시간들 속을 목소리와 이야기와 말들이 가볍고도 무거운 공기 입자처럼 채워 갔다. 경락 맛사지와 요가와 맨손체조의 효과와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 별거와 이혼과 성공적인 재혼 케이스와 쿨한 관계의 몇몇
사례들에 관한 이야기들, 주변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 인생의 부침에 관한 간략한 코멘트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말하지 못한, 말로 되어 나오지 않은, 발자국 남기지 않은 채 슬쩍 지나가 버린 저마다의 은밀한 생각과 감정들. 
시간은 흐르고, 밤은 깊어 가고, 2004년 12월 어느 저녁 S와 Y와 K, 그리고 내가 함께 한 기억 또한 그렇게 쌓여 가고 있었다.


한 시절을 같이 보냈으며 오랫동안 서로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란 '같이 살지 않는 가족'과 같은 관계가 아닐까. 일상적으로 밥상머리에서 마주하다가 집 밖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왠지 낯설고 부끄러운 기분에 외면하고 싶어지면서도 마음 한 켠 애잔한 연민이 느껴지는.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되는 동질감과 뿌리 깊은 동류 의식에 서글프고 누추한 감정 뒤켠으로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뱃속에 채운 듯이 마음 든든해지는.


지난 주말, 내가 걸었던 거리의 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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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서 밤으로 건너가는 시간. 프랑스 사람들은 이 짧고 진한 저녁 시간을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고 부른다고 했던가. 해가 지면서 설핏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 저만치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애매 모호한 시간대, J는 하루 중 이 무렵을 가장 좋아했다. 하늘이 새까만 어둠으로 완전히 뒤덮이기 직전 희부연 어둑함에 막 젖어들기 시작할 즈음의 세상은 온기와 물기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공기는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고 보호해 주듯이 미묘하게 부풀어오른다. 그 공기 속으로 희다 못해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홑이불 같은 빛이 가벼운 구름처럼 가득 차 있다. 그제서야 J의 몸은 개운하고 가뿐하게 깨어나는 듯했고, 마음은 그리운 어딘가를 향해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무작정 나서 보고 싶은 충동 같은 물결이 은밀히 일렁이다가, 아무런 까닭도 없이 스물스물 물기가 잦아드는 눈으로 물끄러미 풍경을 바라보게 되는 것도 이 무렵에 종종 겪는 일이었다.
한 사람의 일생이라는 주기 곡선으로 치자면 이즈음 J의 나이대가 바로 그 저녁 무렵에 해당되지 않을까. 헌데 어렴풋하고 불분명하고 모호한 저녁 무렵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과는 이율배반적으로, J는 이제 막 당도해 여장을 풀고 있는 이 저녁 무렵을 닮은 자신의 나이를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이 나이쯤의 나는 이런 모습이리라,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자화상이 개의 형상인지, 늑대의 형상인지조차 명확히 깨닫지 못한 채 여기까지 흘러온 탓일까.   

집에 돌아가면 분명 텅 빈 기분에 휩싸이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J는 별 도리 없이 집으로 향했다. 무언가 이 빈 시간을 색다른 것으로 채우거나 잠시 눈이나 마음이 현혹될 무언가에 기대 흘려 보낼 방법을 궁리할 여력도 없었다. 이런 기분이 들 때 하릴없이 어둠이 내리는 거리를 서성거리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볼 염(念)을 내지 않는 데서 전과 달라진 자신을 느낀다. 그런 마음의 기웃거림이 시들하고 귀찮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느껴지는 건 분명 나이 든 탓이려니.

J는 옷을 갈아입은 뒤 곧바로 아침에 개지도 않고 놔둔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간다. 지금 같은 때는 잠 속으로 도망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충전과 회복의 방책이란 걸 알고 있기에. 베개에 머리를 뉘이면서 J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알 수 없는 일이야,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는데,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고 일단 발을 들여놓았으니 끝을 맺어야 한다는 식의 의무감과 책임감에 떠밀려 여기까지 오게 된 일인데, 그 일이 끝났다고 이렇게까지 허탈할 이유가 있을까...... 헌데 새삼스레 내게 중요한 것, 의미가 있고 없고 따위를 따지다니...... 이제 사사건건 혼자 생각 많은 척하며 그런 의미나 가치를 재는 일에는 정말 지쳐 버렸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그리고 내일이라는 새로운 날이 오면 또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세수 한번 하고 나면 졸음이 달아나듯, 그렇게 말짱한 얼굴로 또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J는 좀 분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막막하고 어두워진 길을 삶으로 채워 가야 하지 않겠냐고 자신을 설득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이 나이까지 줄곧 J는 눈가리개를 하고 정해진 궤도를 달리는 말처럼 자기 앞에 주어진 길에 순응하며 단순한 낙관과 희망으로 자신을 달래 왔던 것이다.   

 

http://user.chollian.net/~bemyhoney/trollsconcerto12.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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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2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고 일어나니 목이 콱 잠겨 버렸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아니, 듣기에 무척 괴롭고 낯선, 녹물이 뚝뚝 듣는 듯한 쇳소리가 잔뜩 부어 있는 목구멍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새어나온다. 지금 내 목소리가 그런 그로테스크한 상태임을 이미 알고 있는 나는 그렇다 쳐도 그 소리를 들을 상대방을 생각하면 되도록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일 듯.
헌데 오전에만 벌써 두 차례 전화 통화를 해야 했고, 불가피하게 누군가를 잠시 만나야 했다. 무슨 일 때문에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는데, 심한 감기에 걸렸다는 내 말을 듣고는 그 사람이 타다 준 둥굴레차를 끝까지 다 마시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대화를 나누기에도, 그렇다고 어색한 침묵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기도 너무 곤혹스러웠던 탓에.
 
간밤에 자면서 기침을 많이 한 탓에 목은 잔뜩 부운 데다, 눈까지 충혈되고 자꾸 눈꼽이 끼여 시야가 흐릿해진다. 약간의 미열과 편두통이 배음(背音)으로 깔려 있다.
조금 허약해진 심신을 지켜보는 데는 불안감을 동반하는 야릇한 만족감이 있다. 마치 찜질방에서 오래 누워 있다 일어날 때 순간적인 현기증과 함께 팔에 송송 돋아나는 땀방울을 볼 때의 시원한 쾌감 같은...... 잔뜩 채워지고 부풀려진 몸과 마음에서 군더더기나 허접한 것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상쾌한 배설감, 가벼워지고 맑아지는 느낌, 창백해진 낯빛에서 보이는 겸허하고 유순해진 느낌.......

지금은 잠시 그런 상상을 해 본다. 오늘부터 이 괴상한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된다면, 예전 목소리로 영영 되돌아갈 수 없다면, 나는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목소리는 나의 일부일 뿐이지만, 그 일부가 달라지면 나라는 존재 전체에도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게 당연한 것인가. 나라는 개체는 목소리와 같은 여러 부분들의 조합, 총합이라고 말해도 좋은가. 눈동자의 크기나 빛깔, 목소리, 체중, 키, 손과 발의 모양, 성격, 취향, 식성, 기억의 저장 능력과 표현 능력, 감수성....... 이런 것들의 합집합이 '나'를 이루고 있는 걸까. 
뿌얘진 시야처럼 생각도 흐릿하게 뒤엉키는 가운데, 어쨌든 지금 이 목소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떤 이질감. 그로테스크란 외면과 내면, 두 측면의 너무 이질적인 거리감에서 나오는 느낌이 아닐까. 지금 내 목소리가 너무 그로테스크하다. 오늘 바람이 내 목소리만큼이나 스산하다.      

 

Ivan Graziani. Lugano Addio

www.poowa.com/iris/IvanGrazianiLuganoAddio.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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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물고기 2004-11-12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여 쾌차하시길..

물만두 2004-11-1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 무척 오래간답니다. 울 오마니도 아직도 싶니다. 몸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찬바람 쐬지 마시고 목욕 자제하시고 뜨거운 물 많이 드세요...

2004-11-12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담유 2004-11-13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허하고 유순해진 느낌" - (신체의) 고통에 진정 혼쭐이 나고 나면, 진정 겸허해지고 유순해졌던 것 같습니다.. 쾌차하세요.

2004-11-13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증상이 알레르기성 비염 같은데요^^ 환절기에 나타나는 증상인데, 체질이 개선이 필요하구요,,,^^ 이사하시느라 피로가 누적되어 그럴 거여요..일단 몸과 마음의 피로를 씻고 왠만하면 약은 드시지 말고 쉬고, 녹차 많이 마시면서 버텨 보셔요..몸 편히. 마음 편히..^^

조선인 2004-11-1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병원에 안 가보셨어요?

천식, 무시할 거 아닙니다. 초기대응이 늦어질수록 회복기간이 오래 걸려요.

1주일 통원치료로 해결할 수 있는 걸 잘못하면 4월까지 고생합니다.

좀 더 신경쓰시길.

브리즈 2004-11-1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 님, 너무 오랜만이죠? ^^..

지난 얼마간 알라딘 서재가 말썽을 일으키고 해서 서재에 자주 안 들어왔었고, 업친 데 덥친 격으로 지난주 주말에는 발을 다쳐서 한의원 신세를 일주일 동안 져야 했답니다.

동병상련이라고, 라일락와인 님의 초췌한 모습을 생각하며 몇 자 남깁니다. 힘내세요, 기운차리게 해주는 것도 많이 드시고요. :)

로드무비 2004-11-1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네요.

저도 요즘 수상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제 몸을 뻔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긴 싫은데......

좋은 책이나 영화보다 비타민이니 토코페롤이니 하는 게 더 필요한

나이가 되어버린 거겠죠?

아침부터 신통찮은 얘기 그만하고.

참, 보내드린 이벤트 선물은 잘 도착했는지요?

에레혼 2004-11-1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부터 이틀을 비워 둔 사이, 이렇게 많은 분들이 걱정과 마음을 함께 나눠 주셨군요, 정말 고맙고 마음 따뜻해지네요.

아픈 게 뭐 자랑이라고 시시콜콜 떱럴리나 싶기도 하지만, 그저 한때 제 몸을 스쳐 지나가는 증세들을 기록해 두자는 생각으로 끄적거려 놓은 것인데...... 같이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고, 이런저런 조언도 나눠 주셔서 뜻밖의 힘을 얻습니다.



마녀물고기님, 물만두님, 오후님,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쾌차를 빌어주신 님들의 덕분인 듯......



귓속말님, 아픈 몸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싶었으나 그닥 담담하지 못했던 듯싶어요, 내 안에 참 많은 엄살과 변명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받은 것 같아요.



참나님, 님 충고대로 약을 먹지 말고 버텨 볼 것을, 며칠 전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처방을 받아 온 김에 사흘 동안 내리 약을 먹었더니 감기, 천식 증세는 조금씩 가라앉은 대신 이번에는 약에 취해 맥을 못 추겠더군요. 한없이 까부라져서, 약 먹은 병아리 마냥 비몽사몽 상태로 며칠을 지내다가 오늘 간신히 돌아왔습니다.....






에레혼 2004-11-1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선배님(?)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옵니다. 병원은 다녀왔어요. 초기 천식 증세에 감기 몸살이 겹쳐 있다고 하더라구요. 엉덩이 주사도 한 대 맞고 사흘치 약과 비상시 상비약을 처방받아 왔습니다. 그 의상의 말로는 천식 증세에서 비염으로 진행되면 축농증 등 고질병으로 진전돼 골치 아파지니, 세심히 관찰, 관리하라고 하더군요. 생활 습관이나 체질 개선 등 상식적인 관리 요령과 함께...... 오히려 운동은 해로우니 하지 말라고 해서 좀 난감해 하고 있답니다.



브리즈님, 다리는 좀 어떠세요? 차가워진 날씨에 몸이 굳어있다 보니 관절이나 발을 삐끗하면 심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텐데, 큰일 날 뻔하셨네요. 그래도 이번 주말에 님의 방에서 팻 메쓰니 등 귀한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님이나 저나 제 몸을 좀더 아끼고 조심해 줘야 할 시기인가 봅니다. 님도 힘내세요!





로드무비님, 수상한 사건들이 연달아 몸의 이곳저곳을 거쳐 일어나고 있는 요즘입니다. 몸에 좋은 것 잘 챙겨 드시고, 자신의 몸은 자신이 잘 위해 주어야 할 듯싶어요. 가정과 사회의 주춧돌(?)인 우리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인류 평화와 발전에 지대한 피해가 생길 테니까요^^

이벤트 선물에 대한 답신이 너무 늦었지요? 요즘 제 속도계가 한 템포씩 느려지고 있습니다, 손을 좀 봐줘야 할 듯!

조선인 2004-11-1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구요, 기체조나 요가는 오히려 권장하는 편입니다.

제일 피해야 하는 게 길에서 조깅하는 거구요(매연과 온도 차이 때문에)

헬스센타의 경우도 청결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으니까요.
 


주말 늦은 저녁, 외출했다가 돌아온 직후였다. 막 컴을 켜고 알라딘 서재에 들어오려던 참에 기침이 시작됐다. 그것이 신호였다. 발작적 증세. 주체할 수 없이 연방 터지는 재채기와 줄줄 흐르는 콧물과 급기야는 호흡 곤란으로 이어지는. 기관지의 점막이 부풀어올라 벌겋게 충혈돼 있는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멈추고 싶은데 멈출 수가 없다는 것. 내 의지나 인내로 상황을 조절하거나 감내할 수 없다는 것. 온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무서운 기세에 그저 두 손 들고 투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것은 생생한 공포였다. 신경질적인 재채기가 이어질수록 점점 목구멍이 따가워지고 좁혀져 오면서 숨쉬기가 곤란해져 갔다. 목안인지 가슴의 어디께인지에서 쌕쌕거리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맑고 점성이 없는 콧물은 채 다 안 잠근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닦을 새도 없이 뚝뚝 떨어지고, 그 와중에 양치질을 하러 들어간 욕실 거울에 비쳐진 얼굴을 보니 몇 시간 정신없이 울고 난 사람 마냥 눈이 잔뜩 충혈돼 부어 올라 있다. 고작 15분 여 동안 진행된 상황이다. 그야말로 '발작적'이라는 말 그대로의 증세.
나는 그때까지 나의 이런 증세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언제, 어떤 원인으로 이런 증세가 발병됐는지도 역시 잘 모르겠다. 지난 여름부터 잊을 만하면 한번씩 간헐적으로 늦은 밤이면 나타나곤 하던 증세인데, 다행히 낮에 활동을 할 때는 아무 일이 없었던 터라 간혹 밤에 그런 증세가 나타나면 그 길로  잠자리에 듦으로써 묻어 버리곤 했던 것이다. 하기는 여태까지는 그런 발작적 징후가 미약하고도 짧게 나타났다 곧 사라져 갔으므로 견딜 만했던 것이리라.
마침 응급실 진료 때문에 병원에 가 있던 남편에게 급히 연락해 약을 처방해 오도록 했다.
몇 알의 알약과 시럽을 먹고(약의 이름과 성분은 모른다...), 가습기를 틀어놓고 옥돌 매트의 온도를 높이고는, 좀 전의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고통과 그보다 한 스푼의 쓴 약만큼 더했던 공포를 잠재우기 시작했다.
천식 발작이란 게 이런 것....... 이런 상태로 돌연, 강도라도 당하듯, 갑작스럽고도 황당하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꽤 부풀려진 과장과 엄살이 버물려진 반응이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그런 생각이 더없이 실감나는 실체로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역시 고통은 어떤 관념보다 물질적이고 육감적이다. 고통에 이어지는 두려움은 은유나 상징 따위를 거들떠보지 않는 직설적 화법이다. 곧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로 달려든다. 아무리 사소하고작은 고통이라 할지라도, 몸이 느끼는 고통은 그렇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자 마치 폭풍 뒤 맑게 갠 아침처럼 말짱하고 평온하다. 아직 기도의 점막은 부어 있는 상태라 둔중한 감각과 피가 섞인 침이 넘어갈 때의 비릿한 맛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살 만하다. 정신과 여유를 되찾고 네이버 지식인 검색에서 '천식과 비염'을 검색해 보았다. 나의 증세가 어떤 것인지는 이해해야겠기에.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면 환경적 요인에 의한 알레르기로 봐야 하는데, 모든 알레르기 질환이 그렇듯이 병인도, 치료법도 확실한 것은 없다. 추정된 다양한 원인과 일시적인 치료법이 있을 뿐.
네이버 지식 검색에서 찾은 천식의 유발 원인은 이렇다.  

"천식의 병인은 그리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중에서 상당한 요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알레르기이다. 그러나 실제로 알레르기 단독으로만 천식을 일으키는 경우보다는 감염이라든지, 자율신경계의 실조(失調), 내분비계의 이상, 수용체의 차단상태, 정신적인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천식을 일으키게 된다. 게다가 천식의 유전적인 소인이 있는 경우에, 여기에 알레르기 반응 등의 후천적인 원인이 더해져서 천식을 일으킬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진다.
 
알레르겐
일반적으로 알레르기성 천식인 경우 어떤 물질에 대한 과민 반응으로 생기는데 집먼지진드기, 집먼지, 꽃가루, 동물의 털, 곰팡이, 우유, 계란, 견과류, 생선, 복숭아, 메밀 등이 대체적으로 문제가 된다. 이렇듯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을 알레르겐(또는 항원)이라 한다. 우리 나라에서 4가지 대표적인 알레르겐은 집먼지진드기, 쑥 꽃가루, 고양이 털, 알터나리아 곰팡이 이다. 그 중 집먼지진드기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는데 소아 천식의 70∼80%, 성인 천식의 40∼50%가 집먼지 진드기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생기는 것이다.

유발 요인(비항원성 천식 유발 자극)
알레르기성이 아닌 기관지 천식일 경우에는 감기, 운동, 찬 공기(기후의 변화), 오염된 공기, 담배연기나 페인트, 향수와 같은 진한 냄새, 스트레스, 흥분, 고함 지르기, 식도 역류, 약물, 임신, 술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이런 것들은 알레르겐과 구별하여 유발 요인이라 한다."

대부분의 알레르기성 질환은 사실 완치가 어려운 만성병이라서 어떤 병인으로든 한번 생기면 평생 애증이 뒤섞인 친구처럼 사이좋게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는 걸로 안다. 한 친구의 말을 빌자면 "인생을 겸허하게 살라는 한 충고"인 셈이다.
그래, 겸허함,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와 빚갚음...... 그렇게 받아들이련다. 오늘 아침, 오랜 병상에서 떨치고 일어난 사람 마냥 기대치 않았던 어떤 의욕과 감사가 다시 솟아난다.  한 차례의 돌연한 발작적 증세가 오히려 나의 오랜 무기력과 미지근한 감정 상태를 깨끗이 청소해 준 느낌이다. 안개를 헤치고 비쳐드는 힘센 아침 햇살처럼.



덧붙여서.....
네이버 지식인 검색의 재미있는 점.
'천식'에 관련해 이런 기타 의견과 웹문서와 이미지를 함께 보여준다. 검색어에 대한 기계적이고 방대한 검색 반응의 결과. 재미있어서 혼자 웃다.

s2m00k4 기타
궁금하군요 이런 증상이......... 2003-11-20 23:33:52
 
 iorc 기타
인삼식용유를 드십시요. 공복에 3주간만 드시면 확실히 치료됩니다ㅓ. 2004-02-17 21:41:59
 
 karlose3015 다른 의견
건강한 집.숨쉬는 집 만들기 프로젝트 알레르기, 꽃가루방지, 천식 - 황사, 공해, 숨쉬는 집, 먼지 여과 방충망 생산업체, MBC 러브하우스 협찬.
www.hwangsa.net 031-335-0105 2004-04-08 09:14:51
 
 artinone 동의하기
좋은 정보네요..저도 천식환자인데요..이런 지식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별거 아닌 병으로 생각들 하던데...그리고 감기랑 첨엔 비슷하길래 저도 너무 늦게 치료를 시작했거든요. 2004-04-28 01:09:31
 
 lycos0110 기타
제가 면역력이 약해 비염과 약간의 천식 있는 관계로 천연항생제라고하는 프로폴리스란 제품을 복용을 했는데 완치된 건 아니지만 가격도 국산 반이고 캐나다산 천연제품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아주 효과가 좋더라구요.
www.vitaland.biz에서 구입하실 수 있을 겁니다 2004-06-28 02:35:19
 
 2wjdtlr 다른 의견
안녕 하십니까 집먼지 진드기 전문 항균 정소업체 알렉스입니다. 고민하시지 말고 저희와 상의 하십시요. allerx.net 부천지사(017-353-8322) 2004-07-02 13:10:08
 
 kr1750 다른 의견
● ● 먹는 수세미외를 이용한 천식 치료법(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민간요법)을 소개합니다.. ◆◆
http://www.susemi.id.to ◆◆ 2004-10-06 11:19:10
 

선술집
... 흠…" 천식은 다시 눈물이 글성글성해지며 목메인 소리를 한다. "내가 맘이 변해졌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현호는 천식의 말을 들을수록 모호하고 이상하였다. "선생님은 지금바로 오득 어머니에게 쌀을 한바가지나 퍼주시지 않었읍니까?" 하고...
 
보도방 2
... 모양이었다. "이 오빠가 말이야. 아주 세더라고. 우리 한참 했지? 그지?" 운향은 천식에게 확인이라도 하듯이 말을 건넸다. 천식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형민에게 미안한 듯 실실 웃어댔다. "정말 그래? 호오, 그럼 천식이가 진짜 센 놈이군. 얼마나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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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8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1-0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 너무 놀라셨겠어요.

이제 좀 괜찮으신 거죠?

남편분이 의사라니 안심이 됩니다.

아무튼 조심조심하시고요.

저도 이제부터 천식에 대해 관심을 좀 가져야겠군요.

조선인 2004-11-0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병상련에 반가운 마음이 들다니 저도 제정신이 아니군요. -.-;;

올해부터 깊은 밤에 발작이 찾아온다면 일단 집먼지 진드기가 제일 의심되네요. 더군다나 옥돌매트를 쓰신다니까요. 햇볕에 매트를 하루 바싹 말린 뒤 항진드기매트커버를 씌우시길 바랍니다. 물론 진드기자바도 필수구요.

그리고 가습기나 가습기메이트는 쓰지 마세요. 가습기는 세균이 살기 최적의 환경일 뿐 아니라, 이를 막는 가습기 메이트의 화학성분이 또 알레르겐이 될 수 있답니다.

무엇보다 얼른 호흡기내과나 알레르기 전문의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일단 기관지확장제 부작용은 없는 듯 하지만 전문의와 상담은 필수!랍니다.

뭐, 부군이 의사이신 듯 하니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종합병원 의사들은 워낙 바쁘다보니 막상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을 꼼꼼히 못 챙기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조선인 2004-11-0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allumi.donga.com/

아직 정보가 부실하긴 하지만, 그래도 알레르기 전문 사이트입니다. 물론 서핑으로 얻는 정보보다는 진료가 선행되어야 하는 거 잊지마세요!!!

내가없는 이 안 2004-11-0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괜찮으세요? 알레르기성 천식이 무척 무서운 거군요.

건강하셔야 돼요, 라일락와인님...

에레혼 2004-11-0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병은 소문을 내라더니..... 같이 염려해 주시고 귀한 조언 주신 님들, 고맙습니다.



귓속말님, 지르텍과 흡입제, 저도 상비약으로 구비해 둬야 할까요? 요가는 혼자서 짬짬이 하느라고 해 왔는데, 아무래도 학원에 등록하고 규칙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자꾸 게으름을 피우게 되서요......



로드무비님, 역시 님은 마음이 따뜻한 분! 님은 표정과 말에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 같은 분일 듯! 그래서, 제가 님을 무척 좋아하지요!



조선인님,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에 귀한 정보 나눠 주신 것, 정말 고마워요. 아무래도 집먼지 진드기가 가장 유력한 원인이겠지요? 집에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는데, 그것도 한 원인일 듯싶구요.....

어쨌든 이렇게 증세와 치료법을 같이 나눠 가다 보면 한결 치료에도 힘을 얻게 되겠지요. 든든한 벗을 만난 듯해서 저도 반가워요-.- ;;



이 안님, 오늘은 목에 후유증이 남았고, 천식 기운 대신에 몸살기가 찾아왔어요. 두통과 근육통이 만만치 않군요..... 우리, 정말 건강해야 해요!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자신을 위해 주고 잘 챙겨 줘야 할 나이가 아닐까요......



걱정해 준 님들 덕분에 오늘 푹 쉬고 나면 회복되겠지요,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4-11-09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지셨다니 다행이군요.

몸살기 싹 가실 때까지 편히 쉬세요. 맛난 것 드시면서......

그리고 9000 캡쳐 이벤트를 하셨더군요.

바뀐 주소 알려주세요.^^

hanicare 2004-11-09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의 고통에 비하면 마음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그러고 나면 책에 씌여진 글자가 폴란드망명정부의 지폐처럼 우수수 져버리더라는.무사귀환을 축하하면서.

에레혼 2004-11-1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케어님, 며칠 사이 몸에 여기저기 이번엔 내 차례야, 하듯이 돌아가며 이상한 징후들이 나타나자, 제가 한 생각이 바로 그거랍니다. 몸의 이 생생한 고통에 비하면 마음의 고통이란 얼마나 관념적이고 허약한 것인가...... 몸에 들이닥치는 고통은 펄떡거리는 날것이라서 그것을 이루고 있는 입자 하나하나를 손으로 집어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헌데 또 그 고통을[고통의 부위와 고통의 감각과 정도를] 언어로 정확히 표현하기란 얼마나 어렵고도 낯선 것인지요.

에레혼 2004-11-12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르텍, 벤토린... 이제 이런 이름들에 친숙해져야 하려나 봐요

새벽별님, 34년째라니, 그 동안 고충이 얼만 컸을까요, 전 이 초기 증세에 이렇게 엄살을 떨어대는데 말이에요...... 헌데 정말 몸의 균형을 한번 잃고 나니, 그동안 내가 내 몸에 참 무심하고 오만했구나 하는 반성이 들기는 하더군요.

2004-11-13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나중에 봐요..하하 정말 다양한 의견이 있군요..이 글 보니 님은 줄줄 흐르는 콧물 멈추지 않는 재채기...정말 제 증상과 꼭 같군요..전 큰 아이 낳고 한 5년간 그러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해마다 반복 되던 걸요,,,꼭 그 시기가 오면...그 땐 너무 심해서 결국 병원도 다니고 그랬는데 잠깐은 괜찮지만 뿌리가 뽑히진 않더라구요.평소에는 감기도 한 번 안 걸리고 씩씩하게 사는데 말이죠...저도 제 인생의 경고 쯤으로 여겨지더군요. 몸에 제게 하는 경고...그 이후로 별 달라진 생활 태도는 없지만 면역 체계가 약해졌다는 신호니까 좀 조심하면서 삽니다. 운동해야지...항상 마음의 숙제를 안고..
 



 Noon in the Neighbourhood of Moscow by Ivan Shishkin

같이 걸을까요? 날도 이렇게 좋은데......

벨 소리가 울려 문을 여니, 문 앞에 처음 보는 얼굴의 여자가 서 있다. 자주색 츄리닝 차림에 조금은 파리한 낯빛. 말없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 표정에 수줍음 반 망설임 반인 목소리로 "저, 앞집인데요" 한다.
의아함과 가벼운 경계심을 풀고 나도 멋적게 "아, 네......"하고 말을 받는다.
"산에 같이 안 가실래요?"
여자는 한번 입을 떼자 그때부터 갑자기 말문이 터진 명랑한 계집아이처럼 경쾌해진다.
"어제 남편이랑 같이 요 앞 산에 올라갔다 왔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코스도 다양하게 있어서 그 날 그 날 상태에 따라서 골라서 올라가면 될 것 같아요. 저, 지금 한번 가보려는데, 같이 안 가실래요?"
"아, 네......"
나는 그것 말고는 적당한 응대의 표현을 알지 못한다는 듯 또 그렇게 말을 받고는 잠시 궁리한다.
"저도 요 며칠 저녁때마다 동네 한 바퀴씩 돌다 오곤 했는데, 참 좋더군요. 근데 오늘, 내일은 좀 일이 있어서요..... 다음에 시간 맞춰서 같이 한번 가도록 해요."
"네, 그럼 그렇게 해요...... 집에만 있으면 너무 아깝잖아요. 날도 좋고, 가까이 산도 좋은데......."
여자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가볍고 발랄하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다.
 
일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조금 후에 나가 봐야 할 일이 있긴 했다.
허나 그럴 계획이 없었다 해도 선뜻 내가 여자의 제의를 받아들여 운동화를 꿰신고 나서게 됐을지는 잘 모르겠다. 여자의 제안 자체는 신선하고 유쾌한 것이었다. 적어도 이사와서 나누는 첫 인사가 접시에 담긴 떡 돌리기인 것에 비하면, 이 편이 훨씬 귀엽고 정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곧 이어 며칠 뒤 앞집 여자와 산행을 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뚜렷한 불안과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동안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하지. 나이, 취미, 남편의 직업, 또는 자신의 일, 지금까지 살아 온 대략의 이력, 요즘 관심 있어 하는 것,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 아마 그런 얘기들을 하게 되겠지.
나는 이웃이라든가, 동년배 그룹이라든가, 학부모 모임이라든가... 이런 식으로 엮인 사람들과 그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직, 늘, 여전히 서툴고 어색하다. 무엇을 어느 선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어법으로 말해야 서로 부담 없이 편안한지, 그런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소통을 공유할 수 있는 건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관심을 갖거나 공감하는 주제는 어떤 것인지....... 그런 것에 관한 매뉴얼이라도 있으면 한번 후루룩 훑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문제는 나 자신이 내 또래의 여자들이 갖고 있는[갖고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주제들에서 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는 것, 늘 현실 속에 두 발을 균형 있게 딛지 못하고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을 부유하고 있다는 자의식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자의식쯤이야 내가 우려하는 것처럼 그리 기이하거나 특이한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 안의 소심함과 예민함은 앞지른 우려를 하게 만든다. 가끔 나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결혼을 하고 살림이란 걸 처음 시작했을 때,  내가 세웠던 생활의 원칙(?) 중에 하나는 아침마다 식구들 다 나가자마자 "커피 한잔 하러 와"하며 줄창 내 집 네 집 넘나들며 일상을 같이 나누는 '모닝 커피 친구' 즉, 동네 아줌마 친구는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가족처럼 지내는 이웃'이란, 생활의 편의를 공유하는[서로 돕고 사는] 친밀감과 정을 나눈다는 장점에 비례해, 무심한 간섭과 침해가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폭력'이 내재해 있는 관계인 것이다. 나는 내 일상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그런 친밀한 관심과 무분별한 침해가 두렵고 끔찍했다. 수시로 드나들며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같이 시장을 보고 목욕을 가고 같이 TV를 보고 서로 반찬 접시를 들고 오가며 간간이 같이 놀러도 다녀야 하는 그런 관계의 지형학........ 또 다른 혈연 관계와도 같은 의무와 책임과 관습이 부과되는.......

'모닝 커피 친구'를 두지 않겠다는 나의 원칙이랄까, 그런 자기와의 약속은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를 '혼자 잘 노는 사람'으로 강화시켜 준 대신에 일상의 친구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나는 영화를 혼자 보러 다니며, 혼자 쇼핑을 하고,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간다. 혼자여서 간혹 심심하거나 외로울 때도 있지만, 대개는 편안하고 익숙하고 평온하다. 누구와 시간을 맞추거나 내키지 않는 상황에 마음을 맞춰야 할 일이 없으므로. 그리고, 혼자 있어서 느끼는 심심함이나 외로움은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서 느끼는 지루함과 피곤함보다는 더 심신에 유익하다고 자위한다.

나의 사정이 이러한 터라, 앞집 여자의 가볍고 유쾌한 산행 제안 뒤에 나의 마음은 사뭇 복잡하고 꼬인 행로를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의 말마따나 "날도 좋고, 산도 좋으니까" 그 좋은 것을 같이 나눠 가지면 그야말로 '행복이 두 배'가 되는 것 아닌가.
어쩌면 며칠 뒤 나는 옆집 여자와 도란도란 무언가를 얘기하며 낮은 산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산길에는 그런 '관계의 시간'이 생각보다 제법 유쾌하고 가뿐했다는 느낌에 몸도, 마음도 발그레하게 상기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산책은, 내가 이끌리는 걷기는 바로 이런 모습, 이런 풍경이다. 혼자서 낯모르는 사람들 사이로 처음 온 거리를 걷듯이 낯선 눈으로 기웃거리며 천천히 거니는 것. 그리하여 내가 풍경 속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가고,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점차 저무는 풍경처럼 내가 엷어지고 지워지면서 경계가 지워져 가는 것, 더 이상 나를 들여다보지 않게 되는 어떤 지점, 어떤 순간........

 

 Street in Venice by John Singer Sargent

혼자, 낯선 사람들 속을, 처음 온 거리인 듯, 그렇게 기웃거리며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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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1-04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 우리는 각각 혼자 같이 걸읍시다.^^

2004-11-04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인장 2004-11-0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한 선배가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함께 오르는 지인과 한 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고, 그저 서로의 생각에만 빠져 있었지요. 그러나 둘의 간격이 벌어지면 그저 한쪽에서 가만히 기다려만 주고. 옆에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친구,그저 옆에 있다는 것만 이따금 확인하면 그것으로 족한 친구. 전 혼자보다는 그런 이와 함께 걷고 싶어요.

urblue 2004-11-0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속의 여자, 라일락와인님 같습니다.

2004-11-05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레혼 2004-11-0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각각 혼자 같이.... 그런 현명한 방법이 있었는데 말이지요^^ 지금 우리처럼!



선인장님, 옆에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친구,그저 옆에 있다는 것만 이따금 확인하면 그것으로 족한 친구...... 그런 벗을 곁에 두고 있다면 참 잘 살아 온 삶이 아닐까 싶어요. 하기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벗이 돼 줄 수 있느냐 아니냐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듯..... 전 '관계'에서는 자신에게 늘 평균치 이하의 점수밖에 줄 수가 없어서..... 그런 친구를 바라는 것이 제게는 과욕이 아닌가 싶어요.



유아블루님, 느낌이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에레혼 2004-11-0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 하신 분이 두 분이라....... 차례대로, 그 님들은 알아보시겠지요?^^



...... 님, 저는 일찌기 알아봤는걸요. 님이 나와 同種의 사람이라는 걸...... 전 받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늘 불쑥 '침입'하듯 울려오는 전화도 '공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긴요한 용건이 있는 경우 말고는 전화로 그저 수다를 떠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지인들은 그런 절더러 가끔 손가락이 부러졌냐고도 한답니다. 실은 커피도 혼자 마시는 커피가 맛있고, 영화도 혼자 보는 영화가 맛있어요! 제대로 음미할 수 있지 않나요? 그 순간의 맛을, 그 순간의 그것과만 독대함으로써....... 이 아침에 님도 혼자 커피를, 저도 혼자 커피를 마시며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이도 나름대로 조용한 '소통의 시간'이지요!



...님, 언젠가부터 저에게 님은 '모닝 커피 친구'처럼 느껴져요. 좋은 의미에서요...... 이만큼의 거리와 친밀감이 서로에게 쾌적하다고 느껴지지 않으세요? 적당히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구요^^ .

이웃집 '아줌마 친구'가 없으면 생활면에서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기는 해요, 그때그때 유용한 살림 정보를 귀동냥할 기회도, 물건을 싸게 '공동 구매'할 기회도 없고, 인근의 새로 생긴 맛집이나 찜질방 같은 데도 잘 모르게 되구요......

그래도 이젠 혼자 슬슬 걷는 방식이 몸에 익어서 누군가와 동행하는 산책이 좀 부담스럽고 난감하게 느껴지니, 어쩔 수 없지요.

님의 방에 마실 갈 생각에 마음이 설렙니다, 건강 해치지 말고 일 부지런히 마치시고 서재에 초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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